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징조와 흔들리지 않는 믿음 눅21:5~19
▲본문의 배경
눅19장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첫 번째 하셨던 일이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19:45~48
눅20장부터는 예수님과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입니다.
총 4번의 논쟁이 나왔습니다.
-권위 논쟁
-세금 논쟁
-부활 논쟁
-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한 논쟁
즉 '다윗이 주라고 불렀던 분이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
▲눅21장 <종말론 강화>의 개요
오늘 우리가 살피는 21:5절부터는 보통 '종말론 강화'라고 부릅니다.
(21:1~4절은, 과부의 두 렙돈 헌금.
강화 : 긴 설교를 뜻람, discourse, 講話, 쉽게 풀어서 길게 설명함)
종말론 강화에는 두 가지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예고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게 될, 세상 끝에 대한 교훈들을 같이 주고 계십니다.
(이 내용을 저희들이 이번 주와 다음 주에, 두 번에 걸쳐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마24장, 막13장, 눅21장에 같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근데 이 본문을 대할 때, 성도들이 겪는 제일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종말 설교에는, 두 사건이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봐서는 참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 멸망이 임박하다, 다가오고 있다 라는 것이고, *과거주의 해석
-두 번째는, 예수님이 다시 오심, 세상 끝이 다가오고 있다. *미래주의 해석
이 두 사건이 혼재되어, 뒤섞여 나옵니다. (보통 과거주의, 미래주의 둘 다 같이 해석하죠)
이 가르침 속에 있는 전제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한데,
이 예루살렘의 멸망은, 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최후로 심판하시게 될,
그 마지막 일들을 상징하고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 끝에 대해서 상징하고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라는 것이
이 설교 속에 담겨져 있는 큰 전제가 됩니다.
▲눅21장의 개요
21:5~7절은, 이 설교가 어떤 배경에서 주어지게 되었는가? 그 배경에 대해 말씀합니다.
21:8~11절은, 예루살렘 멸망 전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가?
그 중에, 8~9절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있을 징조,
10~11절은 세상 끝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가?
21:12~19절은, 1차적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주님의 제자들은 어떤 환란과 핍박을 받을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 ... 하는 것을 교훈하십니다.
21:20~24절은, (다음 주에 다룰 내용인데)
예루살렘의 끝이 반드시 올 것이고, 그 끝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21:25~28절은, 세상 끝에는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21:29~33절은, 또 한 번 무화과 비유를 예수님께서 드시면서
'이런 징조가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하는 것을 너희가 알아야 된다...
(예루살렘의 종말은, 곧 시대의 종말입니다)
21:34~38절은, 예루살렘의 끝을 향해, 또는 시대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주님의 제자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될 것에 대한 가르침으로 종말론 강화가 끝납니다.
그런 큰 틀 속에서, 우리가 한 절씩 살펴보겠습니다.
◑21: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름다운 돌과 헌물'
이 성전은 헤롯대왕에 의해서 증축된 성전을 가리키는데,
BC 19년에 짓기 시작한 이 성전은, 예수님 당시까지도 준공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죠.
증축 공사를 시작한 헤롯대왕이 죽었어도, 이 공사는 계속 되었습니다. AD 64년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입구에 서 있는 아름답고 화려한 흰 대리석과
또 여러 부호들이 드렸던 휘황찬란한 귀금속과 보석들로 장식된 예루살렘 성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터트릴만 했습니다.
헤롯은 원래 솔로몬 성전보다 마당을 더 넗힘으로써, 외벽에 흰대리석을 사용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을 더 웅장하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꾸몄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참조하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 얼마나 아름다운 돌들로 이 성전이 지어졌습니까!'
그리고 '헌물'은, 대제사장들과 귀족들, 부자들이 또 아름다운 헌물을 드렸겠죠.
그래서 성전 외형을, 아름답게 장식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특히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뜨면,
산 위에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성전 벽이,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환한 빛을 발하며
보기에 매우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날이 이르면'
구약에도 그렇고 신약에도 똑같이 '날이 이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개입(심판)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결정저긍로 개입하는 그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렘7장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로 이 솔로몬 성전이 도둑의 굴혈이 되었고
마침내 망할 것에 대해서 예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와 비슷하게 예수님께서, 헤롯 왕이 증축한 성전이
멸망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질문을 하게 됩니다.
◑21:7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두 가지 질문이죠.
-언제 : 언제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징조 : 이런 예루살렘의 멸망이 있기 전에 싸인이나 징조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바로 '종말론 강화'로 알려진 예수님의 설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살피기 전에, 제자들의 감탄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우리가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성전의 미래든, 아니면 소위 교회의 미래든
여러분 성전의 미래, 교회의 미래는
건물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결국 무엇에 달려 있죠?
