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 20240901 - YouTube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3~13
로마서 12장 말씀은 복음 때문에 일어나는 우리 안에 있는 근본적인 변화,
래디컬한 변화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노력으로 시작되는 변화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일어나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복음을 만난 사람들에게 생기는 래디컬한 변화들...
그런 변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냥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변화에 대한 모습들을 매주 접하면서
이런 변화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열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그런 변화가 나의 삶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도입 / 복음을 만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는
<새로운 열정이 생긴다> 라는 것입니다.
그냥 열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서 새로운 열정에 임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열정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서든지 볼 수 있습니다.
새벽에 학원에 가면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적거립니다.
밤늦게 학원에 가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들은 말인데, 요즘 한국에 러닝 열풍이 불어서,
나이키의 어떤 운동화가 품절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요. 우리가 얘기를 듣잖아요.
또 스타트업을 한 어떤 기업인이,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자면서
하루에 20시간씩 코딩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위대한 기업을 이루게 됐다..
이런 얘기도 많이 듣죠.
최경주 선수가 프로 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서 연습하고 준비하면서,
모래사장에서 뭐 아이언이 닳도록 연습을 했다.. 라는 얘기도
우리가 들으면서 우리가 감동을 받고
또 자기가 이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정말 자기 삶을 모든 것을 다 투자하고 바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게 됐다..라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얘기입니다.
2001년도에, 제가 살고 있던 시애틀에 야구 열풍이 불었었거든요.
왜 야구 열풍이 불었느냐면,
근데 야구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최고의 승률을
시애틀 매리너스 라는 야구팀이 이루어냈습니다.
그때 사실은 이치로 라는 야구 슈퍼 스타가 미국 무대에 데뷔를 해서
신인 상과 정규리그 MVP를 휩쓸었던 해이기도 합니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시애틀 시민도 '시애틀 매리너스가 드디어 월드 시리즈에 가서
우승을 하겠구나' 생각하고 이제 흥분해있던 상태였습니다.
플레이 오프 시즌이 되서, 티켓 판매를 하는 첫날이 하필 주일이었어요.
제가 생각을 했죠. '주일날 예배드리기 전에 미리 가서, 오전에 일찍 도착을 해 가지고
9시 땡 하고 문을 열면 티켓을 사고, 그리고 예배에 가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7시에 야구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 제 눈앞에 펼쳐진 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대기 줄이었습니다.
아침 7시였어요. 티켓 부스가 문을 열기 전 2시간 전입니다.
그리고 텐트, 침낭, 캠핑 체어... 이런 것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티켓을 구하기 위해서 밤을 샌 거예요.
제가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가지고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가는 열심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는 열정과 열심을 가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었던 거예요.
그 사람들은 운동하는 사람들 아닙니다.
그 사람들 돈을 받고 거기가 있는 거 아니라,
자기 돈을 쓰기 위해 거기 나가 있는 관람객들이에요.
그런데 '플레이 오프 시즌 야구 경기를 본다' 라는 그 단순한 일에도
사람들이 이런 열정을 보입니다.
근데 이렇게 세상에서 보게 되는 열정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복음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생기는 열정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어디 있는가요?
그걸 좀 살펴보겠습니다.
◑ 롬12:11절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 말씀은 권면의 말씀이 아니라, 명령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향한
출정 명령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는 열정은 어떤 것이냐?
그 열정은 주를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주를 섬기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보는 열정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근데 복음은 우리 안에서 어떤 열정을 시작하느냐?
'주를 향한' 열정을 시작해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편안한 삶이나, 자신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서 땀을 흘리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열정을
복음이 우리 안에서 시작해 주는 것입니다.
한동대 초대 총장이셨던 김영길 장로님께서 늘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 공부해서 주님을 위해서 쓰자!'
그분이 이해하고 있던 복음의 능력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열정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주를 향한 것이고, 주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열정과, 복음으로 시작되는 열정의 근본적인 차이는
게으름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열정', '복음에서 시작하는 열정'을 분별하는 차이는
게으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있단 말이에요.
