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선하시다 | 2024-0811 - YouTube
◈하나님은 선하시다 시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100:5
'하나님 탐구' 시리즈 설교의 마지막 시간으로, *하나님은 누구신가?
오늘은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말씀을 살펴볼 텐데,
이 주제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의 하나님이 얼마나 큰 하나님이신가?’에 따라서
나의 신앙과 믿음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조그마한 하나님이라면
나의 신앙과 나의 믿음은 작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하나님이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나의 믿음도 그만큼 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종종 ‘하나님은 광대하시다’라는 선포와 함께
크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은 선하시다 God is Good’ 인데
우리는 ‘선하다’고 할 때, 착하다는 그런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선하시다'는 뜻은, ‘하나님은 착하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은 좋으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좋으십니다.
시편 100:5절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영어성경 어떤 버전에 보면 "항상 언제나 좋으시다”는 단어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항상 언제나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우리 자손들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의 좋으심은 ‘언제나’입니다. 하나님의 좋으심은 항상입니다. 영원합니다.
우리들의 자녀손 대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좋으시다는 사실을 내가 잊었을 때
내 삶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요?
▲1. 첫째,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자신의 공로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공로를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아요.
‘다 내가 잘해서 된 거야. 그 공로는 다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삶에 굉장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삶에 스트레스를 가중하게 하고, 삶을 우울증으로 인도합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눅12장에 한 부자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있습니다.
한 부자는 어마어마한 부자로서, 요즘 표현으로 하면 슈퍼 재벌급 부자였습니다.
그는 그해 수입이 너무 많아 보관할 곡간이 부족한 고민에 빠집니다.
그래서 ‘재물을 보관할 창고를 하나 더 짓자. 그래서 거기에다 쌓아두자’
이렇게 말할 만큼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많은 것을 가지고서도
‘하나님’이라는 말을 한 번도 그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 하나님은 선하시다’하면서
그 공로와 그 감사를 마땅히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 너는 바보야 ... You fool” 이란 뜻이죠.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 합니까?
하나님께서 “너는 바보야”라고 말씀하시는... 그 인생은 비참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쌓은)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냉철한 경고입니다. 눅12:16~21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중에 제일 미워하는 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일 큰 죄는 교만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배은망덕의 죄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좋으심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공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사탄도 하늘나라에서 그것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또 한 사람, 행12장에 예수님 당시 왕이었던 헤롯 왕은, 백성의 칭송을 받자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행12:23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을 높이기 쉽습니다.
‘내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내가 맨손으로 이 거대한 사업을 일으켰다’고 말합니다.
그 기업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것을 잊어버렸어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좋으심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 공로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아요. 그렇게 살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습니다.’ 늘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안 주신 것처럼, 자기가 애써서 얻은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4:1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는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모르는 사람은, 잊어버리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자기 공로를 주장합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2.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어버리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중단한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하나님께서 좋으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에요.
그것을 잊을 때, 우리는 간구하고 구하는 것을 중단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도로 구할 때, ‘나는 큰 것만 하나님께 구하고,
작은 건 하나님께 안 구하고 그냥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하나님에게 있어서, 뭐가 큰 문제고 뭐가 작은 문제일까요?
하나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다 작은 문제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사업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큰 것도, 휴대폰을 어디에 뒀는지 모르는 작은 것도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하십시오.
왜냐면 그것도 걱정거리니까, 구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 하나님이 좋으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기도하지 않게 되고, 우리의 기도는 미지근해지고, 힘이 없어지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기도 주시고, 물도 주시고, 햇볕도 양식도 주십니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꼭 우리가 기도해야 주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 주실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기도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은 선하시다’ 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은, 꼭 우리가 기도해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모두 다 척척 미리미리 해주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어버리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가 일일이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겠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부지런히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응답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선하심’을 배우고 경험하는 좋은 길입니다.
△여러분, 갑과 을 두 집사님이 계십니다.
갑은 부모를 잘 만나서, 또 직장에 운이 따라서
젊은 시절에 비교적 일찍 자수성가 했습니다.
