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5 21 사도행전 강해 (68) / 아가야로 건너간 아볼로 - YouTube
◈아가야로 건너간 아볼로 행18:23~28
오늘 본문부터는 3차선교여행이 시작됩니다.
▲18:23 '얼마 있다가 (3차선교여행을)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3차선교여행에는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첫 번째 특징은 바울 혼자 떠납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팀을 이루어 떠났습니다.
1차 때는 바나바와 마가가 동행했습니다.
2차 때는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바울은 실라와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3차 때는 이제 사도바울이 혼자 떠납니다. 같이 갔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게 3차 선교 여행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2) 두 번째의 특징은 선교 여행의 코스입니다.
1차 때는 주로 갈라디아 지역을 중점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2차 때는 주로 유럽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3차선교여행의 코스는 어디인가요? 그 코스가 본문 23절에 나옵니다.
18: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바울은 이제 안디옥을 떠나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닙니다.
갈라디아 부르기아는, 바울이 1차선교여행 때 다녀갔던 곳들입니다.
그러니까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로 갔다는 것은,
1차선교여행 때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방문했다는 겁니다.
(행2:10, 16:6을 토대로 볼 때 브루기아는 갈라디아와 밤빌리아 사이 지역으로 봅니다)
그런데 1차 때 세웠던 교회들만 다시 간게 아닙니다.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지나서, 노선을 보시면 바울은 마게도냐로 넘어갑니다.
이쪽(마게도냐)은 2차 때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이죠.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까지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는 겁니다.
다시 방문해서 그곳 모든 제자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세웁니다.
3)세 번째 특징은, 3차선교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곳이, 예루살렘으로 도착합니다.
1차 때와 2차 때는 선교가 끝나면 예루살렘을 가더라도, 항상 결국 안디옥교회로 돌아왔죠.
그런데 3차 때는 안디옥이 아니라 안디옥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4) 네 번째 특징은, 3차선교여행에는 중심지가 있습니다. 바로 에베소라는 곳입니다.
에베소는 2차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바울이 잠깐 들렀던 곳입니다.
고린도에서 사역을 마치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렀던 곳이죠.
그때 예상 밖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에베소를 떠났습니다. 18:21
대신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남겨 두었었죠.
그리고 나서 드디어 3차 때 에베소에 가서 집중적으로 선교합니다.
얼마나 집중적으로 선교를 했느냐면, 3년을 에베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3차선교여행 기간을 5~6년으로 잡습니다.
그 중에 3년을 에베소에서 보낸 겁니다.
그만큼 에베소는 3차선교여행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부터 이제 19장 전체가, 다 에베소 이야기입니다.
이게 이제 3차 선교여행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로드맵을 이해하고 3차 선교여행을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에베소에서 아볼로를 만나다
3차선교여행을 시작한 바울은, 이제 갈라디아와 부르기아를 지나서,
마게도냐를 거쳐서 에베소로 가게 됩니다.
(2차 때 그렇게 가기를 원했으나, 성령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 갔던 곳인 아시아를, 이제 간 것이죠)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에, 에베소에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그 인물에 초점을 맞춥니다. 바로 아볼로라는 사람인데요.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여기 아볼로에 대한 몇 가지 소개가 나옵니다.
1)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당시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늘날 이집트의 북단, 지중해 연안에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입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나서, 자기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 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당시 '학문의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당시 세계 최고의 도서관이 알렉산드리아에 있었습니다.
이 도서관에 소장된 책이, 당시 40만 권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40만권이면, 그 당대의 존재했던 거의 모든 책을 소장한 양입니다.
심지어 성경까지도 번역을 한 곳이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원래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죠. 그런데 그 당시에 공용어는 헬라어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는데, '70인경'이라고 부릅니다.
번역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70명이라고 해서
정확히는 72명인데요. '70인경'이라고 부릅니다.
자 그런데 이 번역 성경을 어디서 만들었느냐?
이스라엘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도 학문으로 이해한 거죠.
그만큼 학문에 진심이었던 도시가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그 학문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볼로가 태어난 겁니다.
2) 아볼로는 '성경과 언변에 능통했다'고 말합니다.
an eloquent man, and mighty in the scriptures
문자 그대로 말을 조리있게 잘한다는 뜻이고, 또 학문이 깊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볼로는, 성경과 학문에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영국의 옥스퍼드대 출신입니다. 그만큼 학문에 특출난 사람이었던 거죠.
3) 아볼로는 유대인이었다고 말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시민의 3분의 1이 유대인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대인이 많으니까 회당도 많았겠죠.
그러니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구약성경에 대해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볼로는 성경에도 능통했습니다. 구약 성경을 말하겠죠.
▲18: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자 그런데 참 놀라운게 있습니다.
