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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8장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LNCK 2024. 8. 16. 11:1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예레미야

https://blog.naver.com/karamos/80141803581

https://blog.naver.com/karamos/80141803546  (설교 두 편 조합)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렘8:1~7       2008년

 

◑죄를 범하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이스라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8:6

즉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행하였던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생각해 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는 우리 입술의 말씀은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하며 :6

반성하고 통회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죄를 범하고도 뉘우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 안타까운 사연을, 예레미야가 본문 8장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서는, 반복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크게 보면 같은 내용을

각도를 약간씩 달리 표현하면서, 지금 예레미야서가 계속 전개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본문 8:1~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복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유다백성들은 성전의 한쪽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한쪽에서 동방 태양을 섬겼습니다. 겔8:16

하나님을 섬겨야 될 성전에서 해와 달과 별을 섬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해와 달과 별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뼈도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그 뼈가 파내어져 길거리 위에 내동댕이쳐지고,

그들이 섬기고 사랑하고 구하고 그토록 숭배했던 해와 달과 별이

그들에게 빛을 쬐고 열을 가해서 뼈가 분토가 되고 가루가 돼 버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유다에 침략해 들어온 자들은

패배자들을 더욱 모독하기 위해서 왕들과 귀족들, 그리고 선지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그 뼈들을 끄집어낼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시체가 매장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것은

큰 저주와 수치로 간주되었는데, 무덤이 파헤쳐지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여 졌습니다.

 

대적이 쳐들어와서 어느 나라를 점령하면 무덤을 다 파헤칩니다.

특별히 왕과 높은 사람 그리고 부자의 무덤을 파헤칩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가지고 있던 금, 은, 보석과 함께 묻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대가 쳐들어오면 무덤을 파헤쳐 나오는 보석은 다 가져가고

거기 묻힌 아무 쓸모없는 사람의 뼈는 내동댕이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고 해와 달과 별을 섬기던 사람들은 그 뼈가 분토에도 묻히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져 가루가 되고 분토처럼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8:3절 ‘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적군이 쳐들어와서 도처에서 살육이 자행되고

죽은 자의 시체가 무덤에서 끌어내어 팽개쳐지는 등

하나님의 심판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앞으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내리실 징벌에 비하면 이는 경미하다는 내용이죠.
앞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당할 징벌은, 엄청 더 크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죽기를 원한다는 거죠.

 

유다백성들은 우상숭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그렇게 원하냐며

우상숭배하는 나라로 옮겨 버리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결과가 어떤지 그곳에서 마음껏 우상숭배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해봤더니, 결과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8:4절에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사람이 넘어지면 일어나지 않겠느냐? .. 다시 일어난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이 집을 나갔으면 돌아오지 않겠느냐? ..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유다백성들은 넘어져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 같고,

집을 나가고도 들어오지 않는 사람 같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돌에 걸려,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는 게 자연스런 현상인데, 일어나질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백성들은 넘어지고도 안 일어난다는 겁니다. *중증이라는 뜻

또 사람이 집을 나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순리인데

유다백성은 집을 나가서 다시 안 돌아오는 사람과 같다는 겁니다.

 

청소년이 집을 나가 안 들어오면 가출 청소년이라 부르고

어른이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오면 노숙자라고 부릅니다.

유다백성들이 꼭 가출 청소년, 노숙자처럼 됐다는 말입니다.

 

▲8:5절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하나님,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나는 내 길을 가겠습니다.

목사님, 무슨 얘기를 하시더라도 그건 목사님 생각이지 내 생각은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완고한 사람은 전장의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금년 전반기 세월을 되돌아보며 죄와 악이 있으면 ‘내가 행한 일은 무엇이었던고?

내가 무슨 죄악을 범하였던고?’를 자성하며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그 죄악의 길을 계속가게 되면 손해와 수치와 패배와 멸망이 오고, 결국 사망이 오는 것입니다.

 

▲8:6절에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은 뭔가를 배우는데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몸으로 체험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맞아서 퍼렇고 검게 멍이 든 다음에, 비로소 교훈을 배우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말씀으로 들어서 아는 것입니다. 이게 좋은 방법이죠.

말씀을 통해서, 징계를 받지 않고도, 교훈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으로 체험해서 진리를 알려고 하면 그 대가가 너무 큽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려면 우상숭배하는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우상숭배를 해보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났다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하나님 말씀이 과연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런 유다백성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본문 6절 후반에서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라고 비유했습니다.

