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하나님, 산 자의 하나님 눅20:27~40 2024.08.11.설교녹취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벌였던 세 번째 논쟁입니다.
첫 번째 논쟁은 '권위'와 관계되는 논쟁이었습니다.
'도대체 네 Jesus 가 무슨 권위를 가지고 이런 일을 하고,
또 누가 네게 권위를 부여했느냐?' 이 질문을 했고 눅20:1~19
두 번째 논쟁은 세금 논쟁이었습니다. 눅20:20~26
세 번째 논쟁은, 오늘 본문인데, 부활과 관련된 논쟁입니다. 눅20:27~40
그래서 오늘 제가 설교 준비하면서, 제가 마음으로
'하나님 도저히 제가 이거는 설교를 못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본문 내용이, 설교하기에 어렵기도 하고,
죽음 이후 부활과 내세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말씀을 드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도 문자로 표현이 되어있지만
이 말씀 속에는 정말 많은 거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제가 이거를 성도님들과 같이 나눈다는 것은, 좀 불가능한 것 같고,
그래서 제가 그냥 아는 것만큼, 또한 제가 깨달은 것 만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가장 핵심은, 부활과 내세에 대해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입니다.
◑20:27절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질문을 던진 사람은 누군가 하면 사두개인들입니다.
사두개인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다는 겁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의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학적인 입장이 어떠했나 하면, 바리새인들과 비교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유대 사회는 당시에 두 개의 중심 거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에루살렘 성전입니다.
-또 유대 나라 각 지방, 각 마을마다 회당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당처럼요.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제사장, 성전 귀족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각 지역에 있던 회당에서 리더십을 갖고 있던 분들이었습니다.
근데 이들은 대부분 평신도적인 배경을 가지셨던 분들입니다.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구약의 모든 성경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으로 그들은 인정했습니다.
그 외 다른 예언서, 성문서는 계시의 말씀(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인정하고 믿었지만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내세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7
사두개인들은, 천사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도, 인간의 의지가 중요하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그들은 인정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두개인들은, 오늘날 같으면 합리주의자들, 이성주의자들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존 스토트는, '예수님을 향해 합리주의자들이 어떻게 도전했는가?' 하는 주제로
오늘 본문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인정했기 때문에,
그들이 질문을 할 때도, 모세오경을 사용해서 질문을 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답변을 하실 때도, 모세오경을 사용해서 예수님이 답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두개인들이 볼 때, 부활과 천사와 내세에 대한 교리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이게 사두개인들의 신학적 입장입니다.
지금 사두개인들은 로마와 가장 밀접하게 결탁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은 누구겠습니까?
열심당원과 같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열심당원 같은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바쳐서 헌신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가르침이 '내세와 부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이슬람도 그렇고, 순교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극단적 행동을 하는 이유는
'순교자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당시 사두개인들이 볼 때, '부활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적이지도 못하고, 합리적이지도 못하고, 이것은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
◑20:28절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위 질문은 신25:5~6절을 그대로 인용한 겁니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신25:5~6
현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혼법(혼인을 물려받음), 또는 계대결혼법
그러나 고대 농경사회에서,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유업(기업)을 계속 잇게 하기 위해서
이런 제도가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형제의 가문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보존되게 했던 것이죠.
그 당시는 전쟁 등으로, 남자들이 죽는 경우가 많았고, 남은 유족의 구제의 방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사두개인은 인용합니다. ↙
◑20:29~33절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국 이 질문은, '일곱 명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었는가?' 이걸 알고 싶은 것이 아니죠.
이 질문에 의도는 무엇이냐면, '만약에 부활이 있고 내세가 있다면,
이렇게 우수광스러운... 성경에도 맞지 않는 이런 우스광스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거다...'
'그러니까 부활과 내세에 대한 가르침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부활은 없는 거다. 내세도 없는 거다.
만약 있다면 이렇게 우수광스러운 일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런 의도로 예수님을 향해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질문을 통해, 뭘 물어본 게 아니라, 자기들 주장을 펼친 것이죠.
여러분, 지금도 아마 안 믿는 분들에게, 부활과 내세를 이야기하면
비슷한 반응을 하죠. '야 부활이 있고 내세가 있다면, 거기는 웃기는 세상이 될 거야...
터무니없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거야...
그러니까 부활은 없고, 내세에 대한 가르침은 허구에 불과해!'
지금도 소위 합리주의자, 이성주의자들은 이렇게 우리를 향해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이었는가요? 34절에 답변이 시작되는데,
그런데 본문 누가복음에는 빠져 있지만, 마태 마가복음에도 병행구절이 있죠.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에 마태와 마가의 병행구절은 이 구절로 시작을 합니다.
마22:2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다음 우리가 살피려고 하는 이 가르침을 주십니다.
제가 이 가르침을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이 사두개인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답변할 때
이 순서로 지금 답변을 하고 계십니다.
'야,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 속에 있는 오류에, 너희가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예수님의 답변은 역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했기 때문에, 너희가 이런 오류에 빠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두 번째는 '성경을 오해했기 때문에, 너희가 바로 이런 오류에 빠진 것이다'
결국 결론은 무엇이냐?
