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3 12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의 구원 - YouTube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의 구원 행16:16~23 ▣ 신유 축귀 기적
지금 우리는 바울의 2차선교여행을 함께 따라가고 있습니다.
2차선교여행의 중심지는 유럽입니다.
바울의 일행은 (터키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첫 번째 어디로 들어갔죠? 바로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들어갔죠.
그런데 누가가 이 빌립보 사역을 기록하는데 있어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사역의 초점이, 한 영혼에게 있습니다.
이제까지 들렀던 다른 사역지를 보면, 수많은 무리들이 돌아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의 표현들을 보면 '무리가 돌아왔느니라, 많은 무리가 믿었더라'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서는 '무리'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전부 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루디아, 여종, 간수
한 영혼이 돌아오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영혼의 구원을 중심으로, 빌립보 선교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믿고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의도적으로 세 사람을 중심으로 빌립보 선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디아, 귀신들린 여종,
오늘은 그 가운데 <귀신들린 여종의 이야기>입니다.
◑16:16절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총 4명입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4명이 성밖 강가에 기도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하나는 귀신 들린 여자입니다. 주1)
그런데 이 귀신들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의 여인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귀신이 들어갔느냐? 점치는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무당인 거죠.
2) 또 다른 특징은 '종, 여종'입니다.
16절에 보면, 이 여종이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종은 자기가 복채(점 쳐준 값)를 다 가져가지 못합니다.
자기 신분이 남의 종이니까요.
그래서 돈을 벌어서 주인이 가져갔습니다. 그러니까 착취를 당했던 거죠.
그런데 본문에 보면, 주인이 아니라 '주인들'이라고 말합니다. 복수이죠.
그러니까 한 개인의 노예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귀신들린 여자는, 단순히 개인의 집에서 점집을 차려놓고
점을 친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지역마다 신전이 있었는데요. 그리스-로마 신들을 섬겼으니까요.
그 신전에서 점을 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전을 관리하는 주인들이, 그 복채를 가져간 것이겠죠.
그런데 바울의 일행이 기도하러 가다가, 이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 만남에서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 부분이 17절인데요.
◑16:17절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여러분 신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지금 이 여인은 귀신이 들어간 여자입니다.
귀신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면, 바울을 보고 어떻게 해야 되죠?
당연히 예수님을 전하는 바울을 괴롭혀야 맞는 것 아닙니까?
바울을 뒤따라 다니면서 욕하고, 침을 뱉고, 핍박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종은, 마치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 마치 돕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바울보다 앞서가서 사람들에게,
바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소개시켜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예전에 제가 강도사로 사역했던 교회에, 귀신들린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분이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신 분인데, 갑자기 어느 날 새벽기도회에 나왔습니다.
이분이 한 번도 새벽기도를 나온 적이 없거든요.
왜냐면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런데 새벽기도를 나온 겁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개인기도를 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이게 일반적인 기도 소리가 아닌 거예요. 기도 소리가 그분의 목소리가 아닌 겁니다.
여자분인데 여자 목소리가 아닙니다. 누구나 딱 들어도
'아 뭔가 영적으로 문제가 있구나' 딱 들으면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싸한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성도들이 기도를 제대로 못하는 거죠. 무섭다고 한 분씩 나가시고요.
그래서 그날은 기도를 다 제대로 못하고 가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분이 잘못된 교회를 다녀오신 겁니다.
이분이 미용실을 하시던 분인데요. 손님 중에 한 분이 이단 교회를 다니셨나 봐요.
여러분은 귀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예수를 믿어 거듭난 사람은,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귀신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지배하는 사람은, 귀신이 지배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바깥에서 유혹은 할 수는 있어도, 성도를 장악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같은 죄를 고의적으로 계속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귀신이 점점 들어옵니다.
거짓의 영, 두려움의 영, 음란의 영, 분열의 영, 탐욕의 영, 살인의 영 등이 침입합니다.
귀신은, 절대 내가 문을 열어주기 전에는, 스스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내가 문을 열어주어야(죄를 짓고 회개치 않을 때) 침입하는 것입니다.
가볍게 들어오는 것은, 뜨거운 기도와 찬양과 예배로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제대로 들어오면, 쉽게 물리치지 못합니다. 이때는 귀신의 종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분은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까 믿음이 없잖아요.
참고로 여러분 어디 가서 함부로 자기 머리를 내미시면 안 됩니다.
어디 가서 예언기도 이런 거 받지 마십시오.
그리고 참고로 또 예언기도, 여러분 그런 거 자꾸 좇아다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불안하다 할지라도, 그런 거에 현혹되시면 안 됩니다.