이 구약 성경을, 그는 예수님 중심으로 읽을 줄 알았습니다.
이게 참 감사한 부분인데요.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의 도'는, 예수에 관한 것을 말합니다. :25
예수의 관한 것이라면, 구약에 예언된 예수에 대한 내용을 말합니다.
(당시엔 아직 신약이 없었으니까요)
구약에 보면,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출생부터 그분의 죽으심과, 그분의 고난과 부활의 이야기가 곳곳에 나옵니다.
구약의 이야기는, 오실 예수님에 대한 약속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구약의 주제죠.
그런데 아볼로가 그걸 정확히 알았다는 겁니다.
누군가로부터 배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세례요한파 들로부터 배웠나 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구약의 예언된 예수님에 대한 내용들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르게 읽을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실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구약을 통해 갖게 되었습니다.
25절에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쳤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자세히'는, '정확하게'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을 통해서, 구약에 나오는 예수님을 정확히 가르쳤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한 가지 한계가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았다'고 말합니다. :25b
아볼로가 있을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없었습니다.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이었죠. 그래서 구약을 가지고만 예수를 배우다 보니까
요한의 세례까지만 아는 겁니다.
여러분 세례요한은 누구죠? 오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사람이었죠.
그러니까 요한의 세례까지만 안다는 건,
예수님이 오신 그 후에 이야기부터는 잘 몰랐다는 겁니다.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요한의 세례 이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는, 아볼로가 아직 잘 모르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하신 일의 핵심이 있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걸 아직 아볼로는 모르는 겁니다.
아볼로는 구약을 통해 오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자 그런데 그 오실 예수님이, 이미 오셔서 약속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부활하셨을뿐만 아니라, 승천하신 그분이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한 겁니다. 아마도 멀리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요.
물론 아볼로는 지금 에베소에 있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그 부족함을 채워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이 부부가 에베소에 남겨져 있었죠. 18:18~19
이 부부가 에베소의 회당 안에서 아볼로의 설교를들은 겁니다.
그런데 듣다 보니까 뭔가 부족한 겁니다.
아볼로가 세례요한의 사역까지만 아는 겁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를 가르칩니다.
세례요한의 그 이후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볼로의 눈이 열리는 거죠.
아볼로는 구약을 통해 오실 예수님을 믿었는데
약속대로 그분이 오셔서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는 복음을 들으니까,
그의 눈이 더 열리는 거죠.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볼로가 어떻게 되었는가요? 그 아볼로의 활약상이 27절부터 나옵니다.
◑아가야로 건나간 아볼로
▲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위 구절에 보면, 아볼로는 아가야로 건너갑니다.
특별히 아가야 지역 가운데 고린도로 갔습니다.
고린도는 바울이 개척했던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1대 담임목사가 바울이었죠.
그런데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회를 비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후임으로 아볼로가 가는 겁니다.
그걸 우리는 고전3:6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나는 심었고' ..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했다는 말이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 아볼로가 바울의 후임으로, 고린도교회를 양육했다는 겁니다.
18:27절에 아볼로가 아가야의 고린도로 넘어간 것입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하고 언변도 좋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언변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나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고후10:10절에 보면 '바울의 말은 시원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언변도 좋았습니다. 18:24
그러니까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얼마나 사역을 잘 했겠습니까.
실제로 고린도교회에서 파가 나누어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그리스도 파다. 나는 바울 파다. 나는 게바 파다' 그 중에 '아볼로 파'도 있었죠
그만큼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아볼로)가 (고린도교회로)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7b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를 튼튼하게 세웠다는 겁니다.
18:28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아볼로는, 성경을 가지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힘있게 증언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유대인의 말도 이겼습니다.
여러분이 유대인들은 고린도에서 조직적으로 바울을 대적했던 자들입니다.
'이겼다'는 말은, 원어로 '압도했다'는 뜻입니다.
참 어렵고 힘든 고린도교회를, 아볼로가 잘 양육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고전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며 가리라'
이때는 아볼로가 고린도교회를 떠났을 때입니다.
바울도 없고, 아볼로도 고린도교회를 떠났을 때입니다.
그때 바울이 아볼로에게 권한 겁니다.
'가서 고린도 교회를 돌아보기를' 많이 권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아볼로가 바울을 이어서
고린도 교회를 잘 세웠던 것입니다.
◑적용
본문을 통해 네 가지를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1. 험지로 간 아볼로
본문을 묵상하면서 제 안에 생기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아볼로는 하필 고린도로 갔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난 이유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지금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아볼로가 에베소에 남을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볼로는 에베소 태생도 아니고, 알렉산드리아 태생이고
에베소는 잠깐 들린 거잖아요. 아볼로가 없어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남아서 사역을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또 보면, 바울도 바로 에베소로 오지 않습니까.
