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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10장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LNCK 2024. 8. 24. 17:4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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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렘10:1~16       2008년       ▣ 우상화

 

서론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에게는 있으나 짐승에게는 없는 게 예배입니다. 짐승은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개나 돼지가 “할렐루야”라고 한다거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전도서 3:11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사람의 마음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대상이 올바르든지

올바르지 않든지 간에 사람들은 누군가를 예배하는 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행습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어느 종족이든지, 문명인이든지 원시인이든지 상관없이, 예배하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도 다 뭔가를 숭배하고 있고 심지어는 무신론자들도 숭배하는 대상이 있다는 겁니다.

 

미국에 밥 딜란(Bob Dylan) 이라는 통기타 가수의 선두주자가 있습니다.

원래 반전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나중에 예수님을 믿고

‘그대는 누군가를 섬기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You've got to serve somebody)'는

복음성가를 불렀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군가를 혹은 뭔가를 섬겨야 됩니다.

우리는 섬기는 존재지 섬김 받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예배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사랑이나 애정이나 충성이나 헌신을

어느 대상에겐가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 곧 사람의 예배 대상인 것입니다.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백성들의 우상숭배를 가장 강력하게 꾸짖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누구를 예배해야 하며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또 잘못된 예배는 어떤 것인가?

하는 예배론에 대한 가장 탁월한 가르침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은 현세와 내세의 모든 것에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예배에 실패하는 사람은 현세와 내세의 모든 것에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배에 성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레미야 10:1-16의 구조

 

예레미야 10장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예배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그냥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 교차해서 대조되고 있습니다. 10:1~16

 

10:1~5절까지는 우상에 대한 얘기입니다. 우상은 헛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7절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얘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열방의 왕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8~9절은 우상의 어리석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10~13절은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참 신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4~15절은 우상은 헛것이라고 말하고

16절은 다시 하나님은 만물의 조성자시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예레미야 10:1~16절까지는

우상과 하나님, 우상과 하나님, 우상과 하나님이 반복 교차되어서 설교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예레미야는, 왜 이런 교차 반복 비교법을 사용하고 있느냐?

짝퉁은 짝퉁만 있으면 꼭 진짜인 줄 압니다.

 

제가 중국에 가서 나이키 마크가 찍힌 짝퉁 츄리닝을 사왔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서 이렇게 좋은 걸 샀냐고 묻자, 중국 짝퉁이라고 하니 쉽게 믿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진짜와 같이 놓고 세 가지 정도만 비교해 보면

이것은 틀림없는 짝퉁이라는 표가 금방 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짝퉁이 짝퉁인 걸 알려면, 진짜하고 잠깐만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가 거짓예배요, 그것이 참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예레미야가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반복교차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2. 거짓 예배의 어리석음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예배를 가리켜서 '열방의 길(the ways of nations)'이라고 불렀습니다.

*개역개정에 ‘여러 나라의 길’ 10:2. ‘여러 나라의 풍습’ 10:3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다른 열방은 다 이런 방식으로 거짓된 예배를 했다는 겁니다.

열방이 예배하던 예배방식을 가리켜 ‘열방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 한 나라만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나라들은 다 우상을 예배했습니다.

그러니까 참된 예배와 거짓 예배가 일대 다수였습니다.

다수결로 하면 참된 예배드리는 자들이 지는 겁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을 뽑는 것은 다수결로 하는 것입니다만

종교와 신앙과 진리에 관한 문제는 투표해서 다수결로 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과 종교와 진리의 문제는, 인기가 많다고 그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인기 있는 것 중에는 거짓된 게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마7:14절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그러므로 다수결과 인기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간다고 해서 진리가 되고 옳은 길이 아니라,

오로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계시된 말씀대로 가는 길이 옳은 길 인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레미야는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예배가 어리석다는 걸 네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거짓 예배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못 받습니다.

어떤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인지, 마호메트가 진짜인지, 석가가 진짜인지 알게 뭐냐?

나는 여러 가지 다 섬기다가 그 가운데 진짜가 있으면 거기 하나 걸려 복 받기를 바란다.”

라고 말합니다.

 

교회에 가면 하나님, 절에 가면 부처님, 모스크에 가면 알라,

이렇게 갈 때마다 섬기는 대상이 달라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안 되는 겁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은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 ‘하나님의 질투’라고 말하는데

구약성경에는 16번이나 나옵니다.

 

출34:14절에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God of Jealousy)임이라”

 

신4:24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또 신명기 5장 9절에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나님은 자신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일을 결코 허락지 아니하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6: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우상을 섬기는 예배와 하나님 섬기는 예배를 한 사람이 동시에 하지 말라

즉,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의 축복은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질투하시는 하나님>

 

▲2. 둘째, 거짓 예배는 헛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본문 3절 전반에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고 기록되었고,

영어성경에 보면 8절에 “worthless wooden idols (헛된 나무 우상)”이라

또 15절에도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라”

 

‘헛되다’는 말은 영어로 ‘worthless'를 쓰는데 무가치하다,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평생 우상숭배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말짱 헛것 즉, 헛짓을 한 인생이라는 의미입니다.