(*예언기도 해 주시는 분이라도
한 두 번은 맞추어도, 계속 전부를 다 맞추지는 못 합니다. 나중에 크게 당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게 중요하지,
무슨 미래를 맞추는 게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귀신이 들렸는데, 교회를 와서 어지럽히는 것이죠.
영이 약한 교인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거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 귀신들린 여종을 보십시오.
바울 팀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에게 전하는 자니라' :17
물론 옆에서 시끄러울 수는 있었겠죠.
그런데 지금 바울은,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은 기도하러 가는 중이었죠.
그러니까 바울을 방해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돕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은, 귀신 같지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귀신에게 속으면 안됩니다.
이 귀신의 말을, 원문으로 보면 중요한 '옥의 티'가 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데요. 여러분 뭘까요?
귀신들린 여종은 바울을 가리켜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때 '구원의 길'은, '유일한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즉 정관사가 빠져있는 거죠. 그런 경우에는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는 거죠.
여러분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의 길이십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를 가르쳐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여기 내가 길이라고 하실 때는요. 정관사 the가 붙습니다. *헤 호도스
'그 길,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다른 길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행4:12절에도 보면, 베드로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천하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으셨다'
구원의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밖에는,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구원의 길 앞에는 항상 정관사 the 가 붙습니다.
'그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 길' 밖에는 없다는 얘기죠.
그런데 오늘 마귀의 말에는 정관사가 빠져 있습니다. *호돈(길) 소테리아스(구원의)
무슨 얘기죠? '구원의 길'이긴 한데, 여러 구원의 길들 중에 하나 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딱 들으면, 오늘날 뭐가 떠오르죠? 종교다원주의, 상대주의
오늘날 종교다원주의, 상대주의, Universalism(보편주의)를 추구하는 자들은,
모든 종교에는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배타적 구원을 배격합니다.
그러니까 꼭 예수만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예수가 아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헬라어 성경에 '구원의 길'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way of salvation (호돈 소테리아스)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KJV, NIV, NASB 등 영어성경은 죄다 the way of salvaion 이라고
정관사 the 를 넣어서 번역하고 있습니다. 문맥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정관사를 넣었겠죠.
그러나 헬라어 원전에는, 정관사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해석은,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해석인데 상당히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성경들이 왜 정관사 the 를 만들어 넣었을까요? 혹시 잘못 번역?
귀신 들린 여종이 소리지른 목적이 결국 무엇이죠? (정관사를 빠뜨림으로 인해서)
기독교의 유일성, 구원의 유일성을 빼버립니다.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보편 구원론을 주장한 것이죠.
이 귀신들린 여종의 말대로라면, 굳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구원의 여러 길 중에 하나니까요.
이 여종이 지금 귀신의 힘을 빌려서 점치는 거랑,
예수님 믿는 거랑 별 차이가 없게 되는 겁니다.
지금 빌립보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그리스-로마의 신들과, 예수님이
별 차이가 없는 겁니다. 결국에는 모두 다 '구원'이라는 산의 정상에서 만나게 되니까요.
유일한 길이 아니라, 여러 길 중에 하나니까요.
그러니 굳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귀신들린 여종의 말은, 복음을 돕는 게 아니라,
복음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메시지를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복음을 무너뜨리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본문 18절 한번 보십시오.
이 여종의 말을 들은 바울의 반응이 무엇이죠? '심히 괴로워했다'고 말합니다.
◑16:18절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기서 '괴로워했다'는 말은, '짜증내다, 화를 내다' 이런 말이 아니라, *디아포네오마이
'힘들어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같은 말이 행4:2절에도 쓰였는데
'(사도들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싫어하여'
그런데 이 귀신들린 여종이, 이 말을 하루만 하고 다닌 게 아닙니다.
여러 날 동안 바울을 졸졸 좇아다니면서 이 말을 했습니다. 그것도 큰 목소리로!
그래서 바울이 어떻게 하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또 재미있습니다.
바울이 여종 안에 들어간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이걸 보고 여종의 주인들이 어떻게 했죠?
바울과 신라를 붙잡아서 감옥에 넣었습니다. 여러분 이것도 이해가 안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지금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기들의 여종이 치유를 받았잖아요. 귀신이 나갔잖아요.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왔잖아요.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달가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단단히 화가 나 있습니다.
급기야는 바울과 신라를 고발해서,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가 19절에 나오는데요.
◑16:19절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여러분 바울과 신라를 왜 감옥에 넣었어요?
자기들의 수익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여종이 점을 칠 수가 없는 거죠.
귀신이 나가니까 동시에 점치는 능력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여종이 돈을 벌어줄 수가 없는 거죠. 그들의 수입원이 끊겨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주인들이 화가 난 겁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관심은 영혼이 아니었습니다. 영혼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능력에도, 예수님의 이름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같으면 어떤 반응이 나와야 하죠?
