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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5장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LNCK 2024. 8. 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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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aramos/80208939743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렘5:1~5      2006년설교스크랩

 

NYT 사설에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Nicholas D. Kristof

“백악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시기”라는 제목으로    주1)

부시 대통령에게 몇 가지 충고한 내용이 나옵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매우 낮아져 있는데

빨리 인적쇄신을 하고 통치 방식을 바로 잡으면

다시 국민들의 지지도를 높일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주2)

 

크리스토프는 구체적으로 4가지를 수정하라고 충고합니다.

 

-딕 체니를 퇴임 시켜야한다고 합니다.

딕 체니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많이 잃고 있으며, 건강도 좋지 아니하니

사임시키라고 합니다.

 

사실 몇주전 딕 체니가 친구 해리 위트만과 사냥하러갔다가

오발 사고로 친구를 중태에 빠뜨린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그가 부시 대통령에 보탬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부담만 주니 사임시키고,

인기가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등을 기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도 사임해야 되다고 합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야당에서 국방장관을 기용했던 것처럼,

민주당에서 기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시는 공식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민주당 등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시는 초당파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을 강조해야 옳다고 했습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지지도에 제일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인기를 얻을까? 항상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지도가 몇 퍼센트인지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이 수치가 정치인들의 정치 생명으로 여깁니다.

 

▲여러분 그런데 성도들의 삶의 관심은 어디에 있어야 하나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촛점은 무엇에 맞추고 살아야 하는가요?

성도들의 관심의 초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맞추며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들 하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지지도는 별로 중요하지 아니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실 때에 나의 삶은 어떠한가?’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은 어떠한 생활인가요?>

 

◑1. 의를 행하는 사람

 

렘5:1~6절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대화의 내용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을 찾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을 말합니다.

정직과 진실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원하시고, 정직을 원하십니다.

의롭지 아니한 성공, 번영, 정직하지 아니한 부유함, 모두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십니다.

 

아모스 선지자도 아모스 5장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생활이 아니라, 정직한 삶이요,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무시한채, 열심히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이 아무리 멋있는 노래를 부르고 비파를 연주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아니하십니다.

 

아무리 많은 양과 소를 바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지 아니하십니다.

의와 진실과 정직이 없는 신앙적 형식은 위선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외적인 형식과 함께, 내적인 의를 사모하며,

정직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개인적 삶이나, 한 나라의 진정한 힘의 출처가 무엇인가요?

정직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어느 회사의 웹 사이트를 보니

우리 회사의 힘과 희망은 정직함에 있습니다.” 보기가 좋았습니다.

 

잠14:34절에 보면,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나라든지 흥할 때가 있고, 쇠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에 망하고 어느 때에 흥하나요?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교육의 문제에서 원인을 규명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2, 3차적인 문제입니다.

 

군사적 힘, 경제적인 힘, 교육의 힘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은 의의 문제요, 진실의 문제요, 정직성의 문제입니다.

 

우리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생각하면서 상당히 긍지를 갖습니다.

국민소득도 높고, 교육 수준도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PC 보급율이 세계 최고입니다.

초고속 인터넷망은 한국에 따라갈 나라가 없습니다.

 

IT 산업, 전자 산업 등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우리 한국의 자동차가 그 나라의 하이웨이를 달리고,

한국의 제품들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매우 프라우드 합니다. 사실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개념이 경제력이 높고,

기술이 앞장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아니합니다.

 

국민 의식 수준이 매우 중요합니다.

높은 국민의식의 기초는 도덕성이요, 정직성에 있습니다.

 

자동차 만드는 기술이 앞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더욱 중요합니다.

 

운전하면서 교통도덕을 잘 지켜야 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운전하는 의식이 더욱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효과적으로 일을 잘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섬기는 성도로서의 의식구조,

즉 신실하며 진실된 생활과 마음의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앨빈 토플러의 <권력의 이동 Power Shift> 에서 힘의 원천을 3가지로 말합니다.