그러니 굳이 에베소에 남을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지역에 가서 '복음으로 내가 섬겨야겠다'하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굳이 고린도일까요?
아볼로가 에베소(아시아)에 있는데, 이제 아가야 지방으로 건너가는 거잖아요.
고린도 말고도, 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레아, 아덴에도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를 갔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직히 저라면요. 조건이 좋은 교회를 찾아서 갔을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헌금이 많이 나오는 교회입니다.
거기 루디아라는 '구단주'도 있었고... 늘 넉넉하게 돕는 교회였죠.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던' 곳입니다. 살전2:13
그런데 더 훌륭했던 교회가 있죠. 베뢰아 교회는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던' 교회입니다. 17:11
만일 저라면, 고린도만 빼고 아무데나 다 갔을 것 같아요.
여러분이라도 그렇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아볼로는 가장 교회적 환경이 어려운 고린도로 갑니다.
고린도는 타락하고 어려운 도시였고, 교회적 환경도 (고린도전서에서 보듯이) 어려웠죠.
그리고 그만큼 그곳 유대인들도 거세게 바울을 반대해서, 바울이 낙심한 곳이었고요. 18:9~12
그래서 바울도 떠나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던 곳입니다.
바울이 떠나고 나서도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교회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후서를 한번 보세요. 온갖 교회의 문제가 거기에 다 농축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가, 가장 험지인 고린도로 갑니다.
저는 이게 아볼로의 결심만으로 된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8:27절을 한번 보십시오.
'(에베소) 형제들이 그(아볼로)를 격려하며 (고린도)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아볼로를) 영접하라 하였더니'
아볼로가 고린도로 넘어갈 때, 에베소의 형제들이 추천서를 써줍니다.
고린도 교회가 아볼로를 믿고 영접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아볼로 혼자만의 결심이 아니라, 교회에 추천도 있었던 것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를 가는게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볼로를 고린도 교회로 보내신 겁니다.
여러분 그 특출한 '구약의 능통하고 언변도 좋았던' 아볼로를
다른 곳이 아니라 사고 많은 고린도교회로 보내십니다.
여러분 제가 이 대목을 묵상하는데요.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다시 한번 느껴지더라고요.
주님이 고린도 교회를 그만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심판받아야할 도시가 고린도처럼 보이는데..
여러분 그렇잖아요.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신약의 도시가 고린도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의 눈에 보기에는, 구원받아야 할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교회를 세우시고, 주의 종들로 하여금 교회를 돌보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피 값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이 교회를 지키고 계십니다.
이 땅에 못난 교회라도, 하나님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는지...
다시 한번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시선을 보게 됩니다.
▲2. 두 번째 적용은,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학문이 굉장히 깊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영국의 옥스퍼드대 출신이었죠. 구약에도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천막을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체노동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 아볼로가 말씀을 배웁니다.
아불로는 말씀을 배우는데 있어서 참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내가 인정할 만한 학력을 가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가 성경에 대해서 가르쳐 줄 것이 있다고 할 때는, 겸손하게 배웠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서, 아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아볼로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 루터도, 히브리서의 저자를 아볼로라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 히브리서는 어려운 책이죠. 구약에 정통해야만 이해가 잘 되는 성경입니다.
구약뿐만 아니라,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지를 알아야
이해가 되는 책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꿰뚫어야만, 넘나들어야만 해석이 가능한 책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두 가지가 다 연결되는 사람입니다. 구약에 능통한 사람이었죠.
구약에 능통했을뿐만 아니라, 신약의 빛 아래에서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볼 줄 알았습니다.
그 이유가, 그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해서
복음서의 내용을, 세례 요한 이후의 이야기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넘나드는 복음의 이해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운 지식을 가지고, 교회를 바르게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있어서, 겸손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있어서는, 우리가 천국 가는 그날까지 겸손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가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배우게 되는 자리라면
겸손히 배우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배운 말씀을 가지고, 교회를 좀 더 바르게 섬기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안에서 좋은 목회자들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른 교리를 가지고
무너져 가는 교회들을 바르게 섬기는 목회자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게 교회에 주신 복 중에 하나이죠.
목회자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들의 다음 세대를
말씀과 교리로 바르게 양육할 수 있는 신실한 교사들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는, 아볼로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르쳐 줄 것이 있다고 할 때에는, 겸손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의 신앙이 온전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게 아볼로를 통해 배우는 적용입니다.
▲3. 세 번째 적용점은, 오늘 아볼로가 집중한 신앙의 핵심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8:25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배운 것은 '주의 도'였습니다.
'주의 도'는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었죠.