'부활은 있다. 내세도 분명히 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답변을 하십니다.
그러면 답변 내용을 조금 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34~36절까지 흐르는 전제는 무엇이냐?
'너희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장난에 빠져 있는 거다'
'하나님의 능력을 너희들이 만약에 안다면, 그런 말장난은 할 수가 없다' 이게 핵심입니다.
◑20:34~3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이 세상에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갑니다.
이거는 세상살이에서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 가족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35
즉 내세와 부활을 얻기에 합당한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6
여러분, 이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없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적극적으로는 그들은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될거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답변을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니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묻는
사두개인의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죠.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부활에 대해서
최소한 세 가지를 교훈하셨습니다.
▲1. 성도는 부활을 선물로 받습니다.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35
'얻기에'
부활은 무엇이냐? 부활과 내세는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가장 놀라운 선물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부활과 내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즉 부활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연인들은 영혼불멸에 대해서 믿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더라도, 영혼 불멸에 대해서는 다들 믿습니다.
근데 영혼불멸과 부활은 다릅니다.
영혼불멸설은, 이원론적 인간관에 근거하여 인간의 육체를 천시함으로
육체를 학대하고 억압하는 삶의 태도를 조장하는데 반하여,
부활 신앙은 인간의 육체가 영혼과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통일체로 보고
전체로서의 인간 존재를 귀 중히 여기기 때문에, 신체적인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합니다.
둘 다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점에는 공통적이나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은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우리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에 있습니다.
이미 죽은 육신이 부활을 하여서 영원토록 살아간다는 사상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복음은 영혼의 불멸과 함께
육신의 부활도 함께 강조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의 부활을, 불교의 환생설과 비교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부활은, 불교가 주장하는 환생과는 완전히 다른 사상입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환생의 교리는, 전생에 소와 말과 양같은 가축들이
열심히 일을 하면 다음 세상에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을 동물에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비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능력적인 면에서는 아니지만, 인격적인 면에서, 영원히 산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활하여 영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성도는 선물이 주어지는데,
그냥 영혼이 빠져나가는 게 끝이 아니고 *영혼불멸설X
육체의 부활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O
부활이란 '육체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스페인 지배하에서 고통당하던 멕시코 독립군이 붙잡혔습니다.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때 스페인 신부들이 와서
사형 당해 죽기 직전인 독립군에게 마지막으로 믿음을 갖도록 권면했습니다.
'당신은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독립군, 소위 그 반군의 지도자가 신부님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에 저분들, 우리를 이렇게 짓밟았던 저 스페인 사람들,
저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습니까?'
'네, 믿죠.'
또 질문했어요. '그럼 저 사람들도 천국에 갑니까?'
'네, 주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은 천국에 갑니다.'
그때 이 반군 지도자가 뭐라고 했느냐?
'저 사람들이 가는 천국이라면,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 것을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들한테 매우 시달렸는데,
특별히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사람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있는 천국에, 우리가 정말 가고 싶을까요?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려 들지 말고,
우리는, 성도에게 주어진 부활과 영생이란 놀라운 선물을, 믿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다른게 아니고,
우리가 가게 될 세상은, 이 세상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하시기를 '거기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다'
그런 세상 일이, 더 이상 의미를 못 갖게 된다는 거죠. 주1)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세상일지, 사실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설명이 있지만, 우리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들이 충분히 다 설명된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세상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거라는 거죠.
지금 사두개인의 질문은, 내세가 현세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서 질문한 거죠.
또 그곳은 '다시 죽는 일이 없을거다' ...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6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 소망을 갖게 된게,
제가 죽음을 맞이하고, 주님이 저를 깨우실 때,
내가 천국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새로운 육체와 썩지 아니할 그 몸을 입겠구나.
죽음을 통과해서 내가 천국에 들어가게 될 때, 그때 내 영은,
이 이 땅에서 가졌던 분노, 슬픔, 모든 아픔을 다 갖고 가는게 아니라,
정말 주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저에게 부활이라는 선물을 허락하셔서
'제 영과 육이 질적으로 전혀 새로워진 영으로 하나님이 저를 세워 주시겠구나'
여러분 이것은 이 땅과 연속성이 최소한 있겠지만
이것은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존재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할 때, '새'라는 단어는 시간적인 new의 개념만 있는게 아닙니다.
'질적으로 새롭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카이노스, not 네오스
여러분 우리는 질적으로 새로워진 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마침내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시집 장가도 가지 않는 존재 말입니다.
▲3. 근데 또 하나, 적극적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활 때 자녀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천사와 같을 것이다.' :36
천사의 이미지는 깨끗하잖아요.
깨끗한 아이들을 보고 천사 같다고 하죠.
이것은 죄와 욕심, 이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모습이겠죠.
육체를 가진 인간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
그러니까 거기는 뭐냐? 영광입니다.
죄로부터, 부패로부터 단절되어져 있고,
이들은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다... 정리하면,
1)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성도들은 부활이라는, 내세라는 선물을
그들은 가지게 될 것이고,
2) 이 어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새로워진 환경 속에서
그들은 질적으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3) 그들은 한마디로 천사같이 깨끗하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은 화장을 90% 하죠.
