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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와 안티가 넘치는 세상에서 승리하기

LNCK 2024. 9. 12. 15:4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 인격

네거티브와 안티가 넘치는 세상에서 승리하기   (youtube.com)

*17분경부터 아래에 녹취

 

네거티브와 안티가 넘치는 세상에서 승리하기       롬12:14-21      2024.09.08.

◑롬12:15~18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세상의 원리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이웃이 슬퍼하는 일에도 공감할 수 없고, 
친구가 기뻐하는 일에도 공감할 수 없겠죠. 

세상의 원리는, '나와 다르면 밀어내고 배척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을, 세상에서 배울 수 없어요. 

세상의 원리는, 싸우고 분열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목하고 화평케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에요.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했기 때문에 생기게 된... 
사람들의 내면이 강퍅해지고, 인간성이 파괴되고, 
그 결과로 사람들의 관계가 다 무너져 버렸는데... 
그 가운데서 어떻게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는가? 

예수님처럼 공감하고, 예수님처럼 포용하고, 예수님처럼 화목해 하는 일이 
복음의 능력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져요?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여러분의 친구들을 새롭게 친구들을 사귀실 때 
'나는 OOO야, 네 이름은 뭐니? 
너를 보니까 너는 참 좋은 점이 많은 아이구나. 난 너랑 친하고 싶어. 
너한테 배울 점이 많은 거 같아' 
이러면서 사귀나요? No, 그렇지 않잖아요. 

여러분이 직장 생활하면서, 혹은 여러분들 주변에서 사람들을 사귈 때, 
어떤 식으로 하면서 '세상적인 친밀함'이 만들어 지나요? 

여러분들이 과거 기억을 되짚어 보시면, 학창 생활을 할 때 
학교에서는 친구와 친해 지려면, 그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공공의 적'이 한 명 생기면 친해 져요. 

누군가를 같이 공격하고, 비판하고, 험담하면.. 서로 끈끈한 우정이 만들어져요. 
우리만 간직할 수 있는 비밀이 생기는 거예요. 전우애가 싹 트는 거예요.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직장 생활에서 누군가에 대해서 험담하면서.. 
그 대상이 뭐 상사가 됐건 아니면 동료가 됐건, 누군가에 대해서 막 이렇게 얘기를 하면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구나' 라는 동지 의식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동창회를 갔어요. 막 재밌게 밥을 먹으며 떠들고 있다가 
언제 시너지가 확 올라가느냐?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지 않은 어느 누군가에 대해서 
'근데 말이야 걔 있잖아...' 라고 하면서 가십이 시작될 때, 
너무 밥도 맛있어지고, 대화도 재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동창회에 가면, 사람들이 제일 망설여지는 시간이 언제냐? 
화장실 가는 시간이래요. 

왜냐면 내가 없어지는 순간에 '근데 말이야 OOO 걔도 말이야...' 
이렇게 나를 디스하고, 뒷담화하고, 가십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화장실 간다고 자리 비우는게 쉽지 않죠.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친밀함을 만들어 가는가 하면,
건강하게 서로를 알아가며, 서로를 닮아가며, 서로를 격려하면서, 
그렇게해서 친밀함을 만들어 가는게 아니라 

누군가 제3의 대상을 정해 놓고, 그 사람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험담하고, 
가십하면서 끈끈하게 관계를 만들어 간다고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교회를 오게 됐어요.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럼 신앙생활에서 어떻게 친밀한 우정들을 만들어 가요? 

'저는 이제 교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을 알아가던 기술들을 다 버리겠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교우)을 더 친밀하게 알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그럼 교회에서는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취미가 무엇인가요? 저는 이런 것을 좋아한답니다. 
제 열정은 이런 겁니다...' 이렇게 교우 관계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나요? 
어떻게 교회에서 교우관계의 친밀함이 형성되어져 가나요?

그런데 세상에서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던 방식, 기술들을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어떻게 단번에 벗어 버리겠어요? 

그러니까 교회를 왔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 안에서 관계를 맺어가느냐... 가만히 살펴보니, 별로 다르지 않은 거예요.
세상과 비슷한 거예요. 

세상에서 하던 방법대로 똑같이, 셀모임에 가서도, 사역장에 가서도, 
처음에는 큐티 나눔하고, 간단히 예배도 보고 나서,

 

이제 교제시간이 되면, 본격적으로 
김 집사 얘기하고, 박 장로 얘기하고, 최 목사 얘기하면서 
끈끈하게 친밀함을 서로 만들어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인 거죠. 

사람들이 교회 와서 실망하는 이유가 그거 때문 아닙니까? 
'목사님, 저는 교회는 다를 줄 알았어요. 근데 교회도 다르지 않네요...' 

