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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LNCK 2024. 7. 28. 04:47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하나님의 속성

 

https://www.youtube.com/watch?v=fvkBbYLY7_c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시139:1~6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우리들의 삶에 큰 감격과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바다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이 갑자기 솟아오르는 큰 고래를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저 사진은 갑자기 어마어마한 큰 놀랄 만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곁에 있으면서 얼마나 놀라는가 하는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저 카야커 kayaker가 느꼈을 그 경이로움과 놀라움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저 고래보다도 훨씬 더 크시고

위대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나타나는 것,

그래서 아주 작은 우리가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와! 이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라고 경험하고 깨닫게 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시리즈 설교를 살펴보고 있는데요,

그런 카야커 같은 경외로움이, 우리의 삶에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들 오늘 여섯 번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라는 이 하나님의 속성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요일3:20 ‘...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시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욥34:21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잠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대상28:9 ‘...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끝도 없이 끝도 없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전지 全知적 속성>을 몇 가지 영역으로 이렇게 나눕니다.

 

▲1. 첫째, 하나님은 창조의 모든 것을 아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에 대해서 다 정확하게 아신다는 뜻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히4:13

지으신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어마어마한 우주가 하나님의 눈앞에 있고

그것을 다 아시고, 그리고 작은 나무나 풀도 아시고, 바닷가의 모래알을 아시고,

그리고 원자, 분자까지 이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12:6

참새가 팔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마10:29

 

참새 2마리가 한 앗사리온이면,

참새 4마리이면 두 앗사리온인데,

눅12:6절에, 참새 5마리가 두 앗사리온 입니다.

한 마리는 덤으로 끼워준 것입니다.

 

네, 참새 한 마리는 덤으로 줄 정도로, 이렇게 하찮고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참새와 같은 것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계신다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성경에는 하나님은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하십니다. 마10:30

 

▲둘째,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사46:10

 

하나님께서 현재 일, 또는 미래의 일이

그 시간이 되었을 때 아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일, 시작할 때 벌써 마지막을 아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속성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를 아신다’고 그러죠.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에, 알파의 순간에 오메가 포인트를 아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종말을 내다보시고 창조하셨다’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저녁에 그가 ‘천지창조’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러닝타임이 3~4시간인데, 아담도 나오고, 노아도 나오고, 아브라함, 요셉까지 다 나옵니다.

 

극 중에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요셉은 자기 일생을 다 살고 죽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아담, 노아, 아브라함, 요셉이라고 보는 거죠)

그런데 그 날 저녁에, 그는 그 영화를 3~4시간 만에 다 보았습니다.

그는 처음과 나중을 동시에 본 것입니다. 알파 지점과 오메가 지점을 그 날 저녁에 같이 본 것입니다.

 

간혹 ‘자기의 미래, 혹은 자기의 마지막 순간을 하나님이 보여주셨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살면서 중간에 환난이나 시련이 찾아올 때, 크게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인생길이, 하나님의 큰 ‘작정’속에 가는 것이니 때문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종말과, 인류의 종말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시초와 인류의 시작은, 창세기 서두에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계1:8, 21:6, 22:13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확신을 줍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지의 미래를 헤쳐나가는게 아닙니다.

분명한 답과 결론이 정해져 있는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지하신 Omniscience 하나님만 가능한 일입니다.

 

▲3. 셋째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신다.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

 

다른 어떤 존재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는데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창조의 모든 것을 아시고, 시간의 모든 것을 아시고, 공간의 모든 것을 아시고,

하나님 자신이 무엇을 하시는지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십니다.

이 사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요?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과 전지하심을 고백한 것이

본문 시139:1~6절 사이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아시는지 살펴봅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은 나의 죄를 다 아십니다

 

시69:5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 숨김이 없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를 보시고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의 죄가 숨김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잠5:21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사람의 모든 길이 다 주님 눈앞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쉬운 성경에는 “여호와는 사람의 모든 길을 다 보고 검사하신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을 다 보고 하나님께서 검사하세요.