우리가 보통 '게으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늘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 일어나고, 방은 다 어지럽혀져 있고, 샤워도 안 하고...
뭐 이런 모습들이 있잖아요. 시간 관리 잘 안 하고...
근데 성경에, 복음 앞에서 드러나는 게으름은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얘기해 주시잖아요.
세 종에게 달란트를 나눠주세요.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
1달란트는 30년 동안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이에요. 그러니까 적은 액수가 아니에요.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심히 가서 장사를 해서, 두 배의 이윤을 남겨요.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너무 두려워서, 걱정이 심해서, 땅에 그 돈을 파묻어 놓고
주인이 돌아오자 원금보존한 상태로 돌려주죠.
근데 그 1달란트 받은 종에게, 주인이 뭐라고 책망을 했는가요?
'악하고 게으르다' 라고 책망을 해요.
그러니까 주님은 '게으름은 악한 것과 연관된다'는 측면에서 말씀하셨죠.
▲그러면 주 앞에서 어떤 것이 게으른 모습이냐?
'중요한 것을 하지 않는 것,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게으른 거예요.
게으름을 벗어나는 길은, 우리의 스케줄을 빼곡하게 새로운 일거리로 채우는게 아니에요.
분주하게 살고 바쁘게 살아도.. 게으를 수 있다..라는 것이죠.
세상에서는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게으르다' 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들이 정말로 해야 될 것을 하지 않고 있다면... '게으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중요한 일입니까?
몸을 가꾸는 것보다, 영혼을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인맥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것보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
나의 자녀들과 의미 있는 시간들을 쌓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좋은 학부형이 되는 것보다,
기도하는 영적인 부모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돈을 집착하고 따라가는 것보다,
주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가꾸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재미있고 편하고 스릴있게 사는 것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시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추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가질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보다,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땅에 짧은 삶에 대해서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다가올 영원한 나라와 생명의 생명에 대해서
고민하고 소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단 말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덜 중요한 것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덜 중요한 것에 열정을 다하기 때문에,
진짜로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더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악하고 게으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주님 앞에서 게으른 것은 또 어떤 모습이냐?
걱정과 염려의 사슬에 묶여서, 안락함 익숙함 편안함의 포구에 머물러 있는 것이
게으른 것입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이 돈을 잃을까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돈을 땅에 파묻잖아요.
안락함이 좋아서, 편안함이 좋아서, 익숙함에 젖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주님 앞에서는 게으른 것입니다.
게으름이라는 것, 영적인 게으름이란 것은,
걱정과 세상 염려의 무게에 눌려서 믿음이 짓눌리는 것이고, 기도가 짓눌리는 것이고,
그 때문에 생기는 것이 '게으름'이라는 증상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수고로움에 대한 걱정
-안락함을 방해하는 귀차니즘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는 것, 정체되어 있는 인생이 게으른 것입니다.
▲근데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을 향해서
주인이 어떤 칭찬을 하셨나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셨거든요.
주 앞에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다해 부지런하여 주를 섬기는 삶이 어떤 삶이냐?
'착하고 충성된 삶이다' 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으로 가득한 삶이 어떤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좀 묵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12:3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한국어 성경에 <쉬운 성경> 번역도 그렇고, <개역개정> 번역도 그렇고
위 구절에서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는 내용이 있는데,
영어 성경을 봐도, 헬라어 성경을 봐도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내용이 있거든요.
그 내용은 '스스로를 높이 생각하지 말라' 라는 내용이에요.
not to think of himself more highly than he ought to think :KJV
(영어번역 '자기를 마땅히 생각해야 함보다 스스로 더 높이 생각하지 말고'
개역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그러니까 복음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는 열정은 어떤 것인가요?
'자신을 높이지 않는 겸손함'이 있는 열정이에요.
'나를 남보다 낮게 여기려고 하는 열정'이 복음이 시작해 주는 열정이라 해요.
진정 복음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스스로 낮추는 열정을 품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세상이 주는 열정하고는 다르죠.
세상에서는 어떤 열정을 갖게 되면, 내가 높아지기를 원하고, 나를 드러내기를 원하고,
내가 남들보다 앞서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복음 때문에 생기는 열정은
예수님의 겸손함으로 옷을 입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열정을 가지게 돼요.