아니요. 그 사람들이 그렇지, 원래 크리스천들은 그렇지 않아요. 

세상에서 하던 방식대로, 남을 향해서 곱지 못한 말, 편을 가르는 말을 멈출 때만,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데, 

복음의 능력이 자기 속에 들어와야, 그 가십의 말을 하는 재미를 멈출 수 있는데, 
그 뒷담화 하는 재미를 멈추지 못하니... 
새신자가 교회에 왔어도, 실망하고 낙심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요즘 우리 사회에 '공감 능력'에 대한 얘기가 많잖아요. 
제가 한 번 여러분께 물어볼게요. 
'여러분,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 능력이 많나요, 적나요?'  

여러분이 셀모임 하시잖아요. 
셀 모임을 할 때, 여러분이 어떤 진지한 나눔을 할 때, 

거기 모인 사람들이, 여러분의 나눔에 
'이모션도 매칭도 되고, 공감을 하고 있다..' 라고 느끼시나요? 

아니면 '나는 지금 내 하트를 쏟아붓고 있는데, 
저 사람은 지금 내 얘기가 언제 끝나나? 점심은 언제 먹으러 가나?... 이렇게 딴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더 많은가요? 

그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죠.

   MBTI 중에서 이제 T (Thinking)를 가지신 분들은, 
   공감 능력이 상대적으로 좀 떨어지는 분들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죠. 

   T(사고형)는, 논리적인 판단은 잘 하는데, 감정적인 매칭이 좀 힘든 분들이죠. 
   이런 분들이 있잖아요. 

2천 년 전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현대처럼 각박하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풍부한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니까 예전에도 공감 능력이 넘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도 바울은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냐면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라'  :15

그런데 우리는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는 것은, 비교적 쉬워요. 
왜 그러면 자기가 노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아픔에, 내가 함께 아파해주고 
누군가의 슬픔에 내가 눈물을 흘릴 때.. 내가 굉장히 노블한 인생이 되었다고 느껴요.

근데 롬12:15절에서 이거는 비교적 쉬운데, 전반부가 어려워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5

공감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가 되죠.

내 삶은 지금 기뻐할 이유가 없는데.. 지지부진한데.. 
다른 사람이 잘 됐다고 기뻐하는 순간.. 내가 속이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려요. 
'당신,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런 얘기를 실제로 주변에서 한다고요. 

그러니까 2000년 전에도, 사도 바울이 
'기뻐하는 자와 함께 먼저 기뻐하라' 라고 권면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사람들도, 남이 잘 되는 것을 함께 기뻐해주는... 
그런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은, 오늘날 우리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공감 능력이 생기려면, 복음을 만나야 하고, 
복음을 만난 다음에 공감 능력이 생기려면 
우리의 마음을 높은 데 두지 말고, 낮은데 처해야 합니다. :16
 
그러니까 겸손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는, 본문의 말씀처럼, 공감하는 능력을 배울 수 없는 것이죠.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들과 함께 화목하게 지내라'는 말씀은  롬12:18
공감하는 삶의 열매가 되는 거예요. 공감하면 그렇게 화목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들과 성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좀 불편하시죠? 
하루는 부목사님이 제게,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고, 저한테 그 목사님을 소개를 시켜 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 마음이 설랬어요. 그 분의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요. 아주 좋은 분이라고... 
약속을 잡고서 '아 나도 좋은 친구가 한 명 더 생기겠구나' 하고 기다렸어요. 

과거에 한남동에 있을 때였는데, 드디어 그 분을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근데 제가 표정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분이 개량 한복을 입고 나오셨어요. 

뭔가 첫 인상이 벌써 저랑 코드가 잘 안 맞는 것 같았어요.
개량 한복 입은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옷이 구겨져 있어가지고,
제가 눈을 어디다 두고 인사를 해야 될지... 당황을 했었어요. 

제가 인사를 드리면서 '목사님은 원래 평소에 이런 복장을 즐겨 입으시나 봐요?' 
제가 이렇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분은 '이게 얼마나 편한데요...' 
그리고 그 만남이, 저와 그 목사님의 마지막 만남이었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예)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성인데, 나와 다른 걸 되게 불편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나와 문화나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사람을, 뭐 이렇게 밀어내는(멀리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게 지나치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다투고, 그와 분열하기 시작해요. 

여러분, 신학은, 하나님을 공부하는 학문이잖아요. 
믿음이라고 하는 건,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이잖아요. 
그런데 조금 노선이 다를 수 있잖아요.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면, 그 믿음의 여정이 더 풍요로울 수 있잖아요. 