우리가 살아가는 그 삶의 모든 순간에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의 말을 받아 적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우리가 보는 것, 먹는 것, 생각도 아시고,

행동도 아시고,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그 가운데는 좋은 것,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해서는 안 될 것들도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할 때, 우리를 돕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누구도 모를 거야” 그러니 하라고 계속해서 노래하다가

 

그래서 죄를 짓고 나면, 이 사탄은 이제 그 노래를 바꿉니다.

“누가 알면 어떡하지?” 그래서 죄책감에 빠져 살게 만듭니다.

 

그러나 누가 알면 어떡하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 다 알고 계시는가?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좋은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고백할 때,

“뭐 네가 그런 죄를 지었다고”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 그럴 줄 몰랐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속성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전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알 때 나의 반응은 ‘하나님께 솔직해지라’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특히 우리의 죄를 알고 계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나의 반응은 하나님께 솔직해지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회개하기를 원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어떤 의도와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죄책감에서 해방해 주기를 원하시고,

그 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새로운 길로 가기를 원하셔서

우리가 그 지은 죄에 대해서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고,

내가 죄가 없다면 그건 거짓말하는 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고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속이려고 합니다.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살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소용이 없고 그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솔직히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기적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셨고,

그 대제사장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기적적인 역사로 이루어진 일, 우리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가지고 나갈 때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데

동정은 우리가 그냥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지시고

공감하시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짓고 그 죄를 회개할 때 용서를 하시고

더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내가 공감한다. 내가 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용서하실 수 있는 그 근거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용서를 하실 뿐만 아니라 공감하시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 두 번째, 하나님께서 나의 염려와 걱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염려와 걱정, 이것을 우리는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우리들의 스트레스, 우리들의 염려와 걱정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마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염려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 스트레스에 쌓여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와 염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염려와 걱정, 문제가 많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내 방법을 찾아야 하고,

자기 자신이 무언가 더 알려고 하고, 더 알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으로 그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더 많이 알아서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 하나님처럼 많이 알려고 하는 것,

사실은 이 시대처럼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시대가 없어요.

 

△요즘 학자들이 말합니다. “최근 한 10년 동안 이 세상은 지금까지 역사가 흘러왔던 것보다

더 많은 그런 정보들을 한 10년 사이에 사람들은 서로 공유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한 50년쯤 전에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을 비교해 본다면

마치 신처럼 많이 알고 있는 세대라고 하지 않겠어요?

 

요즘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얼마나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너무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AI(인공지능)나 슈퍼컴퓨터가 그 많은 정보들을 처리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결코 조금도 치료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결코 그런 기계나 정보들이 다룰 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세계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어마어마한 정보가 있다면

이 시대는 스트레스가 사라졌어야 하는데, 더 많은 스트레스 가운데

더 많은 염려와 걱정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염려와 걱정의 문제 해답이 정보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는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염려와 걱정, 그것을 덜 수 있는 것은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마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가 염려와 걱정 때문에 무엇인가 생각하고 또 무엇인가 알려고 하는

그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는 “염려와 걱정, 스트레스는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과

행하신다는 것과 인생에서 하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잊어버릴 때 생긴다.”

 

염려와 걱정은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잊어버릴 때

우리들의 삶의 염려와 걱정, 스트레스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들의 염려와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나님께 무언가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이런 일을 당했어요. 갑자기 사고가 났어요.’

이렇게 하나님께 알려드리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들의 기도입니다.

 

한 번은 <어린 아이들의 기도>라는 책에서 아이들의 기도를 제가 봤습니다.

“하나님 내가 새 신발을 샀는데 이번 주일날 교회 가서 보여드릴게요.”

“나는 8살입니다. 우리는 어디 사는데요? 우리 집에는 개가 있었어요.

그 개가 어제 집을 나갔다가 잊어버렸는데 오늘 다시 돌아왔어요”

 

이렇게 하나님께 뭔가 알려주는 기도, 하나님께 고지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에는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내가 그것을 내 어깨에서 하나님의 어깨로 옮깁니다. 하나님께 내가 그것을 드립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너희 모든 문제를 주님께 다 던져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가 돌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알려드리는 것이 우리들의 기도가 아니라 지금 내 삶에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신 대로

내가 그 문제를 이제 하나님의 어깨에 올려놓습니다.

