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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16장 죄의 결국과 깨달음

LNCK 2024. 9. 10. 16:42

https://blog.naver.com/karamos/80141874655

 

죄의 결국과 깨달음           렘16:9~21              2008년

 

서론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과 삶이 일치된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말과 삶으로 두 가지를 증거 했습니다.

 

첫째, 유다백성들의 죄는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교정 불가능한 죄라는 것입니다.

렘17:1절에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금강석은 다이아몬드입니다. 다이아몬드는 파괴력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이아몬드로 뭘 새기게 되면 지울 수가 없습니다.

유다백성들의 죄는 다이아몬드로 마음 판에 새겨진 교정 불가능한 죄라는 것입니다.

 

17:9절에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13:23절에도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흑인이 세수 비누로 세수해서 얼굴이 하얗게 될 수 있으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증거한 내용은 인간은 아담 이후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죄성을 가진 존재요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성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전적타락을 증거한 것입니다.

 

둘째, 죄에는 반드신 심판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은 사망입니다. 육신적인 사망은 물론이요 영영히 타는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둘째 사망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1. 죄의 세 가지 결과

 

그런데 죄값은 이런 궁극적인 지옥심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세적인 심판도 있는 것입니다.

현세적인 심판은 궁극적인 심판이 있다는 예표요, 경고인 것입니다.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에게 죄에 대한 심판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첫째, 죄는 일상적인 삶의 기쁨을 박탈합니다. 16:1~9

 

16:9절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일상적인 기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대신 고통과 비참함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6:1~9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세 가지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3가지 금지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아내를 취하지 말고 자식을 낳지 마라, 즉,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상갓집에 가서 곡하지 마라. :5

-잔칫집에 가서 먹거나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8

 

1) 결혼하지 말고 자녀를 낳지 말라   16:2~4

전쟁이 일어나면, 임신 중이거나 어린 자녀를 가진 사람이 제일 괴롭습니다.

 

4절에 ‘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묻어 주지 않아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리라’

 

장차 전쟁이 나서, 자녀가 4절의 비참한 상태가 될 터이니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고, 자녀를 낳지 말라’고 하신 거죠.

 

예수님도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24:19

 

예레미야의 돌출적인 독신 행보는, ‘행위 예언’인 것입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 닥칠 일을, 미리 경고로 보여주는 거죠.

 

2) 상갓집에 가서 곡하지 말라 :5~7

큰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가지 말고,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가지 말며

이웃집이 잔치를 해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 생일에도 가지 말고 어머니 생일에도 가지 말며 먹거나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혼상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일상사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동정하는 일이

 

유대인들에게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 백성에게 미치는 재앙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죽음이란 미처 고려의 대상조차 될 수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3) 잔칫집에도 가지 말라 :8~9

모든 결혼식이 완전히 없어져 버릴 것임을..

예레미야가 ‘행위 예언’을 통해, 예언한 것입니다.

 

즉 바벨론 침략이 일어나면, 상갓집, 잔칫집 가는 일도 다 중단된다는 거죠.

그만큼 죄의 대가가 참혹하다는 것입니다. 사태가 엄중해지니까요.

 

죄는 이처럼 일상적인 기쁨과 재미를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살맛을 빼앗아 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살맛이 안 나는 분 계십니까?

죄 때문에 그런 줄 아시기 바랍니다.

죄는 살맛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2. 둘째,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아 갑니다. 16:10~13

 

13b절에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박탈해 간다는 것입니다.

 

10절에서 유다백성들이 질문을 합니다.

“네 Jeremiah 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마치 죄가 없는 사람이 질문하듯 하는 뻔뻔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파렴치한 질문에 대답을 하십니다.

11절에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니까 이 뻔뻔한 유다백성들이 또 질문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면 우리 아버지를 벌주시지 왜 우리한테 그 벌을 주십니까?”

 

그러자 12절에서 하나님이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라고 대답하십니다.

 

30년 전에 사회가 악했으면 30년 후는 좋아져야 하는데

더 악해지고 앞으로 30년 후는 더더욱 악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전염성이 있고 시대를 더해 갈수록 더욱 악해지는 증가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죄를 짓고, 아들은 더 죄를 짓고, 손자는 더더욱 죄를 짓고

증손자는 더더더욱 죄를 짓습니다.

죄가 교정되고 개선되기는 커녕 심화되고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은혜를 거두어 가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어가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3. 셋째, 죄는 하나님의 철저한 보응을 초래합니다.   16:16~18

 

18절에 “내가 위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니라”

 

미운 물건의 시체라고 하는 것은 악한 형상을 가진 생명 없는 우상

lifeless idols with vile images 이라는 뜻입니다.