우리 교회는 좀 분위기가 자유로운 교회인데, 그러나 조금 전통적인 사람들도 있고, 
(나와 다른 스타일을 만나면.. 좀 더 풍요로울 수 있잖아요)
우리 교회 예배는 조금 현대식이고, 어떤 교회들은 조금 의전적 ritual 이고, 
이렇게 나와 다름이 있는 건, 풍요로움을 의미하잖아요. 

대신 포용하고 이해하는 선택이 있어야 돼요.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신앙 노선이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다투고, 헤어지고, 공격하고, 싸우고... 이런 것들이 너무 심한 거예요. 

복음을 진정으로 만나지 않으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기 어려워요. 
예수님의 별명 중에 하나가 '죄인들의 친구'였죠.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용납하지는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셨어요. 
그러나 죄인들은 사랑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그 길을 따라야 되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오해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는 동성애자들을 혐오한다' 라는 거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혐오할 자격이 없어요. 
우리가 죄인인데, 또 어떤 죄인을 혐오하겠어요? 

우리는 '동성애'라고 하는 죄를 반대하는 거예요. 그 죄만 반대하는게 아니에요. 
모든 종류의 성적 방종, 성적 타락을 우리는 반대해요. 
그러나 그들을 정죄하고 판단할 수는 없어요. 나도 죄인이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는 를 거부하고, 죄인들을 사랑해야 해요. 

그런데 왜 '기독교가 동성애자들을 혐오한다'고 하는 오해가 생겼는가요? 
우리가 예수님처럼 를 거부하고 미워하고, 죄인들을 사랑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죄인을 미워하고, 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않는 비겁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세상의 오해가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처럼 포용하는 거예요.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거예요. 
그들을 이해하는 선택을 하는 거예요. 

그들과 함께 분열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화목하고 화평케 하는 삶을 추구하는 거예요. 

세상의 원리와 복음의 원리는 달라요. 
복음의 원리는, 언제나 예수님처럼, 공감하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나와 다른 자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나를 불편하게 하는 자들과 화평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잖아요.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 포용이 필요한 사람들, 
화평케 하는 사역이 필요한 친척들을 여러분들이 만나게 될 거예요. 
그때 오늘 말씀을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롬12:19~20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하나님을 아는 것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한 결과, 
우리의 내면이 강퍅해지고, 인간성이 파괴되고, 인간관계가 다 깨어지고, 
악과 죄가 관영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 악의 거센 도전 앞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알아야 되고, 
우리가 반드시 해야 될 것을 알아야 해요. 

그러면 악의 파도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한다는게 무슨 말이냐? 
내가 내 스스로 복수하려고 하는 거예요. 

왜 그것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냐? 
'복수하는 것은 내게 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왜 그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왜냐면 우리는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하기 때문이에요(더 많이 돌려줘요).

우리는 정의롭지 않아요. 

우리는 공의롭지 않기 때문에, 원수를 갚으면, 
원수를 갚는 사이클이 끊임없이 반복 되게 되어 있어요. 

근데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고, 공의로우셔서
하나님만 (원수 갚는 것을) 공평하게 처리하실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라고 했을 때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거침없이 진행될 것을 믿으라' 라는 도전이에요. 

그러니까 악의 도전을 받을 때, 
우리가 누군가의 악함에 희생을 당할 때, 
우리가 그들에게 되갚으려고 하지 말라.. 라는 것은, 엄청난 믿음이 필요한 거예요. 

진짜 복음을 만난 사람만이, 복수를 포기할 수 있는 거예요. 
왜 우리가 복수하는 것을 멈춰야 하는가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망가지고 우리가 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멈춰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해보셨죠? 받은만큼 돌려줘 보셨죠? 
그러면 여러분이 받은만큼 돌려주니까 속이 시원하던가요? 
밤에 그냥 쭉 발 뻗고 잠이 와요? 성령이 계시면 그럴 수가 없어요. 

돌려줬는데.. 분명히 나는 돌려주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내 기분이 안 좋아요.  
받은만큼 돌려줘 보니까, 내 기도도 막히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까지도 거칠어져 버린다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받은만큼 돌려주면, 우리가 망가지고, 우리가 거칠어지는 거예요. 
미움의 노예가 되고, 저주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깨어진 관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원수갚지 말라'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 우리의 영성을 지키는 길이 되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악의 거센 도전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될 일이라면 (이상 소극적 영역)

우리가 반드시 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 (이하 적극적 영역)
악의 거센 물결 앞에서도,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돼요. 

여러분, 악한 물결을 만나기 시작하면 
우리 안에 어떤 유혹이 다가오냐면 '아이고 나만 이렇게 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런 유혹이 다가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선을 행하기를 멈추지를 말아야 돼요. 

