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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진 장막에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

LNCK 2024. 8. 11. 19:4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출애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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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진 장막에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      출40:1-38        2015-09-06

 

서론

 

출애굽기의 두 가지 핵심 주제는 ‘구속’(Redemption)과 ‘언약’(Covenant)입니다.

1~18장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내시는 구속에 대한 스토리입니다.

19~40장까지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속은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에 히브리어 ‘헤세드’로 표현할 수 있고,

언약은 약속을 뜻하는 ‘베리트’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를

히브리어 두 단어로 정리해 보라고 하면 ‘헤세드’와 ‘베리트’가 되는 것입니다.

 

출19~34장까지는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율법을 주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막에 대한 계시, 제사장의 자격과 의복에 대한 계시도 주셨습니다.

 

35~40장까지는 모세가 받은 계시대로 성막을 건립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35~39장까지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중심이 되어 성막의 모든 기물을 제작하는 내용이고,

40장은 그 제작된 성물들을 세우는 내용입니다.

 

무엇이든 만들어 놓고 세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출40장에 만들어 놓은 성막의 기물들을 건립하는 것입니다.

 

▲출40장 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을 세우니 이곳에 ‘하나님 영광의 구름’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름은 보통 구름이 아니라 ‘영광의 구름’(Cloud of Glory)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40장 강해설교의 제목을 ‘세워진 장막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출40장에 기록된 사람의 이름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모세’입니다.

12회 기록되어 있는데, 3인칭 대명사 ‘그’라고 표현된 것까지 포함하면

총 21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40장에 모세의 이름이 21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혼자 노동을 해서 성막을 다 세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시 모세의 나이가 80세가 넘었기 때문에 성막을 세우는 일에 일꾼을 썼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성막의 완성자로서 모세의 이름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구원의 완성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성막을 다 이룬 사람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이십니다.

 

요19: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다 이룬 자는 모세이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탁월한 출애굽기 강해서를 저술한 ‘아더 핑크’라는 목사님이

“출애굽기의 모세는 75가지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모세는 먼저 ‘성막 본체’(Tabernacle Proper)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 언약궤를 두고,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을 쳤습니다.

 

성소에는 떡상, 순금등대, 분향단을 놓았고, 성막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막 울타리를 치고, 동쪽에 성막 문의 휘장을 드리웠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모든 기구에 관유를 발라서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불러다가 물로 씻긴 후 거룩한 옷을 입히고,

관유를 부어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실제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모세는 삼중직(제사장, 선지자, 왕)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가 성막을 완공하고 제사장들에게 시범을 보입니다.

떡상의 떡은 이렇게 갈아 넣고, 분향단의 향은 이렇게 피우는 것이고,

순금등대의 등불은 이렇게 켜고 끄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며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제야 성막의 모든 기물과 기구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수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이방인들 역시 그들만의 신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만 봐도 얼마나 큽니까? 어마어마한 신전입니다.

그러니까 신이 거한다는 신전은, 모세의 성막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만든 성막과 이방신전에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방 신전에는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어놔 봐야 그곳에 거하시지 않습니다.

이 성막만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고, 하나님이 이곳에 거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영광의 구름으로 충만하게 임하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40장에 강조되고 있는 세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막의 세워진 날짜’가 강조되고 있다

 

날짜가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에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17절에도 “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제2년 1월 1일에 성막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월의 기준을 출애굽의 경험으로 삼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따르지 않습니다. 출12:2절에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유월절을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에 임한 아홉 가지 재앙으로도 굴복하지 않았던 바로는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 지나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줍니다.

 

어린양을 잡아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을 제외하고

애굽의 모든 장자는 그날 밤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날을 ‘넘어갔다’는 의미의 ‘유월절’(Passover)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었습니다.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출12:31

 

하나님은 유월절이 있는 이 달을 이스라엘의 정월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력으로 이 달을 ‘니산월’이라고 합니다. 니산월 14일이 유월절입니다.

그러면 지금 유대인들은 출애굽을 시작한 이후 시내산까지 도착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었을까요?

 

출19: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개월이 걸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센 땅,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을 거쳐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친 다음

홍해 앞 비하히롯에서 갈라진 홍해를 건너 애굽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도하였습니다.

 

이후 수르 광야를 지나 마라에 도착했던 이스라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고,

물샘 열 둘과 종려나무 칠십 주가 있는 엘림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신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다가 여기서부터 만나를 먹기 시작했고,

르비딤으로 가서 반석의 생수로 해갈을 하였습니다.

이런 여정을 거치며 석 달 만에 시내산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네 개의 광야를 거치게 됩니다.

첫째가 수르광야, 둘째가 신광야, 셋째가 시내광야, 넷째가 바란광야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시내산에 도착해서 사십 주 사십 야를 두 번이나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내려와서 백성을 가르치고,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중심으로 성막의 모든 기구를 제작한 다음 정월이 되었을 때,

성막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0일 후에 시내산을 떠나게 됩니다.

 

민10:11~12절에 “제이년 이월 이십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행하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광야를 떠나 바란광야로 진입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정월 1일에 성막을 세우고, 2월 20일에 떠났기 때문에

50일의 공백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앞으로 이 성막에서 드릴 제사에 대한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레위기를 주셨습니다.

 

“다섯 가지 종류의 제사는 이렇게 드려라”하시며 제사의 종류와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모세는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여 제사장들을 훈련시키고 백성들에게 가르쳐서

50일 후에 시내광야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성막은 출애굽한 지 제2년 1월 1일에 세웠습니다.

유명한 성경주석가 메튜 헨리는 1월 1일이 매우 중요한 날짜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2015년 1월 1일을 시작할 때 성경을 꼭 1독하리라고 결심하지 않았습니까?

