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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포도를 맺으면

LNCK 2024. 9. 12. 12:06

https://blog.naver.com/karamos/80049180917

 

들포도를 맺으면                사5:1~7

 

오늘 본문의 제목은 "포도원의 노래"입니다.

조금 자세하게 풀면 "들포도를 맺은 포도원의 비유" 이렇게 됩니다.

 

이 비유는 7절에 스스로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 또는 가나안 복지,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들,

하나님이 기대한 좋은 포도는 정의와 공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맺은 들포도는 포학과 부르짖음, 아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습니다.

 

지금이 추수의 계절인 가을이기 때문에 이 비유를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애써서 농사를 지었는데 기대한 만큼 수확이 되지 않으면

얼마나 실망하고 화가 나겠습니까? 농사지을 의욕을 잃을 것입니다.

 

농부의 그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면

하나님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이 노래를 원어로 읽을 수 있다면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2절에 "극상품 포도나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의 히브리 원어는 "소레크"입니다.

그런데 소레크는 붉다는 뜻도 가지고 있고, 좋은 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바로 언덕 밑에 있는 마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천 쌀밥"이라고 하면 옥같이 희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좋은 쌀밥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르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레크"(극상품 포도)라고 하면,

소레크 지방의 붉고 탐스러운 포도를 얼른 연상합니다.

 

7절에 "그들에게 정의를 바랐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랐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라는 말씀에서

 

정의는 "미쉬파트", 포학은 "미스파흐",

공의는 "체다카" 부르짖음은 "체아카"입니다.

음은 비슷한데 뜻은 반대입니다.

 

"그들에게 미쉬파트를 바랐더니 도리어 미스파흐이요

그들에게 체다카를 바랐더니 도리어 체아카이었도다"

말이 재미있게 Word Play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아, 참 그럴듯한 비유로구나!

그렇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러 가지 축복을 베풀어주셨는데

이스라엘은 배반만 했지. 그래서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포로생활을 했지!

이 비유 참 재미있네' 하면 됩니까?

 

이 비유는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좋은 포도원을 주셨고

우리를 한 그루 한 그루 좋은 포도나무로 그 가운데 심으셨습니다.

 

이 포도원의 비유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베푼 일들을 깨달아야 하고

‘나는 좋은 포도를 맺고 있나, 들포도를 맺고 있나?’ 생각해야 하고,

들포도를 맺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됩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포도원의 원래 의미는 가나안 땅입니다.

 

사5: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1절 끝의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지요.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땅을 파서" 산은 아무리 기름져도 그대로 두면 산입니다.

지금은 산은 산대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만, 이스라엘 당시에는 이것을 갈아야 했습니다.

 

"돌을 제하고", 가나안 땅에서 원주민을 쫓아낸 것을 말합니다.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은 문화가 한 단계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무기도 우수했습니다.

 

몇 해 전에 고대 성서시대의 유물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무기들은 매우 빈약했고

가나안 원주민들의 무기는 상대적으로 우수했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철 병거, 오늘날로 말하면 탱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사기 4장을 보면 가나안 왕 야빈은 철병거 9백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625 때 탱크가 없어서 사흘만에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반대로 철 병거 한 대 없이

철 병거를 많이 가진 가나안 원주민을 무찔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좋은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삶, 인생, 좋은 포도원입니다.

 

이제는 아셈과 같은 대규모의 국제회의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의장국가가 된 우리의 조국, 좋은 포도원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좋은 포도원입니다.

시편 128편 3절은 우리 가정을 포도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회는,

좋은 포도원 가운데 가장 좋은 포도원이고 중요한 포도원입니다.

 

아가서 2장 15절의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라는 말씀에서

포도원은 교회, 따라서 이 말씀은 교회에 어려움을 주는 이단을 막으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나님의 좋은 포도원에 심겨진 극상품 포도나무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좋은 포도를 맺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들포도는 떫은 포도, 신 포도, 쓴 포도, 우리 나라의 머루 같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좋은 포도를 맺고 있습니까? 아니면 들포도를 맺고 있습니까?

 

포도원의 노래에서 가장 강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은

들포도를 맺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5절과 6절에서 아주 강한 어조로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5: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고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한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보호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땅이 황폐해져서 다시는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이 울타리와 담을 둘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좋은 생활환경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때를 따라 내리는 비, 솔솔 부는 바람, 햇볕, 모두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5: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비에게 "너는 비가 되어 땅에 내려 농작물들이 자라게 해라!"해야 비가 내립니다.

