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삶 눅21:20~36
눅21:5~21:36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또 마지막 때에 대해서 교훈하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예루살렘의 멸망은
바로 세상 끝에 있을 일들을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라는 전제 속에서
예수님은 이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눅21:20~36절은, 4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21:20~24절까지는 '예루살렘의 끝'입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건가?
21:25~28절은 '세상 끝'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 끝에는 어떤 일이 있을 건가?
21:29~33절까지는, 비유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는 비유
징조를 보면 어떤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징조를 통해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세상 끝에 대해 하신 이 말씀은 확실한 말씀이다... 라는 것을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교훈하십니다.
21:34~36절까지는, 마지막을 향해 가는 성도들,
그게 예루살렘의 멸망이든, 세상의 마지막이든,
그 마지막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주님의 제자들이 주의해야 될 것 2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예루살렘의 끝 눅21:20~24
▲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예루살렘의 끝이 왔다는 직접적인 싸인은,
예루살렘 성이 군대들에게 포위당할 거라는 겁니다.
이게 '끝이 왔다' 라는 직접적인 싸인이라는 거죠.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예루살렘이 포위가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나타나는 날이 아니고,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서 언급했던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들은
예루살렘이 포위당하는 것을 뭐라고 이야기했느냐?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나타나는 순간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거기 예루살렘에 모이도록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한 것은, 스가랴 등 구약 몇 곳에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중심으로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그때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승리하고
치러 온 적국들은, 엄청난 대규모임에도 불구하고 패배할 것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죠.
슥12:1~9, 욜3:2, 3:12등
근데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반대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0
▲21: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그때, 즉 예루살렘이 군대에 포위될 때,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피하라'는 것이죠. 피난가라는 거죠.
그런데 앞에서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는
'그 때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나타날 거니까 성전으로 모여라'
이렇게 주장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22절에는 '왜 그러면 떠나야 되느냐?' 이유가 나옵니다.
▲21:22 '(왜냐면)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2절은 '왜냐면'으로 시작합니다. 개역성경에 번역이 빠져 있지만 *헬 '호티'
'왜냐면 이 날들은... 징벌의 날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날은 바로 심판의 날이다.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날이다'
여러분, 말씀이 가르치는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그 명령과 그 법도에 순종하지 않으면 심판하시겠다'
'그 기록된 모든 것이 예루살렘 가운데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 될 것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떠나야 된다는 거죠.
23절에, 만약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게 되면
그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21: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아이 벤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입니다.
일반 사람들도 전쟁의 참화를 피하기 어려운데, 그들은 더욱 힘들겠죠.
부모가 어린 자녀를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만큼, 비통한 상황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유를 한 번 더 설명합니다.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3b
예수님께서 지금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핵심은 무엇이냐?
'예루살렘의 멸망은 한 민족의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민족의 단순한 비극적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교훈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24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21:24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그들 예루살렘 주민들은 칼날에 죽임을 당할 겁니다.
그들은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갈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짧은 시간도 아니고,
'이방인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한 것을 두고서,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일들이 끝났다'
'그래서 지금은 종말의 종말이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말씀을 하셨을 때가, AD 30년경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것은 AD 70년입니다.
40년이 지난 후에, 세계 역사에도 남을만큼 가장 참혹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요세푸스(유대인 역사가)의 기록에 보면, 그때 13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죽었고,
그 피가 장화에까지 미칠 정도로 참혹한 학살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세푸스는 좀 과장이 심한 역사기록자로 보죠.
학자들은 예루살렘 파괴 당시 거주민을 8~10만명 이하로 봅니다.
예루살렘 인근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해도, 15만명이 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슬픈 일은, 전쟁이 일어나면 빨리 피난을 갔으면 화를 면했을 것인데,
거짓 선지자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피난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메시아의 오심과 기적적 승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저는 20~24절까지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냥 한 가지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도전은,
예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제가 갑자기 왜 이렇게 뚱딴지 같은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저는 이 본문 말씀 대할 때마다...
특별히 AD 70년에 예루살렘 도성은 완전히 멸망을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졌습니다.
그때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사도행전에 보면 2장부터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셔서
그 예루살렘에 놀라운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는데, 그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는 어떻게 됐을까요?
근데 유세비우스 라는 사람이 <교회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주1)
기독교 입장에서는 첫 번째 '교회 역사가'였습니다. (? ~ 339)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보면 "예루살렘의 교회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계시로 주어진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서 헬라의 도시들 중 하나에 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교회는, 놀랍게도 바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그곳을 떠나라' 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본문 21절에 '피난가라'는 말씀을 주셨잖아요.
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그 계시를 받고서 교회와 성도들은, 예루살렘과 유대를 벗어나서
요단강 동쪽에 있었던 헬라의 도시들로, 또 다른 지역들로 다 이주를 했다는 거죠.
