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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행하신 기적 시107:15~22 1999년 말 설교
시편은 전체가 다섯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모세 5경을 본받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시편 107편은 제5권의 첫째 번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이 시에 제목을 붙여 준다면 무엇이라고 붙여줄 수 있을까요?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을 감사하는 시“
라는 제목을 붙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라는 말이 4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8절, 15절, 21절, 31절
그러므로 이 시는 네 개의 연(聯)으로 되어 있는데
매 연에 일종의 ‘후렴구’가 한 번씩 나옵니다.
▲그러면 이 시를 지은 시인은 어떤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했기에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이란 말을 이와 같이 여러 번 말하고 있을까요?
여기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이라는 말은 정확하게는
"인생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들"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까요?
중한 병에 걸렸는데 고침을 받았을까요?
전쟁에 나가 적군에 포위 당했는데, 그 적군이 이유도 없이 모두 죽어 버렸을까요?
별안간 펑 소리가 나며 눈앞에 황금 보화 덩어리가 뚝 떨어졌을까요?
시험 준비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도, 수석으로 합격했을까요?
본문을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오히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4절,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했고,
10절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18절, 사망의 문에 이르렀고,
27절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고생했습니다.
이 시는 아마도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지은 시인 것 같은데
출애굽을 할 때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있었으나
출바벨론을 할 때는 그런 기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인생에게 향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자"는 말을
거듭해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에서 다른 말씀을 더 드리기 전에
여러분과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
올해 오늘까지 365일 가운데 290일,
52주일 가운데 42주일, 5분의 4 가까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여호와께서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과,
특별히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적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주제
혹시 아직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분들은
"주님,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이 기적이라고 믿어지는 분들,
고난을 많이 겪었으나 건짐을 받은 것이 믿어지는 분들은
그 기적을 행하신 여호와를 찬양하게 되기 바랍니다.
▲순수한 믿음의 눈으로 보면, 평범한 일도 기적으로 여겨지며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마르틴 루터는 매일 해가 뜨는 것,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것,
가을이 되면 곡식이 익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발견한다고 말했습니다.
"주님, 내게도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면 삶이 진지하고 경건하며 활기에 차게 됩니다.
기적이라고 해서, 너무 특별한 것을 바라다가는 실수하기 쉽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비상조치인데, 비상조치가 많은 나라는 평안한 나라가 아닙니다.
즉 병들어서 기적적인 고침 받고서 감사도.. 훌륭하지만,
평소에 건강해서, 병들지 않은 것을.. 더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신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기적’도 ‘우연’이 됩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도 "그 때 우연히 썰물 시간에 맞춘 것이야.
그리고 그 때는 특별히 일년 중에서 간조 폭이 가장 클 때야!" 이렇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나에게 행하신 기적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3가지 기적에 대한 감사
▲1. 우리는 우리 민족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단일민족으로 5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세계에 이런 민족은 유대민족과 한민족 둘 밖에 없습니다.
깊은 병에 걸렸다가 회복된 체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다른 것은 그만 두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감사하며 지내게 됩니다.
이것을 "생존에의 감사"라고 이름 붙인 사람이 있습니다.
비슷하게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온 것은
"존속에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존속에의 기적"이 "존속에의 감사"로 이어져야 합니다.
주변 강대국에 흡수 통합, 또는 강제 합병 되지 않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자주 독립국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기적이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중국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소수 부족들이 모두 다 중국에 합병, 병합되었습니까!
일본도 오키나와 등의 소수 부족들이 다 일본에 병합되었습니다.
6․25 때 UN 16개국이 군대를 보내, 우리나라를 도와 준 것도 기적입니다.
이번에 우리나라가 동티모르에 1개 대대 병력을 보내는 데,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습니까?
*김대중 대통령 때인 1999년 10월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인 상록수 부대를 파병함
찬반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국회에서는 야당이 퇴장을 하고
그런 끝에 파병이 결정되어 부대가 출발했습니다.
이제야 적응훈련을 마치고 배치가 되고 있는데
6․25 때 그 여러 나라의 군대들이 그렇게 신속하게 우리나라에 올 수 있었던 것은 기적입니다.
이 조그만 나라가 반도체 생산 세계에서 몇 위, 자동차 생산 세계에서 몇 위,
휴대폰 가입률 세계에서 몇 위,
지하철 길이 연장 세계에서 몇 위 할 수 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세계에는 우리나라보다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조그만 반도국가로서 그나마 분단상황 속에 있는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것, 사실은 기적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우리 민족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어야겠습니다.
▲2. 우리는 또 ‘우리 교회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해야 합니다.
제가 목사님들 모임에 나가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으실 것입니다.
"유관지 목사님, 저는 사실은 목양교회를 염려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양교회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도 이렇게 힘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놀라고 있습니다. 저만 놀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놀라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나는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말이 통 없는 어떤 중진 목회자 한 사람도
"목양교회에 대한 소문, 참 좋아!" 무뚝뚝하게 한 마디 합니다.
안에서 저희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더라도, 밖에서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 선교사들이 들어가고 교회가 세워지고
신학교가 세워지는 것은... 밖에서 보기에는 기적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런데 정작 러시아인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모스크바 감리교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러시아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서 제가 여기 와서 이렇게 강의하고 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했더니 대부분 학생들이 가만 있고, 일부 학생들만 고개를 끄떡끄떡합니다.