 

▲3. 셋째, 거짓 예배는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본문 5절에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 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둥근 기둥(우상을 깎아만든 모양이 둥근 기둥)은 허수아비라는 말입니다.

허수아비보고 “너 말 좀 해라.” “5미터만 걸어와라.”

“나 한 대 때려봐라.” “나한테 복을 줘봐라.”고해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우상은 수박밭에 세워놓은 허수아비 같아서, 말도 못하고 걸어 다니지도 못하고

화도 못주고 복도 못주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가서 빌면 복을 준다는 말을 믿지 마십시오.

우상은 복을 못줍니다. 그리고 화도 못 줍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때려 부수는 것도 어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중국사람 한 분을 전도했더니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집에 금도금한 귀가 크고 배가 불뚝 나온 우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 재수 없는 걸 팔아야 되나, 버려야 되나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버리라고 했더니 차를 타고 가서 미국에서 제일 긴 미시시피 강에

던져버렸습니다. 우상은 복도 못 주고, 화도 못 주며,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 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믿으면 극락에 보내 준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복을 준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자식을 낳게 해준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자식 낳은 것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우상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구원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4. 넷째, 우상과 거짓 예배자는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우상과 우상을 만드는 자와 우상을 예배하는 자는 모두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 11절에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천지를 짓지 않은 신은 네 글자로 ‘망하리라’는 것입니다.

 

14절에도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 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라 우상을 만드는 사람은 망신을 당할 것입니다.

 

또 15절에도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라”

그러니까 우상이나 우상 만드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는 망하리라, 멸망하리라,

수치를 당하리라는 것이 그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우상도 안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도 안 섬긴다.

난 종교가 없는 무종교인이다.”라고 말합니다.

 

모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서 “종교는 아편이요 모든 악의 근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진실 같습니다. 물론 종교가 타락하고 부패하면 악도 행합니다.

그러나 종교 없는 곳에는 선이 있습니까? 그래도 그나마 종교가 있으니까

그렇게 선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과 종교의 세계에서는 하나님도 안 믿고 우상도 안 믿고 둘 다 나쁘다는

“양비론(兩不論)”이 통하지 않습니다.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람은 자기혼자 옳다는 것입니다.

 

이런 양비론은 좋은 게 아닙니다. 양비론을 피는 사람은 대체로 박쥐같은 기회주의자입니다.

특별히 신앙문제에서 양비론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모두 우상숭배자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난 여호와 하나님도 안 섬기고 우상도 안 섬긴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최상의 사랑과 애정과 충성과 헌신을 드리는 게 있으면

그게 그 사람의 우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재물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주사파나 주체사상과 같은 악한 사상이나 철학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쾌락이나 인기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될 수도 있고요.

 

주일에 돈 벌려고 교회 안 오신 분은 돈이 우상이고,

인기를 얻으려고 교회 안 오신 분은 인기가 우상입니다.

 

또 주일날 쾌락을 누리려고 교회 안 오신 분은 쾌락이 우상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남편이 교회가지 말라고 해서 교회 안 갔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남편이 우상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녀가 학원 가느라고 안 왔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자녀가 우상입니다.

 

마12:30절에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의 반대자요, 우상편이요, 우상숭배자요, 거짓 예배자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인생을 살아도 헛된 인생이요, 구원도 못 받는 인생이요, 멸망할 인생이요,

지옥 갈 인생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는 인생이요,

한 마디로 말해서 가련하고 불쌍한 인생인 것입니다.

 

인간이 돼 가지고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은 가련하고 불쌍한 인생인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불쌍한 인생인 것입니다.

 

◑3. 참된 예배의 대상과 방법

 

그렇다면 참된 예배의 대상은 누구냐?

본문 10절에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이 말씀이 오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절인데,

여기서 참된 예배 대상이신 하나님의 네 가지 속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the Only God)이십니다.

다른 신은 신이 아니고 다른 신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영어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정관사 'The'와 부정관사 'a'의 구별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참 하나님, 사시는 하나님, 영원한 왕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어로 “a true God, a living God, an eternal King"이 아니라

“the true God, the living God, the eternal King"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정관사 ‘the’를 쓴다는 것은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부정관사 ‘a'를 쓰면 여러 개중에 한 개라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여러 신중에 한 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요 유일한 참 신이요

유일한 사시는 신 인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와 구약시대 선지자가 이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 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라고 기록되었고, 신4:3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6:4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사45:21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unity)이십니다. 유일하신 분입니다. 다른 신은 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일성(unity)을 지니시면서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존재하시는 겁니다.