이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은,
예수님을 거부했던 유대교는, 그들이 완전히 몰락하는 그런 시간이 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의 하셨던 이 본문 말씀을 들었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바로 전쟁에서 구원의 기회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그 유대와 이스라엘의 범위를 넘어서서,
세계인을 위한 기독교로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이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가장 가혹한 예루살렘의 멸망, 참화였지만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 끝에도 많은 참혹한 일들이 이 땅 가운데 펼쳐질 수 있지만,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는 환란을 통과하면서도, 그 재앙을 피하는 길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2. 세상 끝 21:25~28
25절부터는 예수님께서 초점을 '세상 끝'으로 옮기십니다.
이미 앞의 10~11절에서 징조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죠.
지진, 기근, 전염병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25절부터는, 세상 끝이 가까웠을 때는.. 일월성신 등 하늘에 징조와 대격변이 있을 거다.
그리고 땅에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를 들을 것이다...
▲21: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일월성신의 하늘에만 격변이 있는 게 아니라, 땅에서도 격변이 일어난다는 거죠.
과학적으로도 이 말은 사실입니다. 천체의 변화는 지구의 기후환경에도 반드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21: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두려워서 기절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어떻게 끝이 나느냐?
우리가 살고 있는이 시대는 무엇으로 끝이 나느냐?
바로 인자가 다시 오시는 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21: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것으로 바로 역사가 끝이 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과 '이 세상의 마지막'을 비교해 보시는게 좋습니다.
예루살렘의 마지막은 어떻게 됐죠?
결국은 말씀을 거부했던 그 유대인들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근데 세상의 끝은 무엇으로 끝나느냐?
바로 '인자의 오심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단7:13~14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7:13~14
'인자 같은 이'
예수님은 자신을 왜 '인자'라고 표현했는지에 대한, 가장 큰 힌트를 주는 구절입니다.
'옛적 부터 항상 계신 이'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위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자'에게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 나라들,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바로 그분(인자)을 섬기게 했고,
그의 나라는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라고 다니엘서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종말에는) 바로 그 사건이 성취될 것이라는 겁니다.
인자가 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분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나라를 세우게 해 주시고,
이 땅에 모든 영원한 심판을, 그리고 구원을.. 그분(인자)에게 맡기시게 됩니다.
이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세상 마지막에 인자가 오십니다.
세상의 마지막은 인자가 오시는 것으로 끝납니다.
▲21: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세상의 끝을 알리는 징조들이 나타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어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앞에서 봤던 26절에는 '종말에 사람들은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8절에는 '너희'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26절의 '사람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죠.
즉 26절에,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끝이 다가왔을 때,
두려워하고 기절할 수밖에 없지만,
세상의 끝은, 인자의 오심으로 끝이 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그날이 무슨 날이냐?
그들 성도에게는 최고의 날이 됩니다.
왜냐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기 때문에!
그 최고의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일어나 머리를 들어라' :28
'일어나라'는 것은.. 굴복하지 말고 굳세게 서라는 뜻이고,
'머리를 들라'는.. 기쁨과 소망가운데 다시 오실 주님과, 그분이 가져오시는 구원을
고대하라는 것입니다. 소망으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세상의 마지막 끝에는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지만, 세상은 무엇으로 끝나느냐?
그 (천지 격변) 후에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인자의 오심으로 끝납니다.
그날은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에게는 최악의 날, 최후의 심판의 날이 되겠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그날은 최고의 날,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날이 됩니다.
그래서 그날이 가까울 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그 징조 이후에,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일어나 머리를 들어라' 즉 기쁨과 소망 가운데,
예수님과, 그분이 가져오실 구원을 사모하면서, 고대하면서 살아가야 된다는 거죠.
◑3. 본문 눅21:29~33절까지는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21: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무화과는 팔레스타인에서는 늦가을이 되면 잎이 다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다가 이 무화과나무에 가지가 연해지고, 싹이 나고, 잎이 나는 걸 보면
사람들은 무엇을 아느냐? '곧 여름이 오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31절을 보시죠.
▲21: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이런 일'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되는 징조이든 세상 끝과 관련된 징조이든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예루살렘의 멸망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결과입니다.
인자의 오심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사건입니다.
전쟁, 기근, 전염병, 천체의 격변 등의 징조..
이런 일들이 시작되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21:32~3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세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세대들이죠.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거다'
즉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후, 약 40년이 지났을 때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성취되어집니다.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말씀이 성취되었다면,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내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할거다'
여기서 '내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예루살렘 멸망뿐만 아니라, 세상 끝과 인자의 오심에 대한 이 말씀,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지만, 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
여러분, 이 세상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 끝에는 바로 인자가 다시 오실 것입니다.