 

고대 전쟁에서 가장 많이 쓰인 짐승은 단연코 말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앞에 총이 있든지 칼이 있든지, 죽든지 살든지

그냥 앞으로 달리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로 전장의 말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는 길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죽는 길로,

옳은 길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길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돌이키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말씀이 사실이구나’ 하고 체험으로 배우려 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내가 무엇을 행하였던고? 내가 무슨 짓을 하였던고? 부끄럽도다’ 하면서

스스로 회개하고 돌이키셔서 하나님께서 다시 은혜를 주시는 후반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8:6a절에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하나님은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무관심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입술의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는 우리 입술의 말씀은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하며 :6

반성하고 통회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하며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잊어버리십니다. 우리가 기억하면 하나님은 잊어버리십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죄가 있느나?’며 자기 죄를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다 끄집어내시며

그 죄에 대해서 징계를 내리십니다. 이게 본문 렘8장의 주요 논지입니다.

 

▲8:7절에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학과 산비둘기라고 하는 반구와 제비 그리고 두루미와 같은 새들은

때가 되면 날아갔다 때가 되면 날아오는 철새들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요즘까지도 철새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철새들도 때가 되면 날아갈 줄을 알고, 때가 되면 날아 올 줄을 압니다.

이처럼 짐승도 때가 되면 돌아오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철새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죄악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돌이켜야 됩니다.

그리하지 않고 계속가면,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돼 있습니다.

죄나 악이나 거짓은 반드시 패망합니다.

혹시 범죄하고 아버지 집을 떠나더라도,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야 징계를 최소화합니다.

 

◑중병에 걸린 남유다

 

사람이 온 몸에 중병이 들었다면 반드시 병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예레미야가 설교할 당시 유다백성들의 문제는 중병이 들었다는 겁니다.

 

가벼운 병이 아니라 중병입니다.

11절에 ‘내 백성의 상처’라는 말이 나옵니다.

 

▲8: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이 부분은 6:12-15과 유사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은, 독자들을 지루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라서 강조하는 거죠.

 

종교 지도자들은 민족 전체가 중병을 앓으며

파국 직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사할 것이라는 헛된 확신만을 심어 주었습니다.

 

▲8: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6:15절의 반복이죠.

그들은 이런 거짓 위안으로 백성들을 속이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얼굴색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말로 설득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뿐입니다.

설령 심판을 조금 연기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유익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의 죄악은 더 커지고

그 형벌이 더욱 혹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8: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포도나무 비유는 본서에서 2:21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

거기서는 극상품의 선택된 포도가 야생포도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으며,

이어서 6:9에 포도나무 비유가 등장하였는데,

거기서는 예레미야가 포도를 수확하는 자로 묘사되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여기서는 포도나무에 열매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언약의 말씀을 준행할 때 따르는 번영,

축복(신29:9, 시37:9)과는 대조적으로

언약을 파기한 자들에게는 온갖 저주가 임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8:21절에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유다백성이 상하였다고 그랬는데

면도칼에 조금 빈 게 아니라 큰 상처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같은 단어가 다른 구절에는 ‘파괴 destrucrtion’로 번역되었습니다.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예레미야는 여태까지 심판에 대한 책임이

그들의 극악한 죄악에 있음을 지적하였으나,

여기서는 침략군의 발굽에 짓밟히는 동포의 모습을 생생히 보고서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보다 100년이나 먼저 예언을 했던 이사야 선지자도

유다의 질병이 중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사야1:5~6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중병이 들었는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어떤 의사가 중병들은 환자에게 머큐로크롬 한번 발라주고

‘괜찮으니까 집에 가서 쉬시오.’라고 말한다면 그는 가짜의사입니다.

 

돌팔이 의사는 중병 든 사람에게 ‘괜찮으니까 가서 쉬시오’라고 심상히 말하는데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돌팔이 의사들처럼 그랬습니다.

 

렘8:10b~11절에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거짓 선지자, 거짓 제사장들은 벌하실 것이고

그들은 거꾸러질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거짓은 거꾸러집니다. 진실은 지는 거 같아도 이기는 겁니다.

거짓은 잠시 인기를 얻는 거 같아도 지는 것입니다.

 

9:1절에는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예레미야는 유다백성의 영적인 중병 때문에

울 수만 있으면 주야로 울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치료책은 무엇입니까?

 

▲8:22절에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물어보는 형태지만 수사의문문입니다.

즉,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물론 있지.”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물론 있지.”라는 얘기입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 지역(Trans-Jordan)입니다.

이 길르앗은 산림이 빽빽한 지역이기 때문에 은신처로 활용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처음으로 도망갔던 곳도 길르앗이었습니다.

 

길르앗은 두 가지로 유명합니다. 하나는 유향(balm)이라는 약초가 많은 곳이고,

다른 하나는 중병을 치료하는 명의들이 많았습니다.