삼위이면서도 한분이신 삼위일체(Trinity)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신도 삼위일체를 흉내 내지 못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삼위일체를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는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만 가능한 존재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한 분 여호와 하나님만을 예배대상으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the True God)이십니다.

다른 신은 가짜, 짝퉁입니다.

’참 하나님‘이란 말은 확실하고 안정되다(Certainty and Stability)는 말입니다.

거짓 신들은 확실하지도 않고 안정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3.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살아계시는 하나님(the Living God)이십니다.

다른 신들은 죽은 신, 생기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시편 115:4~8절에 본문 말씀과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그러나 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13절에도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우상은 헛것이나 사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5:26절에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사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아남았습니다. 사무엘상 17:36절에 보면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향하여

“네 할례 없는 자가 감히 사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느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며

물맷돌로 골리앗 장군을 쓰러뜨려 이겼습니다.

 

이사야 37:17절에 보면 히스기야왕도 사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앗수르왕 산헤립을 물리쳤습니다.

다니엘 6:26절에 보면 다니엘도 사시는 하나님께서 사자 굴에서 살려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돌아가신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과연 내 기도를 들으실까?’하고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무실(office)은 24시간 열려있습니다.

몇 시에 열고 몇 시에 닫는 것도 없습니다.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시는 하나님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넷째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하나님(the Eternal God)이십니다.

우상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만들어 가지고 메고 다닙니다.

그런데 메고 다니다 떨어뜨리면 깨집니다.

 

우상은 그 존재가 시작이 있고 나무가 썩으면 끝이 납니다. 페인트가 벗겨져도 끝이 납니다.

우리나라에 만불전이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에는 불상이 2만개도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상 페인트 칠이 벗겨지면 못쓰게 되어 또 색칠해야 됩니다.

이처럼 우상은 시작도 있고 끝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상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존재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참 하나님,사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이분 만이 우리의 예배 대상이시며 우리의 최고 사랑과 애정과 충성의 대상이신 것입니다.

이분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천지를 유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깐만 쉬셔도 나라는 망하고 천지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여호와를 평생에 사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어떤 방식으로 예배해야 하느냐?

본문 9:25~26절을 보십시오.

26절 후반에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예배는 마음에 하례를 받고 드리는 겁니다. 예배는 외적인 의식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시고

애정의 대상이시며 헌신의 대상이시고 충성의 대상이십니다’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만 듣고 헌금내고 졸다가는 게 예배가 아닙니다.

몸만 나와 앉아 있는 게 예배가 아닙니다.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요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나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할례를 받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는 죄를 용서받는 걸 말합니다.

즉, 구원받는 걸 말합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어 받는 겁니다.

 

제2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할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어 할례 받은 사람만이 예배드릴 수 있는

자격자가 되고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시고 마음의 할례를 받으시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여호수아는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수24:14~15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우리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결단이 확고하게 있어야 됩니다.

다른 건 좀 흔들려도 이건 흔들리지 말아야 되는 겁니다.

 

본문 10:16절에 여호와 하나님을 “야곱의 분깃(the Portion of Jacob)”이라고 했습니다.

남들은 땅을 차지하고 돈을 차지하고 권력과 명예를 차지해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돈하고 하나님하고 있으면 뭘 선택하시겠습니까? 돈도 가지고 하나님도 가지십니까?

두 가지는 안 됩니다. 돈을 가지면 하나님은 안 되는 것입니다.

 

명예와 하나님이 있을 때, 명예를 가지면 하나님은 안 되는 것입니다.

둘 다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거 갖지 마시고 하나님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라고 고백하십시오. 왜냐면 하나님을 가지면 다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명예도 있고 원하는 게 다 있습니다.

 

어느 부부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보따리를 싸서 나갔는데

조금 있다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성질을 내면서 “왜 왔냐고?”고 묻자

아내가 “가장 귀중한 걸 놓고 가서 다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게 뭔데?”라고 하니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감동을 받아 다시는 싸우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가장 중요한 분 즉, 나의 분깃으로 삼으시고

예배에 성공하여 현세와 내세에 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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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6  우상은 거짓 되며, 그 속에 생기가 없다 / 렘10장 1절-16절 - YouTube

우상은 거짓되며 그 속에 생기가 없다

 

우리는 지금 1장부터 시작해서 25장까지 이어지는 예레미야의 12편의 설교들 중에서

소위 성전 문 앞에서 행해졌던 소위 "성전설교"라 불리는 예레미야의

세 번째 설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렘7~10장

 

이 "성전설교"는 7장에서부터 시작됐어요.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렘10장에서 마무리가 되어지는데요.

 

이제 예레미야는 이 설교의 막바지에서, 이 설교의 끝 지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자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라고 자부하고 있는 자들이

왜 심판을 받는지.. 왜 고통을 받는지..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을, 이 설교의 끝에서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 때문이다... 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 잠시 예배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예배해 왔어요.

 

그런데 그들이 고통을 받고, 또한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인데... 왜 심판받는가?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다' 라고 설교합니다.

