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aramos/80054589273
◈독수리 날개로 훈련하시는 은혜 출19:1~6, 신32:11~12 1998.01.11.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3가지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 가운데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는 절대 필요한 3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동물 이아닙니다. 동물은 음식이 있으면 되고, 그리고 누울 장소가 있으면 됩니다.
동물학적 욕구, 그런 생리학적 욕구가 아니고,
인간이기에 인간만이 가지는 욕구가 있고, 이에 필요한 요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1. 그 첫째가 뭐냐 하면 <삶의 의미> 입니다. need of significance
사람이 사람답게 제대로 살아가려면,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야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고, 보람을 먹고 산다’ ... 뭐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삽니다. 사랑을 받아야만 삽니다.
그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가, 동생이 태어나면 사랑을 빼앗기게 될 때,
그때 아이들이 그걸 견디지 못해서, 뭐 병도 나고, 혹은 이상 성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주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주가 무너지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든 못하든, 그는 내가 받던 사랑을 지금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는 무조건 사랑을 받아야 살고,
그 다음에 좀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사랑을 하면서 삽니다.
사랑을 하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제가 북녘땅 평양에 갔을 때, 그들이 제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41살에 저를 낳고 귀하게 키웠는데
저를 남쪽으로 보내놓고 어머니는 오직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으로 생을 보냈습니다.
예배당은 불타 없어졌는데, 그 불타 없어진 빈터에 가서
거기에 가마니를 뒤집어쓰고 엎드려서 밤을 지새우면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호적상으로 나타난 대로 그들이 얘기해 주는데, 어머니가 94세까지 살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본래가 좀 몸이 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4세까지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오셨더라면 어머니를 뵐 뻔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그날 저는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세요. 이북에 음식이 좋습니까? 여건이 좋습니까?
전혀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오로지 아들을 생각하고,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 때.. 그는 94세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는 힘입니다. 사는 의미입니다.
△독신과 결혼한 여자를 생각해 보십시다. 누가 더 오래 살 것 같습니까?
누가 건강할 것 같습니까? 아, 우리 생각에는 아이들한테도 시달리지 않고,
남편에게도 시달리지 않고... 오직 자유롭게 훨훨 자기 마음대로 사는 독신 여자가
더 건강할 것 같아요.
그런데 통계학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독신여자가 병이 많고 통계학적으로 단명합니다.
과거에는 가톨릭 수녀의 수명이 불과 40세였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밉건 곱건 미워할 사람이 있든, 사랑할 사람이 있든
뭐 한 명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예요.
사랑하며 살고, 사랑 받으며 살고... 여기서 삶의 보람,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에요.
△심리학자 웅비에스마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알려진 바에 의해서
자기를 아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마다.. 여러분이 여기 교회 나오실 때도
하다 못해 한 번이라도 거울을 보고 얼굴을 찍어 바르고 왔어요. 그건 뭘 의미하는 거예요?
요즘은 보니까 남자들도 무슨 향수를 그렇게 많이 뿌리는지...
다 알게 모르게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고자 하는 거거든요.
돈 버는 것도 바로 그런 거고요. 공부하는 것도 자기 존재의 가치를 높이자는 거죠.
이것이 바로 significance(의미)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 필요한 것이에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뭡니까?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값을 지불했어요.
그럼으로써 내 값은 얼마냐?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실 만큼의 엄청나게 비싼 값이예요.
그 지불된 대가에 의해, 내 삶의 존재의 의미가 엄청나게 커진 것이예요.
그 의미를 알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2. 두 번째는 <안정성의 필요> need of security 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의식주의 분야에서 안정,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동물적인 것이고,
정신적으로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합니다. 모두가 평안한 마음, 안정을 원합니다.
그래서 화목을 찾아 헤맵니다. 화목하지 않고 불화하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원수 맺고는 살 수 없는 게 인간이에요. 뼈가 썩어요. 병 걸릴 수밖에 없어요.