 

1) 군사력과 물리적인 힘을 말합니다. 주로 고대 사회의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2) 경제력을 말합니다. 힘 있는 사람, 힘 있는 나라는 돈 있는 사람과 국가를 말합니다.

3) 지식이라고 합니다. 토플러는 이 중에서 가장 큰 힘은 지식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의 힘의 원천을 산업화에서 지식 정보화시대임을 강조합니다.

IT 산업의 중요성을 부르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힘, 경제적 힘, 지식적인 힘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윤리적, 도덕적인 힘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도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르지 못하면 매우 추하게 보입니다.

 

▲2005년에 서울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50대 중반의 한 남자가 형의 집 앞에서 1주일 넘게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 남자는 부모님이 물려준 고향의 토지 약 만 오천 평,

약 150억원의 땅을 동생에게는 한 푼도 안 주고 형이 모두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형의 말은 달랐습니다. 동생에게 재산을 주었는데 자꾸 말아먹고

형에게 계속적으로 시위를 한다고 합니다. 형은 동생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여러분 이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돈이 없어서 서로 싸우고 고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너무 많아서 그것에 탐욕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

형제애도 팽개쳐 버리는 그러한 삶의 스타일.. 참으로 추하게 보여집니다.

돈과 권력이 아무리 있어도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런데 이 도덕과 윤리성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인 문제요,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경건된 삶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사모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시각은 경제, 번영, 자유...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런 것, 별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함과 의로움을 찾고 계십니다.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남아공의 유명한 투투 주교의 말입니다.

 

“백인들이 우리 땅에 들어 왔을 때,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고, 백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눈 감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는, 백인들은 우리의 땅을 가지고 갔고, 우리는 성경책을 가졌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말입니다.

 

선교라는 이름하에 자기 나라에 들어와서

자기들의 땅을 차지하고 횡포를 부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정직하지 못하고, 신실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다.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소금이 됩니다. 전도의 문이 막히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아모스5: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힘이 어디에 있나요? 우리의 긍지가 어디에 있나요?

많은 사람? 든든한 경제력? 좋은 프로그램?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성도 간에 사랑이 넘치고,

나아가서 의와 정직과 진실이 넘치는 데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은, 사람의 숫자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사람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렘5:1

 

하나님은 의를 행하며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사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면

예루살렘을 용서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창18:22~32절의 사건과 유사합니다.

소돔 성이 멸망을 면하기 위해서는 10명의 의인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나가는 소수의 사람만 있더라도

예루살렘 성읍 전체를 용서하시려고 하십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이나 소돔성이 경제 때문에 망한 것도 아니요, 정치 때문에 망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도덕적 타락이요, 우상숭배, 그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알고 보면, 그것만은 아닙니다.

그 속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명을 찾으면

‘내가 그 열 명으로 인하여 소돔성을 용서하리라’ 하십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소돔과 예루살렘이 망한 근본적인 이유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했고, 교회가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아무리 죄가 많아도 의인 열 명만 있으면,

그 의인 열 명으로 인하여 이 성 전부를 사하리라 하시다니요.

그런데 문제는 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루살렘 성에는 경건한 사람 한 사람이 없어서 망합니다.

물론 이것은 소수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의식입니다.

 

1)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먼저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2) 이 사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면 내 한 사람이 바로 서 있으면,

다른 사람에 관계 없이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별로 기대하지 아니합니다.

 

이 세상이 험하고, 죄악이 많고...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곳에 있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실 때에 문제의 초점은 크리스천, 주님의 교회에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인 성도들이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나가면

하나님께서 이 사회와 국가를 지켜주실 줄 분명히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에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사모하는 사람을 자를 찾으십니다.

 

▲사사기7:1-8절을 보면, 본래 이스라엘 청년들이 미디안 군대와 싸우기 위해서

3만2천 명이 기드온에게 자원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숫자가 너무 많다고 기드온에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싸워서 이기게 되면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를 했다고 자부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룹바알'이라고 하는 기드온에게

이제라도 '무서워서 떠는 자'는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기드온은 무서워 떠는 군인 22,000명을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군인이 아직도 많다. 수를 더 줄이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군인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서 물을 마시게 한 후,

무릎을 꿇고 마구 들이키는 자들을 다 돌려보내고 혀로 물을 먹는 자들

300명만을 남겨놓았습니다. 이것이 기드온 군대가 선택되는 과정입니다.