이어서 "러시아가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쓴
고르비(고르바초프)는 제2의 고레스입니다" 했더니
신학생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국민들도 고르바초프를 거의 ‘이완용’ 수준으로 매도한답니다.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나이 많은 신학생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손을 내젓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못 살게 되었고, 고생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아니 제가 믿기에는 러시아에 선교의 자유가 주어진 것은 분명히 기적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신앙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큰 일을 했습니다.
안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부족한 일, 불만스러운 일이 많아도
밖에서 보면,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면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제가 붕괴되고, 실업률이 극에 달하면서,
고르바초프가 마치 나라를 팔아먹거나, 말아먹은 인물로, 자국민들에게는 이해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제대로 평가를 해 줄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우리 교회에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어야겠습니다.
▲3.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들, 즉 나에게 행하신 기적들을 발견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아까 서두에 ‘존속으로 인한 감사, 생존으로 인한 감사’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고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진은 얼마나 자주,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사건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범죄는 또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번에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를 보니까 작년에 18초에 한 건씩
범죄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내가 보호받아 오늘까지 온 것은, 하나님이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입니다.
나에게 베푸신 기적입니다.
△1997년 말에 IMF의 광풍이 몰아닥쳤습니다. 많은 분들이 명퇴, 구조조정, 퇴출,
여러 가지 이름으로 직장에서 나왔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여러 분 있습니다.
그 당시에 얼마나 충격이 컸습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얼마나 걱정이 되었습니까?
배신감, 소외감도 컸을 것입니다. 출구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극복하고 평안을 찾아가고 있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1999년말 설교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IMF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시107편은 고통 가운데 지은 시입니다.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본문 12절은 고통이 주는 유익 하나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겸손해지는 유익을 갖게 됩니다.
고통은 하나님을 찾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건짐을 받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시편 107편에 자주 나오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고통에서 부르짖고 건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6절, 13절, 19절, 28절).
혹시 지금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건짐 받는 기적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2. 가장 큰 기적, 가장 뜨겁게 찬송해야 할 기적은,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 가운데 기적입니다.
본문 20절에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라는 구절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말씀을 보내주신 것,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미전도 종족들이 참 많습니다.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 종교를 받아들여 아직도 빈곤과 무지에 시달리는 나라들도
방글라데시를 비롯하여 많이 많습니다.
일본과 같이 영적인 바탕이 없는 가운데 경제적인 성장만 이룩해서
이코노믹 애니멀(경제동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정신분열증 환자가 많고 사회 전체가 어떤 구심점이 없이 흐느적거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직 미전도 종족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었습니다.
네팔이나 부탄같이 애니미즘(정령숭배)을 숭배하는 국가로 분류될 수도 있었습니다.
샤머니즘이 우리 나라처럼 강한 지역도 별로 없습니다.
경제는 발달했으나 일본과 같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강하게 성장했습니다.
나도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교적인 풍토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유교는 발상국가인 중국에서 보다 한국에 와서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복음에 대해 옥토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나무들이 이렇게 쑥쑥 자라고 있는 것, 기적입니다.
내가 예수 믿게 된 것, 기적 가운데 기적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 신유의 기적을 많이 행한 케더린 쿨만(Kathryn Kuhlman)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케더린 쿨만 여사는 주물 공장에서 일하다가 쇳물이 눈에 튀어 실명을 해서
21년이나 시각장애인으로 지나던 죠지 오르(George Orr)이라는 분의 눈을 뜨게 해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캐더린 쿨만 여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육체를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위대하신 사랑과 자비로 행하신 큰 기적이나
모든 기적 중에서 가장 큰 기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은 심령을 살리시고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감화로 심령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시며 높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신생시켜 귀하신 우리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인이 되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귀한 기적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귀한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종종 "내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나?"
"내가 어떻게 해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나?"
"내가 어떻게 해서 목사가 되었나?" 생각해 봅니다.
구체적인 계기와 사건들이 있지요.
그러나 통틀어서 한 마디로 하라고 하면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꾸밈도 없고 과장도 없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그랬고 1999년에도 많은 인자와 기적으로 우리 나라를,
우리 교회를, 나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함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축복이 정지되거나 벌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3절과 34절의 말씀대로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땅이 되게 하십니다.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보고 겪었습니다.
바로가 항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이로 걸어서 건넜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감사가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지 않았습니다.
불평과 불신앙과 우상숭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금송아지 숭배로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출 32:28)
그들이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졌습니다(민 14:29).
전염병을 겪었습니다.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스무 살 이상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민14:29).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IMF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을
기적이라고 고백하며 감사하지 않을 때,
우리가 광야 40년과 같은 일을, 혹시나 겪지 않을까 매우 두렵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나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할 때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더 큰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미국에 간 청교도들은 농부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교사, 은행원으로 일하던, 이른바 화이트 칼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신앙의 자유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하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큰 감사축제를 열었습니다.
본문 22절에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며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이 말씀 그대로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38절의 말씀대로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세계의 강대국 미국이 건국되었습니다.
더 많은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시편 107편이 그대로 여러분과 저의 신앙고백이 되어야겠습니다.
특별히 지금은 1900년대, 나가서는 1000년대를 마감해 가고 있는 때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들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며 보낼 때
하나님께서는 2000년을 축복하십니다. 21세기를 축복하십니다. 새 천 년을 축복하십니다!
*1999년말 설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우리 나라에게 행하신 기적들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목양교회에게 행하신 기적들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우리 가정에게, 나에게 행하신 기적들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