그래서 집과 차와 해외여행과 명품과 자녀양육비에... 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반대로 을은, 부모가 평범하고, 자기도 별로 운이 따르지 않고 해서
집이나 차와 해외여행과 명품과 자녀양육비를... 일일이 기도해서 응답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까요?
믿음이 없는 신자들은 ‘갑이 더 복 받았다. 유복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 못합니다. ‘신앙의 다이나믹, 응답의 기쁨,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 하나님이 가까이 해 주심’ 이런 것을 전혀 경험치 못합니다.
그냥 자기가 잘나서 잘된 줄 압니다.
그러니 그냥 밋밋하게 사는 거죠.
그리고 집이나 차와 해외여행과 명품과 자녀양육비를 별로 어렵지 않게 지출한다고
그게 무슨 천국의 기쁨이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삶은 무료해지고, 부부관계도 멀어지기 쉽고, 뭐가 인생이 재미도,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을 집사는, 한 가지, 한 가지씩 응답받아서 살아갈 때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나를 사랑하고 돌보심을 피부로 느끼며
훨씬 더 재미있고, 실감 나고, 피부에 와 닿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날마다 고백하고,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군대생활 할 때는, 빵 한 개, 휴가 사흘도 금쪽같이 귀하게 감사하며 살지만,
모든 게 편해지면, 빵이 열 개 있어도 시들하고, 한 달 휴가를 해외에서 보내도.. 지루한 거죠.
갑의 삶도 나쁘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느끼고 사는 삶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을의 삶은 긴장감의 연속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를 거의 매일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매일 응답을 받아서 살아가니까요. 자녀양육과, 직장 일과, 사역과, 건강 등 모든 면에서!
△자녀들이 부모를 신뢰하는 법을 심리학자들은 ‘신뢰 형성의 원 Circle of Security’
이란 원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1단계는 아이가 충족되지 않은 필요를 인식합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등의 필요를 인식합니다.
2단계는 요구하는 것입니다. 배고프다고 울고,
침대에서 꺼내달라고 웁니다.
자기의 필요를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3단계는 아이의 필요를 충족시켜 줍니다.
아이를 안고 기저귀를 갈아주든지 먹을 것을 줍니다. 아이의 필요가 충족됩니다.
4단계는 아이와 부모와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이 아이는 부모에 대해서 신뢰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신뢰를 어떤 방법으로 가진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책을 펴서 부모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학습해서
부모와의 신뢰 관계를 습득하고 그것이 많아질까요? 그렇지 않죠.
(부모의 선함을) 경험하면서, 부모를 더 신뢰하게 되고, 더 믿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가 있게 하시고
우리가 기도로 ‘요구’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나의 기도 응답으로 ‘필요를 충족’시켜 주심의 사이클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과 신뢰관계를 더욱 형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선하심을 더욱 체험하게 되는 거죠.
그런 사이클을 반복해 나가면서,
나와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점점 더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작은 문제로 벌벌 떨었지만,
이제는 큰 문제가 내게 닥쳐와도, 내가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계속되는 경험을 통해서, 크게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제껏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지금 만난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닌’ 거죠.
이미 작은 전투를 수 십 번 치러 본 배테랑 군인은
큰 전투를 앞두고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심리와 비슷한 거죠.
△그렇다고 하나님의 응답이,
마치 누르자마자 물건이 툭 떨어지는 자판기처럼
그런 기도응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너무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나온다면
그렇게 기도 응답이 된다면 그건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거예요.
우리는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될 것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될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게 하시는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기다림’과 ‘거절’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연기와 그리고 거절은 달라요.
연기는 delay, 거절은 denial 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좋으신(선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시69:16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어요.
그런데 그 응답하시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께서 무엇에 따라서 응답하실까요?
우리들은 때때로 어떤 사람이 기도 응답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
‘그 사람이 신앙생활 잘하나 봐, 그 사람이 선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도 응답해 주시지’ 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이유는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시69:16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좋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시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3. 세 번째,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을 때는
어려울 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성도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당연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크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 발생을 했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잊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다른 것을 먼저 찾습니다.