어느 때라도 마음을 완전히 풀고 화평의 사람이 되어야, peace maker가 되어야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남을 죽이려다가 자기가 먼저 죽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이래서 평안을 위하고 샬롬입니다. 평안속에서 사람답게 살게 되어 있어요.
사람은 그걸 추구하고, 또 사람답게 살려면 그게 꼭 필요해요.
▲3. 세 번째는 <소속감> need of belonging 입니다.
이 소속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끈끈한 정을 가지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살고,
친구와 더불어, 직장과 더불어, 나라와 민족과 더불어... 비로소 사람답게 될게 됩니다.
이게 뭡니까? 이렇게 자기가 어딘 가에 소속되고, 끈을 느껴야 되는 것이예요.
그래서 고독은 불행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고독해서는,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고독을 느끼는 순간, 그 존재는 벌써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고, 타락되고 있는 것이예요.
자,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가정의 소속감을 느끼고, 교회의 소속감을 느끼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소속감, 그 넓은 사랑을 느끼고 있을 때
그 인간의 존재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시기, 질투, 증오 그것은 결코 그 사람을 사람 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과 화평, 사랑하고 사랑 받는 거기서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건강할 수 있단 말입니다.
이런 존재 이런 사람으로...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져야 합니다.
여기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독수리 날개로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 430년이라는 기간이, 쉽게 넘겨 버릴만한 세월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430살 나이 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러니까 아예 노예 중에 태어난 것이에요. 조상 대대로 10~20여 세대를 지나서
계속 노예로 태어났고, 노예로 성장했고, 노예로 살았을 뿐이요.
이제 노예 생활이 그들에게서는 아주 체질화 된 것이예요.
뼛속 깊이 체질화 되었어요. 문화화 되어 버렸는데,
이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주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건 기적이요. 이 자체가 큰 기적으로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시내 광야에 갖다 놓은 다음에,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이제 그 뼛속 깊은 노예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중에
그 총체적 말씀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신32:11~12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32장 말씀은, 모세가 광야 40년을 회고하는 말인데,
앞서 40년 전, 광야 생활 초기에도, 하나님은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출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독수리 날개라고 하는 상징적 용어로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독수리는 새 중에 왕입니다. 힘과 위엄의 상징이요, 자유와 용맹의 상징입니다.
높이 날아서 하루 종일이라도 날개를 펴고, 기류를 타고 날아가는 걸 보면 장관입니다.
천하무적입니다. 그에게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독수리입니다.
그의 기상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해서 독수리를 자기의 표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독수리가 이 지구상에는 48종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둥지를 틀 때도, 집을 지을 때도
누가 침해할 수 있는 곳에다가 둥지를 만들지 않고,
깊은 산 높은 절벽 위 바위 틈, 그 벼랑 위에다 떡 둥지를 트는데
그 둥지가 무려 직경이 2~3m나 되는 그런 큰 둥지를 틀고
그 둥지를 털어보면, 둥지 하나가 무려 2톤이나 나가는 게 있다고 그래요.
그렇게 큰 둥지를 만든 다음에 그 속에서 새끼를 낳고 삽니다.
그리고 그가 먹이를 낚아채려고, 쏜살같이 내려갈 때에는 시속 180Km 가 나간다고 그래요.
그런가 하면 그는 한번 날 때마다 직경 90Km나 되는 넓은 지역을 멀리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구하고 이렇게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독수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독수리와 새끼의 관계입니다.
그가 그 둥지에서 새끼를 낳아서 이걸 키워가지고, 먹이를 먹여서 어느 정도 큰 다음에
이제 날 때가 되면 말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대로
그는 새끼를 그 벼랑 위에서 떨어뜨려요. 발로 툭 밀어서 새끼를 떨어뜨리면
그 새끼가 그 높은 데에서 떨어지면서 죽는다고 날개를 퍼덕거립니다.
살려고 퍼득퍼득 거릴거 아니겠어요. ‘아, 떨어져 죽는다’ 원망도 하겠지요.
이렇게 퍼덕거리며 추락하고 있을 때, 땅에 닿기 직전에
멀리서 지켜보던 부모 독수리가 획 내려와서, 새끼를 등에 받아 올라갑니다.