우리는 비와 구름과 햇볕과 바람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포도를 맺지 않고 들포도를 맺으면 무서운 벌을 받는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대로 실현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이 좋은 포도원을 주시고,

사람은 들포도를 맺고 벌을 받는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이라는 좋은 포도원을 마련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극상품 포도나무로 그 가운데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이라는 좋은 포도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이라는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그 결과 추방당하고 출산의 고통과 땀흘리고 밭을 갈아야 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한자로 사내 남〔男〕자를 머리 속에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밭 전〔田〕자밑에 힘 력〔力〕자가 있습니다.

힘써 수고하며 밭을 갈아야 먹을 수 있다는 창3:18~19절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들포도를 맺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가 너무 두렵습니다.

 

◑그럼 들포도를 맺지 않고 좋은 포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1. 첫째, "나는 극상품 포도나무이다"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절,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나는 좋은 포도원에 심어진 제일 좋은 포도나무입니다.

 

성경에는 좋은 포도나무에 대한 묘사들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시편 80:9~11에는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한 포도나무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렘2:21절에는 ‘순전한 참 종자, 귀한 포도나무’가 나옵니다.

호10:1절에는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가 나옵니다.

 

본문 사5:2절에 나오는 포도나무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포도나무입니다.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 알아야합니다.

나는 최고의 가치를 가진 존재입니다. 물품에는 상품, 중품, 하품이 있는데

여기 하품인 분, 한 분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모두 상품(上品)입니다. 상품 가운데서도 극상품 choicest vine 입니다.

 

자기 자신이 볼품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이 볼품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절로 불행해집니다.

정말 볼품없는 일생을 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볼품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위반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걸작품으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만드셨습니다.

 

내가 극상품 포도나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좋은 포도를 맺게 됩니다.

 

△어제 운전 중에 라디오를 듣는데, 고등학교 평준화에 대한

전화토론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평준화를 반대하는 분들은, 평준화 때문에 학력수준이 전체적으로 낮아지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평준화를 찬성하는 분들은, "학력이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

각자의 재능과 각자의 길이 있는데, 학력만 중요하게 생각해서 평준화를 반대하는 것은

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가슴에 퍽 강하게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각자의 재능과 각자의 맞는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걸작다운 삶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하나님의 좋은 포도원에 심겨진

‘극상품 포도나무’들입니다. 열등감, 소외감을 가지고 있는 분은 얼른 버리시기 버립니다.

 

▲2. 둘째,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포도를 기대하신다 하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2b절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winepress, 즙 짜는 틀

하나님은 '이제 이 포도나무들이 좋은 포도를 맺을 텐데

그것을 가지고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야지!' 기대하시며 술틀을 팠습니다.

 

누가 나에게 기대를 건다면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을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 가운데 하나가 부모의 기대였습니다.

 

선생님들에게는 엉뚱한 질문만 하는 골치 아픈 아이여서 별다른 기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들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것이 이들이 위대한 학자가 되게 하고, 위대한 발명가가 되게 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수험생의 부모 여러분, 수험생 자녀들에게 "나는 너에게 기대를 한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좋은 점수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속 좁게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스트레스 받아서 역효과가 납니다.

 

"훌륭한 사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폭이 넓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분발할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종교심리학 교수가 어떻게 보았는지

저를 좋게 여기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 군, 자네는 좋은 학생이야! 나는 자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네",

그 덕분에 제가 그 과목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를 받았고

계속해서 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분 존함이 김득렬 목사님이었는데 얼마 뒤에 교수를 그만두시고

미국에 가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1992년에 미국에서 큰 선교대회가 열렸는데

제가 강연 하나를 맡아 참석해 보니, 그 목사님이 대회장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저를 소개하면서 "이 사람은 30년 전에 제 클래스의 학생이었는데

이렇게 이 대회의 강사가 되어 여기에 왔습니다.

이 사람이 학생 시절에 제가 많은 기대를 했는데

오늘도 좋은 강연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했습니다.

그 기대 덕분에 그 날 준비한 것 이상으로 좋은 강연을 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도 큰 효과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기대도 큰 성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좋은 포도를 맺을 것이다", 믿고서 아예 술틀을 팠습니다.

