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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통치하신다

LNCK 2024. 8. 11. 07:02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은 통치하신다  | 2024-0804 - YouTube

 

하나님은 통치하신다      시103:19, 롬8:28

 

◑도입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하나님은 통치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면 이 시대가 너무나 절망으로 가득 찬 시대,

또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 같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또는 비참한 상태로 흘러가는 듯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환경, 사람들의 악함, 우리들의 경제적 상황이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로 불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혼란스런 세상 속에서도 안심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이 세상과 우리들의 삶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서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시편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가 크게 되기를 원하고 강하게 되기를 원하고, 큰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만,

내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모든 세상의 역사와 흐름은 초점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그 초점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시33: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그의 목적은 변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계9:16 “...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주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를 듣고

그 메시지를 신뢰한다면, 우리들의 삶에 불안이 없어지고

우리들의 삶에 기쁨과 평강이 채워질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또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항상 궁금해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면 왜 세상이 이런가?’ 라는 것입니다.

왜 이 땅에 굶주림이 있는가요?

굶어서 5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1년에 6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약 2만명 꼴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이 땅에 이 굶주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요?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이야기

그의 부모님들이 크리스천이어서,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 아니었지만,

교회에 나가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널지 <메가진 1968년 7월호>에 나온 굶주린 아이의 사진을 봤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교회 목사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아십니까?’

 

그때 목사님은 좀 복잡한 얘기지만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소년 스티브 잡스는 ‘그렇다면 나는 이런 하나님 믿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이 굶주림과 고통들,

이런 고통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목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UN의 보고도, 많은 학자들의 견해도,

이 땅에 있는 음식과 물질들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을 만큼

충분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여러분이 포함되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나누어 먹을 때, 이 땅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인데

그런데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수의 사람이 욕심과 탐욕으로 그것을 독식하고자 할 때,

어떤 지역에서 굶주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굶주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계획은

이제 우리들이 그 굶주림의 현실에, 하나님의 통치와 계획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그 음식들을 나누어주고, 그 문제를 해결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결핍이 왜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은 나눔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파괴되어 가는 이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의 계획은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이 세상에 흘려보내면서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그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주면서

하나님의 그 선하신 계획들을 이루어 가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궁극적인 성취는, 궁극적인 선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날이 되면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면

그럼 우리는 뭔가요?

우리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통치안에 우리의 자유의지가 발휘될 수 있는가요?

하나님의 통치와 우리들의 자유의지는 같이 갈 수 있는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완벽하신 뜻 가운데 일어나고

나는 자유의지가 없어, 하나님께서 하는 그대로

내가 마치 로봇처럼 (자유의지가 없이) 살아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내가 잘못 행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요?

 

반대로 만일 자유의지가 있다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망가뜨릴 수도 있지 않는가요?

 

그래서 우리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은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하며

많은 젊은이들이 의아해 합니다.

 

△유람선의 선장 예

하나님은 거대한 유람선의 선장과 같습니다.

(이것은 물론 완벽한 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이 배는 선장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들은 저 배에 타고 있는 승객과 같습니다.

선장은, 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죠.

그들은 그 배 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미워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이 선장이 그들에게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배는 결국 선장이 목적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 목적지로 가는 것에 있어서, 이 배에 있는 승객들은 조금도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이런 일 저런 일도 하고, 이런 행동 저런 행동도 하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도 하지만, 결국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선장이 인도하는 그곳으로,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유의지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지만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바

하나님의 주권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

우리들의 자유의지와 우리 선택의 관계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와 우주를 통치하십니다.

그런데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내 삶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정말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있어 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본론/ 하나님께서 나의 일생에 내 삶을 통치하시는데

이것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가요?

그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우리들의 삶에 세 가지 영역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은 <나의 계획>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통치하시되 우리들의 계획을 통치하십니다.

 

잠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우리가 계획을 해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획을 통치하십니다.

 

잠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최종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10년 전 20년 전에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얼마나 이루셨습니까?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지금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처음에 살아야겠다는 곳에서 살지 않고, 지금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람은 없습니까?

 

우리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바꾸셨어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획을 바꾸시거나 성취하신 것에 대해서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가정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내가 무엇을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기도할 필요도 없어

나는 분명히 그것을 할 것이고 나는 분명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내 계획은 너무나 확고해’ 그런 태도는 건전하지 못한 태도, 좋지 못한 태도입니다.

 

약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나는 앞으로 며칠 동안, 몇 년 동안 무슨 일을 할 것이다’ 정확하게 계획을 세웠지만

나의 그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 계획을 통치하시기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안에 들어갔을 때, 그것이 그대로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요?