그래서 둥지에다 가져놓았다가, 조금 쉬었다가 다시 그 훈련을 또 합니다.
하루 종일 며칠 동안 이 일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독수리로 하여금
그 새끼로 하여금 혼자 나는 법을 가르칩니다.
독수리가 나는 법을 가르치고, 또 날개 근육을 강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독수리로서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사는 게 독수리다.’
독수리로 태어났다고 무조건 독수리가 되는 게 아니라,
강훈련을 시켜서 건강한 위상을 지닌 독수리를 만들어 낸다, 훈련시킨다... 그 말이에요.
▲여기서 생각해야 됩니다. 그 새끼에게 고통을 가합니다. 이것이 사랑이기 때문이예요.
보이는 것 가지고 안돼요. 우리로 말하면 말로만 안돼요. 모범을 보이는 것 가지고 안돼요.
날면서 나를 따르며 날아라. 이것가지고는 안 되고,
그래서 벼랑위에서 떨어뜨려요. 직접 몸으로 경험하도록, 직접 부딪히도록... 그렇게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많은 공부를 했어요. 대학이 얼마나 많습니다.
뭐 경제학 정치학 뭐 도덕 뭐니 그 많은 날 배우고 가르친다고 했지만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어요.
이제 와서 딱 부딪히고 나니까, 이제 조금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아요. *1998 IMF 상황
말로는 안돼요. 도덕강연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이래서 벼랑에서 떨어뜨리듯이 말이예요.
‘아주 이젠 죽었다. 이젠 끝났다’ 할 만큼 훈련시키더라 그말 이에요.
그러나 어미 독수리는 멀리서 지켜봅니다.
퍼득퍼득 날면서 그저 퍼둥거리면서 떨어지는 것을 다 지켜봅니다.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지, 어느 정도로 날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켜보다가 떨어지기 직전에 그는 내려와서 그를 등에 엎고 올라갑니다.
절대 버려두지 않습니다. 보호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지켜보고 보호하고 있고, 때로는 행동으로 직접 역사해서 보호합니다.
그리고 독수리의 수준까지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추기까지, 그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가져야 할 지혜, 독수리가 가져야 할 능력, 그 강함,
이것을 철저하게 훈련시켜 나가더란 말입니다.
▲카프만 부인의 「광야에 샘」 이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어떤 날 그가 아주 주의깊게 누에고치에서 번데기가 변해서 나비가 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누에고치를 보면 거기서 바늘구멍 만한 게 뚫립니다.
보셨는지 모르지만 시골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데
처음엔 바늘구멍만한 동그란 구멍이 뚫리고, 거기에서 나비가 나옵니다.
번데기가 변해서 나비가 되어 나올 때, 좌우간 하루종일 걸립니다.
몇시간 걸려서 조금씩 조금씩 나오면서 고생을 합니다.
날개 죽지 하나가 나오고 퍼둥거리다가 또 한쪽이 나오고,
퍼둥거리다가 또 몸이 안나와가지고 퍼둥거리고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하루 종일 그 짓을 해가지고 겨우 나옵니다.
나와가지고 몇 바퀴 돌다가 푸둥하고 날아 올라갑니다. 부인이 이걸 보았어요.
이걸 지켜보다가 ‘아휴 그렇게 고생스럽게 나오는구나.’
그래가지고 그 구멍이 너무 적다고 생각을 해서, 가위로 구멍을 크게 뚫어 줬어요.
뚫어 주니까 그 나비가 쑥 나 오잖아요.
그 나오는 걸 보면서, 이 카프만 부인이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사랑이 더 많다. 내가 더 자비가 크다.
저렇게 고생하지 않도록 내가 나오게 해 주었으니, 내가 더 훌륭하다.’
하고 혼자서 빙그레 웃었더랍니다. 그리고 지켜보았더니
그렇게 꺼내 놓은 나비는 날지 못 합니다.
제 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그대로 죽어 버리더랍니다.
