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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주신 목적 출31:12~17 2015-08-02 <안식, 안식일>
서론
마태복음 22장 32~40절에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 질문은 아주 고약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약 제1계명이 가장 크다고 하면 “다른 계명은 왜 작습니까?”라고
시비를 걸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한 저의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내용을 두 구절로 요약해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첫째는 제1~4계명까지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신명기 6장 5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 다해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제5~10계명까지로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제5~10계명까지의 내용의 핵심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꼭 필요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여전히 인류에게 그대로 서 있는 법(Standing Law)입니다.
항상 우리에게 적용되는 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 사회의 모든 범죄와 비극은 이 두 계명을 위반한 데서 오는 것들입니다.
우상숭배하고 거짓 종교를 만들고 이단사설을 만들어 영혼을 파괴하는 것도 범죄이고,
부모를 학대하거나 사람을 죽이고 간음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하는 모든 것은
계명을 어기는 범죄행위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사회에 비극이 찾아오고, 슬픔과 고통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계명이면서도
심지어 그것이 죄인 줄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4계명입니다.
제4계명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우선 성경에 할애된 분량만 봐도
그 중요성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계명이 반복되고 있는 빈도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십계명이 기록된 부분은 모세오경인데, 여기에서도 두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출애굽기 20장이고, 다른 한 곳은 신명기 5장입니다.
그런데 여기 제1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 기록된 계명들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은 계명이 제4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4구절, 신명기 5장에도 4구절입니다.
제2계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계명은 1구절씩 할애된 반면
제4계명은 네 구절씩이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와 같은 계명들은 모두 한 구절씩입니다.
간단명료합니다.
그런데 제4계명은 사용된 단어도 다른 계명에 비해서 굉장히 많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친수로 쓰신 것이기 때문에
제4계명을 쓰실 때 가장 오랫동안 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제4계명이 반복되는 빈도수를 봐도, 그 중요성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만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1) 처음 언급된 것은 출16:21~30절입니다.
만나를 거둘 때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한 배만 거두되,
금요일에는 두 배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토요일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지 말라고 하셨죠.
만나가 내리지도 않거니와, 안식일에는 거두러 나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금요일에 두 배를 거두어도 토요일에 만나가 썩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제도는 출20장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이전부터
백성들이 지키고 있었던 제도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출애굽기 16장에 안식일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는 시내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이스라엘 장로들이 직접 들었습니다.
그 음성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 가운데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온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소위 ‘언약의 서’(The Book of the Covenant)라고 불리는 출23:12절인데,
여기에 제4계명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일동안 일하고 제칠일은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네 번째는 오늘 읽은 본문인데, 출31:14절에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에 대한 기술자가 브살렐과 오홀리압인데,
이들은 하나님의 지명을 받아서 성막 짓는 기술을 갖게 되고, 실제로 성막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막을 짓는 일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육일간 일했으면 하루는 반드시 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도 하루는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쉬라는 것입니다.
5) 다섯 번째는 출35: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온 회중을 모아놓고, 성막을 실제로 건설하기 전에
“제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에 반복되고 있는 빈도만 봐도
제4계명이 얼마나 중요한 계명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짧은 본문 속에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할 때 쓰인 영어 ‘Keep!’(지키라!)이라는
동사가 세 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13, 14, 16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신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제4계명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쟁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 계명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제4계명에서 말하는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도 토요일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침례교 계통의 이단 ‘제칠일 안식일 침례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된다는 주장은 이단입니다.
또 같은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도 근본주의, 세대주의자들은
제4계명이 신약시대에 반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폐지되었다고 주장하고,
구약시대 십계명 가운데 신약시대에 반복되는 것만 유효하다고 주장합니다.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제4계명은 폐지되었고, 나머지 아홉 가지 계명만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신학에 근거한 잘못된 주장입니다.
그리고 마르틴 루터나 존 칼빈과 같이 매우 복음적인 사람들도
신약시대의 주일을 안식일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일은 주일이라고 부르고, 안식일이라고 하지 않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주일성수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다시 주일은 신약시대의 안식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주일이 신약시대 기독교의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확립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십계명 제4계명에 대한 이해는 같은 개신교단 내에서도
미묘한 의견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평생 목회를 하다가 은퇴를 한 목사님이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하더니 “안식일은 토요일 날 지켜야 맞다!”는 헛소리를 했습니다.