주님의 뜻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유연성이라고 말합니다. 바꿀 수 있는 거예요.

 

‘주님의 뜻이니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 유연성 있게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유연성은 신앙 성숙의 척도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유연성이 있습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유연성이 없어요. 내가 어떤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냥 집어 던져버리고 그냥 포기해 버립니다.

이것은 미성숙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도 있고, 저렇게 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믿고

유연성 있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다음 단계로 나갈 때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10년이나 20년 전쯤 여러분들이 이런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계획, 생각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모두 오늘의 이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태도는,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들>을 통치하십니다.

 

우리들에게는, 어려운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들의 문제들, 괴로움들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통치하시는 그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에게 선을 이루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모든 것이 다 선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완벽하게 선하지 않은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우리들의 삶에 패역함, 잘못된 생각들, 하나님의 뜻과 멀리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너희들이 시작한 거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아요.

 

완벽하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삶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좋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무엇이어야 할까요?

부정적인 관점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내 삶에 이런 문제가 닥치고, 이런 어려움이 있으니, 이제 나는 끝났어.

난 절대로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부정적인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내 인생에는 항상 더 큰 그림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문제에 직면해도, 어떤 절망에 직면해도,

하나님이 그리시는, 항상 더 큰 그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또 인도하실 항상 더 큰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바른 태도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내 문제를 다스리고 통치하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통치하십니다.

 

‘내가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은 더 큰 그림을 가지고 계셔,

하나님의 뜻이 있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실 거야’

라고 하는 그 생각, 그 그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더 큰 그림이 있었던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①먼저는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과 편애을 받는 아들이었으나 형들의 질투로 노예로 팔립니다.

 

애굽에서 보디발 장관의 집에 노예가 되지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갑니다.

요셉은 지금 큰 문제 가운데 있어요. 요셉이 어떤 마음이 들었겠어요?

‘하나님이 도대체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나를 이런 문제 가운데 두셨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끔찍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감옥에서 만난 관원의 꿈을 해석해주고,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고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의 엄청난 기근에서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신 큰 그림이었어요.

 

후에 어느 날 자기를 팔아버렸던 그 형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혹시 요셉의 형들처럼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통치하십니다. 내 삶을 통치하며 다스리시고

특별히 내가 당면하고 처해 있는 문제와, 어려운 상황들을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여기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요셉은 더 큰 하나님의 그림이 있다는 것을 몇 년 후에 알았죠.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그것을 볼 수 없을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그림을 볼 수 없고 그것을 경험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향한 계획은

이 땅에 있는 삶에 국한되고, 이 땅에 있는 삶이 제한된 것이 아니라

영원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②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지금 너무너무 큰 환란 가운데 있었습니다.

구타당하고, 채찍에 맞고, 옥에 갇히고 마치 죽은 듯이 버려진 이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사도 바울은 현재 당하는 극심한 환난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제 곧 나를 감옥에서 꺼내주시고 요셉처럼 높은 자리에 올려주시고,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큰 명예와 그 축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았어요.

 

이 사도 바울이 “낙심하지 아니하노니”라는 것은

이 땅에서 당하는 이 고난은 작은 거야. 이제 이 고난 당한 후에 영광스럽고

그 영원무궁한 그 영광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우리들을 향한 큰 그림을 볼 수 없다고

하나님의 큰 그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더 큰 그림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그 영광 속으로 들어가는 그것이

훨씬 더 큰 그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목사님 부부의 아들이, 아주 어린 아기 때 세상을 떠나서

너무너무 좌절하고 절망하는 문제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 “왜”라고 외치고 있을 때

어떤 다른 목사님으로부터 카드를 받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지금 당신의 아들은 예수님의 품에 안겨 쉬고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도 그곳에서 쉬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그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볼 수가 없지만

그 때는 그 큰 그림을 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오래 살아서 이 세상에서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다 보시는 하나님께서, 아이를 일찍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럼 아예 하나님이 아이를 주시지 마시던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게 하셔서, 부부에게 아이를 주셨고,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부는 예수님 품에 안겨 쉬고 있는 더 큰 그림을 보기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무언가 성취하시면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여주실 수도 있고,

이 땅에서 보여주시지 않을 때는

사도 바울이 보았던 그 영광스러운 더 큰 그림을 보여주시면서

이 땅에서 이기고 인내하고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③ 욥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캄캄함인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욥이었습니다. 욥은 굉장히 부자였고, 자녀들도 굉장히 많고,

굉장히 행복하게 잘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만 남고 자녀들이 다 죽어버렸어요.

