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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LNCK 2024. 8. 18. 06:0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사도행전

 

https://www.youtube.com/watch?v=mxWR0_tI4UA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행16:24~30   
当用诗章,颂词,灵歌,心被恩感歌颂神。                  중국교회 설교모음

본문 성경은 마게도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건너가게 되죠.
그러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자유케 해준 연고로, 고발을 당해서
매를 맞은 후에,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16: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위 구절에 '깊은 옥'에 가두었다는 것은, *內监, inner prison, 
바울과 실라를 다른 죄수보다 더 엄하게 처벌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처벌을 해서 안쪽 감옥(깊은 옥)에 수감했습니다.
이것은 중죄입니다. 가벼운 죄라면 이렇게 안쪽 감옥에 넣지 않았겠죠.

이유는, 고소자들이 바울과 실라를 ‘로마법을 어지럽히는 자(사회 소요자)’로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국사범 취급을 한 거죠. 
국보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겁니다. (고소자들의 고발에 의하면) 

16:20~21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위에서 ‘행하지도 못할’은 which are not lawful 인데,
여기서 말하는 법 law (노모스)은, 유대율법이라기보다는, 로마법을 뜻합니다.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양했다고 합니다.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은, 늘 평소에 하던 기도와 찬양이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특별히 기도하고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늘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가서도 기도하고 찬양했던 것이죠. 
이것이 습관이 되었죠. 매일 매일의 삶이 이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가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동사가 '찬양하다'인데, 계속 찬양했다는 뜻입니다. *힘네오 hymn
미완료 동사를 쓰고 있는데, 
미완료(imperfect)는, 동작/행위가 과거에 진행된 상태, 계속적 반복적으로 
이루어 지는 상태를 뜻하죠. 

'기도하고'는 분사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찬양하다가, 조금 있다가 또 기도하다가 찬양하다'를 반복했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 보면 우리 말로 '찬양했다'로 나오는데, *힘네오  hymn
'시편을 찬양했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 때, 또는 유대인에게 찬송가는 '시편'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찬송가집'이 따로 있은게 아닙니다.

그럼 감옥에 갔을 때, 그 감옥에 '시편 두루마리'가 있었을까요? 당연히 없었죠.
그런데 여기서 보면 '계속 찬양했다'는 뜻은, 시편을 다 외우고 있었다는 뜻이죠.

또 시편에는 고난에 대한 탄원도 있지만, 결국은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시편이 '찬양과 감사'가 그 시의 마지막 주제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와 찬양이다. 그게 계속되었다... 이렇게 보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본문을 읽으면서, 그 분들의 신앙을 배워야 됩니다. 
두 사람은 고난 중에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행16:25절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핍박 받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구절입니다. 

전 세계에서, 신앙으로 인해 감옥에 간 기독교인들, 
전 세계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간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용기와 위로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구절은 핍박받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겁니다.

(어쩌면 이런 목적 때문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중국의 가정교회에서, 신앙과 복음 전파로 인해서 감옥에 있는 
중국 기독교인들이, 이 구절을 읽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지금도 이걸 그대로 하고 있어요. 

중국 교회의 대표적인 찬양자인 쇼빈 자매도 감옥에 갔을 때 
본문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한 구절을, 우리 마음에 새기게 되면, 
기독교인으로서의 위대한 신앙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시편을 통해서 찬양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시편을 다 외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일상생활 속에서 시편을 통해 찬양하셨습니다. 
(*때로는 과거에 성경이 없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다 외웠어야 했으니까요. 그때는 외우면서 신앙생활한 것입니다)

찬양은 노래로 하는 기도입니다. 찬양은 기도와 다른 게 아닙니다. 
같은 것입니다. 성경의 시편은, 노래로 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시편을 사랑하고 애창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늘 시편을 통해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 막14:26    *힘네오

시편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150편입니다. 시편의 내용은 아주 다양합니다. 
형식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형식의 찬양과 기도, 
다양한 내용의 찬양과 기도가 시편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기도와 찬양의 종합 교과서입니다.' 