 

▲3. 셋째,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내가 동참해야 합니다.

 

밭 좋고 묘목이 좋다고, 저절로 좋은 포도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차대전 후에 "우리들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 하는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나서 조금씩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는데

거기에 살고 있는 아랍 사람들이 땅을 팔지 않습니다.

 

기껏 판다는 것이 경작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오지에 있는 험악한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으니 갈기는 우리가 하자"하면서

이를 악물고 개간을 했습니다. 여기 저기에 집단농장인 키부츠가 하나 둘 생겨났습니다.

 

원래는 오지였지만, 이제는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농사를 지으며,

일조량이 좋아서 농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자몽, 대추야자 등 이스라엘 농산물이 수입되어 수퍼에 판매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키부츠에 견학을 옵니다.

그들은 키부츠들을 찾아다니며 멋모르고 "어떻게 이렇게 경치가 놓은 곳만 골라서

키브츠를 만들었습니까?"라고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안내하는 사람은 빙그레 웃기만 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땀 흘리며 갈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포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에 가면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도시

2차대전 때 폭격 맞아서 심하게 파괴된 교회당이 하나 그대로 서 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서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합니다.

 

 

성숙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자기들에게 부끄러운 장소 같은 것도

힘써 보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수용소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요.

 

저희 목양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인 정동교회 예전 예배당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너무 낡아서 헐고 새로 짓느냐, 부분적인 보수에 그쳐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이 스트라스부르 교회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부서진 교회도 그대로 두는데…"

 

이 부서진 예배당은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안전을 생각해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지는 못하게 합니다.

 

그 안에 예수님의 동상이 있는데 폭격에 오른손이 없어졌습니다.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파괴된 교회당은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서

그대로 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동상만은 저 대로 둘 수가 없지 않느냐? 손을 복구하자"는

논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한 지도자가 말하기를 "그것도 그대로 두자. 우리가 대신 예수님의 손이 되어

일한다는 뜻으로 그대로 두자" 제안을 해서, 동상도 손이 없는 모습 그대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이 되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 비료 없이 좋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도가 좋은 포도를 맺게 하는 비료입니다.

 

잡초를 부지런히 뽑아 주어야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비료도 주지 않고 잡초도 뽑지 않은 밭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싶으면

비 온 뒤에 버려진 밭이나 시골 묘지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또 농부가 잘 가꾼, 비료도 주고 김도 맨 밭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척박한 땅이라도, 비료를 주고 정성껏 가꾸니까, 열매를 많이 맺는 기름진 밭이 됩니다.

 

두 밭을 비교해 보면서, 나는 나의 ‘마음 밭’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는 본문의 ‘포도원’을 생각하셔도 됩니다.

기도의 비료를 많이 주고, 유혹의 잡초를 부지런히 뽑아야겠다..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잡초가 우거진, 못 쓰게 된 밭이나, 포도원이 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해서, 전원주택에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하소연과 탄식이 있는데, 바로 마당 가꾸기입니다.

 

넓은 마당에 푸른 잔디를 심어놓아서, 남들이 보면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데,

그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잔디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부부가 매일같이 잡초를 뽑고, 잘 가꾸어야 한다네요. 중노동이랍니다.

안 그러면 금방 잡초가 무성한.. 보기 흉한 마당이 되고 만다네요.

우리 마음 밭이나 포도원을 잘 가꾸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포도밭 만이 아니라, 술틀 winepress 을 마련하셨습니다.

포도 열매는 술틀에 들어가야 합니다. 헌신 봉헌을 말합니다.

 

술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밟히고 으깨집니다. 희생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바치고 희생해 가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포도주를 빚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포도원이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포도원에 심겨진 극상품 포도나무들입니다.

정말 극상품 포도나무들입니다.

 

좋은 포도를 맺어야 합니다. 들포도를 맺으면 안 됩니다.

들포도는 들판에 있는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들이나 맺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거저 줘도 아무도 안 먹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포도원을 주셨는데,

만약 우리가 들포도를 맺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5절과 6절의 말씀이 그대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사5: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나는 극상품 포도나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에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좋은 포도를 맺기 위해 희생 헌신 봉사하며 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탄식하셨는데,

저희 교회에 대해서는, 또 성도들 한 분 한 분에 대해서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과연 좋은 포도를 맺었도다!" 칭찬하시며

기뻐하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전 수상 중에 시몬 페레스가 있습니다.