복음이, 우리 안에 열정을 시작하게 하는데,
그 열정에는 '예수님의 겸손함이 있다'는 것을
'not to think of himself more highly than he ought to think' 롬12:3
우리가 아는 것이 필요한가요?
왜냐면 열정이 있는 사람은, 열정이 없는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업신여기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렇죠.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너는 뭐가 문제인 거야?, 너는 왜 게으르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고요.
그래서 세상에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서, 뭐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너는 열정이 없고, 너는 부지런함이 없고, 너는 게을러!' 라고 쉽게 판단하기 때문인 거죠.
복음을 만난 사람들에게, 왜 예수님의 예수님의 겸손함으로 옷 입은 열정이 필요한가?
왜냐하면 그 겸손함이 임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할수록,
우리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나는 평신도인데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당신은 장로, 권사, 목사인데 왜 나보다도 못해? 왜 그 모양이야?'
이런 생각으로, 열심히 하면은 할수록, 더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자신을 높이 생각하지 않으려면,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님의 겸손이 필요합니다.
마땅히 내가 생각할 바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not to think of himself more highly than he ought to think :KJV
우리는 다 죄인인데, 남을 뭐 판단할 처지가 아니잖아요.
그게 우리가 믿는 복음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높이지 않는 겸손함'으로 가득한 열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때문에, 내 안에 열정이 새롭게 임한다면,
나를 높이려는 마음, 나를 드러내는 마음... 이런 것들이 없어지고
나를 남들보다 낫게 여기려고 하는 마음이... 온전히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주님을 열심히 섬기고 싶은데,
내 안에 있는 그 열심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복음 때문에 내 안에 생긴 것인지...분별할 수 있는 것이 뭐냐?
-내가 주님을 드러내길 원하면, 복음 때문에 생긴 열정인 거고,
-나를 드러내기 원하며, 남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
그 열정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열정이니까, 그 열정은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 12:4~8절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6절에 '은사'라는 단어를, 쉬운 성경은 '선물'이라고 번역했는데요.
헬라어로는 카리스마 인데, 원어적으로 '선물'인데, 의역하면 '은사'죠.
'은사'가 '선물 gift'이라는 뜻입니다.
자 은사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사도 바울이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주는데
'우리는 한 몸에 지체로 연결이 되어있다' 라는 겁니다.
펑션(기능)이 각각 다르고, 역할이 각각 다르다는 거예요.
손의 역할이 있고, 발의 역할이 있고,
눈의 역할이 있고, 귀의 역할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 한 지체이기 때문에, 몸에 속해 있는 지체인데,
우리는 다른 지체와 연결이 되어서, 몸을 이루고 있다 라는 거죠.
이게 무슨 얘기냐면, 내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보다,
우리 각자가 전체의 몸 가운데서, 내 고유의 유니크한 역할을 맡고 있는 지체다..
라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각자도 중요하지만, 전체 팀이 중요한 거죠.
저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모든 성도님들은, 자기 혼자서 몸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는 다른 지체들과 연결되어 있을 때, 온전한 몸이 되는 거예요.
목사인 나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여러분도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거예요.
'내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느냐'를 아는 것보다,
'나는 한 몸에 속해 있는 지체이며, 나는 다른 지체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의 섬김과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라는 것을 아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해요.
그렇다면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열정>은 어떤 열정이냐?
나의 은사를 갖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내 역할을 찾아내는 거예요.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어요.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유익한 일들이 있다는 거예요.
▲은사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될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1) 먼저 은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성령의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는 게 아니에요.
때때로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면, 특정한 은사가 임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통로에 불과한 거예요.
은사를 주시는 건, 성령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은사(선물)를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에요. 째째하게 주시는 분이 아니에요.
모든 거듭난 성도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모든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풍요롭게 은사를 부어 주세요.
어떤 사람들은 '나는 은사가 없어요' 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사를 풍성하게 부어 주세요.
2) 그런데 그 은사는 찾아가야 하는 거예요.
