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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법치주의

LNCK 2024. 9. 1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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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법치주의             롬13:8~10

 

롬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지금 사회가 심히 어지럽습니다. 사람들이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며   *20년 전 설교

사람들 사이에 자기의 권리는 주장하지만 전체를 생각하는 사고,

그리고 질서의식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그런 모습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법치주의' 때문이라고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법에는 ‘눈에 보이는 법’과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법’은 인간이 만든 법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법입니다.

 

예를 들면 양심의 법, 은혜의 법, 사랑의 법 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법치주의 및 그것의 보완점

 

인간의 법치주의는 눈에 보이는 법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법이 상황의 잘잘못을 따지는 최종 판단요건이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법치주의, 하나님의 법치주의

눈에 보이는 법과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을 동시에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법조문보다 양심의 법, 은혜의 법, 사랑의 법을 상위법으로 둡니다.

 

법조인들이 가끔 말합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 그렇습니다.

그 말에는 법치주의에서 말하는 법조문 이상의 어떤 상위법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상위법의 원리가 바로 하나님의 법치주의의 원리입니다.

그 원리를 세상철학으로 말하면 덕치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법치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상위법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판결하는 것입니다.

 

법원에서 피고가 자신을 변호하면 할수록, 판사들의 내리는 형량은 무거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억울해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고 합니다.

 

법원에 출입해 본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많이 목격하고 경험하기 때문에

'법치주의'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있으면 형량이 줄어들고

변호사가 없으면 형량이 늘어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고 있습니까.

 

전직 판사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전관예우'라고 해서

그 변호사가 수임하는 사건을 유리하게 처리해주는 것이 관행이 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이것이 어떻게 올바른 법치주의가 될 수 있습니까.

 

목회를 하다 보면 이런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사람(교인)들이 있지만

그저 마음만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물론 그 교인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인간 사회에서 상위의 법에 대한 안목을 가진다는 것,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법으로 처벌하는 순간에도 사랑의 원리를 잊지 않는 것,

이것이 사회를 살리고, 그래야 법의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치주의 및 그것의 위대성

 

내가 앞에서 말한 원리는 단순한 이상적 원리만은 아닙니다.

그 원리는 바로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법 원리가 바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치주의는 법조문에 매달리는 법치주의가 아닙니다.

법조문을 중시하기도 하지만, 법조문 플러스 사랑, 그리고 은혜의 원리가 배여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치주의입니다.

 

약 3천 5백년 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법을 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조문을 들이대고 '법대로'만을 외친다면

어느 인간도 하나님의 유죄 판결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조문대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결국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설정한 법 조문에 의하면 도저히 무죄 판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법 조문을 그대로 두면서도, 무죄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를 믿으면 인간은 무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법을 깨뜨린 것이 아닙니니다. 상위법을 존재시켜서 인간 구원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위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인간 법치주의자'들에게는

아주 무서울 정도로 법 조문을 들이대십니다. 어느 누구도 그 길에서 피할 자가 없습니다.

 

▲본문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 제사장의 집에 하나님의 추상같은 법을 선포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말씀 중에 가장 핵심적인 말씀은 30절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구약 시대는 철저히 이 하나님의 법이 지배하는 역사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대쪽과도 같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법의 맷돌에서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조그만 흠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위법을 설정하셨습니다.

그 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만드신 법입니다.

 

그 상위법의 원리를 드러내시며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는 하나님의 상위법이 있었기에 살아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법조문대로'의 율법주의는 비판과 정죄가 난무하게 만들어

공동체의 통합을 깨뜨리고 위선자만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법과 은혜의 원리를 동시에 아는 ‘은혜주의’는 개인과 사회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그 은혜를 생각하며,

또한 이 땅에 살면서 상위법의 원리를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이 상위법의 원리를 적용시키지 못한다면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가 마치 1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다그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인간의 법치주의가 아닌, 하나님의 법치주의에 정통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인간의 율법’을 주장하는 사람이 꼭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법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자기가 하는 것이 법에 합당한 것인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을 가장 멸시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도 '법대로'를 주장하는 사람이 은혜에 대한 배반을 잘합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법을 중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상황에서도 '사랑과 은혜'의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대개 '법대로'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는

사랑과 은혜의 원리를 잘 실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치주의는 상위법의 원리를 인정하는 법치주의입니다.

이 상위법의 원리를 아는 자만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자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진정한 구원의 역사에 동참한 자들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지키려고 노력하되,

항상 예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워서 지키려고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은혜의 원리를 중시하며 살아가십시오.

나 자신은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추상같은 법조문을 들이대는 사람은 결코 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