 

이 말은 정말 아이러니 하기도 하고, 그리고 매우 안타까운 것이기도 합니다.

성전에 앉아서 늘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고...

그 예배에 늘 참석하고... 평생 예배자로 살았다고 하는데...

 

'근데 여러분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왜요?'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예레미야도,

그리고 이러한 말을 듣고 있는 그때 당시의 예배자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상 숭배에 대한 (지적하는) 말씀이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상에 대해서 좀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들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첫 번째는 <우상은 능력이 없다>

 

우상은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상이 뭔가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렘10:2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늘의 징조'란 ... 하늘에 해, 달, 별 이런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방 사람들은 그걸 섬겨요.

 

햇볕이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고,

달이 우리에게 해害를 가져다 줄지도 모르고

별이 우리의 미래를 인도한다... 옛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죠.

 

그래서 우상이란, 결국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해, 달, 별)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이어지는 3절부터도 보면, 또 우상은 뭔가?

10:3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10:4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10:5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그 모양 생김새가 기둥 같이 둥글게 생겼다는 말)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는 것,

그것이 우상이기도 하고

또 한편 사람이 만든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가져다. 놓은 것..

그것이 또한 우상이다.. 라고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3~5

 

그러나 실상은, 왜 사람들이 해달별 등 하나님이 만든 것이든,

아니면 인간이 만든 나무와 돌과 철의 신상이든

그런데 왜 그걸 하나님의 자리에 갖다 놓는가요?

 

그것 자체를 숭배하거나 경배하기 위함인가요? 결코 아니라는 거예요.

왜 그것을 거기에 가져다 놓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거기에 가져다 놓는 거예요.

우상 숭배하는 사람의 가장 큰 목적이 뭐냐면.. 자기 소원 성취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고통 받는 감정이 무엇이냐면... 두려움이거든요.

내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겁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바닷가에 무당집이 많았어요. 전 세계에 공통적입니다.

배타고 나가는 일이 너무 위험하니까... 다들 신(우상)에게 빌고나서 배를 탔지요.

 

혹은 내가 원하는 성공이나, 내가 원하는 평안, 안식, 행복...

이런 것들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고,

그런 자기 욕심들을 추구하기 위해서... 또 우상을 섬깁니다.

 

절 temple 에 한 번 가보세요.

소원등도 달려 있고, 무슨 기와에 또 소원을 적어서 절간에 둡니다.

 

그러니까 사실 우상 숭배란, 실상을 말한다면, 자기 숭배인 거예요.

나를 위해서! 결국은 우상숭배 합니다.

 

또 사람이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우상들은 대부분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들이에요. 왜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두려워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 모세가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은 영이라서 보이지도 않으니까,

그러니까 당장 출애굽 백성들은, 시내산 아래에서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부터 만드는 거예요.

(아마 애굽에서 애굽인들이 섬기던 신을 본받아서 만든 것 같아요)

오감각으로 느껴지고 보여지는 것들을 만드는 거예요. 왜요? 두렵거든요. 불안하거든요.

 

그리고 왜 사람들이 왜 태양을 섬길까요?

예전에 농사가 전부였잖아요. 그러니 태양이 없으면 풍요가 자기에게 없는 거예요.

농사에 열매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태양을 섬기면, 내가 좀 더 풍성해지겠지...' 이렇게 생각을 한 거예요.

 

또 달을 섬긴 것은 '달이 우리에게 해를 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달이나, 큰 나무나, 큰 산과 바위를 좀 달래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별이 미래의 징조를 보이고, 우리를 인도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미래가 불안한데, 별을 섬기면, 별이 자기 미래를 보여주고, 도와준다고 믿는 거죠.

 

그러니까 두 가지 방향이에요.

-어쨌든 나의 두려움을 좀 제거하고

-또 내가 좀 더 풍성해지고, 내가 좀 더 많이 얻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람들은 우상을 섬겼는데, 결국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죠.

 

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두려움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자기 두려움 제거(보호)와, 자기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우상을 만들어 섬긴 것입니다. 그게 무슨 우상이든지요!

 

그럼 오늘날 현대판 우상들이 무엇입니까?

현대인들은 나무나 돌로 깎아만든 우상은 섬기지 않죠.

대신에 인기, 평판, 성적 쾌락, 물질주의 ... 이것들도 다 우상입니다. 왜요?

 

그게 결국 자아 숭배잖아요. 근본 심리는 똑같습니다.

자기 불안 해소(보호)와, 자기 행복 추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면

5절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들은 어떤 자기 소원을 가지고 우상을 섬기지만,

사실 우상은 그것을 줄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죠.

 

(*그런데 그 우상 조각에 귀신이 결부되면, 귀신의 능력이 임할 수도 있겠습니다.

귀신이 능력이 임하면, 처음엔 한 두 가지 잘 될지 모르나, 결국은 망합니다. 사탕발림과 같죠.