 

유향과 의사, 이 두 가지가 길르앗에 있었습니다.

유향은 중요한 상품도 되고, 예물도 되며, 또 제사를 드릴 때도 꼭 들어가는 물건이었습니다.

 

이스마엘 상인들이 애굽으로 갈 때 가져간 물건 가운데 하나가 유향이었습니다. 창37:25

야곱이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에게 보내는 선물 명단에도 유향이 들어가 있습니다. 창43:11

유향은 상처를 부드럽게 하고 치료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을 활용하여 병을 고치는 의사들이 있었습니다.

 

유다백성들은 중병을 앓았습니다. 이 중병은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은 수만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가는 중병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병일지라도 하나님은 치료책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가정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길르앗의 의사는 유향으로 치료하십니다.

아무리 가슴 아픈 고통이 있어도 길르앗의 유향은 능히 치료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직장문제, 사업문제, 건강문제, 관계문제, 나는 죄로 말미암아 내 인생에 중병이 임하였도다

해도 치료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향은 무엇이고 의사는 누구신가요?

19세기 전반에 영국의 탁월한 복음주의 설교자 필폿(Joseph Philpot) 목사님은
길르앗의 의사는 예수 그리스도요, 길르앗의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저(피영민 목사)는 이 해석에 100% 동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는 길르앗의 유향입니다.

 

큰 죄든 작은 죄든, 생각의 죄든 행동의 죄든, 믿기 전의 죄든 믿은 후의 죄든,

어떤 형태의 죄든 어떤 이름의 죄든 모두 씻어주고 덮어주는 길르앗의 유향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와 모든 상처를 씻어주는 길르앗의 유향인줄로 믿습니다.

예수의 피 외에는 죄를 씻는 게 없습니다. 의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막2: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의원이시오, 죄라고 하는 중병을 치료하는 의원이시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혹시 지금 문제가 많으십니까? 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를 대증요법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원인을 치료해야 됩니다.

 

인생의 온갖 중병은 예수 그리스도께 치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길르앗의 유향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씻음 받고 의사이신 예수께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보혈로 씻고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새 사람이 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겁니다. 중병에서 놓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본문 22b절에서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라고 탄식을 하며 질문합니다.

 

의사도 좋고 유향도 좋은데 왜 유다백성은 치료를 받지 못하느냐?

이것이 예레미야가 참으로 통탄하며 던지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8장에 세 가지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1) 첫째, 속이는 자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바르게 지도해야 될 지도자들이 속였습니다.

 

8:8b절에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진리를 써야 될 서기관들이 거짓 붓을 놀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되게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들에게 속아 참된 의사에게 가지 못했고

길르앗의 유향으로 치료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거짓된 지도자들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10

‘그들이 거꾸러지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13

 

2) 둘째, 중병으로 인해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중병을 앓아 낙심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가지면 살아납니다. 저희 교회 이주선 집사님의 온 몸에 암이 퍼져서

의사는 죽는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낙심하지 않고 맨발로 청계산을 등산하고

기도회 때마다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암이 깨끗이 다 나아서 지금은 어느 누구 보다도 건강한 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방송에도 나오셨습니다.

 

육신에 중병이 있으시고 영혼에 중병이 있으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낙심은 치료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낙심

15절에도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 뿐이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낙심

 

유다백성들이 낙심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로 인해 삶의 어떤 영역에 중병이 올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육신의 중병이 와도 낙심하지 마시고 인생의 중병이 있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고 길르앗에는 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와 “예수여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예수여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은 것을 믿나이다.

그 피로 내 죄를 씻으소서. 예수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진실로 부르짖으면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해 못 만나는 것입니다.

 

3) 셋째, 환자가 치료책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이 치료받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치료책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의사의 치료를 거절하면 치료될 수 없습니다.

처방전을 믿지 않고 처방대로 약을 먹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부르짖어도 유다 백성들은 듣지 아니하고 거절했습니다.

명의가 고치겠다해도 거절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치료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은 죄로 인해 중병을 앓는 존재입니다. 중병의 원인은 죄입니다.

중병이라도 해결책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유향을 가지고 우리를 고치십니다.

육신의 질병도 고치시고 영혼의 질병도 고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육의 중병을 고치는 대의원이시오

그의 피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길르앗의 유향입니다.

 

그러므로 내 삶이 어렵다, 내 육신에 중병이 왔다, 내 영혼에 중병이 왔다,

내 인생에 중병이 왔다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길르앗의 유향을 바르고 길르앗의 대의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 부르짖어

구원을 요청하면 영육의 어떤 중병에서도 놓임을 받아 치료받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