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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다, 집을 열다

LNCK 2024. 9. 10. 22:0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사도행전


https://www.youtube.com/watch?v=Bj047fK-9p8
마음을 열다, 집을 열다        행16:11~34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쓰다가 
여기저기 막히고 그래서 부름을 받고 유럽으로 갑니다.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라는 환상을 보고서 거기로 건너갑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갔다'라는 말이죠.
당시 사람들이 '아시아'라고 했을 땐, 지금의 튀르키예 서쪽 지방 정도를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중해 세계'라는 문화권에 같이 속해 있어서 
아시아(드로아)에서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도, 아시아 쪽과 유럽 쪽은 상당한 문화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바다를 건너는 것은 대단한 부담이었고, 모험이었습니다. 

◑행16:11~12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네압볼리가 빌립보로 들어가는 항구죠. nea polis (신도시) 입니다. 
그래서 당시 지중해 세계에 수많은 네압볼리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네압볼리가, 지금 이탈리아의 미항으로 유명한 나폴리, 
나폴리 라는 말이 바로 '네압볼리' 에요.  nea polis

성지순례로 그리스 네압볼리에 가면, <바울 도착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 그림이 있는데, 누워있는 바울 밤에 마게도니아 사람 군인으로 나오죠. 
그가 '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래)
(성경에는 도와 달라고 한 자가 그냥 '한 사람'인데, 그림에는 군인으로 나오네요. 아마 전승인듯)

 


그 말을 듣고, 바울이 배를 타고 유럽 땅에 내리는 장면을, 성화로 그려놓았습니다. 
이 성화 그림만 봐도 '두 세계가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왼쪽 아시아 쪽은, 성 안에 들어있어서 뭔가 좀 답답하고 폐쇄적인 그런 느낌인가 하면, 

그림의 오른쪽 유럽 쪽은, 이렇게 쫙 펼쳐져 있는, 개방적인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도착한 선교지가 빌립보입니다. 
지금 빌립보에 가면 아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요. 


위 사진 중간에 있는 큰 도로는 비아 에그네티아, 
로마의 대동맥에 해당하는, 동서를 잇는 큰 고속도로입니다. 

빌립보는 특별히 로마시대 유적이 잘 복구되어 있어서  *현재 명칭 필리피
가서 다녀보면 '바울이 이런 곳을 이런 느낌으로 다녔겠구나'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당시를 복구해본 그림(상상도)인데, 굉장히 멋진 타운이죠. 

 


아주 살고 싶은.. 요즘 기준으로도 아주 좋은 그런 타운입니다. 
위 사진을 확대하면, 극장이 나옵니다. 


이 극장 유적이 지금도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여름에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은, 이 극장에서 공연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고전 연극을 드라마를 하기도 하고, 현대 락밴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2천 년 전에 지은 이 극장에서, 그대로 현대 관객들이 앉아서 
문화적인 행사를 즐기죠. 

성 바깥으로 나가면 이렇게 조그만 강가에 유적지가 있습니다. 


루디아가 세례를 받았던 강가의 세례터가 있고, 
그 바로 옆에 조그만 '세례기념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내로 들어가면 '바울의 감옥터'가 있습니다. *아래 사진  


바울이 갇혔던 곳이 '정말 여기다'라고 딱 확정하기는 힘들지만, 
대략 어떤 느낌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바울이 이런 옥에 갇혔구나' 하는 걸 상기할 수 있는 유적지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갈 때는, 환상을 보고 갔습니다. 
'와 달라'고 요청해서 갔습니다. 

요즘 우리 같으면 '어디서 와주세요, 선교해주세요' 그러면,
그래서 바다를 건너 왔으면, 공항이나 항구에 누가 영접하러 나와야 되잖아요. 

어디 집회 가면 플랜카드라도 붙어 있잖아요.
그러다 2천년 전에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될지도 전혀 모르는...