그리고 무엇보다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귀의 목적대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시121:6절을 보시면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불신자들이 해와 달을 두려워해서, 아무리 제사를 드리고 지극정성으로 섬겨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낮에 해도 밤에 달도 너희를 해치 못한다'

 

121:7절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121:8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너를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환란을 면하게 하시지,

해와 달과 별과 바다와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화도 주시고 재난도 주시는 것이지,

그것들이 너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이사가는 것도 두려워서 날을 받아서 가고,

벽에 못 하나 치는 것도 두려워하지만, 성도들은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모든 우상숭배에서 자유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오직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니까요.

 

그래서 아모스 3:6절에 이렇게 말씀하죠.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백성들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어요. 왜요? 성읍에서 나팔이 울렸으니까. 전쟁 신호죠.

그렇지만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이거예요.

재앙은, 전쟁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외 다른 우상들은 우리에게 어떤 화도 주지 못한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시73:28절에 이렇게 말씀하죠.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거예요. 복은 하나님에게서부터 온다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내가 만든 신을 가지고, 하나님 자리에 올려서 그걸 섬기든 간에,

그것이 내게 복을 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복이 온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얘기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면,

모든 좋은 것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죠)

 

그래서 욥22:21절도 이렇게 말씀하죠.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시146:5절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복도,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화도

결국 우상이 내게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화도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복도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라고 말하면서

우상은 능력이 없는 거다.. 라고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우상은 생명이 없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그 중요한 교훈은 무엇이냐면

우상은 생명이 없다, 생기가 없다, 생명에 관련한 아무 것도 못 준다... 입니다.

 

우상숭배는, 결국 우리가 뭔가 얻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요.

마음의 평안이든, 아니면 뭐 쾌락이든, 아니면 뭐 행복이든,

부든, 명예든, 뭐든 얻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우상이 가져다 주고, 그게 생명이 있어서

내게 정말 참 생명을 줄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지만,

그런데 우상은 하나님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해요. 당연한 얘기죠.

 

우상은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기, 생명 그 어떤 것도 주지 못한다.. 라고

14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렘10:14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생기만 없는 게 아니고, 거짓 것이다... 이렇게 얘기해요.

 

▲사람들이 인기를 얻으면 인기 있는 사람을 우리는 '스타'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스타는, 사람들 위에 떠 있는 거니까, 사람들 위에 있으니까 '얼마나 행복할까?'

'사람들이 스타를 전부 우러러보면서 다 좋아하고 하니까 얼마나 좋아할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그런 인기가, 정작 스타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못 줘요. 왜요?

연예인들 한번 보십시오 결국은 자기가 (별처럼) 사람들 위에 떠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 거기에 전전긍긍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수술해가면서, 얼굴 다 뜯어고치고, 몸 다 뜯어고치고...

그러니 결국 종과 같은 삶이에요. 사람들 위에 있는 게 아니고, 대중들을 즐겁게 하는 종.

스타들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늘 거기에 조마조마해요.

가수들이 한번 곡을 낼 때는, '지금 트렌드가 뭐지?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하지?'

 

자기가 사람들을 끌어가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 지를 면밀히 보면서

시류에 끌려가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연예인들은 결국 대중들의 종입니다. 그래서 뭐 하나 꼬투리 잡히면

그냥 연예인 인생이 끝나는 거예요.

 

▲하나님 없이 성적 쾌락을 추구하면,

내가 기분도 좋고, 정말 나한테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그럴 것 같다고 미혹을 받죠.

 

그러나 하나님 없이 성적 쾌락을 누려보십시오. 거짓 것이에요. 정확하게 반대가 와요.

여러분 한번 성적으로 타락한 분들을 보십시오.

가정이 다 깨집니다. 자식들 다 깨집니다.

 

기쁨을 얻으려고 성적 일탈을 추구했는데, 하나님 없이 추구해 보십시오.

완전 거짓 거예요. 모든 관계가 다 깨어지고,

결국은 가장 큰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성을 선물로 주셨어요.

그런데 이거를 하나님 없이 추구하면.. 우상숭배가 돼버리는 순간.. 어떻게 되죠?

가장 큰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그 방종과 타락의 죄성은,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자식의 자식까지 대물림됩니다.

그렇게 성적 부패에 빠졌던 그러한 부모를 둔 자식들을 한번 보십시오.

부모와 똑같이 반복하기도 하고... 그런 부모를 둔 자신이 싫기도 하고...

그러면서 계속해서 고통을 받죠.

 

▲하나님 없이 돈을 추구해 보십시오. 우리가 돈을 추구하는 이유가 뭐죠?

좀 만족한 삶을 살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그런 거죠.

 

그런데 여러분 돈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여유로운 거 보셨습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자비로운 거 보셨습니까? 오히려 더 불만족해요.