그리고 그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배웠던 지식도
세례 요한 이후의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고린도 교회에서 전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기독교'라는 말은 한자어인데, 그리스도교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예수교입니다.
예수가 신앙의 핵심이고, 본질이고, 신앙의 중심입니다.
예수를 통해서만 기독교 신앙은 가능합니다. 예수가 믿어져야 그게 진짜 신앙입니다.
△저희 어머님이 교회를 다니신지가 12년이 되셨습니다.
제가 33살 때, 이제 어머니가 처음 교회를 나가셨습니다. 신앙생활한지 12년이 되신 거죠.
그동안 어머니가 은혜 받은 얘기들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눈물흘리는 얘기도 하시고요.
그런데 제가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를 붙잡고 늘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12년이 됐는데요. 늘 한 가지 질문, 지금까지도 그 한 가지 질문만 반복합니다.
'엄마, 예수님이 정말 믿어져요? 예수님이 엄마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사실이, 정말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믿어져요?
예수님이 믿어져야 죄가 용서를 받고, 죄가 용서를 받아야 천국에 가요.'
늘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12년 동안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습니다.
찬양의 은혜를 받았는지... 그거 가지고 물어보지 않습니다.
찬양을 부르는데 눈물을 흘렸는지... 그거 확인하지 않습니다.
늘 한결같이 12년 동안 '예수'를 물어봅니다. 지금도 집에 갈 때면 물어봅니다.
여러분 오늘 아볼로의 신앙의 중심에는 '예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배우고, 예수를 믿고, 예수를 더 알고자 하는 영적인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전하고 다녔습니다.
예수가 딱 신앙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가 있어야 진짜입니다.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내가 죽어야 할 죄인인데, 예수가 나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의 살아나심으로 나도 그분과 같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그 예수가 믿어져야, 그게 진짜 천국가는 믿음입니다.
그게 구원받는 믿음이고, 그게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입니다.
예수가 믿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아무리 큐티를 많이 해도, 구원받는 신앙이 아닙니다.
왜냐면 원래 사람안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종교성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 그분이 목회를 하셨을 때
한 달에 한 번씩 꼭 하는 설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원색적인 십자가 설교를 했습니다.
아직도 교회 안에 불신자들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이, 불신자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불신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물었습니다.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여러분 저도이 시간을 통해, 또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도 여러분의 믿음을 정직하게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했던 아볼로의 신앙의 중심이
우리의 신앙에 중심이 되는 구원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4. 마지막 네 번째 적용인데요. 본문에 보면 아볼로와 브리스길라, 아굴라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볼로를 집중해서 다룹니다. 분량이 많이 할애되어 있죠.
아볼로의 출신이 어디인지, 어느 인종인지, 그리고 교회를 위해 어떠한 수고를 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자세히 나왔습니다.
이들이 어디에서 태어난 사람인지, 또 왜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교회를 위해 어떠한 수고를 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지난 시간 살펴본 갈리오 총독을 보십시오.
갈리오 총독은 세상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형(세네카)이 로마 황제 네로의 스승이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스승이 자기 형이니까, 갈리오 총독하면, 당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았을 겁니다.
그 당시 핵인사 였겠죠. 만약 그 당시에 신문이 있었다면,
신문의 1면에도 나올 법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문의 지명과는 다르게, 성경의 지면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그냥 '갈리오 총독' 이게 끝입니다.
그의 형이 세네카였는지, 로마 황제의 스승이었는지...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 앞에 나온 '글라우디오 황제'도 보십시오.
바로 앞에 18:2절에 보면 '글라우디오 황제'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소개가 하나도 없습니다.
글라우디오는 로마 황제예요. 그런데 18:2절에 보면 '황제'라는 칭호도 붙이지 않아요.
그는 당시 세계를 주름 잡았던 제국의 황제였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에 대한 정보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세상 커리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진정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런 것들이 별것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당시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성경이 집중해서 다룹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아볼로도, 성경은 집중해서 다룹니다.
세상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너무나도 다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그리고 아볼로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바르게 수고했던 그들의 이름이
훨씬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글라우디오와 갈리오 총독은, 그냥 이름 하나 쓰고 지나가지만
하나님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아볼로는 그냥 지나가지 못하십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사도행전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수고가 하나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의 눈물과 헌신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구속사를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로마 황제와 갈리오 총독이 아니라, 오늘도 당신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고 계십니다.
그게 사도행전의 이야기요, 사도행전의 관점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의 나라에서 남겨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 기록되고 남겨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영원한 가치이고, 영원한 상급, 영원한 축복입니다.
믿음은, 그 가치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서의 작은 순종, 그리고 믿음의 (손해보는) 결정,
믿음의 눈물,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이 있지 않으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믿음의 수고를 통해, 지금도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계십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서 기억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