저희 어머님이 소천하실 때, 어머니가 당부하셨어요.
'화장은 안 된다. 너무 뜨거울 것 같아'
여러분, 우리가 죽음 이후의 몸은 어떻게 되나요?
지금 이 본문 말씀과 관련이 있어 가지고, 저도 정말 고민 많이 했거든요.
고전15:35~38절이 본문 이해에 도움됩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그때 바울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전15:36~38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7
이게 무슨 말이죠? 여러분 우리가 만약에 장미 씨를 뿌립니다.
장미 씨를 뿌릴 때, 여러분 장미 새끼, 아니면 장미꽃의 1천분의 1로 축소한 것을 뿌립니까?
아닙니다. 장미 씨를 뿌립니다. (재질이 같은 게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을 뿌립니다)
씨앗과 꽃은 불연속성이 있다는 거죠. *전혀 질적인 새로운 존재로 부활한다는 예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8
그러면서 이어지는 고전15:40~42절을 보면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다' 그러시면서 :42
육신의 죽음과, 그 이후의 부활은 무엇이냐?
바로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씨가 뿌려져서 썩는 것과 같은 것이.. 육체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썩을 것으로 심고,
그러면 하나님이 부활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는데, 어떤 형체를 선물로 주시나요?
썩지 아니할 것으로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는 겁니다.
43절에, 나아가서 '욕된 것, 죄와 수치로 욕된 것으로 심고,
우리는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나고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44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데'
육의 몸이 있은즉 영의 몸도 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죠. 부활은 있습니다. 내세도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무엇이 있느냐?
놀라운 창조주, 구원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바로 그 배후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죽음은 무엇이냐?
끝이 아니고 씨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로 부활과 내세를 선물로 주시고
그 선물은 여러분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천사처럼 죄로부터 죽음과 부패로부터 멀어지고,
영광스러운 존재로서 살아가게 될거다...
꼭 기억하시면 좋겠는데요.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부활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종착지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부활 영생이 내 삶의 종착지가 됩니다.
◑20:37절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예수님께서는 지금 출3:6절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이 말씀은, 모세가 떨기나무에 꺼지지 않는 불로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하셨습니다. 눅20:37
예수님께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이걸 보여주었다.)
이렇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20:38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그리고 38절에서 37절을 설명, 해석하십니다.
'봐라,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여러분이 이야기를 듣고, 39절에, 바리새인들과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
막 칭찬했습니다. '정말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고요.
그리고 서기관들은 아무 것도 더 질문하지 못했습니다. :40
예수님은 출3:6절을 인용했는데,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은 최소한 지금 모세에게 이 말씀을 주실 때
아브라함과는 약 500년 정도의 시간적인 간격이 있습니다.
430년 만에 출애굽을 했으니까요.
그러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셨어요. 그럼 이렇게 말씀하셔야 되지 않습니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었다' *과거 시제로
라고 표시해야 정확하지 않습니까?
50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러면 죽어서이 땅에 없는 사람들이라면,
500년 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과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은 그들의 하나님이었다.'
이렇게 (과거시제로) 표현을 해야 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에게 선언하셨나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현제시제, 에고 에이미
이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지금 살아 있다는 거죠.
주님께서는 이 말씀(출3:6)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은 누구신가?
죽은 아브라함, 죽은 이삭, 죽은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이것은 무엇이겠습니까? :38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는 죽음도 깨뜨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도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시냐?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고,
이 하나님 안에는 여러분 모든 자가 살아 있습니다. :38
부활의 자녀인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 다 살아 있습니다.
앞서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들도, 다 살아계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래서 롬8:38~39절, 유명한 선언이죠.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말씀을 제가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 아버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는데,
저도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부모님들을 지금 어떤 모습으로 계실까?'
그런 질문을 갖고 있다가 이 말씀을 제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었다'라고 과거시제로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현재시제로 말씀하십니다.
'나만 살아 있는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살아있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고, 너의 어머니의 하나님이다. 그들은 살아있다.'
이렇게 주님께 생생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 자세히는 알 수 없어요. 지금 그분들이 어떤 모습으로 계시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들은 하나님 안에 살아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끊을 수가 없고,
죽음 이후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신 최고의 선물인, 부활과 천국 내세를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복을 누리며 살아갈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사셔야 되겠습니까?
고전15:58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거는 교회에 관련된 일만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삶의 순간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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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마24:37~38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눅20:35절의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느니라'는 본문 구절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마22:37~38절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천국에는 시집 장가 가는 일이 없다'고 하니까,
'결혼하지 않는다. 애를 낳지 않는다' 이렇게만 해석하는데,
위 마22:37~38절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신바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말씀의 의도는,
세속에 취해서 산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천국에서는 (물론 자녀를 낳는 일도 없겠지만)
'세속에 취해서 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라는 의중으로 말씀하신 뜻도 됩니다.
그러면 뒤에 이어지는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라는 문맥과도 자연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