악한 형상을 가진 생명 없는 우상들로 하나님의 땅을 더럽혀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악과 죄를 배나 갚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200원 뺏기고 400원 찾아온다는 의미의 배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그에 합당하지만 ‘많은(배나)’ 보응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16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암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어부가 고기를 잡듯이, 포수가 활을 쏴서 짐승을 잡듯이

바벨론 군인들을 불러 유다백성들을 잡아서 포로로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유다는 주전 605년 여호야김이 통치하던 때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느브갓네살은 바로느고라는 애굽의 왕과 갈그미스라는 전쟁을 했습니다.

거기서 바벨론왕이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포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3년 정도 저항하다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렘22:13~19참조

이것이 1차포로입니다.

 

그리고 주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은 8살에 즉위를 해서 세 달을 통치하다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끌려가서 바벨론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줬습니다.

 

주전 587년 시드기야가 통치할 때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결국 유다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솔로몬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여 결국 유다는 완전히 망해버린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

 

예레미야서를 보게 되면 유다백성들이 망하고 벌 받는 얘기만 있진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면서

꼭 그 가운데 한 두 구절은 색깔이 다른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14~15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역사에 보면 두 번 포로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애굽의 바로왕에게 포로가 되었었고

또 한 번은 바벨론 왕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능력이나 의지로는 절대로 해방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만 가능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강에 던져져서 죽게 됐을 때 하나님이 건지셔서 친어머니가 유모가 되어 젖을 먹이고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아 40년 동안 온갖 교육을 다 받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0년은 광야훈련을 받았습니다.

 

80살이 되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낸

출애굽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모세가 똑똑해서 그렇게 된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요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피, 개구리, 이, 파리, 전염병, 독종, 우박, 메뚜기, 어두움, 장자의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결국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놔주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오니까 홍해가 넘실거립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꺼내자 홍해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갈라진 갯벌을 마른땅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200만 명이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뒤에 애굽 군대가 병거를 이끌고 쫓아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널 때

다시 물이 합쳐져 애굽 군대 병사는 한명도 살지 못하고 다 몰살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출애굽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것도

오직 하나님의 간섭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벨론을 멸망시킨 고레스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아닌 이방인입니다.

이상한 것은 이방인인 고레스가 칙령을 발표한 것입니다.

 

에스라 1:2~3절이 고레스 칙령의 내용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레스가 어떻게 이런 소리를 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밤에 고레스 꿈에 나타나서 “네 이름이 고레스지?” “예,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여호와다.” “여호와가 누구십니까?”

“내가 하나님이다.” “그런 분이 계셨습니까?” “있지.”

 

“너는 지금 온 세계를 정벌하는 군주가 되었는데 네가 네 힘으로 된 줄 아냐?

아니다. 내가 네게 그런 권세를 주었다. 그대신 너는 내가 명령한 한 가지를 해라.”

 

“뭡니까?” “내 백성이 너희 나라에 지금 포로가 되어있다.

그런데 내 백성을 네가 풀어줘라. 그리고 내 백성이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해야 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네가 공급해 줘라.

그러면 내가 네게 복주겠지만 아니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렇게 꿈에 말씀하셨는지 모릅니다.

 

고레스 왕은 느브갓네살이 빼앗아 온 성전의 모든 기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고스란히 전부 넘겨줍니다. 그리고 유다백성들 뿐만 아니라 바벨론 백성들에게도

은, 금, 짐승 등으로 하나님의전을 위해서 예물을 드리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이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믿지도 않는 고레스가 어떻게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간섭과 특별은혜가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결국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유다백성은 70년 동안 고생을 하다가

열조의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노예에서의 해방이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의 해방이나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자유의지로 되었다고 하는 헛된 소리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주이심을 알 수도 없고,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내 죄 값을 갚은 것임을 알 수도 없으며,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그 후에 얻은 깨달음     16:19~21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죄를 드러내시고 심판하시며 노예로 만드시고

그러다가 또 구원하시는 과정을 구약성경에 두 번씩이나 반복하시는지

그 목적이 본문 19~21절에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열방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허무하고 망탄하고 무익한 것 뿐이라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19절의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시여”는 예레미야가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열방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여기서부터는 말하는 주체가 다릅니다.

주어가 열방입니다.

 

땅 끝에서 온 열방이(the nations from the ends of the earth)

주께 이르러 말을 합니다. 땅 끝에서 온 열방들은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이 이런 깨달음이 있는 세 가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죠.