너무나 낯선 빌립보였어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도시의 방문보다, 바울의 마게도냐 방문 첫 도시 빌립보는,
처음부터 대단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가 어딘지 전혀 모릅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성 출신이기 때문에, 
그래도 자기가 살던 동네는, 오늘날에도 중동-아시아 입니다. 
그런데 지금 도착한 빌립보는, 유럽인들, 그리스-마게도냐 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거기는 문화가 다릅니다. 동방과 서양은 문화가 완전 다르죠.
그리고 빌립보는 로마의 영향력이 컸던 도시입니다.
-빌립보는 '작은 로마 little Rome' 라 불릴 만큼, 강력한 로마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주1)

빌립보에서,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 쪽과 시저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전쟁을 했는데,

이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 쪽이 완전히 승리하죠. 
그래서 로마가 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데, 
바로 그 전쟁에서 승리한 자리, 그 도시 빌립보가 어떤 곳이 되었겠습니까?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이 도시를 정말 멋진 도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개발해서 퇴역 군인들에게 땅을 불하해주고요. 
'여기에서 로마의 영광을 보여주겠다. 팍스 로마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 옥타비아누스를 따르면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 하우스를 만들겠다...' 

 

그래서 빌립보는,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시대의 모델 하우스였습니다. 아주 잘 지었죠. 
예를 들면 쇼 윈도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양장점에서 옷이 수백 벌 있는데, 쇼윈도우에 가장 좋은 옷 두 세 벌 전시합니다.
가장 멋진 옷을 신경 써서 전시 해놓는 쇼윈도우! 
로마 제국의 쇼윈도우 도시가 바로 이 빌립보입니다.   *당시 명칭 필리포이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12
위 구절에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12
오늘날 우리에게 '식민지'라는 말은 수치스러운 말이죠. 안 좋은 말이죠. 

그런데 2천년 전 당시에는 '로마의 식민지다' 그러면 굉장히 자랑스러운 말이었습니다. 
로마의 직할 도시였고, 특히 빌립보는 식민지 중에서도 특별한 식민지였습니다. 
로마 시민이 갖는 모든 권리를 빌립보 시민이 동시에 갖는 거예요. 
퇴역한 군인들을 위해 건설한 도시라서 그랬습니다.

로마 시민이 얼마나 대단한 권리입니까? 
그래서 '로마의 식민지다'라는 말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특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빌립보는 로마 문화가 강한 지역이었고,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1 

상대적으로 다른 도시에 비해 유대인 인구가 미약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도착했던 대부분의 도시들은, 일례로 비시디아 안디옥을 보세요. 
도시로 가면 바로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가서 설교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어디로 가야 될지 알았어요. 
회당이 중심가에 있기 때문에 눈에 당장 띄여요. 

그런데 여기 빌립보에서는, 시내에 회당이 없었습니다. 
유대인 인구가 거의 없었고, 혹시 소수가 있어도 드러내놓고 행세를 못했던 것 같아요.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그래서 13절에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과거 성경에 '기도처가 있을까 하여' 했는데, 그 번역이 더 맞습니다. 

그냥 '기도할 자리가 있나?' 이게 아니고 
'기도처'라고 곳은, 작은 회당이에요. 

당시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결성했는데, 
성인 남자 10명이 있어야 최소 회당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게 안 되면 조그만 '미니 회당, 준회당'을 '기도처'라 그랬죠. 

그래서 '문 밖 강가에 나갔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하면,
유대 이민자들이 와서, 어떤 사회의 중심 거리에 회당을 짓는다는 것은 
그 지역사회에서 좀 성공했고, 행세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 빌립보 중심가에 진출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이제 시 외곽지역, 변두리로 나가서 찾아보는 거죠.
혹시 유대인들이 모이는 '기도처'가 있을까 해서...

13절에 '문 밖 강가에' 나갔는데, 
거기서 문 밖은, 집의 문밖이 아니라, 빌립보 성문 밖을 뜻합니다.
 
옛날에 서울의 사대문 안에는 양반들이 살았고 
백정들, 상민들은 사대문 밖에 살았듯이...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시 외곽 변두리 강가에서, 모여 있는 여성들을 만납니다. 
빨래하러 나왔던 걸까요? 어쨌든 거기 여성들이 모여 있었어요.
거기서 바울이 말씀을 전합니다.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이것이 유럽전도의 시작이에요. 바울이 도착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한 사람이 마음 문을 여는 겁니다. 

우리가 선교를 갔다고 합시다. 엄청난 선교팀을 꾸리고 갔어요. 
거기서 대단한 행사를 합니다. 국내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프로젝트를 하고 행사를 기획을 해도,
사람이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즉 하나님이 그의 마음 문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맹탕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러나 그냥 허술하고 초라한 모임이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여시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외인 것이, 회당도 없고, 유대인들도 별로 안 살아요. 
꿩 대신 닭이라고, 겨우 비슷한 모임 하나를 겨우 만났는데, 
그 장소도 시내가 아니고, 저 성밖 변두리 강가예요. 