 

몇 해 전에 설문조사를 했는데,

전 세계에서 1 % 안에 들어가는 재산을 갖고 있는 부자들에게

'지금 만족하십니까?' 라고 물었어요.

99.9 %가 '아니요!' 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만족하시겠습니까?'

공통적으로 나왔던 대답이 무엇이냐면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의 15 %만 더 가지고 있다면 내가 만족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어도, 만족 못하는 거예요. 희한하죠.

우상은 거짓 거예요.

 

내가 하나님 없이 돈을 추구해요?

그러면 정확하게 만족이 아니라, 불만족이 오고, 목마름이 와요.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을 조금 더 모으면 모을수록

좀 더 목말라 하고, 좀 더 목말라 하고, 더, 더, 더, 더 이러면서 목말라 한단 말이에요.

 

▲힘도 마찬가지죠. 현대판 우상이 힘이잖아요. *권력

여러분 힘을 왜 가지려고 합니까? 아무도 난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힘이 있으면 좀 안정된 삶을 살 것 같아서, 힘을 가지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안정감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아닌,

자기 노력으로 힘을 추구해 보십시오. 그래서 그게 우상이 되잖아요?

그러면 힘이 있을수록 안정되는 게 아니고, 더 불안한 거예요.

 

사울을 한번 보십시오. 사울이 끊임없이 힘을 추구했어요.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삼상14:52절에 보면, 사울은 하나님을 버려둔 채 자신이 힘을 얻으려고 했어요.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사울의 평생에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하고 전쟁을 했고,

그래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사울이

그 가진 왕권으로, 편안해 한 것이 아니고, 안정을 누렸던 것이 아니고,

사는 날 동안 힘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불러 모았다고 이렇게 말해요.

자기보다 더 큰 힘이 언제나 있는 거예요. *블레셋 등

 

그리고 사실 사울하고 다윗하고,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힘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고, 그리고 모든 군사력이 다 사울에게 있었어요.

 

그런데 삼상18:29절에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힘이 있습니까? 자기가 다 뺏어 왔잖아요.

그런데도 다윗은 안전하게, 든든하게 살아가는데,

 

그 힘을 우상으로 추구했던 사울은, 늘 불안해하고...

힘 있는 사람들을 계속 불러모으면서도 불안해하고...

다윗을 더욱더 두려워하며 불행하게 살아갔던 거예요.

 

그렇게 왕권이란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우상은, 우리에게 뭔가 내가 생각하는 생명,

내가 생명처럼 여기고 내게 생기를 줄 것 같은 그것을 준다.. 라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추구한 것은, 전부 거짓이 되어서

우리에게 생기, 생명을 주지 못한다고 본문은 말해요. :14

 

▲그리고 그 우상이 내게 영원히 나에게 생명을 줍니까?

나를 영원히 존재하게 해줍니까?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10:15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하나님이 징벌하실 때에, 결국 우상은 망해요.

그런데 우상이 무서운 게 뭐냐면, 우상이 지 혼자 끝나는 게 아니고요.

자기를 섬겼던 모든 걸 다 끌고 가서, 함께 끝낸단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와 언약 맺은 모든 자들을 안고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잖아요.

 

우상도 자기를 섬기는 모든 자들을, 다 끌어안고 죽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잖아요.

결국 우리는 우상과 함께 망하게 된다는 말이에요.

우상은 결코 생명, 생기, 영생이 없다는 말이에요.

 

..................................................

 

◑렘10장 절별 해석          한글 주석 - HANGL NOCR

 

10:1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16절은 운문체로 기록된 한편의 시이다.

그 내용은 우상들에 대한 통렬한 공격과 풍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직 창조주만이 만민으로부터 경배받을 자격이 있음을 명시하는 내용이다.

한편 이 시는 여호야김 통치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전달된것으로 짐작된다.

 

10: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여기서 '길'이란 것은 그들의 풍습 또는 종교적 관습을 뜻한다.

또한 '배우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틸마두'는 '제자가 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근동 종교들의 주요한 양상들 중의 하나는 해, , 별 등의 천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이런 관행에 대한 유다의 답습 행위는

이미 당시로부터 1세기 전의 아모스 선지자도 지적한바 있다(5:25, 26).

또한 이것은 므낫세 당시(B.C.697-642)에 유행했었던 것(왕하21:5, 6)이며

요시야는 특히 이런 제사 관행을 타파하는 데 주력하였다(왕하23:5, 11, 12).

 

아마 열방들은 이러한 천체 현상들을 두려워하여 경외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혜성이나 일식, 월식과 같은 비정상적인 천체 현상에 대해 무서워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천체 현상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나타나는 것들로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이런 형상들을 경외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10:3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라'

'풍습'은 그들이 '믿는 것'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우상이나 종교적 가르침 등을 뜻할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우상 숭배에 대한 예레미야의 지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본절 후반부는 '삼림에서 벤 나무요...도끼로 만든 것'으로 우상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로써 전반부의 '규례'를 '우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상에 대한 본절의 묘사는 구약의 여러 다른 부분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형태를 따르고 있다(시115:4, 사2:20, 44:9-20).

