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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놀라게 한 죄 렘2:9-19 2008년 예레미야, 애가
서론
현대의 특징은 나는 나, 너는 너라는 개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그렇게 합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나하고 너하고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개개인이긴 하지만 개인이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 직장, 사회, 국가 그리교 교회의 일원입니다.
내가 한 일은 국가에 영향을 주고, 국가가 한 일은 나에게 영향을 줍니다.
내가 한 일은 가정에 영향을 주고, 가정이 한 일은 나에게 영향을 줍니다.
또한 내가 한 일은 교회에 영향을 주고, 교회가 한 일은 나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는 소속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19세의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 2장은 젊은 설교자 예레미야의 첫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마치 검사의 공소문 같기도 하고 외교문서 같기도 합니다.
본문 2:9절에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다투시는 문서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과 주먹 쥐고 다툰다는 말이 아니라
너희에게 죄가 있어 공소를 제기하겠다 (I bring charges against you)는 말입니다.
또한 이것은 일종의 외교문서 같기도 합니다. 고대사회에는 큰 왕이 있어
약소국가를 정벌하고, 약속국가의 작은 왕들은 큰 왕의 지배아래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약소국가의 작은 왕이 큰 왕에 반역을 하면
큰 왕은 먼저 외교문서를 보내는 것입니다.
“내가 큰 왕으로서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지 아느냐?
너희가 나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걸 아느냐?
내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너희가 내게 반역을 하느냐? 내게 잘못이 있으면 얘기해봐라.
또 너희가 반역한 것이 잘한 짓인지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해 볼 테니까 대답해봐라.
너희는 반역에서 돌이켜라. 돌이키지 않으면 내가 군대를 보내어 너희를 전멸시키겠다.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해봐야 소용없다. 너희를 도울자는 없다.
돌이켜 회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멸망시키겠다.”는 내용의 외교서신입니다.
(그런 형식으로 렘2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국가는 하나님께 도덕적인 책임이 있는데
렘2장은 도덕적 책임에 실패한 유다국가의 죄악상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하늘도 놀라고 떨었다고 했습니다.
2:12절에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 심히 떨찌어다 두려워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늘도 놀란 죄악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오늘은 이 세 가지 죄악에 비추어 대한민국 국가의 현위치와
개개인의 신앙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배은망덕의 죄 (Ingratitude)
은혜를 배반하고 덕을 잊어버렸다는 배은망덕의 죄는 하늘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 집, 이스라엘 집을 위해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을 때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출애굽을 하게하셨고
광야 사십년 방황하는 동안에도 먹이고 입히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고 그 땅을 거저 주셔서
과실과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2:6~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6~7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에게 세 가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첫째로 구별된 사랑을,
둘째로 특별한 보호를,
셋째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렘2:3절에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holy to the Lord’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해서 특별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존재가 바로 유다였다는 것입니다.
3b절에는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다를 건드리는 자는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special protection)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백성을 아내라 하시고 당신이 남편이라 합니다.
남편의 입장에서 전세계를 향하여 내 아내를 건드리는 자는 그냥두지 않겠다고 공고하는
특별한 보호입니다.
렘2:7절에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내 아내가 과일을 먹고 싶다하면 과일을, 고기를 먹고 싶다하면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을 향해서 정열(Passion)적인 사랑을 가지셨고,
특별한 보호(Protection)를 해주셨으며, 필요한 것을 다 공급(Provision)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는 헌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렘2:2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아내가 바람피우는데 남편이 그 아내를 생각하며 첫사랑, 신혼여행(honeymoon) 때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 아내가 지금은 바람피우지만 그때가 좋았지. 그러나 이제는 꿈이야’
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혼여행의 사랑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의 사랑은 '소년 때의 사랑(youthful love)'입니다.
소년 때의 사랑은 뜨겁긴 하지만 쉽게 변질되는 사랑입니다.
남편이신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데
아내인 유다 이스라엘의 사랑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바람피우는 건 보통 남편의 몫이고 아내는 집안에서 바람피우는 남편을 가슴 아파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인데, 이 유다 이스라엘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지금도 지극히 사랑하고 신혼여행 때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때가 좋았지’ 하고 있는데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입니다.
렘2:5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내가 너한테 남편으로서 바람을 피웠거나 폭행했거나 괴롭혔으면
네가 나를 멀리하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도 내가 할 말이 없지만
내가 불의한 아무것도 없고 바람피운 어떤 경우도 없으며
돈 벌어 먹을 것을 사다주고 했건만 어찌하여 너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이방신 우상을 쫓아가느냐(away from God, following the false idols)?”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남편이 최고의 성실함으로 사랑을 했거늘 어찌하여 남편된 나를 버리고
동네 건달이 좋다고 따라가느냐는 말입니다.
