◈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렘1:1~12 인터넷설교녹취, 정리
본문 렘1장은 '예레미야' 선지자에 대한 정보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예언은 2~51장이고, 52장은 마무리죠.
◑서론 /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인가?
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예레미야는 원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사장 중에 있었던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셨다 라는 것이죠.
그러니 예레미야는 제사장이면서, 선지자였습니다.
참고로, 에스겔도 제사장이면서, 선지자였습니다.
사무엘도 제사장이면서 선지자 사명을 감당했고요.
그래서 그가 제사를 집례하는 모습을 보게 되죠. 주1)
그래서 자기가 도착하기도 전에, 제사를 드려버린 사울 왕을 호되게 책망했었죠. 삼상15:22
그것은 그가 제사장 이었다는 점을 밝혀줍니다.
구약의 족장들도 (아직 12지파 분리 전) 제사를 주도하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선지자였음을 보게 됩니다.
1: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 재위 13년 때부터, 예레미야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31년 재위했으니, 요시야 때 18년간 선지자 사역,
여호야김 왕은 11년 재위했으니, 그때 11년간 사역,
시드기야 왕도 11년 재위했으니, 그때 11년간 사역,
그래서 예레미야는 도합 40년간 선지자 사역을 하게 됩니다.
(중간에 여호아하스, 여호야긴은 각각 석 달 재위)
요시야-여호아하스-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이렇게 5왕 시대를 망라해서
예루살렘의 패망하고 성전이 불탈 때까지, 그는 선지자 사역을 했고,
나중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BC 586), 그 엄청난 재앙의 순간에도
겨우 살아남은 유다 백성들이 애굽으로 피신을 갔을 때, 거기까지 따라가서
예레미야는 애굽에서 (노환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예레미야와 요시야의 태어난 나이가 똑같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요시야 13년에 선지자 사역을 시작했으면, 그가 20세 쯤 되는 거죠. 1:2
그런데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9:1, 9:18, 14:17, 13:17, 31:16)
그런데 '눈물' 말고도, '탄식'하고, '슬퍼했다'는 말이 여러 곳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로 부릅니다.
▲심판과 멸망을 앞두고 회개와 회복을 선포한 선지자
예레미야 하면 무엇보다도
심판을 앞두고 있는, 멸망을 앞두고서
구원을 선포하고, 회개를 선포하고, 그리고 회복을 선포했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남유다가 멸망하기까지 40년 동안
멸망 앞에서 회개를 선포하고, 회복을 선포했던 선지자,
그가 바로 예레미야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일단,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를 향해서, 어느 크리스천이
'우리나라가 앞으로 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해 보세요.
그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참된 메시지요, 예언이라 할지라도..
아마 돌팔매,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고, 당장 거짓선지자로 낙인 찍힐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회개하고 돌이키면, 너희들 용서해 주시겠다'라고 예언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예언이 바뀝니다. '이제는 돌이켜도 어쩔 수 없다. 바벨론에 항복해라'
오늘날 누가 나타나서 '적국에 항복해라'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면,
아마 맞아 죽을 것이고, 간첩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가 그래서 시위대 뜰에 갇힌 것입니다.
적(바벨론)에게 이로운 소리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를 가두어서, 백성들에게 예언하지 못하도록 격리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레미야는 참으로 비운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참 예언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사람들은 자기를 '바벨론에 넘어간 변절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래 저래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요시야 왕
요시야는 예레미야 40년 예언사역 중에
초기 18년을 함께 한 왕이라서, 예레미야서 이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배경 이해에 중요하니까 각주를 꼭 보세요. 주2)
◐본문 렘1장 : 소명 받는 예레미야
▲1:1절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베냐민 땅 아나돗'
'아나돗'은 예레미야의 고향으로서, 예루살렘 북동쪽 약 4마일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기업이 없는 레위 지파 아론 자손 제사장에게 할당되었죠. 수21:13-19
한편 제사장 엘리 가문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은
다윗의 후계자로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는 편에 가담한 이유로
솔로몬에 의해 이곳 아나돗으로 추방된 바 있습니다. 왕상2:26
또한 원래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48개 성읍에 흩어져 살기도 했고요. 민35:7
한편 예레미야는 제사장 사역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 안 나옴)
만약 예레미야가 제사장이었다면, 그의 메시지와 예언에는
어느 정도 그의 제사장 직분의 배경이 반영되었을 것이나, 안 나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등극을 하고는, 아비아달의 집안들을 전부 다 퇴출시켜 버려요.