루디아는 유대인도 아니고, 빌립보 시민도 아니고, 
자기 고향 두아디라에서 빌립보로 왔다 갔다 하는 여성 사업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과의 만남이, 유럽 선교의 문을 여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만, 주님이 그 마음을 여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전도자)의 말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이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세계 전도의 역사를 보면, 그냥 많이 준비하고 했던 행사도 좋지만, 
그냥 지나가는 만남에서 우연히 전도하고, 마음을 연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열리면 인생이 바뀝니다. 마음이 열리면 교회가 세워집니다.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돈이 많은 사람이, 자기 돈을 많이 내가지고, 멋진 건물을 짓고 '교회 시작합시다' 해서 
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거예요. 
선교지 가서도 마찬가지죠. 선교사가 아무리 큰 건물을 지어놓아도...
현지인들의 마음이 열려야 됩니다. 

마음이 열리면...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가 세워지고, 한 도시가 바뀝니다. 
마음이 열릴 때, 역사의 큰 물줄기가 바뀌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의 교회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재미있는 프로그램, 멋진 건물... 다 필요하지만, 먼저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교회 학교는 어떻습니까? 맛있는 간식? 
요즘 목사님들 만나면, 다 그런 고민이 너무너무 많아요. 
'다음 세대의 교육이 참 중요하다. 열심히 하자!' 
그래서 교회마다, 재정이 참 어려운데도, 교육비는 최대한으로 지출합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교회의 교회학교들이, 어떻게 해야 될 줄을 몰라요.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간식비, 선물비 뿐이에요. 

아이들 간식 주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필요하죠. 
그런데 문제는, '맛있는 간식이 없으면.. 좋은 선물이 아니면.. 
우리는 이 아이들을 붙잡아 놓을 수 없다' 라고 하는 생각,  
우리 어른들이, 말씀의 능력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 
그 한 사람을 주님은 찾으십니다.

여러분, 한 사람(여기서는 루디아)이 마음을 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는 거예요. 
주님의 약속은 오늘도 유효한 줄 믿습니다. 

그 한 사람, 루디아 같은 사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이 사람이 나중에 자기 집 문을 여는데요. *빌립보 교회의 탄생 
알고 보면, 이게 생명을 걸어야 할 정도의 모험이었어요. 
그런데도 그는 담대하게 엽니다.

오늘 우리 부모들은, 정말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공부도 잘하고, 성경도 뭐 알면 좋지...' 이런 게 아니라, 
정말 우리 어른들이 먼저, 말씀에 내 인생을 거는.. 그런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봄이었을 거예요. 우리 교회 권사회 모임에 가서 
제가 이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4

우리 권사회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할 때마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든 교회학교 부서까지 
말씀을 향해서.. 아이들의 마음이, 어른들의 마음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 일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이 마음으로 우리가 한국 교회를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사도행전 말씀 네트워크> 입니다. 
기억하실 거예요. 행16:14절 이 말씀 붙잡고 시작했습니다. 
'주여 마음을 열어 주시옵소서!' 

「초교파적으로 해외까지 포함해서 전국에 한 500개의 교회 넘는 교회가 
오늘 똑같은 본문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1년 동안 수백 교회가, 하나로 본문으로 주일 설교를 계속해 나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내년에는 좀 더 확대합니다. 
최근 9월 19일에, 내년을 위한 프로페짜이, <목회자의 말씀 소그룹>을 시작합니다. 
크게 4 트랙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트랙 <생명의 삶>이라는 큐티책 아시죠?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한 

2트랙 <매일 성경> 아주 열심히 성경을 묵상하는 그룹입니다. 성서유니언 사역이죠.

교회에 따라서 '생명의 삶'이나 '매일 성경'의 진도와 똑같이
매일 새벽기도 설교, 매주일 설교를 하는 목자들이 많습니다. 

3트랙 <예배와 강단> 이건 교회력을 따라 설교하는, 교회의 아주 오랜 전통이죠. 

4트랙 <미목원> 제가 원장으로 섬기는 미래목회와 말씀연구원이 따로 마련한 트랙.