이것이 남편으로서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애절한 절규입니까?
"내가 너를 사랑했고 너하고 신혼여행때의 그 추억을 다 간직하며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는데 어찌하여 너는 내가 싫다고 바람을 피우냐?"는 애절한 절규입니다.
2:31~32절에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신혼초기에 사랑하고 사랑받던 아내가 동내 건달에게 눈멀어서
“나는 내 남편을 더 이상 사랑치 않겠노라. 나는 내 남편을 버리겠노라.
나는 내 남편으로부터 자유하노라. 나는 동네 건달을 사랑하노라”고 말합니다.
남편입장에서 얼마나 기가 막히고 배은망덕한 말입니까?
이스라엘의 죄, 유다의 죄, 하늘도 놀라게 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도 놀라고 떨게한 죄악입니다.
◑2. 부조리함의 죄 (Irrationality)
부조리하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며, 말하면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이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본문 10~11절에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깃딤이라고 하는 곳은 지중해에 있는 싸이프러스 섬으로
신약성경에는 구브로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또 게달이라고 하는 곳은 아라비아를 가리킵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국가인 구브로와 아라비라에 가봐라.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국가 어느 나라도 신을 버렸다던가 떠났다던가 바꾼 나라가 없다.
이처럼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국가에서도 하지 않는 그런 짓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조리에 맞고 경우에 합당한 말인가?’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 점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 뒤로는 부인을 시켜 점치러 다니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rational) 행동입니까?
신앙을 떠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행동입니다.
본문 13절에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등산가서 목마른 사람이 보니 좌편에도 우편에도 물이 있습니다.
우편에서는 깨끗한 생수가 펑펑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좌편에는 썩은 물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마른 사람은 우편의 생수는 안마시고 좌편의 썩은 물 웅덩이를 팝니다.
조금 파보니 그 웅덩이는 밑으로 구멍이 나 조금 고이면 다 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넘치는 생수는 안 마시고 웅덩이의 썩은 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
정신이 있는 얘기냐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니 내게 구하라. 내가 너희를 도우리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썩은 물,
터진 웅덩이 같은 이방 거짓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방나라와 계속 동맹을 맺습니다. 그러면서 동맹국가도 자주 바꿉니다.
이것은 마치 남편을 버리고 바람난 아내가 애인을 자꾸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가 오늘 와서 “여보, 난 당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당신과 헤어질래.
당신으로부터 난 자유야. 나는 동네 건달을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 동네 건달한테 폭행을 당한 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맥주 집에서 일하는 아저씨로 바꿨어.”라고 말합니다.
그 후 다시 맥주 집 아저씨에게 돈을 다 털려서 “여보 나 또 바꿨어.”라며
먹을 거 없으면 먹을 거 달라, 돈 떨어지면 돈 달라, 폭행 당하면 부끄럼없이 전 남편에게
치료해 달라고 하는 아내가 말이 되는 아내입니까?
유다는 애굽과 동맹했다가, 앗수르와 동맹했다가, 또 바꾸어 바벨론과 동맹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도움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렘2:36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 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유다가 시리아와 애굽으로 인하여 다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람난 여자의 특징은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남자, 내일은 저 남자를 의지 하지만
다 그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맹국을 자주 바꾸어 보았자 도움을 얻지 못하는 유다를 가리켜서
예레미야 2장은 네 가지 비유를 들어 말합니다.
-20절에서는 몸을 굽혀 행음하는 창기(prostitute)로, *몸을 굽혀 : 우상에게 절하는
-23절에서는 그 길에 어지러이 달리는 암약대(she-camel)로,
-24절에서는 정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리는 들 암나귀(wild donkey)로,
-26절에서는 붙잡히면 수치를 당하는 도적(thief)으로 비유했습니다.
최고의 남편, 최상의 남편을 두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아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27절에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바람난 여자가 환난만 당하면 남편에게 와서 구원해달라고 합니다.
유다는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며
내 어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우상에게도 법칙이 있습니다.
우상도 돌들은 대부분 남성 신이고 나무는 여성 신입니다.
그런데 이 유다백성들은 여성 신을 향해서 너는 나의 아비라,
남성 신을 향해서 너는 나의 어미라고 합니다. 우상의 성별도 분별을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상을 알지도 못하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살펴보십시오.
자기들이 나무와 돌을 깎아 페인트칠을 해 만든 것을 신이라 부르며 거기다 절하고 빕니다.
이것이 신앙을 떠나서, 성경을 모른다 해도 합당하고 이성적인 짓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가리켜 창기같고, 암약대 같으며, 들암나귀 같고,
도적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지적을 어떻게 대항하시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배은망덕과 불합리함을 하늘도 놀라게 한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무감각의 죄(Insensitivity)
유다 백성들은 두 가지 영역에서 무감각했습니다.