그리고 사독의 집안을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예레미야 때까지도 사독의 집안이
대제사장 및 제사장 사역을 감당했던 거죠.
그래서 1절에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이란 말은,
몰락한 제사장의 집안이요. 제사장은 제사장인데,
멀리 지방, 한직으로 밀려난... 힘없는 제사장들의 집안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니 뽀듯이 먹고 살았을 거예요.
또 예레미야는 아직 젊습니다. 20세 가량입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1:6
△그런데 하나님은 늘 이렇게 역사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누구를 보내십니까? 예수를 아기로 보내세요.
그 미약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 마리아의 젖을 빨고
거기서 자라가야 되는 그러한 자를, 자기 사역자로, 자기 메신저로 보내신다는 거예요.
강력해 보이는 그 사울 왕이 아니라, 저기 촌구석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다윗을
하나님은 부르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 이 위중한 때에,
이스라엘이 심판을 앞두고 있는 그때에 (남유다 패망 40년 전, 1차로포 20년 전)
'미약한 사람을 부르셨다' .. 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유력한 제사장들은, 사독 계열로서
전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차피 제사장 중에 누구를 부를 것 같으면
예루살렘의 유명한 사람들 중에, 유력한 사람들 중에 부르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뭐죠? 거기가 대다수 부패했어요.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자기가 제사장이면서도, 제사장 집안을 엄청나게 쳐서 예언(비난)해요.
(그래서 나중에 아나돗의 제사장들이, 고향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도모해요. 11:21)
왕들과 이런 지도자들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제사장들을 엄청나게 비판해요.
팔이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그런데 왜 그가 제사장들을 비판해요?
지금 중앙에 있는 많은 사람들, 유력하다고 하는 사람들,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부 거의 다 부패했거든요. (안 그런 제사장도 있었겠지만)
그러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저기 완전히 밀려나서 몰락한 베냐민 땅 아나돗,
저기 시골에 있는, 그러나 부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 사람 예레미야를 불렀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1:2절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다스린지 13년에'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은 때는, B.C.627년입니다.
이때는, 앗수르가 몰락하고 신흥 강자 바벨론이 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주2)
▲1:3절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
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이는 예루살렘 함락 때인 B.C. 586년까지를 말합니다.
그렇지만 렘40~44장에 보면,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도 몇 년 동안
예레미야가 남은 유다백성들을 돌보며 예언사역을 계속합니다.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5절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이는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선택받은 것이 결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롬8:29~30
바울도 자기 자신을 어머니의 복중에서 하나님이 택하셨다고 말씀했죠. 갈1:5
'너를 구별하였고'
'구별하였고'의 원어 '카다쉬'는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다른 것들과 구분해서 따로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 장소, 시간 등이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별되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사람의 마음대로 그것을 처분하는 것은 참람한 행위가 되죠.
'너를 여러 나라(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그의 예언은 유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뜻합니다.
실제로 46~51장은 열방을 상대로 예언합니다.
▲1:6절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미약한 사람인 예레미야를 부르시는데
또 예레미야의 특징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내가 슬픕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하면서,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있는 사람,
하나님은 지금 그러한 예레미야를 부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세상에서 누군가가 일을 시킬 때는 어떻게 합니까?
'어떤 자격을 갖추었는지, 어떤 능력을 갖추었는지' 그걸 보고서, 자격 갖춘 사람을 뽑아서 씁니다.
면접볼 적에 '나는 이것도 갖추었고 저것도 갖추었습니다.'
'할 수 있나요?' '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희한하게도, 자기 자신이
'나는 말할 줄도 모르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하나님 나한테 왜 이런 일을 시키십니까?'
라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그런 사람을 택하여 쓰십니다.