이렇게 4트랙으로 각각 목사님들이 같이, 말씀 운동을 함께 이어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생명의 삶>과 <매일 성경> 그룹이 굉장히 큰 그룹인데, 
'함께 만나서 연합하고 어떤 일을 도모하자' 라고 하는 것만 해도
여러분 한국교회에 예전에 없던 엄청난 사건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이 계획을 우리 영상으로 잠시 보시겠습니다. *맨위 동영상의 17:00~18:10

2024년 9월 19일 (목) 오전 10시에, 서울 동대문에 있는 중앙성결교회에서 
2025년 설교를 위한 <프로페짜이 포럼>이 열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와 기도 부탁드립니다.」

◑16:15절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의 온 집안이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거죠. 
그리고 내 집 문을 열고 '내 집에 들어와서 유하라' 라고 합니다. 

'마음을 열고'에 이어서 '집을 열지요.'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 것처럼, 
이제 빌립보 교회가 소위 가정교회가 생기는 겁니다. 

즉 루디아가 '사랑방 목자'가 되고 그 집에서 사랑방이 계속 모였다는 거죠.
마음을 열고 집을 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집을 채우는 거예요. 
우리들 가정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집'이란 말이 31절에 다시 나옵니다.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우리가 잘 아는 굉장히 유명한 말씀이죠. 
이 말씀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가, 지진이 나면서 풀려나서... 간수에게 말하거든요. 
그래서 빌립보의 최소한 두 집, 
-바울이 전도했던 루디아의 집에서 사랑방이 모이고 교회가 시작됐고, 
-간수의 집에서도 사랑방이 모이고 교회가 함께 이렇게 시작되었죠. 

그런데 왜 바울이 감옥에 갔나요? 
바울이 빌립보에서 성경 가르치러 계속해서 가는 길에 생긴 일입니다. 

◑16:16~17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바울이 깅을 가다가 귀신들린 어떤 노예 여자 노예를 만납니다. 
그는 나름대로 미래 일을 맞추기도 하고, 그래서 돈을 꽤 버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 여자가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여러 날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말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주2)

그래서 그에게 있는 귀신을 내쫓아줍니다.

◑16:19~21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마자 난리가 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잡혀서 매맞고 옥에 갇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바울이 예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빌립보 이야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가' 
이 빌립보의 특징을 '로마의 쇼케이스(상품 진열대)'라고 그랬잖아요.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이라는 말은요. 
여기서 '풍속'은, custom, manner를 뜻합니다.  *에토스

이게 단순히 그냥 우리에게는 정월대보름에 견과류 먹는 풍습 정도가 아니라, 
한 사회의 가치관과 그에 따른 문화, 라이프스타일의 총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로마 제국 중에서 가장 로마다운 이 도시에서 
로마적인 라이프스타일과 복음의 라이프스타일이 
두 개의 가치관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비교되는 거예요. 

로마의 풍속은 뭡니까? 돈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예요. 
한 여인이 귀신에서 해방되었는데, 그 주인들은 
내 수입이 줄어드니까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라이프스타일은, 돈보다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시 로마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가부장의 권리(보호)였습니다. 
가정에서 가장이 가지는 권세가 막강했습니다. 
가장은, 모든 종이나 노예의 주인이며, 자녀들까지도 아버지가 엄하게 다룰 수 있었죠.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구법의 근간을 이루는 게 로마법이잖아요. 
로마법을 공부해 보면, 로마법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 가치는 어디 있는가 하면,
가부장의 재산권을 보장해주는데 있습니다. 가부장의 권리보호! 
그것은 로마 사회가 지탱하는 최우선의 가치입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거를 무너뜨리면, 즉 남의 노예 함부로 손대서 돈 못 벌게 하면, 
'로마라는 사회가 지탱할 수 없습니다' 라고 고소한 것은,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는 상당히 정확한 고발입니다. 
(기독교 사회가 아니니까, 인권, 특히 여성의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죠)

그래서 이 여인에게는 이중의 억압이 있었습니다. 
-여성 노예가 주인들에게 억압된 것, 사회적 정치적 억압,  
 아마 주인들이 공동투자해서 종을 샀던 것 같아요.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 영적인 억압이죠.  

    여러분 얼마 전에 <새롭게 하소서>에 
    옛날에 무당이었던 분이 예수 믿고 전도자가 된 그런 이야기의 간증이 아주 재밌게 나왔어요.
    보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신내림'이라는 현상이 실제 있고, 이 사람들이 미래 일을 맞추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맞추고 알려주는 게, 그를 찾는 고객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래서 돈을 꽤 잘 법니다. 