결국은 자기가 자비를 베풀어서 번데기가 나비로 변하는 시간에
그를 편하게 해준 줄 알았더니, 자기가 나비를 죽인 것 밖에 안되더라는 거예요.
왜그럴까? 연구를 해 보니까, 그 나비가 작은 구멍으로 나오면서 몸부림을 칠 때
그 번데기 몸에 있던 영양이 날개로 건너 갑니다.
영양가가 날개로 건너가면서 날개가 힘을 얻습니다.
그 좁은 공간으로 나오느라고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온 몸이 운동을 해서 힘을 얻어 가지고 그렇게 나와야
그 다음에 날아 갈 수가 있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어리석은 짓 감상적으로 해가지고 그저 나비만 몇 마리 죽였구나’
하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때로 우리에게는 가혹하리만큼, 깜짝 놀랄만큼
‘아이구 이제는 죽는구나’ 할 큼 어려운 일들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일환입니다.
이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속에 하나님의 훈련 교과과정이 있습니다.
▲God's curriculum, God's dispensation(경륜, 경영) 하나님의 훈련 과정에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가르칩니다. 이것을 통해 훈련합니다. 강인하게 합니다. 강하게 합니다.
평안한 가운데 이런 성숙한 사람, 이런 고상한 인격은 절대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대단한 민족이지요.
우리는 지금 뭐 일류대학 떠들어봐야 아직도 노벨상 하나도 받은 사람이 없어요.
대만도 받았고 일본도 받았는데, 한국은 이게 뭡니까? *1998년 상황
그런데 말입니다. 자존심도 없습니까? 그래서 누가 말합니다.
일류대학 말 하려거든 노벨상 몇 개 받은 다음에 얘기하라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강한 이스라엘은 인구가 5백만 밖에 안 되지만
전체 노벨상 받는 사람 가운데 민족적으로 보면 60%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경제문제가 있지만, 이 경제를 흔드는 자들이 바로입니다.
유대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이렇게 강하게 된 이유가 뭐냐?
남보다 특별히 고생을 많이 했잖아요. 참 이스라엘 민족이야말로 지독하게...
뭐 지금도 언제 총소리가 날런지 몰라요.
그래도 그 고난속에서 강한 민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기적이라는 것이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기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안일한 생활을 하도록,
번영, 자유를 누리도록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 기적은 사람을 만드는 거에요.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는 거예요.
거기에 위대함이 있어요. 우리의 방법이 아니고 그 분의 방법이에요.
거기에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고,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마음을 뜨겁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명령을 따르면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19:6
제사장 나라가 누굽니까? 하나님과 세상 나라들 사이에 있는 중간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백성에게 가르치고 백성을 치유하는 사람들이요.
엄격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타락돼도
이 제사장들만 하나님 앞에 굳게 서면, 그 나라는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사장이에요요. 이스라엘의 역사에 보면
레위 사람들, 제사장들 통해 이루어지는 역사를 많이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리라. 너희를 먼저 선택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통해서 만백성을 다스릴 것이니라. 너희의 섬김을 받을 것이니라.
너희는 대표적 백성이 될 것이니라. 열방의 치유자로 내가 너희를 쓸 것이니라.’ 말씀하십니다.
▲독립운동에 참 귀한 선구자였고, 수고 많이 하신 신앙인인 도산 안창호 선생님,
이 안창호 선생님이 임종하게 될 때
목사님이 옆에 서서 기도하고, 도산 장로님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손을 딱 잡고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는 나즈막하게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더라고 합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하..’ 그리고 운명하셨습니다. *1938년에 소천
‘하..’ 다음에 무슨 말씀을 하고 있었을까?
‘하나님 이 우리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꼭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환난은) 하나님의 교과과정에 있습니다.
여기에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새끼 독수리같은 우리가, 이제 우리의 방법을 다 포기하고, 이제 누구도 원망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의 길, 그의 섭리, 그의 지혜, 그의 인도하심에 그대로 의지하십시다.
사랑하며 순종하고 감사함으로 순종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분명히 당신이 원하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