바로 성전과 주님의 몸된 교회가
주님께서 세우신 그 목적과 본질에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것이 미래를 결정하는 거지,
건물의 화려함이 미래를 보장해 주거나,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죠. 저희 교회도 성도님들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고,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데 그래도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건물에 대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이 교회 건물이 교회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화려했던 헤롯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냐?
바로 앞에서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명확하게 나타났죠.
주님께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세워졌던 성전이,
이제는 강도의 굴혈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세우실 때,
-하나님 앞에 살아 있고 참된 예배를 드리는 공간,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그 공간'으로, 성전이 사용되기를 원하셨고,
-주의 백성들은 말씀을 배워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이 세상을 주님의 빛과 소금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셨습니다.
근데 이런 하나님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대부분 동떨어진 삶을 살고,
대신에 건물의 화려함으로 치장을 했던 예수님 당시의 상황...
그래서 예수님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너무 당연하지만,
한국 교회의 미래는 예배당의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무엇에 있습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가,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목적,
즉 교회의 본질에 얼마나 충실한가? .. 하는 것이 교회의 미래를 결정하게 됩니다.
자 예수님께서 질문을 받으시고 :7
8절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1:8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첫 번째, 예수님은 먼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속지 않도록 주의 해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라고 말을 하고,
하나님의 결정적인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다 라고 하면서
로마에 대항하는 혁명적인 전투에 참여하도록 너희들을 독려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따르지 마라' ...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어디든지 종말에 대한 첫 번째 가르침은,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여러분들이 휴대폰으로
'유대-로마 전쟁'을 검색해 보시면
좋은 정보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거 한 번 쭉 읽어 보시면,
여러분 AD70년경, 유대가 로마에게 역사상 가장 참혹한 모습으로 짓밟히게 됩니다.
여러분 그때 그 중심에는, 로마만 있었던게 아닙니다.
수많은 소위 거짓 선지자,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들은 정말 로마 와의 싸움을 부추기기도 하고,
마침내 '유대가 바로 그 로마와의 전쟁에 참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다'
라고 미혹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예루살렘과 성전에 모았지만,
오히려 그것(미혹) 때문에, 더 많은 유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여러분 사실 교회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과 관련해서
AD 70년에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당시 유대인들 130만 정도가 죽었다 라고 나와요.
근데 이거는 좀 과장일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루살렘 도시 크기와 비교해 보면 과장이죠.
그렇지만 정말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고, 포로로 끌려가고, 성전이 불타고...
근데 여러분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이제 유대교는 거의 몰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이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었느냐?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다'라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여러분 바로 이런 혁명적인 선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휘말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사실 예루살렘이 멸망했던 이 사건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이제는 유대교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서,
유대인들만의 기독교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독교로
오히려 도약을 하는데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첫 번째 가르침은 "미혹 받지 마라"
여러분 지금 우리 시대에도 모든 이단들은 종말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단의 교주가, 즉 자기가 그리스도 라고 주장합니다.
◑21:9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예루살렘 멸망 전에 어떤 일이 있느냐?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듣게 될 것이다.
여기서 '난리'는 .. 전쟁입니다.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의 소식.
여기서 '소요'는 .. 정치적 불안정입니다.
로마의 폭정, 이것에 대해서 저항하는 수많은 과격한 사람들의 행동,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열과 다툼 때문에,
그런 정치적인 불안정의 소문을 들을 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것은 끝이 아니라 '끝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거는 '조기 경보'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자 이런 난리와 정치적 불안정을 배경으로 해서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게 하나의 징조가 될거다.. 라고 설교하십니다.
◑21: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또 이르시되' Then said
이거는 원문 그대로 하면 '그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학자들은 이 말(또 이르시되)을 통해
지금 제자들이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관심에서
이제는 더 멀리 있는 <세상 끝>에 대한 관심으로
예수님이 그들을 안내하시는 어법으로 이해를 합니다.
'또 이르시되'라는 말이 나오면,
이제 대화의 주제가 옮겨간다는 것이죠.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만 끝이 있는게 아니라
이 세상도 끝이 있을 텐데
그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이 일어날 거다.
또 11절에, 구약 성경이 마무리되고 예수님의 오시기 전에
바로 역사적인 격변, 소위 말해서 세상 끝이 오기 전에 있을 거라고 언급했던 사건들을
예수님은 한 번 더 언급하십니다.
'곳곳에서 큰 지진, 기근 전염병이 있을 것이다.
무서운 일들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뭐 천재지변, 지진, 전염병들, 요즘 같은 이상 기후들이
여기에 다 포함이 되겠죠. '이런 징조들이 있을거다'
여러분 이런 일들을 보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이 시대, 이 역사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된다는 겁니다.