'아니 대체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까 귀신이 쫓겨나가는가?
그분은 대체 누구신가? 그분을 알고 싶다.' 이런 반응이 나와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주인들은, 구세주이신 예수님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복음의 진리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들의 불쌍한 여종이 귀신으로부터 놓임을 받았다는 사실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이 온통 어디에만 관심이 있죠?
자기의 수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의 소유, 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그들을 지배하는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눅8장에 보면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때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소리쳐 외칩니다.
마치 오늘 본문과 동일하게,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외치는데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 안에서 귀신이 나오는데, '군대 귀신'이 나왔다고 말합니다.
로마 군대의 한 군단(레기오)처럼 많은 귀신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귀신들이 그 한 사람 안에 들어갔다는 얘기겠죠.
그런데 쫓겨난 그 많은 군대 귀신들이 돼지떼 들에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돼지 떼들이 비탈로 내려가서 강물에 들어가서 몰살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지켜본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죠?
예수님을 그 마을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종의 주인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 거죠. 왜 그렇죠?
예수님 때문에 돼지떼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 자유함을 얻었는데, 거기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돼지 떼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일으킵니다.
한 영혼의 놓음보다, 자유보다,
자기 재산 목록인 돼지가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왜냐면 돼지떼들이 죽으면, 그만큼 경제적인 손실을 보니까요.
그만큼 돼지를 팔아서 벌 수 있는 돈을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도, 예수님을 쫓아내 버립니다.
자기들의 소유, 자기 수익, 돈이 우상이었던 것이었죠.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지금 본문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둘 다 같습니다. 둘 다 누가가 쓴 책입니다.
그러니까 누가가 지금 빌립보 사역에서, 한 영혼에 초점을 두고 기록하는 의도가 있는 거죠.
이게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땅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관심은, 자기의 소유입니다.
이 땅에서의 소유, 돈 아닙니까? 최상의 가치가 결국은 돈 아닙니까?
그렇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권의 대리자인 하나님의 종들의 관심은
한 영혼, 한 영혼에 있다는 거죠.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가상화폐나 주식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이죠?
결국에는 다 돈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자기의 소유, 수익, 돈이 세상에서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돈을 위해서라면, 귀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벌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귀신의 힘을 빌리려고 점집을 찾아가고, 무당을 찾아가고, 부적을 사고요. 주2)
다른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것 아닙니까?
자기의 영혼을 귀신에게 팔아서라도 돈을 갖고 싶어합니다.
현세에서 잘 되고 싶은 거죠.
오늘날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서라도, 돈을 벌려고 했던 주인들의 모습이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기의 소유를 늘이고 싶어합니다.
자기의 영혼의 상태보다 중요한 게, 자기의 소유, 자기의 수익, 돈입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신앙을 팔아서라도, 돈을 갖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자꾸 타협을 하는 거죠.
신앙보다 중요한 게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귀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그것들을 교묘하게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기복주의, 성공주의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누가가 드러내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복음의 관심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소유, 우리의 수익, 돈이 아니라, 한 영혼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소유가 아니라, 한 영혼의 상태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이야기에 재미있는 결과가 있습니다.
이 귀신들린 여종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으로부터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녀는, 덕분에 직업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점을 쳐서 먹고 살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었죠.
귀신이 자기에게서 쫓겨나갔으니까요.
그녀는 구원받는 동시에, 직업을 잃어버렸습니다.
왜냐면 이 여인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직업을 잃어버리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는 직업을 잃어버림으로써, 참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대조가 되시나요? (주인들과 대조가 됩니다)
세상은 귀신에게 자기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돈을 추구합니다.
귀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자기의 소유를 늘리려는데,
또한 이 땅에서 잘 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반대로, 그 사람의 소유를 잃어버리게 해서라도
한 영혼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이걸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땅에서 누리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좀 더 쉬운 말로, 구체적인 표현으로는
하나님과 누리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여러분들이 지금 살아가는 지금의 삶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죽고 나면 천국 가는 걸..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누리려고 하는 이 세상의 것들,
내 소유를 더 풍성히 누리게 하면서,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막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면서까지
여러분의 영혼을 얻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땅에서 누리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뭔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오늘 말씀을,
여러분은 불편하게 여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는 말씀에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부요와, 진정한 생명은
소유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모 연예인이 마약을 해서 구석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 전에 방송에서 나와서 했던 말을 제가 그때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 차면 내가 행복할 줄로 알았습니다'
자기가 무명일 때, 신발장을 보면서, 이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 차면, 내가 행복할 줄 알았다고...
그런데 막상 돈을 많이 벌어서 그분이 굉장히 유명해졌잖아요.