 

▲첫째, 조상들이 섬겨온 우상은 거짓되고, 무가치하고,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허무하고 망탄하고 무익한 것 뿐이라”  :19

 

우리 대한민국이 5천년의 역사가 있고 4900년 이상 우상을 섬겨왔지만 무엇이 유익했습니까?

거짓되고 무가치하며유익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우리 조상이 섬겼다 할지라도, 그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고 유익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방인들이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포장을 하고 나와도 그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셔서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게 축복입니다.

이제 이방인인 우리도 아무리 조상이 섬겨왔어도 우상은 허탄하고 망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인간이 만든 신은 참 신이 아닙니다.

본문 20절에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이 말씀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신은 스스로 존재해야지 신을 인간이 만들면 그것이 무슨 신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본문 21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왜 유다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노예 되고 해방하고

그런 걸 두 번씩이나 반복하여 구약성서에 기록해 놓으셨느냐?

 

그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구나.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시구나.”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론

 

본문 예레미야 16장은 대단히 평범한 말씀 같아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경륜을 구약적인 언어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11:11~12절에서 신학적인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죄는 이렇게 심판받는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남은 자는 이렇게 구원받는다는 실물교육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걸 보여주신 이유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고생은 유대인이 하고 구원은 우리가 받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지금 유대인의 죄를 드러내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유대인과 비교해서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를 구약성경을 통해 거울로 보고

위대한 깨달음과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상숭배는 헛것이고 우리의 일상적인 행복을 박탈해 가며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아 가고 하나님의 갑절의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신은 한 분 이시고 참신의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자는 벌을 받고 재앙을 받고 저주를 받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은 축복과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지 100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을 이처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지난 100년 동안 우상이 헛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시며

하나님을 믿는 건 우리가 죄인이라 믿을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아야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이 진리를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우리도 알고 우리 후손에게 더 가르쳐서 우리 후손도 복받고

나아가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우리 대한민국은 살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복받고 우리 후손도 복받는 길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1:20절로 21절에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원가지인 유대인들도 아끼지 않고 심판하셨는데 하물며 원가지도 아니고

접붙임바 된 이방인인 우리가 교만하고 믿음을 떠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어찌 아낌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우리 대한민국을 향해하시는 말씀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도 우상에 절하지 마십시오. 가정파탄이 나더라도 우상에 절하지 마십시오.

절하지 않아도 가정파탄이 안 납니다. 우상에 절하지 않으면 파탄날 것처럼

공갈치던 악한 사단, 원수, 마귀가 다 떠나가고, 가족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공갈이 무기입니다. 공갈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섬겨야 우리는 잘됩니다.

우리 후손들에게도 그걸 가르쳐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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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별 해석  (참고 자료)

 

16: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본장의 말씀은 여호야김 통치 기간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16: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예언의 계시는 직접적인 설교나 상징적인 행위에 의해서 전달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한 선지자의 생애나 또는 그의 가족 생활을 통해 전달되기도 하였다.

 

이사야의 가족(사 8장), 에스겔 아내의 죽음(겔 24:15-27),

호세아의 불행한 결혼(호 1-3장) 등은 다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하지 말라’는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 역시 말씀 선포의 본보기 중 하나이다.

 

그러나 구약에서 독신 생활을 명령하는 이 같은 부르심은 대단히 독특하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대가족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으로여겨졌다(창 2:17, 시127:3-5등 ).

 

이런 반면에 자식이 없는 것은 저주로 간주되었다(창 30:1, 삼상1:6-8 등).

그리고 동정(童貞)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애곡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것으로 여겨졌다(삿 11:37),

따라서 독신을 명하는 본문의 상황은 유다의 종말이 가까이 와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징조였다. 수많은 백성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에서 죽거나 사로잡혀감으로

생이별을 당해야 하므로 자식과 아내를 둔 자들보다는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

 

16:3 이 곳에서 낳은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머니와 그들을 낳은 아버지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오니

16:4 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묻어 주지 않아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리라

 

유다 백성에게 임할 환난이 묘사되고 있다(15:1-4 참조).

 

'독한 병으로 죽고 매장함을 얻지 못하여'

본절에는 '역병(독한 병)', '칼', '기근' 등의 모티브가 쓰이고 있다.

'독한 병'은 문자적으로 '질병의 죽음'이라 번역되며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치명적인 병을 가리킨다. 또한 죽은 시체들의 수효가 하도 많아서 애곡하거나

매장할 겨를조차 없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16: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초상집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사랑을 제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애곡하지 말라'

온 백성에게 미치는 재앙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죽음이란 미처 고려의 대상조차 될 수가 없음을 나타낸다.