그러나 '그래서 나는 끝까지 못합니다' 라고 불순종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그러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부르신다 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도 부르받았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지금 아주 미약하고, 연약한...
그러나 정결함을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그러한 사람을
(남유다가) 심판으로 멸망받을 이 위급한 때에 부르셨다 라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럼 그런 사람을 불러서 무엇을 하시냐는 거예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예레미야
이런 표현이 저는 너무 좋아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11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13
이건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 '어떤 정보가 내게 주어졌다. 어떤 지식을 내가 알게 되었다'
이런 뜻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은 결국 누구를 상징합니까?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임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런 표현을 따뜻하게 느끼는 거예요.
이 말은 뭐죠? 이제 예레미야는 부름받고 나서 뭘 하는가?
그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것부터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가까이 왔어요. 하나님이 내게 오셨어요.
그리고 계속 그 말씀이 내게 임하셔서, 하나님에 대해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선지자로 말하게 하는 거예요.
정보가 임했기 때문에, 지식이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셔서, 하나님이 내게 함께 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된 그를' 하나님은 선지자로 보내시는 거예요. 말(예언)하게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거예요.
▲1:7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이거 힘든 겁니다. 사람들 귀에 듣기에 좋은 말 하는 것은 쉽죠. 어렵지 않습니다.
뭔가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에게 뭘 말하거나
혹은 나에게 좀 호의적인 사람한테 말하는 것은 괜찮아요.
그런데 '이 말을 하면 나를 죽일 것 같은 사람 앞에서',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거는 힘들어요.
그래서 선지자가 아닌 사람들은, 보통 듣기 싫은 말은 안 해 버립니다. 침묵하고 말죠.
'이 내용은 전하면 괜찮을 것 같고, 이 내용은 조금 수정해야 될 것 같다'
이렇게 하지 않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빠짐 없이 다 전해라'
이거는 보통 담력으로는 순종하기 힙듭니다. 그런 점에서 선지자가 참 어려운 사명이에요.
만약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선지자가 전달하지 않든지,
아니면 자기가 편집해서 두루뭉실하게 좋은 말만 전했다면, 그 선지자는 파면인 거죠.
그래서 때로 선지자가(하나님의 사람, 대언자)가 죽기도 합니다. 왕상13:24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위중한 때에 예레미야를 불러놓고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게 하시더니
결국 하나님의 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1:8절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여호와께서 선지자와 함께하시며 보호하시는 이상 두려워 할게 없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모세와 출애굽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모세를 어떻게 구해내셨는지,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1:9절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신18:18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또 렘15:19절에도 반복됩니다.
이것을 통해 예레미야는 자신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임을 자각했을 것이며,
자기 사명에 대해 더욱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1:10절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가 전달할 선포의 내용은 크게 파멸과 회복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역 초기에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강도 높게 설교하였고,
후(파멸되고 난 후)에 가서는 회복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또한 본절은46-51장에 언급된 이방 민족에게 고하는 심판의 예언을 반영합니다.
한편 본절에는모두 여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네 개는 파괴적인 측면을, 두 개는 건설적인 측면을 가진 동사입니다.
여러분, 선지자 예레미야가 돈이 있습니까, 권세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 단벌 신사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뽑고, 파괴하고... 심고 세웁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을 주셔가지고, 그렇게 그 말씀을 전하는 예언 활동을 통해서
나라들을 다시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뜨리기도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우리 각자 개인도 포함됩니다.
선지자가 가진 놀라운 권세입니다. '뽑고 파괴하고.. 심고 세우는' 권세!
오늘도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이런 프라이드와
이런 놀라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권세를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이 위중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뭘 하고 계십니까?
군대를 부르셔서 보내지 않으시고, 금광을 발견케 하셔서 부귀를 주시지 않으시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청년 선지자 한 사람 세우셔셔,
하나님은 세상을 경영하실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입니다.
◑살구나무 환상 1:11~12 주3)
▲마치는 말
그런데 왜 이 본문을 우리에게 보여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예레미야처럼 부른받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예레미야처럼 서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겁니다.
미약하고 미천한 저와 여러분을, 아무것도 아닌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어요.