미움이라는 악을 만나면, 사랑하기를 결단하고, 
거짓이라는 악 속에서, 순전하기를 결단하고 
음란이라는 악을 만나면, 거룩하고 순결하기를 결단하고 
무례하다는 악을 만나면,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겠다 라고 결단하고 

복수라는 악 앞에서는, 용서를 선택하고 
비판과 험담이라는 악 앞에서, 격려하고 칭찬하기를 결단하고 
교만이라는 악을 만나면, 겸손이라는 선을 붙들고 
편법과 불법이라는 악을 만나면, 정의와 공의의 길을 가겠다고 결단하고 

위선이라는 악을 만나면, 진실하기를 결단하며 
'끝까지 선을 행하겠다'는 것을 멈추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승리할 수 있는 거예요. 

악에 더 센 악으로, 미움을 더 센 미움으로, 
거짓에 더 센 거짓으로 대항하는 것은, 
악의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거지만, 

악 앞에서 '나는 악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선을 행하겠다' 라는 것은 
복음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거예요. 

◑적용

 

2023년에, 중앙아시아 3개국 선교사님들의 힐링 캠프를, 제가 준비할 때였어요. 
어렵게 어렵게 그 행사가 준비가 돼서, 열심히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현지에서 연락이 왔어요. 선교사님들이 소요가 좀 있다는 거예요. 

제가 물어보니까, 어느 한 나라에 계시는 선교사님께서 
'서울드림교회는 이단 교회이고, 
선교사 힐링캠프라고 하는 서울드림교회의 프로그램은 
무지개 깃발을 여기저기에 달아 놓고, 동성애를 조장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소문을 듣고서 '왜 이런 이상한 프로그램에 우리를 초청했느냐?'하고 
항의를 하는 선교사님들이 생기고, 
등록을 했다가도 '나는 이런 이단 교회가 하는 모임에는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큰일났습니다. 목사님...'하고 제게 전화가 온 거예요. 

그 말을 듣고서 제 마음이 많이 상했는데, 
또 저를 디스한 그 분과 가까운 선교사님께서 
이미 '선교사 힐링캠프'도 경험한 적이 있으시고, 
몇몇 분들이 나서서 '그 분을 설득해서 오해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연락이 왔는데 '그 디스한 선교사님과 2시간 통화를 했대요. 
그 선교사님은, 선교사 힐링캠프를 와본 적도 없고, 
왔다 간 사람들과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저를 아는 사람도 아니고, 우리 교회를 아는 사람도 아닌데, 

 

2시간 동안 '서울드림교회는 이단이고, 힐링캠프는 무지개 깃발을 달고 
동성애를 조장하는 프로그램이다' 라는 것을 역설을 하면서 2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는 거예요. 

2시간 전화 통화를 한 다음에, 그 분의 결론은 
'똑같은 목사이고 똑같은 선교사인데 
어떻게 이렇게 인간성이 파괴된 사람이 선교지에 있을 수 있는지 
저도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목사님,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로 전화를 끊게 됐어요. 

저도 순간적으로 화가 많이 났어요. 마음이 굉장히 언잖더라고요. 
여러분 선교사 힐링 캠프를 갈 때,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아시죠?
다들 정말 허리띠 졸라매고 1년 동안 준비해서 가는 모임이고, 
저희 교회가 돈이 많아서 이 프로그램을 하는 게 아니고, 
바자회 하고, 반찬만들어 팔고 해서, 선교비를 모아서 가서 하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가서 잠도 못 자고 새벽부터 밤까지 선교사님들을 섬기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제 마음이 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잘하는 것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커넥션을 만들고, 
'적어도 사과라도 받아야 되겠다. 우리 성도들 앞에 와서 잘못했다고 얘기할 때까지는 

내가 그 사람을 끌어내려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악을 악으로 대하는 건 하나님의 길이 아니다'

목사도 선교사도 악을 악으로 대할 수가 있더라고요. 
근데 제가 막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하소연 또는 항의를 하고,
그 분을 좀 징계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런 말을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멈춰라 여호수아야!'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하나님, 사과는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멈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멈췄어요. 

그래서 제가 선교사 힐링 캠프에 성도 같이 가는 스테프 성도님들에게 
'이런 일이 있으니까 기도해 주십시오... 아마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가 큰 모양입니다.'
그 정도로 말씀드렸고, 
그리고 저희들은 가서 열심히 캠프를 잘 섬겼어요. 