내가 앉아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런 은사를 받았구나' 라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은사는.. 써보면서, 사용해 보면서, 내가 섬기면서... 점점 찾아가는 거예요.
또 은사는.. 완성품으로 주어지는게 아니에요. 씨앗으로 주어져요.
여러분이 '가르침의 은사'가 있다고 해서, 여러분이 신학교를 가고, 성경 몇 번 읽고,
책 몇 권 읽었다고.. 탁월한 설교자가 되고, 탁월한 교사가 되는게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에게 가르침의 은사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은사를 풍요롭게 부어 주셔도,
여러분은 그 은사를 쓰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되고, 열심히 공부해야 되고,
열심히 준비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교사나 설교자가 될 수 없는 거예요.
저는 30년이 넘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어요.
매주 설교 준비하는 건,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에요.
매주 저는 무력함과 무능함을 느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내가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즉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없기 때문에,
30년 동안 매주 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거예요.
은사는 이렇게, 하나님과 내가 동역하면서 만들어져 가는 거예요.
더 성숙해져 가는 거예요. 더 개발되어져 가는 거죠.
3) 은사를 생각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내가 은사를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느냐'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필드가 어딘지' 찾는 거예요.
▲이번에 제가 이집트에 들어가서, 이명O 선교사님, 박기O 선교사님을 이집트로 불러내서
함께 같이 동행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근데 여러분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명O 선교사는 말이 없는 사람이에요.
말을 시키기 전에는 말을 잘 안 하고, 그리고 장황하게 질문을 해도 답문으로 답하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이명O 선교사하고 같이 이렇게 다니면서,
이번에 들어가서 이집트 교회 선교 리더들을 만나면서 정말 좋은 교제를 갖고
많은 배움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 이집트 선교사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자기가 선교사들을 동원하고, 훈련하고, 파송하는데
모리타니아, 지푸티, 예멘, 수단... 이런 나라에 들어가서
현지 목사들을 훈련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이명O 선교사는,
아니 평소에 말이 없는 사람인데... 갑자기 말이 길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지금 이 나라들은,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시죠?
이 나라들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면, 무조건 추방이에요.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감옥 가야 돼요.
핍박이 얼마나 심한 나라인지 몰라요.
한국 선교사들이 그런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들어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불가능해요.
근데 이집트 선교사들은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이집트 선교사들은 언어도 되고, 그리고 문화가 맞기 때문에
그 나라들에 들어가서 얼마든지 교회 개척하고, 선교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명O 선교사가 말이 길어지는 거예요.
말을 길어지면서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그 이집트 선교사가 거기 다음에 들어갈 때, 자기를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예요.
저는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들어가서 핍박을 당하면 어떡하지?'
근데 이선교사는 눈이 반짝이면서 '그 나라에 들어갈 때 자기를 꼭 좀 데리고 가라고...
자기도 그런 나라에 가서 복음 전하는 일을 돕고 싶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옛날 기억이 났어요.
과거에 이명O 선교사가 한국에서 우리하고 같이 목회하던 시절에,
어느 날 갑자기 제 사무실에 들어와서,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또 뭐를 잘못했나? 그의 마음을 어렵게 했나?' 생각하고
내가 '울지 마세요. 앞으로 내가 잘 할게요' 라고 얘기하는데,
이명O은 '목사님 저 좀 보내 주세요. 저는 무슬림들한테 가고 싶어요.
한국이 너무 좋고, 서울이 꽤 너무 편하고 좋은데
저는 무슬림들을 위해서 다시 돌아가야 되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 분의 딸 얘기를 하면서 설득을 했어요.
'야 지금 딸이 한창 크고 있는데... 그냥 한국에서 교육시키면서 편하게 살자...
거기 가면 애가 얼마나 고생할 텐데....'
근데 울면서 '목사님, 제발 부탁이예요. 저를 좀 보내 주세요. 저 좀 놔 주세요.
저는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고 싶어요.'
제가 붙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왜요?
그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필드가 있는 거예요. 무슬림들이죠.
박기O 선교사도 그렇고, 이명O 선교사는
무슬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서, 한국 생활이 기쁘지 않은 거예요.