그리고 지금 하나님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말씀도 보게 하시고 성경도 보게 하시고
세상도 보게 하셨어요.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으로"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우상을 무너뜨리고,
죄악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수 있는... 복음의 말씀을 우리 입에 두셨어요. 1:9
영어 이름에 '제레미'가 있는데, 예레미야(제레마이어)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죠.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제레미 Jeremy'들이 필요하십니다.
'제레미'들을 부르고 계세요.
우리 가정의 제레미, 우리 교회의 제레미, 우리 직장의 제리미
우리 도시의 제레미, 우리 나라의 제레미... 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참고로, 20세기 1940~1970년까지 미국의 대표적 선지자는 빌리 그레이엄이었고요.
1970~2011년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선지자는 데이빗 윌커슨 이라 볼 수 있죠.
그 뒤로는 폴 워셔가 또 미국의 대표적 선지자였습니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죠.
이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은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이 시대의 예레미야로 나를 불러 주소서!' 하고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주1)
사무엘과 그의 부친 엘가나는 삼상1:1에 의하면 에브라임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대상6:27~28 족보에 의하면, 엘가나와 사무엘은 레위지파 고핫의 후손으로 나옵니다.
즉 원래 레위지파인데, 에브라임 지역에 파송된 레위인 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혈통적으로 제사장 자격이 있었으며, 그래서 어릴 적부터 성전에서 봉사했던 것입니다.
주2) 요시야 왕
왕하22:1 여러분 요시야는 아주 어린 나이에, 8세에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대하34:3 재위 12년에, 요시야는 (1차)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율법책 발견 전
'제12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대하34:3
왕하22:3 '요시야 왕 18년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이때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됩니다. 22:8
앞서 선왕들 아하스, 므낫세, 아몬 등 선왕들이, 워낙 우상숭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성전에 마땅히 있어야 될 율법책 마저 다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창고 구석에 쳐박혀 있었나봐요. 그 율법책이 발견됩니다.
'(서기관) 사반이 왕의 앞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읽으매
(요시야)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0~11
이런 요시야 왕의 재위 기간 중에, *요시야 BC 640~609 (31세)
이때가 BC 626~627년 경입니다. *아직 율법책 발견 전
이때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큰 변화가 있었던 때였어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 강력했던 앗수르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받던 때였어요. *요시야 재위 13년 1:2
그러니 요시야 재위 12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도,
앗수르의 압박이 아주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음을 유추할 수 있죠.
그러니까 앗수르가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라든지, 정치라든지, 국방이라든지... 뭔가 자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때부터 바벨론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앗수르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앗수르가 무너지기 시작하던 그 시기가
요시야 왕 13년, 예레미야가 부름받은 때였어요. 1:2 BC 626~627년
요시야가 성전에서 그 율법책을 발견했을 때는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고 한 4년쯤 지났을 때였거든요.
그러니까 BC 622년경이에요.
그때쯤에 율법책을 발견하고 나서, 그때부터 본격적인 (2차)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요시야는 흠이 없던 왕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요시야는 다윗을 가장 많이 닮은 왕이었어요.
그런데 외적으로는 큰 국제적인 정세의 변화와 함께
앗수르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니까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거기에다가 요시야 왕이 율법책의 발견과 함께, 지금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 예레미야가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는, 소명을 받았을 때는,
밝은 빛 가운데서 소망으로 왕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닮은 요시야 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종교도 개혁하고 계시고
국제적으로도 우리 나라의 위상을 일으키고 계신다' 이런 때였다는 말이죠. *앗수르 압박 해제
그런데 이 앗수르가 바벨론에게 너무 압박을 받으니까
앗수르가 이집트에게 도움을 요청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집트 바로느고가 앗수르를 도와주기 위해서, 북진해서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때 요시야 왕이, 이집트가 앗수르를 도와주는 그 원정 길을 막아 선 거예요.