본절의 핵심은 민족적 참사가 임박해 있는 상황에서

친지와의 사별에 대한 애도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사랑을 제함이라'

'평강'이란 말은 가장 폭넓은 의미를 가진 행복의 총체를 말한다.

이제까지 변함없는 사랑과 동정을 그들애게 베풀어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제 그것을 거두어가실 것이다. 본절에 쓰이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세 단어인 '평강'(솰롬), '인자'(헤세드), '긍휼'(라하임)에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 그걸 제하시는 것은,‘언약 파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이것들이 전부 몰수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남은 것은 재앙뿐이다.

이 같은 저주와 최종적인 재앙은 모두 언약 파기의 결과이다.

에스겔은 그의 아내의 사망에서 이와 비젼되는 파멸 상황을 보았다(겔 24:15-27).

 

16:6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 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머리털을 미는 자도 없을 것이며

 

본절에는 장례 의식과 관련되는 여러 항목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이교도 의식과의 연관성 때문에 이스라엘 내에서는 금지되어 있었던 것도 있다(레 19:27,28, 21:5, 신 14:1).

 

특히 '자기 몸을 베거나'라는 표현은 유다 내에 만연해 있었던 이교적 관습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습은 슬픔의 표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달래주는 의식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같다.

 

16:7 그 죽은 자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자와 떡을 떼며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사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게 할 자가 없으리라

 

본절에 언급된 바 '떡을 떼고 위로의 잔을 마시운다'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략 두가지로 해석된다.

1) 죽은 자의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부정하게 여겨졌으므로 초상집에 모인

고인의 친척들을 위해 이웃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해 왔던 것을 가리킨다(삼하 3:35, 겔 24:17, 호 9:4).

2) 죽은 자와 관련되는 애도가들의 금식이 끝났을 때 그들에게 주어졌던 것을 가리킨다(신 26:14, 겔24:17, 호9:4).

 

16:8 너는 잔칫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잔칫집에 들어가서 마시지 말라'

'잔칫집'을 대연회장이나 선술집을 가리키는 용어일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아무튼 이것은 앞의 상가와는 대조적인 위치에 있다.

 

클라크는 이를 장례 후의 연회로서 죽은 자를 달래고 생존한 친척들을 위로하기 위한 연회라고 설명한다.

이런 류의 연회는 전세계에 걸쳐 널리 알려져 있는 보편적인 것이긴 하다.

 

그러나 다음 절에 언급되어 있는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라는 내용을

고려하건대 결혼 축하연 따위의 흥겨운 잔치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나을 것이다(7:34, 25:10, 33:11 참조).

 

16: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 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짧은 주제들로 연결되어 있는 2-8절의 내용이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고 있다.

민족적 파멸에 대한 신탁의 말씀은 예레미야의 사사로운 결혼 금지 명령에 대한 메아리로서

모든 결혼식이 완전히 없어져 버릴 것임을 언급한다.

 

16:10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선포하심은 어찌 됨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냐 하거든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이 백성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하나님께 전혀 악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이처럼 자기들에게 그토록 심한 분노를 벌하느냐고 항의하려 든다는 암시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미 교정의 차원을 넘어서 있었으므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알려주심으로써

그들의 입을 아예 막아버리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16:11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그들을 섬기며'

하나님은 이미 출애굽 당시부터 조상들의 죄악을 그들 후손에게 내리실 것이라고

선언하신 바 있다(출 20:5, 34:7, 신 5:9).그러나 그들이 선하고 바르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조상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조상에게서 나쁜 본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죄가 죄인지를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는 자들의 쓸데없는 핑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조상들의 악행을 보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바른 길로 가야 마땅했던 것이며,

이에 대해 하나님은 율법을 받았음에도 율법에 반한 행동을 한 그들에게는 이방인보다

더 큰 심판이 있어야 마땅하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16:12 너희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하고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그들이 조상들의 본을 따르지 않았다면

조상들의 죄악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조상의 전철을 답습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훨씬 더 큰 죄악을 저질러왔다.

 

16:13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유다인들은 참되신 하나님보다 그들이 발견하고 만들어 낸 우상들을 더 좋아했으므로,

그들돠 그들의 조상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땅으로 추방되어

거기서 마음껏 더럽고 타락한 예배를 드리도록 허용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과 참된 종교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런 결과만 야기될 뿐이다.