또한 본절에는 우상들이 생명없는 무익한 것임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던 수세기에 걸쳐 사용된

격언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10:4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은과 금으로...못과 장도리로...요동치 않게 하나니'

우상이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동상으로, 금이나 은과 같이 귀한 것으로 장식하였다고 하나,

고꾸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못이나 망치 등으로 고정시켜야 하는 그런 물건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삼상5:1-4 참조).

 

10:5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두려워 말라'

'둥근 기둥 같다'는 말은 종려나무처럼 꼿꼿이 서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말도 못하며,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재앙을 내리거나 복을 주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예레미야는 지금 이런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것들은 그들의 존재 자체도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도 역시 사람에게 의존되어 있는

무기력한 존재인 것이다.

 

10:6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

 

예레미야는 우상의 무능함을 지적한 뒤 이제 하나님을 소개한다.

그가 여기서 이렇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한,

우상을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참된 교육만이 우상과 미신을 타파하고 추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구약은 여호와를 다른 것과 감히 비길 수 없다는 점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우상들이 인간에게 의존하는 존재이며 그것들의 위상과 권위를 인생에게서 이끌어 내는

것과는 정반대로, 여호와께서는 그 자신으로부터 그의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신다.

 

10:7 이방 사람들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하지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들의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음이니이다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누가 감히 만유의 창조자이시요 수여자이신 당신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나이까?'란 뜻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참 종교의 근본 실체인 것이다.

 

'이는...주와 같은 자 없음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여호와의 유일하심과 위대하심을 강조하기 위해 열방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나 또한 가장 높은 자라 할지라도,

여호와와는 비길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왕권 사상을 진하게 드러내 놓고 있긴 하지만,

이처럼 여호와를 왕으로 직접 묘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장면이다.

 

10:8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여기서 예레미야는 다시 우상에 대한 묘사로 들어간다.

이 내용은 3-5절의 우상에 대한 서술임을 더욱 확대시킨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상상에 의해 생산해 낸 그것을

그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으며, 또한 왕권을 가진 자들 역시 생명없는 인간의 작품을

그들의 종교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들의 생산품만큼이나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다.

 

10:9 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기술공과 은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옷을 입었나니 이는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이거니와

 

어떤 이들은 '다시스'를 스페인의 타르테수스로 보고 있는데,

그 당시 페니키아인들은 여기서 많은 은을 수입했다.

아마 고대인들은 이곳을 서쪽 세계의 끝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한편, 최근에 이 '다시스'란 말을 지명으로 보기보다는 '제련된'(혹은 제련소)이란 뜻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바스'는 위치가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이곳을 비손 강 혹은 인도나 아라비아 등지로 본다.

 

'청색 자색 옷' 이는 고대 당시에는 극히 귀한 염료로서

대단히 값비싸고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오직 여호와는...왕이시라' 여호와께 대한 세 가지 선언이 담겨 있는데

이들 각각은 우상들에 대한 단언들과 대조되고 있다. 즉, 그것들은 거짓 신이고,

생명이 없는 신이며, 단 한순간도 신으로 존재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자연 현상들을 들자면 폭풍, 지진, 천둥, 벼락 등을 꼽을 수 있다.

여호와의 진노의 표로 상징되는 이런 것들이 덮칠 때 열방들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 것이다.

 

10:11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망하리라'

이 구절이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본서의 저작 연대를 후대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당시 아람어는 서방 아시아와 이스라엘 변방 민족들 사이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었다.

 

아무튼 이 구절은 거짓 신들과 또 이를 숭배하는 자들 모두가

결국에는 망하고 말 것임을 지적한다. 창조주가 아닌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들 우상들은

그들의 만든 사람들과 같이 멸망하고 말 것이다.

 

10:12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여호와께서는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이곳에는 여호와의 권능과 지혜와 명철이 언급되고 있는데

우상들의 무능, 어리석음, 무지와 대조되고 있다.

특히 본절과 13절은 열방들의 생명없는 우상들에 대한 비난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위치를 높이 찬양하고 있다.

한편 12-16절의 내용은 51:15-19에서 나타난다.

 

10:13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하나님이 창고 속에 바람을 넣어두고 계시다가 임의적으로 내어 보내시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곧 자연의 기상마저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시사한다.

또 바람뿐만 아니라 눈과 우박도 이러한 비유로 다루어진 바 있다(욥38:22, 23, 시135:7).

 

10:14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은장이마다...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본절에는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언급된다.

이곳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는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다(벧후2:12).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메시야 때에 가서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 것이라고 예언하였다(31:34).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우상에 매달려 있는 자들은 그 우상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 것이다.

 

10:15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우상에 대한 간결한 묘사가 세 가지로 압축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첫째, 무가치하고 공허한 것(헤벨)이다.