8~11절까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 무엇이냐?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된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교훈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성경의 가르침은 명확합니다. 세상에는 끝이 있습니다. 역사에는 끝이 있습니다.
무한정 발전하고, 무한정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 다음 21:12절부터는, 예루살렘의 멸망, 그 멸망이 다가오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로 '많은 핍박들을 경험할 것이다' 라는 거죠.
◑21:12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모든 일 전에'
이 말의 해석은 학자들마다 의견이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바로 직전의 10절과 11절을 가르치는 거냐?
-아니면 8절과 9절의 예루살렘 멸망과 관계된 것을 가르치는 거냐?
그런데 본문에 나온 단어들을 깊이 살폈던 사람들은
6절과 7절에 '이것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게 헬라어로는 '타우타(투톤)' 라는 단어인데 *영어로 these
이 단어는 6절과 7절에서 두 번 다 예루살렘 멸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멸망과 연관되어서 사용되었던 타우타 라는 단어가
22절의 '이 모든 일'에도 똑같이 사용이 됩니다.
그래서 학자 '이 모든 일 전에'는,
6~9절에 언급된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된 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멸망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
근데 박해를 받아서 어디로 끌려가느냐?
-회당, 이것은 유대 종교 권력자들,
그래서 회당에 끌려가기도 하고,
'옥'은 무엇입니까?
유대 세속 권력자들입니다.
유대의 세속 권력자들에게도 끌려가서 고통을 당할 거고
'임금들과 집권자들'은 뭔가하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 집권자들에게도 너희가 바로 핍박과 박해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멸망 전에, 많은 환란과 핍박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21:13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렇지만 교회가 약화되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약화되는 것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 일(환란과 핍박)이 도리여 너희에게 증거가 될 것이다.'
혹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 '증거'라는 단어에 작은 글씨로 '관주 1'이 달려 있나요?
맨 밑에 보면 '증거의 기회'도 된다고 나옵니다.
너희가 많은 환난과 박해를 만날 텐데
역설적으로 이것이 너희들 한테는 '증거의 기회가 될 것이다.'
바로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21:14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명심하라'
'그러므로 마음에 결심해라', '너희 마음 중심에 두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궁리하지 않도록'
너희가 도대체 저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
미리 생각하거나 염려하지 않기를, 바로 너희 마음에 결심을 해라.. 말씀하셨어요.
그 이유가 15절에 나옵니다.
◑21:15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구변'
원문 그대로 하면 사람의 '입'입니다.
'누구도 너희를 이길 수 없는 입과 지혜를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 염려나 생각하지 않기를 마음에 결심해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도전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은, 사도행전을 보면, 생생하게 그대로 성취가 되죠.
종교권력자들이 사도들을 붙잡아 묻습니다.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4:13~14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여러분, 예루살렘 종교권력자들의 핍박의 자리가,
사도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하는 자리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말을, 그들이 당해 내지를 못합니다.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15 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스데반을 보십시오. 대적자들이 스데반을 향해서 공격을 했을 때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했다' 행6:10
본문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죠.
스데반이 순교할 무렵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서 하늘을 우러러 주목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서 계신 것을
그가 보게' 됩니다. 7:55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의 서신 것을 보느라' 7:56
예수님은, 스데반에게도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지혜와 성령을 그에게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전을 하십니다.
바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뿐만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도,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만날 수 있지만
그러나 이 기회를, 주님은 오히려 예수님을 증언(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겠다... 이렇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21:16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이 핍박과 반대는 멀리서만 일어나는게 아니라
가까운 가정에서, 친구들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죠.
◑21:17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주의 백성들을 싫어하겠지만,
'그러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이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 바울이 한 번 사용합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어가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되고
그 오랜 시간 동안 폭풍에 시달리고, 사람들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때
그때 사도 바울이 일어나서, 그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면서
'여러분, 이 광풍은 너희 구원을 위한 거다.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행27:34
이 예수님 말씀을, 유라굴로 광풍에 지쳐 있는 그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 주게 되죠.
여러분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반대해서
우리들이 참 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될 거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요? 19절을 보시죠.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인내'
히포모네 라는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정말 많이 나오는데
누가복음에는 딱 두 번 등장합니다.
여기에 등장하고, 또 눅8:15절에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 결실하는 자다'
지금 예수님이 도전을 하십니다.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을 것이다'
성경적으로 '인내'는 2가지 정도로 기억하시면 좋습니다.
1) 수동적 견딤이 아니라 능동적인 견딤입니다.
왜 능동적으로 견딜 수 있느냐?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 핍박의 현장 가운데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그가 신뢰하기 때문에
성도는 능동적으로 견디게 됩니다. ☞ <인내, 오래참음>
2)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견디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인내 입니다.