‘나는 그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사실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 모든 짐과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다윗은 또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시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다윗은 이 시대에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영적인 관점을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님께서 보셨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그 일이 발생하기 전에 주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시간 밖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시간의 제한 밖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십니다.

시간 밖에 있다는 말의 의미는 현재가 되기 전에 우리는

시간 안에서 현재를 맞이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시간 밖은 현재가 되기 전에 우리 주님께서는 그 현재를 아셨다는 거예요.

다윗은 지금 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이 글을 쓴 때가 3천 년 전이에요.

3천 년 전에 사람들의 사고와 생각으로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신이라고 믿고 의지했던 그 힘과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시간 속에 있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제일 강력한 파워를 가진 존재를 신으로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 생각의 한계 시간 안에 있는 현재가 되었을 때

맞이하는 바로 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아닌,

아직도 그때가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 아시고 계신다는

그 시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모습,

이것은 성령님께서 감동하여 쓰시지 않았다면, 이 글은 쓸 수 없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시간 밖에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공간 밖에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는 현재와 미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냥 한순간이고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다 보신다는 사실을 이 다윗은 알았어요.

 

△장미 퍼레이드 Rose Parade

미국의 신년이 되면 패서디나 라는 마을에서 로즈 퍼레이드를 합니다.

장미 행진인데 한 10km 정도 되는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먼 곳에서 행진을 시작하여 올 때, 나는 그 10Km 거리 중에서 한 블록에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관중석에서, 내 앞에 지나가는 그 순간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행렬이 진행되는 동안 공중에 비행선이 떠 있었습니다.

 

공중에 떠 있는 비행선은, 시작부터 끝까지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지 작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그 순간밖에 보지 못하지만, 비행선에서는 다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의 모든 것을 이렇게 보신다는 사실,

우리에게 다가올 모든 일들을 아시고, 지금 닥치고 있는 그 일들의 시작을 보시고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지하심입니다.

 

△나의 반응 : 당황하지 말라 기도하라

그렇다면 우리들의 반응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당황하지 말라. 그리고 기도하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삶에 그런 일이 일어났어” 이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 절대로 당황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아침에 이렇게 기도하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내가 지나가고 경험할 그 모든 것 하나님 다 아시죠?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힘주세요.

내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 나와 함께하시고 나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하루를 시작하시고 그 순간이 닥쳤을 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늘 보내시는 것이구나.

그렇지, 내가 이것을 위해서 기도했어.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실 거야'

 

그렇게 우리는 승리할 수 있고 그렇게 우리는 모든 염려와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도 놀라운 일이 없어요. 여러분들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다 알고 계시니

'하나님께서 지금 필요한 은혜와 지혜와 힘을 나에게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3. 세 번째,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는 것은 나의 봉사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해요.

 

그런데 내가 잘할 때는 사람들이 잘 안 보고

내가 실수할 때는 다 보는 것 같아요.

 

근데 사람들은 나의 모든 그 작은 섬김과 봉사를 몰라 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갚아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6:4, 18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이 무디를 쓰였던 이유

 

D. L. 무디에 관해서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 유럽에서 목회자들이, 단체로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개최되는

무디의 노스필드 (MA) 성경세미나에 대거 참석을 했습니다.

 

그 시대에 유럽에서는 방 바깥에 구두를 벗어놓으면

홀의 하인들이 밤새 구두를 닦아놓는 그런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손님들이 그들의 방 바깥에 각자 자신들의 구두를 벗어놓았습니다.

그러나 물론 여기에는 미국이고, 홀의 하인들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무디 선생이, 기숙사 복도를 지나가면서

그들의 구두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형제들(신학생)을 당혹하게 만들지 않아야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건물 안에는 목회자수업을 받는 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기숙사로 돌아와서는 구두들을 다 모아가지고 그의 방으로 가지고가서는

혼자, 그 유명한 부흥사인 D. L. 무디가

참석자들의 구두를 반질반질하게 닦아서 윤을 내어놓았습니다.