    그런데 본인은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해요. 
    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고요. 조금만 뭐 하면 병에 눌리고요, 
    그냥 뼈가 부스러지는 고통을 겪고요. 정말 지옥 같은 삶을 삽니다. 

    귀신의 어떤 능력이 있지만, 귀신의 도구는 자기 삶에 평화가 없어요. 
    거기서 해방된 것은, 기쁜 일입니다. 드디어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복음의 해방'은 두 갈래로 일어납니다.
-영적인 억압에서 해방, 즉 복음화 Evangelization
-사회적,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  즉 인간화 Humanization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열어주는 것.

그래서 복음에는 이 두 개가 함께 가는 겁니다. 
복음화는 언제나 인간화를 포함해서 끌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로잔운동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인간화를 추구한다고, 복음화가 되는 건 아니지만 
복음화 안에는 인간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팍스 로마나'를 그들이 그렇게 자랑했지만, 
알고 보니까요.. 이 사건 보세요. 로마적인 게 뭡니까? 
가진 자들의 권리예요. '노예 주인의 평화'예요. 

여러분 이 경우에, 귀신은 말 한마디로 쫓겨났습니다. 영적 억압은 금방 해결됐습니다. 

그런데 그를 장악하고 있던 정치 권력, 사회적 억압은 대단히 강력합니다. 

이 귀신이 기생했던 '악의 세력'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사회 구조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거예요. 
정치 권력을 통해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훨씬 더 골치 아픈 문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오늘날까지 많은 사회에서! 

이 권력이 작동해서 바울과 신라를 잡아가고 매질하죠. 옥에 가두죠. 
그런데 한밤중에 찬송이 터져나옵니다. 

◑16: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저는 이 구절에 '어둠 속의 노래' 라는 제목을 붙여봤습니다. 
지금 캄캄하죠. 그 감옥에 불을 켰을 리가 없죠. 
옛날에 기름이 비싸니까, 아마도 동굴 같은 본래 캄캄한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깜깜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찬송의 노래가 울려 퍼져요. 
여러분 죽도록 맞아가지고요. 온몸이 성한 데가 없어요. 
아마도 끙끙거리는 신음소리와 아울러, 찬송이 울려 퍼지는 거예요. 

'죄수들이 듣더라' 그랬습니다. 이 찬송을 들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아 이게 뭐가 좋다고 감옥까지 와서 찬송하냐? 
무슨 마음으로 저렇게 기쁘게 노래하냐?' 궁금했을 것입니다. 

벧전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이게 여러분 전도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 바로 이거죠. 

아니 이렇게 감옥에 갇혔는데, 무슨 소망이 있길래 찬송을 하는 겁니까? 
소망이 있으니까 찬송하는 거예요.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19
돈 잘 벌던 사람이, 소망이 끊어지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예요. 분노하는 거예요. 
무너지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 로마인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적 소망은 다릅니다.  
고문당해도, 실패해도, 옥에 갇혀도 끊어지지 아니하는 소망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은은하게 찬송함으로써 보여주는 거예요. 

반면에 여러분 세상의 소망은,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끊어집니다.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 처럼요.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오늘 한국 사회를 붙잡고 있는 소망, 한국 사람들이 줄 서는 소망, 
한국의 젊은이들을 흥분시키는 소망이 뭡니까? 

사업을 했는데 대박이 났다? 부동산 샀는데 가격이 많이 올랐다? 
주식에 대박났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라면, 
어느 날 그게 끊어지면... 

투자를 잘하는 좋지만, 그런데 투자가 잘 안 될 때도 있잖아요. 
아무리 주식 전문가라도, 주식해서 돈 잃는 사람이, 돈 버는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몇 번은, 투자에 실패해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혹시 투자에 실패해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투자에 실패하면, 그걸로 끝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걸로 무너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주식에서 많이 잃었다?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거기까진 안 가도... 이혼하고, 약물 중독에 빠지고, 인생이 파탄나는 사람들이 꽤 있죠,

왜입니까? 그게 자기 인생에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자기 인생의 소망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도 '자살'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이 찬송할 때에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립니다.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는 자살하려고 그랬어요. 왜 자살하려고 했을까요? 
'감옥을 지키지 못해서 문책당할까 봐?' 뭐 그런 이유도 일부 있겠죠. 