◑4. 그러면 이제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우리들 같으면, 이 세상의 마지막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21:34~36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교훈을 하시는데,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1) '방탕함과 술취함'
쾌락, 탐욕, 그 통제되지 않는 욕망을 가지고
'거기에 취해서 살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된다'
2) 또 한 편으로는 '생활의 염려'입니다.
생활의 염려 때문에,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둔하여진다'는 말은 '짓눌리는' 것입니다. *바리노
욕심과 염려에 짓눌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만약에 땅이 짓눌리면, 흙이 계속 짓눌리면 어떻게 되죠? 땅이 딱딱해지게 됩니다.
딱딱해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바로 둔해지게 되어서, 반응을 못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져 있었는데
예수님 당시에 세계 공용어가 헬라어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쓰여졌던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70인 역'입니다.
70인역에 '출애굽을 거부했던 바로가 마음이 '완악해졌다' 라고 할 때
그때 사용되어진 단어가 '바리노 (둔하여지다)' 라는 단어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도전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세상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데
-방탕함과 술 취함을 조심해라,
-또 생활의 염려 때문에 너희들의 마음이 짓눌려 가지고 딱딱해지고 둔해져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이 말씀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라'는 것입니다.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헬라어에는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깨어 있어라 그리고 항상 기도해라' 이런 순서로 되어 있죠.
무엇을 위해서?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할 수 있도록'
'마지막 때 오는 이 격변의 일들을, 너희가 능히 피할 수 있도록 깨어서 항상 기도해라'
여기서 '피한다'는 말은, 두려움에 질려서 피하는게 아닙니다.
깨어있기 때문에.. 그 다가온 위기를 지혜롭게 탈출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아무리 화재가 나도, 그것을 피할 수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바로 이런 종말의 격변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깨어 있으면,
능히 그것을 탈출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적극적으로는,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마지막 심판자로 오시는 그 예수님 앞에
두려움에 질려서 서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그분 앞에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설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되느냐? 바로 '깨어있고 항상 기도해야 된다'
이렇게 예수님은 도전을 하셨습니다.
◑적용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세 가지 교훈을 생각해 봅니다.
1) 첫 번째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셔야 돼요.
우리의 삶에는 어떤 격변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때 내가 살 길은 무엇이냐? 내 생각이나, 사람(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만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이 세상 끝은 무엇으로 끝나나?
인자의 다시 오심으로 끝납니다.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전쟁, 기근, 전염병, 천재지변 등 종말적 두려운 상황이 세상 끝이 아니고,
인자가 다시 오시는 것으로... 세상은 끝이 나게 됩니다.
그 세상의 끝을 향해 우리는 달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두려운 사건이지만
성도인 우리들에게는 최고의 순간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도전하신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서서 머리를 들고' 기쁨과 소망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이 가져오실 구원을 고대해야 됩니다.
3) 세 번째, 우리가 두 가지 조심해야 될 것은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방탕과 술취함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별로 없죠.
그러나 '염려'가 정말 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딱딱해지게 하고, 굳어지게 합니다.
만약 우리 마음이 굳어지게 되면, 우리는 이 마지막 때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깨어서 항상 기도해야' 됩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많은 은혜를 주셔서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을 하고 있고, 또 공사들도 많고,
저도 외부에 활동들도 많고... 그러면서 마음이 정말 이렇게 많이 무거워졌어요.
진짜 이 말씀대로 '염려 때문에 짓눌리고, 마음이 딱딱해지고' 하는데,
그런데 제가 하나님께 어렵게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렇게 제가 말씀을 드릴 때, 하나님이 저한테 말씀하셨습니다.
'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네가 지금 그런 고민 걱정하는게, 내가 너한테 은혜를 주어서 하게 된 고민인 게지..'
아니 은혜를 안 줘서 생긴 고민이 아니잖아요.
제가 지금 고민을 하고 있는 거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그거 어떻게 잘 감당하나?' 그것 때문에 생긴 고민이죠.
이제 제 마음에 '불평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주신 은혜를 그냥 감사하며 살자'
정말 제가 그 마음에 받은 교훈대로, 제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거 정말 제가 걱정할게 아니고, 감사할 거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랬더니 오래간만에 제 마음이 시원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교회를 섬기는 거에 대해서 기대가 생기고, 즐거워졌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건강 때문에, 돈 때문에, 관계 때문에 마음이 염려에 짓눌려 가지고
결국 딱딱해지고 굳어져서(본문에 '둔하여져서') .. 어떤 감격도, 어떤 기대도, 어떤 사랑도,
내 삶에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 가르침을 기억하셔서
주님이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깨어있어서, 항상 기도하면서
주님이 마지막 때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그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유세비우스가 기록한 기독교 최초의 역사 기록
이 책은 전 10권으로 된 최초의 교회사로서, 전반부 7권에는 303년까지의 교회 역사가,
후반부 3권에는 323년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서방교회보다 동방교회의 사료가 더 많이 나타나는데,
주로 변증적 입장에서 기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