그래서 남유다가 이집트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 나가서 요시야가 전사하게 되는 거예요. 31세에 요절합니다. *재위 23년 경
왕하23:29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소망의 왕'이었던 요시야가
너무 허무하게 죽었던 그걸 보면서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요시야 왕이 죽고 난 이후에, 요시야 왕과 함께
개혁도 사라지고, 정결함도 사라지고, 나라의 거룩도 사라지고, 희망도 사라지고,
소망도 사라지는 거예요. 이 요시야 왕의 죽음과 함께
예레미야는 소망을 주던 그 왕의 죽음 때문에, 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어요.
요시야에 이어지는 왕들은 어떻게 됩니까?
요시야 왕이 죽었어요. 그 이후에 이어서 왕의 자리에 있었던 여호아하스 왕은
3개월 만에 이집트에 끌려가버려요. (친북방 정책을 썼겠죠)
그러고 나서 이집트가 누구를 세웁니까?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가 11년 통치했는데요.
그는 처음에는 이집트가 자기를 세웠으니까, 친이집트 정책을 펼쳤겠죠. (친남방 정책)
그런데 북쪽에서 바벨론이 너무 압박을 하니까, 바벨론으로 돌아섰다가
그런데 바벨론이 아직까지 완전히 이집트를 먹은 건 아니니까, 또 이집트에 돌아섰다가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 정치를 막 했어요.
거기에다가 이 여호야김은 아주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기록했던 성경을 어떻게 합니까?
칼로 삭둑삭둑 잘라서 화롯불에 던져 태워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태웠던 아주 악한 왕이었어요. *렘36장
그래서 그가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에
그는 살해를 당합니다. 재위 11년 만에 죽임을 당해요. *BC597, 2차포로
그 다음 이어서 왕위에 앉았던 사람이 여호야긴 인데
그는 또 3개월 만에 바벨론에 끌려가 버려요.
왕과 모든 신하들이 다 바벨론으로 끌려가버려요. *BC597, 2차포로
그리고 나서 바벨론이 친 바벨론 정책을 쓰기 위해서 세운 왕이 시드기아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11년 통치하고 나서, 그를 왕으로 세웠던 바벨론,
그리고 하나님이 '바벨론에 충성해라, 바벨론의 멍에를 메라'고 하는데도
결국은 바벨론에게 배반을 하는 바람에, 바벨론에 의하여서 모두가 다 멸망하게 되는...
남유다가 다 심판받게 되는 그 기간까지 사역을 했던 사람이 예레미야 이에요.
그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예언헀던 사람이 예레미야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곧 무너질 성전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셨던 것처럼
예레미야도 무너지는 자기 나라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은 무너지는 것을 자기 눈으로 목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쓴 예레미야애가가, 예루살렘이 불타고 함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쓴 글이라 하죠.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주3) 살구나무 환상 1:11~12
1: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게 뭐지? 무슨 얘기지? 잘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지금 하나님께서 이 말을 이해하려면
11절의 '살구나무'라는 단어와
12절의 '지켜(보다) watching'가 같은 발음 임을 알아야 된다.
하나님은 언어 유의를 하고 계시는 것이다.
11절에 하나님께서 '너 뭘 보니?'
예레미야가 '제가 살구나무 (샤케드)'를 봅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12절에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샤캐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12절의 '지켜' (샤캐드)
'지켜본다 watching' 라는 뜻인데, 발음이 11절의 살구나무 샤케드와 거의 같다.
살구나무 샤케드 שָׁקֵד vs 지켜본다 샤캐드 שָׁקַד *한국어도 애 와 에가 같은 발음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뭐냐면
지금 예레미야 앞에 살구나무를 두었어요. 아몬드 나무다.
그런데 이 살구나무는요.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을 가장 먼저 피우는 나무다.
예레미야는 겨울이 갔고 봄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리는 살구나무를 보고 있다.
'너 뭘 보고 있니?'
'네, 저는 샤케드(살구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잘 보고 있다. 나는 내 말이 이루어지는 것을 샤캐드 (지켜보고) 하고 있어'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살구나무 꽃이 피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이 당연하듯이 (그걸 네가 보고 있잖아)
내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당연한 거야 (그걸 내가 지켜보고 있어)
그래서 예레미야는 살구나무를 볼 때마다, *샤케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분명히 이루심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샤캐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