▲첫째, 역사의 교훈에 무감각했습니다. 요즘 우리 자녀들은 역사를 모를 뿐만 아니라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교육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주전 721년에 형제 국가인 북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하다가
앗수르에 완전히 멸망당한 약 100년 전의 역사를 벌써 잊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4~15절에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어린 사자들이 너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네 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네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없게 되었으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북왕국이 씨종이냐(born to be slave), 아예 노예로 태어난 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어린 사자들 즉, 앗수르 사람들이 너에게 쳐들어와서
네 땅을 황무케 하고 성읍들은 불타서 거민이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놉과 다바네스는 애굽의 도시입니다. 애굽 왕 바로느고가 종교개혁을 하는 요시야를
39살 때 머리 꼭대기인 정수리를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앗수르도 애굽도 도움이 안되는데 그들을 의지하느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의 교훈에 그것을 의지해봤자 좋은 적이 없었는데 왜 또 의지하느냐?
역사에 그렇게 무감각하느냐는 말입니다.
△해방 뒤에 미국이 우리나라를 점령하자 ‘미국사람 믿지말고, 소련사람에 속지말고,
일본사람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1905년에 일본과 카스라-태프트라는 은밀한 조약을 맺었습니다.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고,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는데 미국이 간섭하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하버드대학을 다니는 일본사람과 친해져
일본은 문명국가고 한국은 야만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카스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우리를 일본에 주고 미국은 필리핀을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도 1941년 일본에게 배반당해 진주만을 폭격당하고
결국은 미국도 큰 피해를 봤습니다. 이처럼 역사는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친미파, 친중파, 친일파, 심지어는 친북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건 저 나라건, 다 자기네 나라 국가 이익을 따라 시대별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 일본, 중국과 친하게 지내야 하지만 그들을 믿을 것은 못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역사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개인도 살고 가정도 살며 나라도 삽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원수도 변하여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그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둘째, 자기들의 죄악에 대해서 무감각했습니다. 죄를 짓고도 무감각했습니다.
완전히 화인 맞아 뻔뻔합니다.
2:23절에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이 남자 저 남자를 바꾸며 실컷 바람피우고 망신창이가 되어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여보 나는 깨끗해. 아무 짓도 안했어”라고 하는 여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2:35절에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뻔히 죄진 거, 바람피운 거를 하늘도 알고 땅도 알며 자기 양심도 알고 증거도 분명한데도
나는 무죄하다(I am innocent), 나는 바람 안 피웠다는 양심을 가리켜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의 죄에 대해서 죄의식이 전혀 없이 무감각한 것입니다.
지금 유다백성은 이처럼 우상숭배를 하고 죄를 지어도 ‘난 무죄하다’라며 오리발을 내미는 것입니다.
비누로 씻어도 없어질 죄가 있으면서 ‘나는 무죄하다’라며 오리발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되는데
“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라며 위선적인 작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결론
대한민국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516혁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번영했습니다.
축복받은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도 어려서는 일 년에 겨우 한 두차례 고기를 먹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콜레스테롤을 걱정해 고기를 안 먹을 정도로 형편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똑똑하고 잘났으면 반 만년동안 왜 어렵게 살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은혜 받은 것은 복음을 통한 전적인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의 과정에 공산주의로 인한 해악이 얼마나 큽니까?
그 교훈을 잊으려 하십니까? 김일성이가 한 짓이 얼마나 악한 짓입니까?
그 아들 김정일이가 한 짓은 얼마나 악한 짓입니까? 벌써 잊으셨습니까?
역사의 교훈에 무감각하고 불합리하며 배은망덕한 나라는
결국 하나님의 군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에 이런 외교문서를 보낸 것은 유다를 멸망시키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죽이려면 그냥 군대를 보내 쓸어버리지 문서를 왜 보냅니까?
문서를 보낸 이유는 반역을 돌이켜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부르심인 것입니다.
남편된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사랑이 많으십니까?
이처럼 남자를 바꿔가며 바람피운 여자가 또 다시 돌아오면 사랑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처럼 어지러운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17절에서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우리가 속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나라가 괴로우면 우리도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나라의 살 길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복음을 위해
우리 백성들이 헌신하고 기도하며 세계로 선교하는 것입니다. 선교해야 우리가 삽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나님 은혜로 부유해지고 하나님 은혜로 건강하며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고 천국 간다는 사람이 하나님이 싫다며 멀리하는 분은 안 계십니까?
본문 19절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악과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73: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처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고통이 멀어지고 고통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가정적으로도 가까이하며 국가적으로도 가까이하면
문제가 요동하듯 많아도 우리는 능히 승리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