“아니, 왜 평소 목회할 때는 가만있다가 이제 와서 이런 헛소리를 하느냐?”고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반박을 했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제4계명에 대한 논쟁은 대단히 치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인가? 주일인가?”, “주일을 지키면 이것을 안식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문제를 가지고 많은 논쟁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이제는 안식일과 같은 특별한 날은 필요 없으며, 모든 날이 주일이다.
그 날이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제4계명에 대한 이해와 논쟁은 대단히 심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역사상 가장 정직한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이 청교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7, 18세기 청교도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초창기 침례교도들의 신앙에 입각해서
이 주제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안식’의 명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어떤 단어의 의미를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그 단어가 사용된 첫 번째 경우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안식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구절은 창세기 2:2~3절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안식이라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거나
피곤한 몸을 쉬게 한다는 차원의 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피곤하셔서 하루를 쉬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육신으로 존재하지 않으시는 영이시기에 피곤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안식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육일동안 하시던 창조의 일을 쉬시고 더 이상 창조의 일을 하지 않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만약 하나님이 제칠일에 보존하시고 섭리하시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면
지난 육일동안 창조하신 세계도 없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마 폭발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난 육일간 하던 일을 하루는 중지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심으로써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시간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육일 간 농사를 짓던 사람은 하루 농사의 일을 쉬라는 것입니다.
육일 간 공부하던 학생도 하루는 학업을 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일 간 매일 놀던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하루는 노는 일을 멈추고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육일 간 일을 하다가 하루를 쉬고, 일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필요한 복을 공급하시는 날이기 때문에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일을 해도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면 도리어 벌을 받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 20:9~10).
엿새 동안은 힘써 자기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육일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쉬라는 것입니다.
공부하던 학생도 주일이 되면 학원을 다니지 말고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꼭 육일동안 공부도 안 하던 학생이, 주일만 되면 학원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육일은 계속 놀다가 주일만 되면 학원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일동안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쉬지 않고 계속 일만하며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두 사람이 도끼질을 하는데, 한 사람은 칠일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도끼질을 하면서
나무를 잘랐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여섯 시간 동안 일하고
한 시간씩 꼬박꼬박 쉬면서 나무를 잘랐습니다.
그런데 후에 보니 쉬면서 일한 사람이 쉬지 않고 도끼질을 했던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나무를 잘랐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쉬면서 일했던 사람은 제 도끼는 여섯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때문에
한 시간 동안 쉬면서 도끼날을 갈아 더 많은 나무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는 육일동안 일하고 하루는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하루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마12장을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안식일에 관련된
세 가지 논쟁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속에서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세 가지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필요한 일’(Work of Necessity)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과 같은 일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면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소에 들어가 떡상의 떡을 갈아 놓고
그 떡을 먹지 않았느냐? 그들도 일을 하고 떡을 먹었는데, 내 제자들이 그렇게 한 일이
무엇이 잘못이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안식일에도 꼭 필요한 일은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안식일에 회당에 손 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또 시비를 걸었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님이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과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이 병들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내가 병 고치는 일이 무엇이 잘못되었느냐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자비를 베푸는 일’(Work of Mercy)을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안식일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가 된 사람을 고치시자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안식일에 일하려고 하는 것을 보니 바알세불의 능력을 힘입어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Work of Ministry)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닙니다.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단지 안식일이라는 것은 육일동안 하던 노동을 하루는 쉬라는 것입니다.
◑2.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데는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3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은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 하나님이 구별하신 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전도하고 영적인 일을 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그 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주일에 예배하자고 하면 “바빠요, 바빠!”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논다고 그렇게들 바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노느라고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육일동안 휴가를 내서 쉬면 될 일을, 왜 하나님의 날을 범하여 놀러갑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무리 바빠도 동일합니다.
어떤 이는 하루가 23시간이고, 또 어떤 이는 25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그러면 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육일은 자신을 위해 일하고, 하루는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어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막 건설이라는 아무리 극도로 중요한 일을 한다할지라도 일주일의 하루는
반드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둘째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주일의 하루를 요구하실 만큼
귀중한 분이심을 인정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때리고 맞아 죽도록 힘겹게 고생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백성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셨기에 하루를 요구합니까?”,
“내가 왜 하나님을 위해 하루를 써야 합니까?”라고 말하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죽을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안식일을 범한 자는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시기에 내게 하루를 요구하시고
예배를 받으시려고 하는가?”라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는 하나님께 그만한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vice versa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존재들입니다.
