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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

LNCK 2024. 8. 17. 11:5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영광>

 

https://blog.naver.com/kaikk/6001765328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13:31-38

 

 

본문은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성만찬 예식을 행하기 전에 주신 말씀이다.

특별히 오늘 본문 가운데는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가장 귀한 <영광>에 대한 개념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요13: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여기 보니까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랬다.

저가 나간 후에, 여기서 저는 바로 가룟 유다를 지칭한 것이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다’고 말한다.

영광이 무엇이겠는가? 어느 때 우리는 이와 같은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겠는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무슨 세상 사람으로부터 받는 칭찬으로 인해서

영광을 받으신 것이 아니다. 또 어떤 많은 소유가 생기고, 어떤 많은 물질을 얻고,

그래서 지금 기뻐하시는 것 아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큰 승리를 기뻐하고 있다. ‘인자가 영광을 얻었도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나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신다.

마치 승리의 노래를 하신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잔치를 준비하면서부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계속해서 마음에 그리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가룟 유다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 가룟 유다가 문을 차버리고 나간다.

 

◑사랑의 승리

 

예수님께서는 지금 가룟 유다로 인해서 당했던 그 많은 고통, 아픈 마음이

여기서 이제 끝이 난다. 언제든지 이럴까 저럴까 할 때 고민이다.

그러나 일이 결정되고 나면 고민될 것 없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는 계획을 가지고도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저에게 지금 말씀하셨다.

마침내 저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문을 차고 나가버린다.

그 뒷모습을 보고서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1. 여기서 한 가지는, 그를 끝까지 사랑하신 것이다.

이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참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 편에서는 지금 해야 할 일을 다 하셨다. 최선을 다하셨다. 오랫동안 참으셨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당장 이놈 저놈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래서 본문 13:1절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가룟 유다를 포함해서 예수님의 제자들 다 시원치 않지만,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래서 사랑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어떤 때라도 내가 미움을 받는다고 해서 함께 미워했으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또 내가 어떤 때에 억울함을 당했다고 해서 내가 만일에 신세 타령을 했다고 해도,

절망하고 한숨을 쉬고 했다고 해도... 그것도 역시 실패한 것이다.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꼭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내 마음을 다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 편에서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다 이루었다고 해서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꺼꾸러져서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해야 할 일, 예수님 편에서 해야 할 사랑, 자기 희생, 다 하셨다.

아무리 읽어 봐도 예수님은 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끝까지 하실 일을 다하신 것 같다.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분명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발을 씻기셨다. 그의 마음 깊이에서부터 그를 불쌍히 여겼다.

끝까지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그가 끝내 배신하고 나갈 때, 아마도 후련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 다했다.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조금도 마음속에 어려운 마음이 생기면 안 된다. 그것이 승리인 것이다.

즉 자기 승리다. 자기 희생을 통해서 자기가 승리한 것이다. 그래서 영광을 얻으셨다.

 

▲2.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이 일로 인해서 이제 십자가를 지신다.

이제 가룟 유다가 나갔다. 저 사람이 몇 시간 후에 제사장의 군대를 데리고

자기를 잡으러 올 것이다. 눈앞에 몇 시간 후에 되어질 일이 훤하다.

 

가룟 유다가 나가는 것으로 인해서 이제 십자가는 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제는 피할 수 없다. 이제는 안 지겠다고 도망갈 것도 없다.

이제 사건이 터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시간이 왔다. 가룟 유다가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몇 시간 후에 있을 십자가를 생각한다. 인자가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잘 참을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끝까지 우리가 희생할 때 영광이 돌아가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순교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내가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물량적으로 성공하고, 가시적으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기 십자가를 질 때, 끝까지 사랑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주제

 

동시에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 ‘나로 인해서 영광이 돌아갔다’고 말씀하신다.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요13:31

 

우리가 이렇게 자기 희생을 바로 할 때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혹 억울한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내가 말대답을 하고 함께 싸워버리고 말았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다.

웃으면서, 기뻐하면서, 사랑하면서, 긍휼히 여기면서, 잘 참고 견디면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우리가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싸움, 나와의 싸움에서

내가 믿음으로 승리하게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3. 그리고 그 다음 말씀을 보라.

 

요13:32절에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었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희에게 영광을 주시리라.'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 때, 장차는 하나님께서 그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께서 이렇게 끝까지 십자가를 지셨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갔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심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셨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인내, 우리의 사랑, 우리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갈 때에

장차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바로 그 사람을,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그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이와 같은 영광을 얻으려 우리는 우리를 희생하고 인내해야 하겠다.

 

그 다음에 여기 보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신다.

 

사랑하라. 그를 사랑하라. 내가 너희 발을 씻겼다.

그런고로 너희는 서로 서로 발을 씻겨주라.

내가 너희를 봉사했다. 너희는 서로 서로 봉사하라.

내가 너희를 섬겼다. 너희는 서로 섬기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그런고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이 내가 너희를 사랑했으니 너희는 나를 사랑해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 그런고로 너희는 서로 서로 사랑해라.’

 

여기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것이 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결코 새 계명은 아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구약 성경에도 많다. 그러나 새로운 의미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바로 여기서 새 계명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흔한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의미를 가질 때에 새로운 의미의 사랑이 된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감격으로 사랑하게 될 때에

이것은 새로운 의미의 사랑이다.

 

여러분,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할 때도

이제 내가 저를 사랑하니까 나도 사랑하고 예쁘니까 사랑하고

뭐 이런 이야기의 사랑은 이것은 세상적인 것이다.

 

저가 어떻게 내게 대하느냐는 상관이 없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깊이 확인한다.

