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aramos/220156579947
◈하나님을 떠보지 말라 눅4:1~13 2012.08.05.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33년 아주 짧은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33년 짧은 인생도 결코 편안한 인생이 아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과 지지를 받기보다는, 비난과 오해와 온갖 시달림에 한 평생을 보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업신여김을 당했고, 조롱을 당했고,
터무니없는 오해와 음모를 당했고, 온갖 구설수에 하루도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보다는 적대자에게 둘러싸여서 한 평생을 사셨던 것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물론 끝내는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참하고 고달픈 인생을 사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세상에서 나쁜 일하고 악한 일을 하면,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이 고달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배고픈 이들을 먹이셨고, 병든 이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억울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을 올곧게 사셨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셨습니다. 진실 되게 사셨습니다.
권력이나 세상의 물질에 비굴하거나 아부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셨습니다.
당당하게 사셨을 뿐만 아니라 흠이 없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주지 않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배척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여러 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힘든 인생을 사셨던 근본원인은
예수님이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있었던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삶의 모습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어느 구석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사람들의 평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 문제로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가?
어느 구석 하나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데 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 문제로 예수님은 평생 동안 죽는 날까지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 문제가 늘 시빗거리가 되어 시달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삶의 모습에서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만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을 그냥 갈릴리에 계시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예루살렘으로 모셔다가 왕궁에서 살게 하고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예루살렘 성전에서 살게 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하고 지지하고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셔서 철도 아닌데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줄을 섰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고 하면,
요한이나 베드로 같은 무식한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학벌 좋고 가문 좋고 똑똑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줄을 섰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절대로 매를 맞지도 않았을 것이고, 십자가를 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면
아마 오랫동안 호의호식하며 호강하면서 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도무지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대당하시고 미움을 당하시고 시달렸다고 생각하면
혹시 ‘예수님께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하시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우리가 세상에서도 돈이 없을 때, 돈이 없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천대받습니다.
돈이 없어도 있는 척 해야 대접합니다. 그러니까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그냥 하나님의 아들처럼 사셨다면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바라고 시비를 거는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메시야냐 끈질기게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해도, 묵묵부답이셨습니다.
오죽 답답하면 예수님을 추종했던 세례 요한조차
죽기 전에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보내서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해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예수님은 고달픈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으셨다
는 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지 않으셨을까?
왜 자신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지 않으셨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마4:1절 이하의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하신 후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기사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에게 세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꼭 전제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은,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험은, 예수님의 전 생애 동안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당하셨던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씨름하면서 고뇌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 문제가 예수님의 끝없는 삶의 과제였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삶이어야 한다’는 이해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천사들이 다치지 않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모습입니다.
돌로 떡을 만드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기대하는 대로 사셨다면
예수님은 대접을 받고 지지받고 사람들이 떠받침을 받으며 평생을 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한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나름대로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삶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탄의 시험은,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살 것인가’
그러면 사람들이 지지하고 환호할 텐데,
‘사람들이 실망스러워하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살 것인가’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늘 강요받고 사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하나님의 아들은,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성전에서 안전하게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갖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할 것인가?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편안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래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살 것인가?’
이것이 예수님을 끝없이 끝없이 괴롭히던 삶의 과제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단호하게 사람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아들답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수님은 많은 어려움과 시달림을 당하며 사셨습니다.
그 결과를 아시면서도, 왜 그런 고달픈 인생을 선택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아는 대로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기대를 저버리게 해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라고 할 때의 여러 가지 불이익과 아픔을 아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들로 자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첫 번째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픈 상황에서도 돌로 떡을 만드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돌은 돌이고, 떡은 떡이라는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을 과시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춤추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때 예수님께서 사탄이 하라는 대로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고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그 이후에 끝없이 끝없이 더 큰 기적을 요구했을 것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라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달려 있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내려오라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려오실 능력이 없었겠습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기대대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으면
사람들은 얼마나 환호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정말 사람들의 기대대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부활도 없고, 구원도 없고,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깜짝 놀랄 기적을 통해서 일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웃고 울고 한숨 쉬는 우리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조용히 이루어 나가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일을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이루어나기를 바라십니다.
비록 그것이 고난과 아픔이 있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해와 모함, 온갖 배척과 비난 속에서
굶주리시고, 웃고 울고, 화내시고 싸우시고, 아파하시고 괴로움을 당하시고,
결국엔 꼼짝없이 죽임을 당하시는...
보통 사람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범한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는 대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을, 성경 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경건하고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거룩한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많은 방해자들이 예수님을 험담한 대로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즐기고 지저분한 사람들과 섞여 사는’
어느 구석 하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삶을 통해서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인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놀라운 구원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눈길을 모으는 일은, 일시적인 인기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영원한 진리의 삶이 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참모습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기대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억지스럽게 안간힘을 쓰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잔뜩 기대하는데, 그렇게 할 능력이 없을 때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기대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데 자신을 억제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대단한 분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
예수님의 이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대 때문에
자신의 신념이 아닌 위선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일시적인 기분,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인기작전은
당장은 성공처럼 보이지만, 진실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꼭 실패하게 됩니다.
일시적인 기분으로 인기를 모으면 한번의 일은 하기 쉬워도
자신의 신념을 평범한 일상의 삶으로 승화시켜서
평생 동안 한결 같이 산다는 것은 오히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에 사회 정의를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혁명적으로 살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기백과 그 정신을 잃어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삶이 변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속에서 그와 같은 신념을 평생 동안 지키면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이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살아가야 할 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우리들이 믿는바 신념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인기를 모으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생활 속에 녹아져서, 그 신념이 우리의 삶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신념이 나타나고
웃든지 울든지 괴롭든지 즐겁든지 그 신념이 표출되고
혼자 있든지 여럿이든지, 젊어서든지 늙어서든지,
그 신념을 굽히지 않고
우리들의 삶 순간순간이 토막토막이 그 신념으로 가득 차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갈 모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모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기분에 들뜨지 말고
난관과 어려움으로 쉽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조용한 가운데 어떤 경우이든지 신념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끈질긴 인내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웃음 속에 우리의 신념이 녹아들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울음 속에도 우리의 신념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분노 속에서도 우리의 신념이 담겨져야 합니다.
우리의 말 속에서도 우리의 신념이 풍겨져야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 눈과 코와 입과 우리의 온 몸에서
우리의 신념과 믿는바 믿음이 향기로 풍겨져야 합니다.
‘옛날에 혁명적으로 많은 사람의 인기를 모았던 저 사람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왜 저런 모습이 되었는가?’ 하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일시적으로 누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부가 툭툭 치는 누구의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평범한 가운데 주님의 거룩한 뜻에 사로잡힌..
주님의 거룩한 뜻이 우리의 삶 곳곳에서 풍겨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삶이지만
사람들이 볼 때, 거룩과 경건과는 거리가 먼 보통의 인간의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의 삶속에서... 즉 그의 웃음과 울음 속에서,
그가 화내고 말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
요란스럽고 유별난 삶이 아니라, 평범한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뜻을 차곡차곡 엮어나가는 삶의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입니다.
보이지 않게.. 표 나지 않게..
마침내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의 가르침이 녹아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사는 사람이며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모본의 삶입니다.
이 귀한 신앙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