▲유대교 회당의 예배순서가 어떠한가요? 
1) 처음에는 '신앙고백'을 하고,

2) 그 다음에는 '찬양'을 하는데, 시편을 노래로 불렀습니다. 

3) 그리고 그 다음에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회당에서 시편으로 찬양하는 문화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시편 150편을 모두 다 외운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서 바울, 실라, 베드로, 예수님도 
어릴 때부터 유대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성장한 거예요. 
그래서 회당예배 순서에 '찬송'과 '기도'가 끝나면, 

 

4) '율법 (토라, 오경) 낭독'이 있습니다.
5분, 10분 읽는 것이 아닙니다. 1시간, 2시간 이렇게 길게 읽습니다.

그래서 보통 유대인의 회당 예배는 4시간~5시간 걸리는 게 평균입니다. 

 

5) 율법서를 읽고나면, 그 다음 순서는 선지서를 읽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려서부터 성경을 다 외우는 거예요. 

그런데 어린이들도 할아버지도 함께 회당에서 예배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청소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다 함께 
회당 예배에서 찬양하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래서 기억력 좋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다 외우는 거예요. 

어떤 중국인 한 명이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 왔었는데, 
우리 교회 예배가 조금 길잖아요. 보통 1시간 반~2시간 정도 드리는데, 
한 시간이 넘으니까 그냥 가더라고요.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교 회당은 안식일날 예배를 드렸는데,
그러면 회당에서 하루 종일 살다시피 하는 거예요. 
회당에 가서 하루종일, 모든 가족들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성경같이 같이 읽고, 같이 식사하고... 이것이 정확한 신앙의 교육입니다. 
성경을 안 읽으면, 사실 예배도 다 형식적이에요. 힘이 없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이었던 바울과 실라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감옥에 가서도, 시편을 통해 기도하며 찬양했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요.
온 몸의 세포와 영혼까지 그렇게 훈련되어 왔던 것입니다. 
신앙교육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이 입을 열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는데, 
그런데 결과가 이 감옥이냐?' 그렇게 불평불만 한 게 아니라, 습관을 좇아 찬송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시간에 찬양을 하는 시간이 여러 번 있는데 
그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찬양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우리 기독교인들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늘 찬양을 했습니다. 
즉 사도들도 늘 찬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요. 아래 구절을 보십시오.

눅24:51~53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엡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라고.

화답은 '서로 번갈아 주고 받으며 불렀다'는 뜻이죠.  

이 구절은 아주 아름다운 문장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렇게 훈련하라'는 뜻이에요. 
예배도 이렇게 훈련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이렇게 훈련하라고 합니다.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입니다.          주1)
다 비슷한 것이지만, 약간씩 다르겠죠.      

바울이 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등 여러 형태의 찬양에 대해서 일일이 언급한 이유는 
각각의 노래가 모두 개별적으로 특별한 의미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바라는 바,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할 찬양의 마음을 극대화할 것을 
촉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찬송은 앞서 성령충만(엡5:18)과 마찬가지로, 필수인 것입니다.

성도는 어릴 때부터 시편을 통해 기도를 훈련하고, 찬양을 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이, 초대교회가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정선 시편 47편>을 책으로 만들었어요. 
여러분이 이거를 매일 하루에 두 편씩 반복해서 읽고 기도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신앙도 기초훈련이 중요합니다.            

기초가 훈련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 꽤 많습니다. 
서울 중국인교회에 다니시는 여러분들은, 이런 기초를 잘 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기도 엡5:19절과 마찬가지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나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초기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러한 신앙의 훈련을 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훈련을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시편150편을 다 하면 좋지만, 그 중에 47편만이라도
여러분이 평소에 외우면서 기도하고 찬미하면,
여러분의 삶과 신앙생활에, 큰 성장과 보탬이 될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정서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의 주인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이런 (시, 찬미, 신령한 노래로 기도와 찬양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초대교회, 초기교회의 찬송가는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보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연구가들에 의하면, 신약성경 속에
당시 초기교회 찬송가가 일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용되어 있는 거죠.