지옥을 믿고 싶지 않다고 해서 지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 영원한 고통에 떨어질 우리를 예수님이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설령 극악무도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 자신을 예배하라고 요구하시는데, 그 일을 어찌 많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은 내가 일주일에 하루를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만큼 중요한 분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라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이방백성들과 구별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16~17절에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으로 구별됩니까? 주일에 교회 다니는 것으로 구별됩니다.
주일에 놀러다니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일에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주의 백성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3. 안식일은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뀔 수 있는 것인가?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이 주일로 바뀔 수 있는 것일까요?
유대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안식일에 관한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금지사항들을 지키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반했을 시에는 사형을 부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하나님께 구별된 예배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안식일은 예배의 날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신정통치 국가처럼 형벌을 부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의 안식일과 기독교의 안식일은 다른 것입니다.
구약의 토요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을 쉬신 날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주일 안식일은 그리스도가 속죄하신 일을 완성하시고
쉬신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속죄의 대업을 마치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구약의 토요일 안식일은 창조를 안식하신 날이고
신약의 주일 안식일은 속죄(재창조)를 완성하시고 안식하신 날인 것입니다.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재창조)와 부활을 기념하여 속죄의 완성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일주일이 다 똑같은 날이 아닙니다. 주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토요일 안식일 제도는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약에도
안식일이 없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제4계명을 폐지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마5: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토요일 안식일 제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신약의 안식일 제도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그 정신이 살아서 이어집니다)
구약성경에 부모를 학대한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대로 시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내용의
제5계명이 사라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형벌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또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주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율법주의식으로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토요일 안식일을 중요시 여겨 주일 안식일도 그렇게 지켜야 한다면
바리새인들처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멸시하는 사람의 태도이고,
신약시대에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안식교도들은
유대교와 같은 부류인 것입니다.
또 신약에서도 주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모든 날이 주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속죄의 완성이자 안식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개신교도들 가운데 “주일을 꼭 안식일이라고 명명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개신교인들 중에는 “주일을 그냥 주일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루터와 칼빈도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주일에서 멀어지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주일을 다시 안식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마12: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인은 안식일을 바꿀 수 있는 존재입니다.
주인이 토요일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겠다고 하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아닌 자들이 왜 시비를 겁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유대교인들이었기 때문에, 안식일과 주일을 함께 지켰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이방인 성도들이 많아지면서
토요일 예배는 점차 사라지고, 주일 예배가 기독교의 안식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20:7절에, 드로아 교회는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고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전16:2절에는 고린도교회에서는 매 주일 첫날에 연보를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1:10절을 보면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1세기 말에 활동했던 안디옥의 교부 이그나티우스도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유대교의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고,
2세기에 출간된 12사도 교훈집인 ‘디다케’를 보면 “성도들은 주일에 모인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서 말씀을 공부하고 서로 선행을 격려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2세기 말에 활동했던 카르타고의 교부 터툴리안도
“그리스도인은 주일에 평소 직업의 일을 안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일이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해서 4세기 경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제정했다는
주장은 안식교도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매우 어리석은 주장인 것입니다.
황제 콘스탄틴이 한 일은 기독교의 힘을 입어 제국을 통일했기 때문에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서 기독교를 합법화한 것이고,
그로부터 8년 후 주일을 휴일로 공표했을 다름입니다.
결코 태양신을 위한 날로 제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안식의 개념을 과거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주의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은 사람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주일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1689년에 나온 제2차 런던침례교 신앙고백서 제22조 7항은 이 문제에 관해 명백하게 규정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장로교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내용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적극적이며 도덕적이며 영구적인 명령으로써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일주일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정하여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도록 명하셨다.
그 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한 주간의 첫째 날로 바뀌었다.
성경에서는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부른다.
이 날은 세상 끝 날까지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져야 하며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을 지키는 것은 폐지되었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폐지되었고,
주일을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야 함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여러분, 살인하는 것도 죄고, 거짓말하는 것도 죄고, 부모를 학대하는 것도 죄입니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한 죄입니다.
주일 성수는 피조물된 인간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 모두 주일 성수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사활을 걸고
우리 자손들에게도 이 귀한 진리를 가르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