내가 먼저 해결하려고 하고, 다른 방법을 먼저 찾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좋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반사적으로 본능적으로 하나님 앞에 먼저 달려나갑니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그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 이 문제, 제가 어떻게 해도 해도.. 이제 전혀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기뻐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것 저것 다 해 보다가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내게 갖고 왔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처음부터 그 문제를 나에게 가지고 오기를 원한다.’
왜냐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그것을 먼저 가지고 나가는 것,
먼저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인의 본능처럼, 그 문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시16:1~2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니요?
환란을 당했는데 즐거워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환란이 왜 좋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환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주시는 줄 앎이라.’
‘이 환란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니 나는 기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신뢰의 표현이에요.
가장 결정적인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하나님의 계획 무엇입니까?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 His good purpose 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의 뜻”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 버전에는 His good purpose
‘그의 선하신 뜻’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신 뜻대로
우리들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합해서 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그 좋으신 뜻 안에서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합해서 좋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세 번째, 선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환란과 난관이 닥쳐도
성도는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4. 네 번째,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을 때, 미래에 대해서 비관적이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은
늘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이라는 거죠.
하나님의 선하심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미래의 소망이 없어지는 거예요.
미래를 절망적으로 봅니다. ‘내 인생 끝났다!’ 이렇게 절망해요.
왜냐면 살다보면 문제가 터지고, 환란이 닥쳐왔어요.
그때 ‘이제 나는 끝났어요. 나는 절망이고 어떤 소망도 없어요.’
이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라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27:13~14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우리도 절망할 일들, 좌절할 일들,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일들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선하시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은 나를 선대하신다’
하는 믿음이 있어요.
그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나는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절망할 일들은 너무너무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결코 내가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좋으시다. 그래서 나를 선대하신다’
그것을 붙들 때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믿음이 없는 자, 그 사실을 모르는 자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붙드는 자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어요. 소망을 가질 수 있어요,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를 바라보아라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라보아라.” 시27:14
이 여호와를 바라보라는 말은 Wait for the LORD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려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소망을 가지라는 거예요.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편 23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어떤 소망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살펴봅니다.
렘29:11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성경에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 23편에 나타난 9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① 내가 근심할 때 나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1
②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긴장을 푸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
세상은 스트레스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풀어주신다는 사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③ 내가 비어 있을 때 내 힘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3a
‘내 내면이 텅텅 비어 있어, 이 에너지도 없고 힘도 없고 영적인 어떤 능력도 없어’
그때 내 영혼, 내 내면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④ 내가 혼란스러울 때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3b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하나님께서 가장 바른길로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
⑤ 내가 어둡고 두려운 날에도 나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4a
혹시 지금 어두운 계곡,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고 계시는 중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⑥ 내가 불안감을 느낄 때 그분은 나를 보호해 주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4b
그것도 구체적으로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의 적을 물리치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⑦ 내 삶에 공개적으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5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어떤 시도들이 있었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뒤집으시고 그들이 다 보는 앞에서
여러분들에게 은혜 베푸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⑧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에게 선을 베푸실 것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6a
이 땅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라도 무슨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게 하실 것입니다.
⑨ 우리를 다음 생으로 데려가십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6b
이 하나님의 좋으심은 이 땅에서만 끝나는 것이
이 땅에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우리가 그곳에 가는 그날 그 이후까지
영원토록 계속될 것입니다.
필요를 채워주시고, 긴장을 풀어주시고, 힘을 채워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나와 동행해 주시고, 불안감을 느낄 때 나를 보호해 주시고,
공개적으로 나를 높여 은혜 베푸시며 문제를 뒤집어주시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에게 선을 베푸시고,
다음 생까지 우리를 책임지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다른 데서 찾고 있기 때문에 문제예요.
이 모든 것을 한 군데서 찾을 수 있는데요.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찾을 수 있습니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 good shepherd 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좋으신 하나님께서 좋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하신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선과는 전혀 상관없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모든 선한 일들,
그것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 값을 치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면서 그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그 값을 지불하시면서 당하신
그 일들에 대한 흔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손바닥에 흔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에 있는 존재 중에서 세상에 상처나 흔적을 가지고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어요.
손바닥에 있는 여러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상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못 자국이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