이 아내마저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며 당신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욥은 기가 막힌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질병에 걸렸고, 완전히 비참한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욥은 요셉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큰 그림을 볼 수가 없었고,

사도 바울처럼 그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 그림도 볼 수 없었어요.

 

자기는 버려졌고 자기는 저주 한가운데 있는 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 욥이 보았던 그림이 하나 있었습니다.

 

욥1:20 ‘..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더 큰 그림을 이 세상에서 그를 회복시켜 주실

이제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지만,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어요.

하나님,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가 본 것은 큰 하나님이었어요.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거둬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욥이 본 큰 그림은 하나님이었고, 욥이 고백하는 것은 저는 주님만 신뢰합니다.’

그리고 마침표를 찍은 거예요.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이것이 욥이 보았던 큰 그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그 선하신 인도하심을 볼 수도 있고,

만약 그것을 볼 수 없다면

하나님의 큰 그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8:28절은 8:29절을 통하지 않고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9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는 목적,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목적,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시고, 우리들의 삶에 위기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들의 삶에 행복을 주시는 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시고

우리로 예수님을 뜻 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합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들의 삶에 해결되는 문제, 우리들의 삶에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혜,

우리들의 삶에 극복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섭리들,

그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지만 결국 최종 최고의 목적은

예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인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통치하십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악한 사람들, 그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바벨론 왕인 느부갓네살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단4: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하나님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이방인인 느부갓네살왕이 깨달았어요.

‘하나님께 제한을 둘 자가 누가 있느냐

하나님께 하지 말라고 할 자가 누가 있느냐?’

하나님께 당신 뭐 합니까라고 말할 자가 아무도 이 땅에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을 힘들게 하고, 우리들을 괴롭게 하는 그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

이것도 문제 중의 하나인데,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면,

내가 복수하고, 내가 갚아주고, 내가 무엇인가 그 사람을 조종하고

내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무엇인가 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의 고난을 내가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라는 거예요.

하나님 이 사람이 나를 괴롭게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한테 맡겨라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느부갓네살왕을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무엇인가 하실 거예요.

그것이 더 큰 그림인데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없어요.

 

△조엘 소넨버그 이야기

그가 아주 어릴 때 레지널드 도르트라고 하는 사람의 음주운전 과속 차량과 충돌,

그 가족들이 타고 있었던 미니밴이 불이 났습니다.

 

아기 조엘 소넨버그가 88%의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사고를 낸 도르트라는 몇 년 국외로 도망을 갔지만 나중에 붙잡혀 왔습니다.

 

그동안 조엘은 죽을 고비를 넘겼고, 화상을 치료하고 수술을 여러 번 해서

지금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좌상 그런데 이 조엘의 삶은 롬8:28~29절의 말씀의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8살이 되었을 때 아이들이 굉장히 사랑하는 아이였어요.

이 아이에게 묻습니다. 아이들이 이 조엘을 사랑해서 너 많이 아프지 이렇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안 아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자가 물었어요. ‘정말 안 아프니?’

‘너무너무 아파요.’ 이렇게 대답하는 그 장면이에요.

사진(우하) 고등학교에 갔을 때 축구팀 주장을 했고, 학생회 회장을 했습니다.

사진(좌하) 대학교에 갔을 때 대학교 2학년 때 학생회장을 맡았다고 합니다.

 

사진(우상)이 조엘이 내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이렇게 고백했어요.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그 음주운전 사고를 냈던 도르트의 재판에

조엘 소넨버그가 참석을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레지날드 도르트씨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은혜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증오로 우리의 삶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증오는 불행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정의입니까? 라는 질문에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가족이 늘 알고 있던 정의이고,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내가 갚아주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르트라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그리고 자기의 모든 문제를

도르트라는 사람과 함께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입니다.

 

그래도 나는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도저히 그 말씀대로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어려운 문제들을 전혀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엘보다 더 큰 문제 가운데 살아가는 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조엘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 마무리

오늘,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최소한 “하나님 내가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직접 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게 해주시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숙제를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주일 동안 살아가면서 계획대로 안 될 때마다

‘왜 이렇게 계획대로 안 돼? 내 인생이 끝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더 큰 그림이 있다. 하나님은 통치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바라보면서 일주일을 살아보십시오.

우리가 변화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또 나를 괴롭히는구나, 저거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있다면

더 큰 그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통치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