둘째, 그것은 망령되이 만든 것으로서, 착각의 소산 또는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될만한 것이다.

셋째는 징벌하실 때에 멸망하고 말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바,

인간스스로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어찌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10:16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여기서 예레미야는 본시(1-16절)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호와는 우상들과는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분깃'(헬레크)이란 어떤 사람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왕하9:10)이나

또는 전쟁 후의 전리품에 대한 몫(창14:24, 사53:12)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의 기업의 지파’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셔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셨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는 이처럼 끊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이었기에

하나님의 그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보호하심은 극진하였다.

 

이스라엘의 순종과 감사는 바로 이런관계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바,

그들이 다른 신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여기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야훼 체바오트)임을 다시 밝히고 있는데,

이 칭호는 원래 별들과 천체 위에 지배하고계시는 여호와의 주권을 염두에 둔 칭호로서,

이방인들의 해, 달, 별 등의 천체 숭배와 극명하게 대립되어 있는 것이다.

 

10:17 에워싸인 가운데에 앉은 자여 네 짐 꾸러미를 이 땅에서 꾸리라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에 대한 극명한 대조에 이어

오랫동안 예언되어 왔던 참변이 이제 예루살렘 성문 앞에 이르렀음을 나타내고 있다.

본절은 아마 예루살렘이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적들의 침입에 직면하여 피난 보따리를 꾸리라는 것이다.

앗수르인의 고분 벽화를 보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의 장면이 보인다.

 

10: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사는 자를 이번에는 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땅에 거하는 자를...내던질 것이라'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말 것이라는 예언이다.

'내던지다'의 원어 '칼라'는 원래 투석기에 돌을 담아 내어던지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대단히 생동감 있는 내용을 전달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으시고 인내하셨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심판의 시간인 것이며, 눈물과 호소의 때는 지나간 것이다.

 

10:19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의 고통스러운 역할을 보아야 한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심판과 파멸을 예언해야 했으며,

이와 동시에 그는 그들의 운명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한탄은 그 민족의 한탄과 일치되는 것으로서,

그의 고뇌는 그 민족의 질병이 이제 치유될 수 없는 상태란 점에 있었다.

 

10:20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휘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내 장막이 훼파되고...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예레미야는 유목민들이 이주하기 위해

그들의 장막을 철수하는 것을 예화로 사용하여 그의 슬픔을 표현한다.

여기서 '장막'이란 유다인들이 거주하던 예루살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말이며,

그 자녀는 예루살렘 거민을 말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쫓겨나서 다시 장막을 치지 못하고 말것이다.

 

10:21 목자들은 어리석어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하지 못하며 그 모든 양 떼는 흩어졌도다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이제는 목자와 그들이 치는 양떼를 비유로 하여 슬픔을 토로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목자'는 흔히 지도자들을 상징하는 말이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시킨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우준한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야수나 다름 없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탁받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언약이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언약이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임의대로 처신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번영이나 형통함이 있을 수 없었고

이에 대한 결과가 결국 백성들에게까지 돌아가고 만 것이다.

 

10:22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 유다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승냥이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

이것은 북쪽 적들이 큰 함성을 지르면서 밀려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유다 성읍들을 쓰레기더미로 만들고 짐승들의 거처가 되도록 할 것이다.

 

이 예언은 B.C. 586년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성취되었는데,

전 국토가 거의 초토가 되고 말았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B.C.6세기 초에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으며,

그 후 대다수가 복구되지 못한 채로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이는 인간의 운명이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통제하에 있다는 내용이다.

유다의 형편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예레미야의 관심은 계속해서 자기 동포의 운명에 쏠려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다.

 

그의 탄원의 요지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이 점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연약하여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죄악에 빠지기 쉬운 도덕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탄원한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할 수 있다고 큰 소리친다한들,

결국 그것은 인간의 한계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여기서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에게

임할 재앙을 걱정하며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10:24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백성들 편에 서서 드리는 예레미야의 중보기도가 계속 이어진다.

그는 유다 백성이 징벌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지만,

견딜 수 없는 처벌을 받아 결국 완전히 파산되어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빠지지 않기만을 탄원하는 것이다.

 

한편, '징계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동사 '이사르'는

구약의 여러 다른 용례들을 보면 교육적 의미에서 징벌을 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0:25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였나이다 하니라

 

'주를 알지 못하는...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대적들에게는 엄격한 공의의 심판을 적용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외부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오직 정복을 위한 정복, 살육을 위한 살육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황폐케 하였나이다' 적들의 잘못된 행위를 열거함으로써

에레미야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호소를 더욱 뒷받침한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기도는 갈대아인들에게서 그대로 성취된다.

 

느부갓네살은 훗날 미쳐버리고, 그의 아들은 반역자들에게 살해된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종종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불경건한 족속들에 대한 저주문으로 인용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