아래 단락이 초대교회와 초기교회 성도들이 예배 대 부른 찬송가라고 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는 이탤릭체로 구분을 해 놓았죠)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중국 찬송가에 보면, 당나라 (7C) 시대 때 중국 기독교(경교)의 찬송가가
현재 중국 찬송가에 들어 있어요. 신기하게도. 아주 잘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찬송가에도 AD 4세기 경의 찬송가가 한 곡 수록되어 있죠.
찬99장 '주님 앞에 떨며 서서' 입니다.  -듣기-

'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 ... 이게 초대교회 찬송의 시작이에요.  빌2:5

주기도문과 똑같은 내용이에요.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10

내 마음은 더럽고, 욕망도 있고, 참 복잡하고, 죄도 많고, 악하기도 하고... 
이게 내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님의 마음이 제 마음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초대교회 찬송이었고, 주기도문의 기도였습니다. 

21세기 사는 나와 여러분의 기도는, 어떤 기도를 합니까? 
초대교회의 찬송과 기도는 얼마나 순수한 신앙입니까? 
얼마나 순수하고 깊은 신앙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의 도리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고, 얼마나 자기 마음으로 교만하게 살아갑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 이것이 초기교회의 기도요, 찬송이었습니다. 

그럼 왜 성경 전문가들은 빌2:5~11절이 초대교회의 찬송가 라고 생각을 했나요? 
그래서 헬라어 성경 원문을 봐야 됩니다. 

빌2:1~4절은 문장이 길어요. 그냥 서술문입니다.
그렇지만 2:5절부터는 문장이 짧아요. 시문인 거죠.
그래서 이것이 초대교회와 초기교회의 찬송시 였다고 봅니다. 

그 외에도 초대교인들은, 부활에 대해 찬양했습니다. 빌2:9~11

정리하면, 초대교회, 초기교회의 찬양과 
21세기 우리 현대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은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초기교인들처럼, 기도하며 찬송하는 일에 많이 훈련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시편을 많이 외우면서 기도, 찬양했으나,
오늘날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있죠.
그러나 오늘 우리도, 찬송시를 외우면서 기도하며 찬양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한 우리 생활과 신앙에도 큰 도움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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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시’(프살모이스)의 원형 ‘프살모스’는 ‘문지르다’라는 뜻의 동사 ‘프살로’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금을 문질러 탈 때 나는 ‘수금의 소리’라는 문자적인 뜻을 갖는다. 

본문의 ‘시’가 다른 노래들과 특별히 구분되는 요소가 있다면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면서 드리는 찬송이란 것이다. 

특히 ‘프살모스’는 구약 성경의 시편을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어
(눅 20:42, 행 1:20) KJV, NASB, NIV 등의 영어 성경들도 ‘시편’을 가리키는 용어인 
‘Psalm’으로 번역하였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유대인의 전통을 이어받아 예배로 모였을 경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시를 지어서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기도 했다(고전 14:26),

‘찬미’(휩노이스)의 원형 ‘휩노스’는 영어에서 hymn 의 어원이다. 
‘시(프살모스)’가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단어인 반면에 
‘찬송(휩노이스)’은 이방 세계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즉 이방 종교에서는 어떤 신이나 신화적인 인물들을 칭송하는 노래를 
‘휩노스’라고 하였다. 이방 종교를 위해 사용되던 노래를 가리키는 용어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 것은 
초대 교회 시대부터 기독교 공동체에서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곡들을 빌어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신령한 노래’에 해당하는 ‘오다이스 프뉴마티카이스’는 일반적인 성가곡들을 가리킨다. 
사본에 따라 ‘신령한(프뉴마티카이스)’이란 단어가 생략되기도 하여 
흑자는 이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입장을 취하든지 
이는 예배시에 사용되는 ‘송시(頌詩)’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등 여러 형태의 찬양에 대해서 일일이 언급한 이유는 
각각의 노래가 모두 개별적으로 특별한 의미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바라는 바,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할 찬양의 마음을 극대화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찬송은 앞절의 성령 충만과 마찬가지로 성도에게 선택 사항이 아닌 의무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