이제 신발이 차고 넘쳤는데,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 허탈감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댔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소유가, 우리를 자유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편안하게는 해줄지 몰라도, 조금 즐겁게는 해줄지 몰라도,
우리를 평안과 기쁨과 부요와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거기에는 생명과 자유가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실 분이시며,
그분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모든 부요를 이 땅에서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른 것이 복이 아니라, 예수 믿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예수 믿고 복받는 게 아니라, 예수 믿는 게, 예수 안에 있는 게 복입니다.
그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 복문의 여종처럼, 이 여인은 직업을 잃었지만, 참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귀신이 그녀의 주인이 아니었고요.
더 이상 돈의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이 당시 초대교회 사람들에게 큰 울림과 위로를 주었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실제로 이 당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는 동시에 직업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시죠? 예를 들면 이 당시에 1세기의 연극배우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자기 직업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의 연극은, 지금처럼 연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는 척하는 시늉만 낸 게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무대 위에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대본이 있으면, 실제로 살인을 해야 했고요.
성관계를 하는 씬이 있다면, 그 대본대로 성관계를 실제로 해야 했습니다.
로마에 콜로세움 경기장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전쟁 연극이 있으면, 실제로 노예들을 데리고 와서
전쟁하는 씬에서는 그 노예들을 실제로 죽였습니다. 그런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건요,
더 이상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구원을 받는 동시에, 직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직업을 잃어버리는 동시에, 그들은 참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그 당시에 초대교회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직업을 잃는 것만이 아닙니다.
직업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모양은 다르지만 예수를 믿음과 동시에, 우리는 어떤 것을 잃어버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실제로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잃어버려야 할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지만,
그 구원은 단순히 죽고 나서 천국에 가는 구원이 아니라,
이 땅에서 죄로부터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하나님과 잇대어지는 삶,
그걸 성경은 영생,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어떤 것들을
잃게 함으로써,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밀어넣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하게 만듭니다.
그 이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즉 생명을 더욱더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되는 거죠.
'우리의 진정한 자유와 부요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었구나...'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입니다.
그 일이 오늘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소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스스로 물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주님을 바르게 믿고 있는지, 점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십시오.
-나는 주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그로 인해 포기한 것들이 있는가?
-주님께서 싫어하시고, 주님과 동행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해서
기쁘게 포기한 것들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내가 가진 나의 소유를 내려놓거나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 정직하게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여러분의 믿음을 재는 정확한 척도일 것입니다...
......................................
주1)
성경에 보면 귀신 demon 이 나오죠. 귀신은 어떤 존재이죠?
귀신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천에 떠도는 혼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떠도는 게 귀신이 아닙니다.
여러분 처녀귀신, 총각귀신 ... 이런 거는 기독교적 개념은 아닙니다.
이런 귀신은 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갑니다.
구천에 떠도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귀신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천사도 만드셨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그런데 심부름을 해야 할 천사들 가운데, 일부가 타락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반역을 한 것이죠.
그 타락한 천사 중에 대장 우두머리를, 성경은 사탄 Satan, 또는 마귀 devil 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단수입니다. 마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찬송가에 보면 '마귀들과 싸울지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못된 가사입니다.
또 '귀신 demon '이라는 말 외에도, '악령' evil spirit 도 나오죠.
동급으로 보면 됩니다.
주2)
여러분 그래서 진짜 귀신 같은 무당은, 귀신처럼 맞출 때도 있어요.
어떤 비즈니스맨 CEO가, 너무 불안해서 하루는 무당을 찾아갔대요.
어떻게 무당이 봉투를 하나 딱 주더래요.
그러면서 '몇 월 며칠날 펼쳐 보십시오' 그러고 주더래요.
그래서 받아와서, 그날까지 펼쳐 보지 않다가, 그날이 되어서 딱 펼쳐 봤는데,
그게 그날의 주식, 코스피 지수를 정확히 써 놨더래요.
그래서 이 CEO가 거기에 혹해서, 그 다음에 모든 것을 이제 그 무당한테 물어보다가
나중에 회사가 패가망신했다...는 얘기입니다.
전부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가끔은 알 때도 있다는 거예요.
무당도 영적인 능력이 있어요.
근데 무당이 전부 다 맞추면, 자기가 부자 되게요?
다 가짜로 맞추지만, 진짜 귀신의 능력을 빌어서 간혹 맞춘다 할지라도,
계속 맞추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다 맞추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무당 말 듣고 주식 투자 했다가, 처음엔 한 두 번 돈을 땁니다.
그 다음에 무당 말 듣고, 자기 재산 영끌해서 다 집어넣었다가... 쪽박차는 거죠.
잔 돈을 땄는데, 큰 돈은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