'선교지를 떠나야 되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던 선교사님들이 
처음으로 '선교지에 계속 머물겠습니다' 결단한 경우도 있고, 
제가 선교사님들에게 편지를 100통 넘게 받았는데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사와 감동의 내용이 그 편지들 안에 들어 있었어요. 
감사한 거죠. 

악을 악으로 되갚지 않고, 악을 선으로 갚으니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셨다고 믿어요. 

근데 제가 그 일을 해결하려고 막 여기저기 다른 선교사님들을 찾아다니고 
선교사님들을 만나고 하니까, 감사한 건 뭐냐면, 
이전에는 없었던 놀라운 선교 네트워크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선교사 힐링캠프를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올해 2024년 7월 달에 미국 LA에서 
세계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한인 선교사들이 모이는 KWMC 선교 대회가 있었어요.
Korean World Mission Council

제가 가서 강의도 하고, 선교사 힐링캠프를 소개하고 이런 시간을 가졌는데 
제가 도착을 하니까, 여러 선교 단체 선교사님들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목사님,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마 자기 나라에 와서 선교사 힐링캠프 해 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잘 조절하셔야 될 겁니다.' 

제가 '저희들은 뭐 초청해 주시면 얼마든지 가죠.' 
이런 대화가 이어졌어요. 

거기서 선교사님들을 만나기 시작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에서, 중동에서, 남미에서, 중미에서 
우리 서울드림교회가 와서 힐링 캠프를 해달라는 사람들이 너무 너무 많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유명한 교회도 아니고, 우리가 그렇게 큰 교회도 아니고, 
어떻게 우리들에 대해서 들었는지, '우리도 좀 찾아와 줄 수 있느냐? 
서울드림교회가 와서 우리 선교지에서 선교사힐링캠프를 해줄 수 있느냐?'하고 
물어보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잊을 수 없는 눈동자가 있는데, 제가 강의를 끝내고 질문을 받는데, 
한 젊은 선교사님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발칸반도에서 온 선교사입니다...' 그러면서 잠시 동안 말을 잇지를 못해요. 

'저는 3년 동안 사역했지만 열매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닙니다. 
5년 된 선교사님도 열매가 하나도 없습니다. 
10년 된 선교사님도 열매가 하나도 없습니다. 발칸반도는 그런 곳입니다. 
근데 목사님, 서울드림교회가 이런 곳에서도 힐링캠프를 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뭐라고 저런 존귀한 분들을 섬길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여러분, 선교사님들의 존귀함은, 열매에 있는 게 아닙니다. 
부르심의 순종한 것에, 그들의 아름다움과 존귀함이 있는 겁니다. 

'가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가서 거기에 계속 있는 거기에
그들의 존귀함이 있는 겁니다.

열매가 있는 곳에서 계속 거기에 머무는 건 쉽습니다. 
그렇지만 열매가 없는데도, 그 부르심의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울며 (구령의 열매를) 기다리고 있다 라고 하는게... 그게 존귀한 거죠. 

'근데 저와 우리교회가 뭐라고 우리를 그런 데 불러주지?' 
너무 제 가슴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제가 약속 했어요. 약속을 해야 저도 (하나님께) 순종 하니까요...
'네 선교사님 제가 가겠습니다. 당장은 아닐지 모르지만 가겠습니다. 
선교사님 우리 힐링 캠프 할 때 오셔서, 꼭 위로 받고, 격려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쌈닭이 돼가지고, 우리 힐링캠프를 폄훼한 분을 지목해서, 
여기저기 다른 분을 찾아다니면서 그 선교사님을 디스했다면,

그 분의 인격과 자질을 문제 삼았다면,
'거짓말쟁이 아니냐, 그렇게 거짓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겠냐?'

 

너무 분한 나머지, 제가 막 여기저기 중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부탁하고 했다면... 
그 분을 끌어내렸을런지는 모르죠. 아마 해 냈을 거예요. 그분께 상당한 불이익을 줬을 거예요.

제가 만약 그랬다면, 거기 선교사님들은 서울드림교회를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저 목사는 쌈닭이래.. 얘기 들었어? 저게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불독이야...' 
뭐 이런 얘기가 나왔을지도 몰라요. 

근데 악을 만났는데,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악을 선으로 대하니까...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특별한 사람들입니까? 제가 특별해서 그런가요? 
아니요. 복음의 능력이, 악을 만나도 악으로 대하지 않고, 
선으로 대하는 능력을 우리 안에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다보면, 아마 '나도 악하게 대하고 싶다. 나도 미움으로 대하고 싶다. 
나도 저주로 대하고 싶다' 라는 사람들이나 사건들을 간혹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악을 이기는 길은, 더 큰 악이 아닙니다. 복음의 선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능력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