이 기도하면서 얻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한다. 이건 새로운 의미의 사랑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적 사랑, 기독교적 사랑, 성경적 사랑이다.

그런고로 새로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랑의 개념이 중생 되어야 한다.

 

사랑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같은 말이요 꼭같은 행위인데,

그러나 그 마음속에 있는 뜻은 다르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한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참 못됐는데,

남편이 정말 못되게 굴면서도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은 용납했다.

아내는 끝까지 남편을 사랑했다. 언젠가 무슨 일이 있다 해서 교회 나가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는 이게 버릇이 되가지고 계속 교회 나가지 말라는 핍박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참고 참던 아내가 언젠가는 이렇게 이야기 하더란다.

'내가 이제 한 마디를 하겠는데 분명히 잊지 말라고.

내가 교회를 안 나가게 되면 당신하고 안 살게 된다고, 이걸 잊지 말라고.

내가 교회 나가고 있는 힘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지

당신 같은 남자를 지금 사랑하고 싶어 사랑하는 줄 아느냐!'

 

이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단다. 아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몰랐지요.

그로 인해서 남편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단다.

 

여러분, 사람의 생각으로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는 그 마음으로 하는 사랑,

그 마음으로 원수도 사랑하고 나쁜 사람도 사랑하고 미운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다.

이건 새로운 의미의 사랑이다.

 

또 한 가지는 오늘 본문에 '새 계명을 주노니' 그랬다.

먼저 이 계명이란 무엇인가? 십계명이 계명이다.

 

계명이란 곧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유를 묻지 말라.

이유를 제기하지 않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계명이다.

'내게 돌아올 보상이 무엇입니까?' 라고 따지지 말라.

계명을 지키는 자세라는 것은, 계명은 칙령이기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바른 자세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이것을 지키면 보상은 무엇입니까?

그런 것 묻는 것 아니다.

 

효도가 무엇인가? 효도라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다.

이거 순종해서 내게 무엇이 돌아올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부모님이 가라 하면 가고 하면 된다. 소금섬을 물로 끌어라 해도 끄는 것이다.

그것을 물로 끌면 뭐 다 녹아버린다. 그러나 순종하는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그게 계명이다.

 

계명이란 다른 것 없다.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 이 위대함을 생각하고 그의 명령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계명이다. 계명은 먼저 순종이 있을 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계명이다.

 

▲두 번째는 계명을 생각할 때 계명을 어떻게 받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억지로 받으면 계명이 되지 못한다.

 

예수님의 계명관, 예수님이 보신 계명관은, 바리새 교인의 계명관 하고는 다르다.

바리새 교인이나 서기관들이 생각하는 계명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주 무서워서, 형벌이 무서워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거 안 지켰다가는 벌받을 것이다. 그래서 벌벌 떨면서 계명을 지킨다.

 

두려운 마음으로 형벌의식에 매여서 계명을 지킨다. 이거 안 하면 매 맞을 것이다.

그래서 계명을 지키는 것, 이게 바리새 교인들이다.

 

또 하나는 이것 지켜서 복 받겠다고, 그래서 무슨 복이 돌아올까 계산해 가면서 지켰다.

이 계명을 지키면 이런 복을 받고 저 계명을 지키면 저런 복을 받고, 이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에 대한 인식은 그렇지 않다.

계명은 하나님이 사랑해서 주시는 것으로 알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것이 계명이다.

 

계명,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킬 것이다.

계명이란 사랑 속에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사랑해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간음하지 말라는 그 귀한 법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이렇게 온 세계가 더러워지는 것 아닌가?

 

도적질하지 말라는 법, 다 지켜 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단속 안 해도 되고요.

그런데 계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계명을 지켰다. 이것이 새 계명이다.

 

또한 이 계명은 약속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약속이다.

이것을 지켜라. 그러면 그 다음에 내 제자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

모든 축복이 그 속에 약속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축복의 약속이다.

 

▲그러면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

아주 귀한 말씀이다. 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우리 마음도 어지럽고

세상도 어수선하고 살기 어려운 힘든 세상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이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되리라.’

이 말씀을 따르면 예수의 제자다. 이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면 제자가 아니다.

 

어느 순간이라도 우리 마음속에 어두운 마음이 있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예수의 제자의 특징은 사랑하는데 있다.

십자가 목걸이 걸고 다닌다고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제자의 표식은 오직 하나 사랑이다. 모든 면에서 주께서 그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 여기 보니까 ‘시몬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후에는 따라 오리라.’ 참 귀한 말씀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13:36 

 

당장 따르라 말씀하시지 않고, 당장 따르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후에는 나를 따르리라. 지금은 따르지 못한다.

지금은 네가 나를 부인하기도 하고 엎치락뒤치락 하겠다. 왜요? 미숙하기 때문이다.

 

아직 성숙한 사람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좀더 배워야 되니까, 좀더 경험해야 되니까

그렇다. 많은 것을 깨달아야 되겠다. 그 후에야 따르겠다 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는 아주 깊은 인내다. 정말 귀한 사랑이다.

뻔히 지금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을 아시고 또 예언도 하신다.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리라. 그러나 후에는 나를 따를 것이다.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얘가 지금 벌써부터

지애비 닮아 가지고 여자를 밝힌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여자 친구가 많아서 큰 걱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가 물어 보았다. '몇 살이요?' 초등학교 3학년이란다.

너무 일찍 실망하지 말라. 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같이 기도하고 실수도 하고.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라.

후에는 나를 따르리라.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올 것이다. 너무 쉽게 낙심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보시면서 지금은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나 후에는 나를 따라올 것이다. 반드시 나를 따라 올 것이다.

아니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자리까지 따라올 것이다. 그러나 후에는 나를 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