근데 자기 잘못이라기 보다는, 천재지변이잖아요.
그렇다고 성급하게 칼부터 꺼내는 거는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거는 충분히 법정에서 다투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업무상 과실이 아니에요.
근데 간수가 바로 죽으려고 하는 건 정말 의아합니다. 

그 이유는... 로마인들은 항상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살았다는 겁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신들의 노여움을 사는 거였어요. 

옛날에 우리나라도, 가정에 누가 아프거나 사고가 나거나 하면, 굿을 합니다.
신이 노했다고 그렇게 하잖아요. 로마는 훨씬 심했습니다. 
그래서 홍수가 나거나 이러면 '신이 노한 거다'
그러니까 간수는 지진을 보고서 '신이 노한 거다. 큰 일 났다' 하고서 죽으려 했습니다. 
평소에 항상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살았다는 겁니다. 물론 사회적 억압과 두려움도 컸겠죠.

이 사람이 바울을 가두었습니다. 
고문하고 거칠게 다루는 편에 선 거예요. 그런데 지진이 났어요. 
신이 행한 일 같아요. 바울의 편에서 신이 뭔가 하는 것 같아요. 
'내가 했던 일이 신의 노여움을 샀구나!' 생각한 거죠. 
'나는 이제 죽었다. 나는 살 소망이 끊어졌다'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9월 달에 '자살 예방 걷기 대회' 합니다. 아주 소중한 대회인데 
우리가 1차적으로는 '자살하지 마세요. 생명은 소중합니다' 하고 캠페인 해야 되지만, 

정말 궁극적으로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젊은이들에게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살 것인가'를 가르쳐야 됩니다. 도전해야 됩니다. 

이 땅에 사업이 망해도, 내가 직업에서 실패해도,
끊어지지 않는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은 먼저는 간수의 죽음을 만류해요. '죽지 마세요. 우리가 다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하는가요? 

◑16:29~30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29
이건 신적인 존재 앞에서 경배하는 자세예요. 

그래서 이 대목을 보면, 분명히 신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이 스며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물어보잖아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그때 바울이 한 말이 '이르되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간수는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16:32~33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루디아의 집과 같은 일이 일어나죠. 
온 가족이, 어른과 아이가 종들과 함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습니다. 

◑16: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올라가서' 라는 말이 참 재밌어요.

 *아나고 to lead up, to lead or bring into a higher place
(대부분 영어성경에는 '올라갔다'는 말이 번역되어 있지 않아요. 한글성경에는 번역했죠)

아마도 지하나 1층이 감옥이고, 2층에 살림집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관리하는 거예요. 

굉장히 높은 가능성인데, 감옥 자체가 도시의 공공 소유라기보다는, 
자기 집에서 패밀리 비즈니스로 감옥을 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죠. 감옥을 하청받은 거죠.
옛날에 세리도 그렇게 했거든요. 그냥 비즈니스로 한 거예요. 하청받아가지고. 

그런데 이 집 문이 열렸습니다앞서 루디아의 집 문도 열렸죠. *설교제목
여러분 이 감옥이라는 곳이 어떤 느낌입니까? 무시무시한 곳이잖아요. 
쳐다보기도 싫은 곳이잖아요. 비명이 들리고.. 바울과 실라처럼 억울한 사람도 있었을 거고요. 

그래서 여러분, 감옥 문이 열리고 누군가 탈옥했다.. 지진이 났다.. 
이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은, 이 집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은 그 집에 다녀가려고 하겠습니까? 
사람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던 그 집이.. 여러분,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집이 된 거예요. 
이 간수의 마음이 열릴 때, 집의 문도 열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집의 문이 열릴 때 
우리의 삶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그게 하늘이 열리는 거예요. 

그 은혜를 오늘 여기서 누리는 것, 
그것이 여러분 하늘의 평화가 우리에게 임하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인 줄 믿습니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내 마음속에 차고도 넘쳐' 
그게 스테반의 삶이었잖아요.  행7:56

마찬가지로 이 집에 하늘의 평화가 임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세상의 모든 것이 끊어질 그날 되어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이 집에 생긴 것입니다. 

빌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아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 귀한 말씀이 특별히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빌립보서)에 나왔다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빌립보 사람들, 그 시민들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우리의 시민권은 로마에 있는지라' 그게 특권이고, 그게 자랑이고, 그게 소망이었어요. 
'로마가 우리를 보호해 줄 거야!' 