▲저희 교회에 제가 좋아하는 형제가 한 명이 있었어요.
너무 소중한 형제여서 '우리가 잘 훈련해서 교회에서 사역자로 삼아야지' 생각했는데,
그가 교회를 잘 섬기다가 어느 날 그가 제게 와 가지고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목사님, 제가 가출한 청소년들,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살고 싶은데,
저 좀 놔주세요.'
제가 막 설득을 했어요. '신학하고 교회에서 그 일을 하자. 우리 교회가 그 일 할게'
하면서 열심히 설득을 했어요. 그러니까 또 알았다고 돌아가더니
한 2~3주 지나서 또 저를 찾아왔어요.
'목사님, 저 가출해 있는,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섬기며 살고 싶어요.
목사님, 저를 좀 놔 주세요. 저를 좀 보내 주세요.'하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돌보는 쉼터'와 연결을 해줬더니
그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요.
얼마 후에 만나서 제가 물었죠. '힘들지 않니? 어렵지 않아?
그 아이들이 네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아?'
그런데 자기는 너무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 아이들 하고 있으면!
그러니까 내 은사를 아는 만큼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게 뭔지를 찾아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내 역할이 뭔지...
내 은사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거죠.
복음이 시작하는 열정은, 내 은사를 찾는 것이고,
내 마음을 뜨겁게 하는 필드를 찾는 것이고, 대상을 확인하는 것이고,
그리고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유익한 역할을 아는 것이에요.
요즘 날씨가 이렇게 뜨거운데, 밖에 나가서 여전히 주차봉사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주시던 열정은 뭐냐? 내 역할을 알고, 찾고,
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대상을 만나고,
나만 할 수 있는 섬김을 통해서, 기쁘게 내 은사를 사용해서 섬기는 것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열정이죠.
▲여러분 내게 은사가 임해요. 그러면 내 영적인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게 분노하는 문제가 있는데, 방언의 은사를 딱 받으면
'그 분노하는 게 싹 사라져 버릴 것이다...' 천만의 말씀! 그렇지 않아요.
은사가 주어지는 목적이 있어요. 그 목적은 나를 위한게 아니에요.
엡4:11~12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에게 이 모든 선물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서로 섬김으로 교회를 더욱 강하게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게 은사를 주신 이유입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은사는 나를 위해서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받아요.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은사가 임한다고요.
근데 나를 위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기쁘지 않아요.
왜냐면 은사를 날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은사는 형제를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쓸 때... 빛나는 거거든요. 내가 기쁜 거거든요.
근데 내가 은사를 받고, 성도를 위해서 쓰지 않으면,
그 은사는 받으나 마나인 거죠.
▲은사는 일반적인 세상 재능 하고는 다릅니다.
세상에서 훈련하면 재능이 생기잖아요.
근데 은사는 재능과는 완전히 달라요.
제가 예를 들어서 제가 노래하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내가 노래하는 재능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노래를 시키겠죠. 찬양 부탁할 거예요.
근데 내가 섬기는 은사가 없으면, 그 자리가 기쁘지 않아요.
한두 번은 할 수 있어요. 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니까.
나도 교회를 좋아하고 교회를 사랑하니까, 한두 번은 노래 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내 마음이 상해요.
왜요? 그 자리가 대우 받는 자리가 아니거든요.
그 자리가 내가 높아지는 자리가 아니에요. 내가 인정받는 자리가 아니에요.
내가 박수 받는 자리가 아니에요.
내가 섬김의 은사가 없으면, 노래할 때마다 내가 시험드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내가 노래하면.. 박수 쳐 주는데,
세상에서는 노래하면.. 나에게 환호성을 질러 주는데,
세상에서는 노래하면.. 페이도 주는데,
교회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박수 안 쳐 주고, 알아주지도 않고,
너무 쉽게 노래를 부탁하고, 너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섬김의 은사가 없으면, 한두 번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10년 20년 30년은 계속 못 한단 말이에요.