 

더구나 그들은 유다 땅에서와 같은 자유로운 상태에서가 아니라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 가운데서

우상 숭배를 하게 될것임을 말한다. 참자유는 오직 하나님 안에 있으며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님을 떠나 사악한 우상을 섬기는 것은 노예 상태와 속박을 자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16: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6:15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이 두 구절은 23:7, 8과 거의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이 구절들이

유다 백성에게 닥칠 심판에 관한 서술의 흐름을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많은 주석가들은 이 구절들이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갔던 곳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땅과 이스라엘의 미래의 회복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로기의 저작이거나 아니면 좀 후대의 어느 편집자의 삽입구일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포로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포로기에 기록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하나님은 약 한 세기 전에 이미 포로로 끌려갔던 북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유다 또한 멸망과 포로 생활로 이어지는 쓰디쓴 좌절을 겪고난 다음에

다시금 귀환케 될 것을 예언하고 계신 것이다.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갈대아로부터 해방시키실 여호와의 크신 권능과 주권을 시사한다. 그곳으로부터의 구원은 애굽 땅에서 그들의 조상들을 구원했던 것 이상으로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Clarke).

 

16: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 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본절에 어급되는 어부와 포수(捕手)의 비유는 대적들에 의해 당하게 될 여러 참상들을

적절하게 밝혀준다. 여기서 어부는 유다인들을 그물에 잡듯이 하여

포로로 잡아갈 대적들을 비유하며(암 4:2, 합 1:15 참조),

사냥꾼은 폐허화된 성읍들을 떠나 산속이나 계곡에 피신한 이들까지 찾아내어

살육하거나 잡아가는 대적들을 비유한 말이다(4:29, 삿6:2, 삼상13:6 참조).

 

16:17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은폐되지 못함이라'

숨거나 피난하려고 하는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여호와의 눈이 그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악한 행위나 죄악도 여호와로부터는 숨겨질 수 없다.

 

16:18 내가 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배나'(미쉐네)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유다에게 임할 징벌이

그들의 악행보다 배나 더 심하다는 뜻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히브리적 용례상 이는 '충분한', '완전한'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사 40:2).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유다 백성은 그들의 우상과 가증스러운 것들로 여호와의 땅을 더럽히고 오염시켰다.

여기서 '미운 물건의 시체'란 우상 숭배에 사용된 짐승의 시체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들의 숭배 대상이었던 생명없는 우상들 자테를 똑같은 것으로 보셨음을

시사하는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레 26:30 참조).

 

한편 본절의 '내 땅'과 '내 산업'이라는 두 표현은 가나안이 궁극적으로여호와의 땅이요,

여호와의 산업이라는 믿음을 반영한다(출 15:17, 수22:19, 시 79:1).

이 땅에 우상과 가증스러운 것들이 존재함으로 해서 여호와의 주권은 모욕을 당하게되었으며

이는 곧 언약 파기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럽히며'에 해당하는 '할랄'이라는 동사는 '성전', '안식일',

'내 거룩한 이름','내 집', '언약', '제단' 등과 같은 명사와 빈번하게 함께 쓰였는데,

그 어떤 경우든지 여호와의 거룩성을 침해하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시체와 같이 부정한 것이나 언약 밖의 사람들, 그리고 우상이나

그밖에 여호와의 특별한 거룩하심에 바쳐지지 않은 것은 모두 거룩한 것을 더럽히는 의미를 지녔다.

 

16:19 여호와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 날의 피난처시여 민족들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 뿐이라

 

'열방이 땅 끝에서' 심지어는 이방인들조차도 그들의 신앙에 수치심을 느끼고

그들의 우상을 내버릴 날이,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을 믿었으며 헛된 것에 경배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부르실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둠 속의 빛인 것이다. 이런 음침하고 우울한 심판의 문맥 속에서도

온 세계가 완전히 회복되어서 빛과 같이 밝아지는 때가 있으리라는 은혜스러운 약속이 담겨 있다.

 

16:20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19절에 이어 본절 또한 메시야 시대의 비전을 암시한다.

그때에는 회심한 모든 자들이 우상 숭배의 헛됨을 분명히 자각하게 될 것이다.

 

16: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이번에는 여호어가께서 직접 열방들을 가르치는 과업을 수행하실 것이다.

그가 가르치실 내용은 그의 '손'과 그의 '능력'이다.

 

'내 이름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이름'에는 그 사람의 특성이 내포되어 있는데 여호와란 이 이름에는 압제받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능력의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출 3:13-17 참조).

출애굽 사건은 이 같은 여호와의 능력이 발휘되었던 사건이었다.

 

언젠가는 열방들이 여호와란 이름 속에 포함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주권을 행하시는 주이심을

또한 깨닫게 될 것이다.

한편, 클라크는 이 구절을 유다 백성에게 주어지는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확정하는 말씀으로 해석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