바로 거기서 바울이 선포한 복음은 '그게 아니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할렐루야! 로마가 보장해 줄 수 없는 평화, 로마가 도달하지 못했던 소망, 
어떤 일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 
그것이 바로 '하늘의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특권입니다. 

이 복음을 향해서 마음을 여는 모든 사람이 바뀌었고, 모든 가정이 다 바뀌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복음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 굳건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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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빌립보가  '작은 로마 little Rome' 로 불린 이유
로마 역사를 간단하게 살피면, 처음 수백 년 동안은 공화국이었어요. 
초기에 잠시 왕정이 있었지만, 곧바로 공화국으로 오래 유지되었고, 
그래서 원로원 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모아서 대표도 선출하고 
집정관도 뽑고 그렇게 이끌어가는 집단지도 체제였죠. 

그런데 이게 BC 1세기에 황제정으로 바뀌는데, 
이 바뀌는 지점에 줄리어스 시저가 등장합니다. 

여러분 정치적인 변화라는 게, 쉽게 될 리가 없죠. 
이 공화정을 구성하던 귀족들이 쉽게 권력을 내놓겠습니까? 
'시저가 독재하려고 한다 그래서 암살을 하죠. 

특별히 그 암살에 엘리트 청년 귀족들이 많이 가담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신망이 있었고, 인기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시저가 총애하던 사람이 
바로 브루투스 였죠. 유명한 '브루투스 너마저도' 하는 말이 이때 나왔던 말입니다. 

시저를 암살할 때, 이 브루투스의 일당은 
시저가 전쟁 영웅이긴 하지만, 독재의 길로 가니까,  
그를 죽이면 백성들이 환호할 줄 알았습니다. 

근데 백성의 반응이 싸늘해요. 
'우리(암살단)가 백성들 앞에 나가서 왜 죽였는지 
왜 이 사람이 로마의 미래에 해로운지 설득해야 되겠다.' 그래서 일장 연설을 합니다. 

그랬는데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더 분노합니다. 맞아 죽을 것 같아요. 
브루투스 일당이 당황했어요. 급하게 동쪽으로 도망갑니다. 

그 후에 한동안, 이 암살단 그룹은 완전히 폐인처럼 그렇게 지냅니다. 
그러다가 브루투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군사를 모아서 로마를 탈환하려고 전쟁을 벌이는데, 
이 옥타비아누스 쪽과 브루투스 쪽이 맞부딪힌 전쟁이 바로 빌립보 에서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전쟁은 공화국파인 브루투스 쪽과 
황제정 파인 옥타비아누스가 벌인 전쟁인데,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죠.

옥타비아누스는 시저의 양아들이며, 정치적 후계자였고, 
나중에 그는 안토니우스를 꺾고, '아우구스투스(존엄자)'로 부상됩니다.

옥타비아누스가 '내 아버지 시저의 원수를 갚겠다' 해서 벌인 이 전쟁은, 
로마가 황제정으로 가는... 
그러니까 세계 역사에 손꼽히는 아마 탑 5에 드는 
세계 역사의 운명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전쟁이었습니다. 

 

주2) 귀신 들린 여자가 한 말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 말을 바울이 부담스러워했던 이유는, 어떤 신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구원의 길'에 정관사가 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구원의 길'은, '유일한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즉 정관사가 빠져있는 거죠. 그런 경우에는 모든 종교에 있는 '구원의 길'이 되는 거죠.
 
헬라어로 '그 구원의 길'이어야 맞는데, 그저 '구원의 길'이라고 했다는 거죠.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를 가르쳐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여기 내가 길이라고 하실 때는요. 정관사 the가 붙습니다. *헤 호도스 the way
'그 길,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다른 길은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 밖에는,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구원의 길 앞에는 항상 정관사 the 가 붙습니다.
'그 길'이라고 말합니다. 
요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할 때도, 정관사 헤 the가 꼭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귀신들린 여자의 말에는 정관사가 빠져 있습니다. 
그저 '구원의 길'이라고만 말했죠.  호돈(길) 소테리아스(구원의)

무슨 얘기죠? '구원의 길'이긴 한데, 여러 구원의 길들 중에 하나 라는 얘기입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 상대주의, Universalism(보편주의)를 추구하는 자들은,
모든 종교에는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배타적 구원을 배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