재능과 은사는 다른 거예요. 내 은사가 하나님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쓰임 받을 때
그것이 기쁘다고 하는 것을 경험할 때
'성령께서 복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열정을 주셨다' 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자 복음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는 열정은 어떤 것이냐?
고난 앞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열정!
이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시작하는 열정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열정은 고난을 뚫고 나옵니다. 아멘!
역경을 뚫고 나오는 것이, 환란을 뚫고 나오는 것이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정입니다.
이번에 제가 이집트에 가서 선교 대회를 참여하면서,
'사도행전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라는 그런 마음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개신교회의 역사는 한 150년 미만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집트 교회의 역사는 주후 60년부터거든요. 거의 2000년입니다.
그들은 마가가 이집트에 교회를 개척했다 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교회의 찬란한 부흥이 초대교회 때 있었고요.
그 다음에 이슬람들이 이집트를 점령한 다음에도, 교회가 안 죽었습니다.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아직도 20% 이상이 기독교입니다. *콥트 기독교
거기는 핍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살아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는 싸워야 되기 때문에, 믿음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거기는 정말 고난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게 국민의 10%입니다.
그들이 어떤 비전을 나누어 나누냐면
선교대회에서 한 600명 정도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찬양을 하는데
비전을 제시하더라고요.
'향후 5년 동안 1천명의 선교사를 아랍권에 파송한다' 라는 비전을 선포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제 가슴이 막 너무 뜨거워졌어요.
나라들을 거론하는데, 한국 선교사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들이에요.
근데 그곳에 1천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한다니까, 사람들이 흥분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 저들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저들이 1천명의 선교사를 파송한다는데, 파송할 수 있는 힘이 분명히 없을 텐데,
파송한다는 믿음이 있으니,
적어도 10%는 서울드림교회가 파송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100명의 선교사를 협력하고 후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근데 그들은 믿음이 있는데, 제가 믿음이 없거든요.
그들의 하나님은 큰데, 내 하나님이 작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그런 기도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계산이 되더라고요.
계산을 해보니까 선교헌금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 적어도 네 배는 있어야
그 선교사들을 파송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니까 말로 기도하는데, 자꾸 머릿속으로 계산이 되니까, 기도가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방언으로 기도해 버리기 시작했어요.
'하나님 저들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기를 원하고
저들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고
저들의 열정이 우리의 열정이 되기를 원하고
저들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렇게 우리도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들이 대한민국 사람들보다 더 특별해서 그런 비전을 갖는 것인가? 아니에요.
복음이 우리 안에 얼쩡한 어떤 열정을 심어주느냐?
고난을 뚫고 가는 열정이 시작이 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들은 고난을 경험해요. 고난이 힘들어요.
고난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러나 복음을 가진 사람은, 고난 때문에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거예요.
고난을 뚫고 나오는 거예요.
성도들은 고난 속에서 소망이라고 하는 동역자를 만나는 거거든요.
소망이 뭐냐? 눈으로 볼 수 없는 걸, 믿음으로 보는 거예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걸 믿음으로 붙잡는 거예요.
마음으로 느낄 수 없는 걸, 믿음으로 확신하는 것이 소망이에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따라가는게.. 소망의 힘이거든요.
그리고 어떻게 믿음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고난을 뚫고 나오는가요?
기도를 통해서 뚫고 나오는 거예요. 기도 때문에 그 열정이 무너지지 않는 거예요.
성령께서는 복음을 만난 사람들에게 새로운 열정을 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달려들어요. 주를 위해서 살겠다고 열심히 달려가요.
그런데 흐지부지하게 돼요. 왜 그런지 아세요? 기도가 없어서 그래요.
기도가 뜨겁지 않기 때문이에요. 기도가 뜨거워지지 않으면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믿음의 열정은.. 사그러들 수밖에 없어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를 시작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우리 안에서 기도를 일으키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달궈 주실 때,
우리의 믿음의 열정은 고난을 뚫고 열매를 볼 때까지,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우리에게 새로운 열정을 가져다 줍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새로운 열정을 나누어 주십니다.
혹시 그 열정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십자가 앞에서 여러분의 그 주님을 향한 열정, 주님을 위한 열정,
주님의 열정이 온전히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