내가 책을 한 권 소개 하겠습니다.

시몬 페레스 전 수상이 죽기 며칠 전까지 탈고한 자서전 입니다.

 

그 책 이름이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시몬 페레스가 쓴 저서 입니다.

영어로 No Room for Small Dreams 아주 좋은 책입니다.

 

평생에 수상직을 하면서 시몬 페레스 수상은 국가경영을 벤츠 기업처럼 경영해서

최악의 상태에서 최선의 나라로 만들어냈습니다.

 

시몬 페레스 수상은 농업에 대해서 뭐라 했냐면,

'농업은 과학과 기술이 95%다. 농민의 노동은 5%로 끝나야 한다.'

 

앞으로의 농업은, 뭐 고된 중노동 하던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과학 기술이 농업의 95%, 농사꾼의 노동은 5%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농업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걸 생명농업, 자연농업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원리를 농업에 이용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땅속에 무수한 미생물을 주셨습니다.

 

건강에 나쁜 미생물이 있고, 농업에 나쁜 미생물 있는가 하면

농업에 좋은 미생물들이 지천에 깔렸습니다.

 

그걸 배양을 해서, 미생물이 농사 짓도록 하고

지렁이, 곤충들이 농사 짓도록 사람은 뒷바라지하는 겁니다.

 

너무 재밌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캠벨 이라는 포도 품종인데요. 한 그루에 2천 송이가 열리게 합니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 2천 송이, 주렁 주렁 2천 송이 열린 포도나무 밑에서

방문객들이 거기서 휴식하고, 거기서 마을 얘기도 듣고..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농법입니다.

 

이런 걸 우리가 몸으로 배워가지고, 제3세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저 남미로 가서

그런 선교사로서 일하라고 '선교농장'이라고 그럽니다.

 

꼭 직접 농사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분야에서, 우리가 열심히 땀을 흘리면,

좋은 포도열매는 반드시 맺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신약에도 포도원 비유가 나오는데, 좀 비극적입니다.

눅21:33~40절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줬습니다.

이제는 포도원 열매를 얻기를 고대했는데,

악한 농부들은, 소작료(포도 소출)를 받으러 온 사람도 죽여버리고,

심지어는 아들을 보냈는데, 주인의 아들조차 잡아 죽였습니다.

 

지난번 집회에서 프랜시스 챈 목사님이,

자신의 딸을 강단 위로 부르고, 스킷 드라마로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사랑하는 자녀가 죽임당하는 것을 상상해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 딸이라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눅21:40

인내와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까지 죽임을 당했을 때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답은 분명합니다. 심판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사야 5장에서 그 심판은 (미래에 닥칠) ‘바벨론 포로’였습니다.

 

♣포도원 울타리를 함부로 허물지 말라

어떤 한 젊은이가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부모가 평생을 땀흘려 일구어 놓은 포도밭이었지요.

 

이 포도밭으로 인해 젊은이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가족이 먹고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대상이었습니다.

 

젊은이는 물려받은 포도밭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발전을 시킬 것을 다짐했지요.

 

사방이 튼튼한 울타리로 둘러쳐진 포도밭,

이 울타리 안에는 울창한 포도나무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타리에는 포도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울타리를 없애버리고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으면 더 많은 포도를 수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포도밭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울타리를 베어버렸습니다.

 

얼마 뒤, 이 포도밭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포도밭의 포도나무들은 점점 망가져갔습니다. 울타리를 베어버리자

사람과 짐승들이 마음대로 포도밭에 들어와, 나무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포도가 열리진 않지만

포도밭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도

포도나무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위의 어리석은 젊은이처럼

울타리보다는 포도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포도나무가 없다면 포도열매가 맺히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울타리 없이는.. 포도밭도 제대로 존재하기 힘듦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습은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름대로 성공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과연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를 도와준 가족, 친구,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고생하면서 어엿한 성인으로 길러주셨으며,

선생님들은 정성껏 지도하여 훌륭한 인재로 길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응원과 격려를 통해 인정과 우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재주만으로 모든 것을 일구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 대한 판단과 단죄를 얼마나 자주 행하고 있었던지요?

 

그들을 통해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는

그를 밟고 올라가야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고마운 분(울타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존재함, 그 자체로 감사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