 

한창 구두를 닦는 일에 열중을 하고 있는데,

예고도 없이 한 친구가 찾아와서는, 그의 방문을 열고서는

그 광경을 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만 그의 그 은밀한 일이 드러나고야 말았습니다.

 

외국방문객들이 다음날 아침 방문을 열었을 때에

그들의 구두가 깨끗하게 닦여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그렇게 했는지를 알질 못했습니다.

무디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을 목격했던 그 친구가 몇몇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봉사자들이 자원을 해서

비밀히 세미나 기간 내내 그 구두를 다 닦아내었습니다.

 

그 목격자는, 글에서 이 무디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아마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디엘 무디를 쓰신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종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것이 바로 그의 위대성의 근간이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어요.

다른 사람은 다 안 봐도, 하나님께서는 보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그 작은 섬김과 봉사가 무슨 효과가 있을지,

내가 이것을 계속해야 할지 그런 의심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고, 다 기록하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시며

그리고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마25:35

이렇게 의인들에게 말했을 때,

‘아니 우리는 그런 적이 없는데요’ 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니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25:40

 

나는 기억도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알 때, 우리의 반응은 ‘낙심하지 말라’입니다.

선한 일에 대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무슨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큰 효과도 있는 것 같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것 같은데,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다 아십니다.

교회에서 섬기면서 봉사하는 일들 계속하면서 낙심치 말고 하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내가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정말 맞는 것인가? 예, 낙심치 말고 계속해서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네 번째, 하나님께서 ‘나의 상처’를 다 아십니다.

 

나의 아픔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상처를 받으면 외로워하게 됩니다.

상처를 받으면 고립되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든지, 회사에 해고당했다든지,

큰 사고를 당했다든지 하면서 외로워하고

혼자서 고립된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더 외로워지고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시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님께서는 나의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지 않습니까?

내가 힘들 때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그 힘든 것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나를 지켜주시지 않습니까?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는, 그런 뜻입니다.

 

△눈물병, 수천 년 전의 눈물병이라고 생각되는 작은 병이 발견되었습니다.

주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눈물병입니다.

남편이나 아들이 전쟁에 나갔을 때, 그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눈물병을 가지고 아들과 남편을 생각하면서 떠날 때 얘기를 해요.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너를 생각하면서 눈물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내가 이 병에 담아모으겠어요.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고, 당신을 기억하며

내가 당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는지 당신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눈물병이에요. 오늘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아픔과 우리의 모든 상처를,

우리의 모든 괴로움을 다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도록 하십시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의 마땅한 반응은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시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시도록 하십시오.

 

내가 스스로 고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 상처에서 일어나려고 몸부림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눈물병에 눈물을 담지 말고, 하나님의 눈물 병에 그 눈물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치유해 주시도록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가 더 등장하는데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십니다. 아실 뿐만 아니라 돌보세요.

그냥 아시는 그런 지능이나 기계가 아니에요. 그런 기계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에요.

 

우리가 네 가지를 살펴봤는데 마치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처럼

살아온 삶의 영역이 혹시 없습니까?

 

① 하나님께서 내 죄를 모르실 거야, 하나님 앞에 솔직해지십시오.

그러면 죄책감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마치 여러분들의 염려와 걱정을 모르고 계시는 것처럼 살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무엇인가 몸부림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아직 직면하지 않은 내일 당할 그 염려와 걱정, 그 문제, 그 스트레스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세요.

 

그러니 우리는 당황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님 알고 계시잖아요.

나에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③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봉사와 그 작은 희생을 다 알고 계십니다.

아무도 안 알아주고, 이것이 우리 교회 또는 사회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고

‘이제 그만해야 하겠다’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요.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④ 여러분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우리의 눈물을 당신의 눈물병에 담는 것처럼

여러분들의 상처에 관심을 가지시고 알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 위대한 속성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정말 따뜻하고 작아 보이지만

우리들을 따뜻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네게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친

예루살렘아!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품듯이, 얼마나 내가 너희 자녀를 모으려고 했느냐

그러나 너희들은 원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품어주시는 속성 따뜻하신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속성이 있어요. 어린 새끼 병아리, 어린 새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날개로 품어주시고 돌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