혹은 기도를 좀 많이 해야 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습니까? 그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었다 할지라도

1월 1일에 선한 일을 계획하고 시작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남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도 즉위 원년 1월 1일에

부왕 아하스가 더럽혀 놓은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하였습니다.

 

출애굽한 지 제2년 1월 1일은 성막이 완공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운데 살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나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원죄를 부정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자범죄를 짓기 전에는 죄인이 아니었는데 범죄한 후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미 하나님을 거역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는 우리에게 그대로 내려왔기 때문에,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짓고 살다가 결국 그대로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

죗값을 치룰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든지 마귀와 죄의 노예 된 상태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믿고

그 피로 죄 씻음을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영적으로 새롭게 출생하는 1월 1일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날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날입니다.

 

목사의 자녀, 선교사의 자녀, 장로나 권사의 자녀 등 누구의 자녀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믿음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영적인 출생,

자기 자신만의 유월절이 있어야 합니다.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살게 되는 정확한 출발점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전 것으로 계속 살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새 것이 되는 확고한 출발점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출40장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첫 번째 도전은

“당신에게 영적인 1월 1일이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2. 성막의 ‘모든 기구와 제사장들의 기름 부음 받은 것’이 강조되고 있다

 

출40:9절에 “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유’는 ‘바르는 기름’(Anointing Oil)입니다. 아무 기름이나 발라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관유 만드는 법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일러 가라사대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출 30:22~25).

 

관유는 계피향이 많이 나는 기름입니다.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에서 ‘육계’는 시나몬(계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 창포를 넣었습니다. ‘창포’는 산에서 나는 블랙베리, 라즈베리와 같은 열매에서

기름을 짜낸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계피 기름, 베리 기름, 올리브 기름을 섞어 만든 것이 바로 ‘관유’입니다.

 

모세는 이 관유를 성막의 모든 기구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도 발랐습니다.

그러면 기름 부음을 받은 대상은 더 이상 사사로운 목적에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유익을 위해 그 물건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 5장을 보면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라는 자가 등장합니다.

그가 잔치를 벌여놓고 사람들을 초청해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자기 술잔을 갖다가 먹으면 될 것을

선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할 때 가지고 왔던 성소의 기물을 가져다가

술을 마셨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어 사용하는 기물을 가져다가 향락을 즐기는 일에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잔치석상 벽에 사람 손가락 하나가 환상으로 나타나더니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글의 의미를 알아보지 못했던 벨사살은 다니엘을 불러다 해석을 듣게 됩니다.

 

‘메네’는 ‘세어 보다’는 의미로 “하나님이 당신의 날 수를 세어보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데겔’은 “저울로 재어보니 당신은 함량미달이다”라는 의미이고,

‘우바르신’은 “당신의 나라가 망해서 두 쪽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벨사살은 그 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고,

메데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름 부음 받은 성물은 사사로운 쾌락을 위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왕이라도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든 사람이든

기름 부음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관유는 예표이고, 성령은 실체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관유가 아닌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실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요한일서 2:20절에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또 27절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름 부음이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목사만 기름 부음을 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목사는 안수를 받은 것이지

특별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장로만 기름 부음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장로는 장립을 받은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라는 것은 참된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두고 신비주의 경험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신학과 사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요즘은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만 기름 부음이 있다고 하면서

기름을 부어주시도록 간구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성경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쓸데없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예언을 하고 방언한다고 떠들어 대는데

이것은 기독교와 상관없는 활동입니다. 기름 부음은 이런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영적인 체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가 받은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 우리 성도 안에 임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름 부음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즘은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만 기름 부음이 있다고 하면서

기름을 부어주시도록 간구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것은 성경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쓸데없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예언을 하고 방언한다고 떠들어 대는데

이것은 기독교와 상관없는 활동입니다. 기름 부음은 이런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영적인 체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가 받은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 우리 성도 안에 임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름 부음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름 부음이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나의 사사로운 유익과 영광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사업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고,

자녀 교육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실천해 나가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나는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나의 이익을 위해 살겠다고 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막에 임한 ‘영광의 구름’이 강조되고 있다

 

출애굽기 40장에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은 모세가 세운 성막에 영광의 구름이

충만하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34~35절에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모세조차 회막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성결한 영광이 임했던 것입니다.

이 구름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가시적 현현’(Visible manifestation of Invisible God)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거하시는 편재성을 갖고 계시지만

영광의 구름이 임한 곳에 특별히 임재해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구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수르, 마라, 엘림을 지날 때에

늘 함께하였습니다. 출13:21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출애굽 이후에 영광의 구름은 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름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버렸습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백성들이 그 앞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며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을 때, 영광의 구름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진영 밖에 회막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기도했더니

진 밖에 영광의 구름이 다시 임하게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 진영 가운데로 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출애굽기 40장에 성막을 세우고 나서야

영광의 구름이 다시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상 숭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고,

이스라엘 진영 한 가운데로 다시 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며 이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임재는 떠나가 버렸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부흥기가 아닙니다.

영광의 구름이 한국교회 진영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물론 목회자들의 잘못이기도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의 상황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흥이 떠나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기름 부음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절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시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흥이 오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사모하는 방법입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다시 봐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나라가 살 길은 훌륭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정치가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우리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한국교회에 다시 부흥의 불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결론

 

출애굽기 40장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당신의 인생에 영적인 출발점이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된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큰 기도제목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경험하게

해주시옵소서!”, “다시 한 번 이 땅에 큰 부흥의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내 주시옵소서!”

 

이런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 출애굽기 40장에 나타난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한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