인내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너희 영혼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의 뜻은 두 가지입니다.
구원과 승리입니다.
이것은 구원이요, 동시에 승리가 되는 거죠.
◑적용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도전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주의 백성들은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외부로부터, 또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두 가지 약속 하셨잖아요.
21:15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원어는 '입과 지혜를 주시겠다'는 뜻이라 했습니다.
성도님들은 아무래도 거리에 나가서 전도 하시는 것이 어려워서
입이 안 떨어질 때가 있고
또 목회자들은, 이 설교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 대학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설교할 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한 번은 대학생들을 인도해서 수련회를 갔는데,
수련회 마지막 날이 되면, 설교 끝나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잖아요.
근데 제가 담임 전도사니까, 수련회 마지막 날이면, 대학생들, 후배들을 위해서
일일이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고, 상담해 주고,
이렇게 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줘야 되는데,
제가 그때는 전도사인데도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니까
'이런 내가 무슨 후배들을 위해 무슨 기도를 해 줄 수 있나?'
그래서 제가 뒤에서 방바닥에 혼자 머리 박고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그때 저한테 도전을 하셨어요.
'야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냐?'
'제가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다.'
'야 그거는 나중에 해결하고, 지금 후배들을 도와줘라!'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도전을 하시는 것 같아서,
그래서 구원의 확신도 흔들리는 주제에, 후배들을 찾아가서
일일이 기도를 이렇게 해주기 시작했어요.
대학생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각자 개인기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두, 세 명에게 기도를 해줬는데,
제 일생에 그때 딱 한 번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게 참 그 후로도 계속 됐으면, 제가 좀 더 설교를 잘 했을 텐데...
딱 한 번, 그 날만 체험했습니다.
제가 후배들을 위해서 한 사람씩 찾아다니며 일일이 기도를 해주는데,
갑자기 제 입 앞에, 딱 십 센티 짜리, 입이 하나 (환상 중에) 더 나타났어요.
정말 주님이 입을 하나 더 주셨어요. (입만 나타났어요)
제가 한 학생에게 기도를 해주면, '그 입'이 종알종알 뭐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저는 '그 입'이 하는 소리를 따라서, 그대로 쫑알 쫑알 기도를 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가 깜짝 놀라는 거죠.
'아니 형님, 어떻게 제 사정을 아시고, 그런 기도를 하셨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또 그 다음 후배한테 가서 기도를 해줬어요.
제가 기도를 시작하면, 또 '그 입'이 나타나가지고, 또 쫑알 쫑알 종알 말하는 거예요.
또 저는 '그 입'을 따라서 기도를 했어요. (*아마 혼자만 들었던 모양)
그렇게 기도를 하면, 후배들이 너무 너무 은혜를 받았어요.
제 인생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제가 가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설교할 때, 예배시간에 그렇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10센티짜리 입을 하나 좀 주셔서,
'그 입'이 쫑알쫑알 하는 대로, 내가 기도를 하면,
정말 예배 때 큰 은혜가 임할 것 같은데....
근데 여러분, 저는 그때 참 그 경험을 통해서
'야 하나님이 우리들의 상황이, 그게 심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어떠하든지
예수님을 높이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내가 기도하고 섬기는 일에 내 마음을 모으게 되면,
지금도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이 입과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시구나!'
저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21:15 '구변과 지혜'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지고"를 다같이 부르시겠습니다.
여러분 이 가사를 보면, 2절에,
'주도 고난 당했으니 나도 고난 당하리'
좀 가사가 살벌하지 않습니까?
근데 여러분들 안 믿으시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3 때까지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입니다.
제가 어느 집회를 가서, 정말 이 찬송가를 접하고 나서
초등학생이 뭐 알겠어요? 근데 제가 그때 하나님이 좀 은혜를 주셔서,
그때 제가 자기 전에는 꼭 찬송가를 한 곡씩 부르고 잤는데,
제가 이 찬송가를 제일 자주 부르고 잤어요.
이 찬송가를 제가 거의 매일 저녁마다 불렀어요.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갑니다'
그때 제 마음은 정말 진심이었어요. 그 다음 가사는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세상에서 부귀영화 모두 잃어 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 복을 받겠네'
2절 가사에도
'주도 곤욕 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세상사람 간사하나 예수 진실 합니다
예수나를 사랑하사 빛난 얼굴 보이면
원수들이 미워해도 염려할것 없겠네'
종말이 될수록, 내가 핍박 당할 때,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수록, 성도는 더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3절 '내가 핍박 당할때에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수록 많은 위로 받겠네
주가 주신 기쁨 외에 기뻐 할것 무어냐
주가 나를 사랑하니 기뻐할것 뿐일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