여러분 적군은 십만 명이 넘습니다. (본문은 의인 1명을 찾으신다고 하셨죠)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는 사람의 숫자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초대교회 숫자가 많아서 세상을 변화 시키는 그렇게 귀한 사역을 했나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 한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된 존재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물질과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아니합니다.

 

우리 교회는 말세에 남겨진 신앙의 그루터기로서 참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 신실한 주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회개하는 사람

 

렘5:3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이스라엘은 회개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5:3b

They made their faces harder than stone and refused to repent.

 

예레미야는 유다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개입을 회고합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그들을 치셨으나 그들은 아픈 줄을 몰랐습니다.

즉 정신을 차리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은 얼굴을 바윗돌보다도 더 굳게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이 되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거절하고

마음이 바윗돌보다 더 굳어버려 돌아오기를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치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본래의 상태로 되돌이키기 위한 교육적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사랑하는 자녀를 매로 쳐서라도 잘못된 행실을

바로 잡아주려고 애쓰는 부모의 심정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목적은 우리의 진정한 회개입니다.

신약의 비유중에서 탕자가 돌아옵니다. 천하에 못된 사람이지요.

아버지 유산을 미리 타내가지고는 허랑방탕하게 내버리고 온 탕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쓸 데는 하나도 없어요.

몸도 병들었을 것이고, 성격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문제가 많았을 것입니다.

 

인격 전체가 병들어 있어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왔다”는 그 하나만으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회개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15:24)“

돌아온 것이 너무나 좋아서 기뻐하고 잔치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그러나 형은 너무나 율법적으로 동생을 생각합니다.

동생의 과거의 행적만을 가지고 현재를 비판합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15:30)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자신의 허물을 바라보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생활입니다.

 

다윗왕을 보십시오. 그는 분명히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여러모로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종 다윗은 정직한 사람이라” 다윗이 어떻게 정직한 사람인가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켜 정직하다고 하나요? 진정한 회개입니다.

“하나님 내가 죄를 범하였나이다.”

 

시51:3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그것 하나 보시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회개할 때에 비로소 자유함을 누릴수 있습니다.

참 회개하는 심령에 성령께서 위로함을 주시고,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료시켜 주십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에 "임페리얼 뮤지엄" 박물관이 있습니다.

여기에 이러한 그림이 있습니다.

 

황제가 예배당에 들어가려고 할 때, 주교가 문간에 나와서 딱 버티고 "못 들어옵니다."

하는 그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주후 390년에 데살로니가에서 로마의 통치를 반대하는 그런 운동이 있었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서 황제는 1500명을 무참하게 학살해 버렸습니다.

 

그 뒤에 데오도시우스라는 로마 황제가 밀라노를 방문했다가,

밀라노 예배당에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려고 할 때 "성 암브로스" 라는

유명한 주교가 딱 나와서 문을 막고 "못 들어갑니다."

"왜 못 들어가냐?"

"당신은 죄인입니다."

 

그때 황제는 말합니다.

"다윗왕도 죄인인데." 그때에 유명한 대답을 합니다

 

"다윗 왕을 모방하십니까? 그러면 다윗처럼 회개하셔야죠. 다윗 왕은 회개했습니다.

당신은 회개하지 아니했기에 못 들어갑니다." 유명한 그림입니다.

 

이야기는 참으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교만한 사람, 하나님께 거절당합니다.

하늘의 위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성도는

 

1. 하나님의 의를 사모해야 합니다.

2. 사람을 의식함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3. 언제나 우리 자신의 허물을 바라볼줄 알아야합니다.

 

이런 의인 한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기쁘게 보시고

그가 속한 가정, 교회, 공동체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망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렘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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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Time for an Extreme Makeover at the White House”

 

주2) “President Bush can still rehabilitate himself if he acts quickly and decisively to reshuffle his administ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