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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일터에서 증거의 삶을 사는 크리스천

LNCK 2024. 9. 26. 17:35

 

직장과 일터에서 증거의 삶을 사는 크리스천           행18:3~4           2024.09.26.

Christian Witness in the Working Place

Julia Garschagen



※강의를 "요약"했습니다.
한글 통역을 녹취, 정리하는 과정에서, 본래 영어 강의와 약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요즘 21세기 사회를 묘사하는 단어 중 하나가 'Flat World, 편평해진 세상' 입니다.
과거에 피라미드 식 구조의 계급사회, 계층사회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내, 또는 교회 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성직 계층이 허물어지고 (지금 신학교 지원을 거의 안 합니다)
과거에 전임사역자들이 하던 일들을, 이제는 평신도들이 점점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평신도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평신도'란 말 자체가 어색하지만요.)

그리고 과거에는 예배를, 거룩한 교회당 안에서만 드리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래 설교는 예배와 예배당을, 직장인들의 일터로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과거에 해 오던 좋은 것들을 계속 간직하면서,
새롭게 글로벌하게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들을... 미리 미리 감지하고 대처해야 하겠습니다.

...........................................   

◑서론 / 사도행전의 급속히 빠른 온 세상의 복음전파에, 큰 기여를 했던 무명의 사람들

 

(강의 시작)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이 온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페르샤를 넘어) 아르메니아와 인도 그리고 다른 대륙에도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역사가들은 
이 복음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확산 되었는지 놀라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도 없는 당시에 말이죠. (답은 평신도 무역상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이에 대한 비밀을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매우 다양한 형태의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여행자들의 여행 가방을 통해서 전파되었습니다. 
*쪽복음, 문서들이 널리 전달되었겠죠.

또 복음은 상인들을 통해서, 물품들와 함께 전달되었습니다.
상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무역을 하는 중에, 복음의 소식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직접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었겠지만,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예루살렘과 안디옥 등지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들에 대한 소문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또 브리스길라 아굴라 그리고 바울과 같은 장인들을 통해서 
일을 하는 도중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일터에서의 선교사들에 대한 중요성이 쉽게 간과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일상적이어서 
누가가 일터에서의 전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하지만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증인으로서 삶을 살았던 것들을 계속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직업을 가진 직장인으로서의 선교'는
초대교회 선교의 DNA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주제를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선교의 추진 동력을 이루었던 '크리스천 직장인'들과 
그들로 인한 놀라운 역량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히 일터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람들, 교회의 99%의 사람들(직장인)을 재발견하고 
존경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빌립보 교도소에서 하늘과 땅이 만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신령한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기대하는데요...
아닙니다. 직장인들이 있는 곳에, 신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찬양과 기도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의 그 큰 능력이, 감옥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교도관의 마음도 함께 열었습니다. 

교도관(성경에는 '간수')은 바로 그 곳에서, 자신의 일터에서 
그는 변화를 받았고, 그의 일터는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교도관이 매일 일하는 일터가, 거룩한 교회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왜냐면 바울과 실라가 거기서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거기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교도관과 그의 온 가족은, 인생이 바뀌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빌립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본문에서는 바울과 실라로 대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한 그곳을, 거룩한 곳(교회)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1.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 들에게는, 
우리가 매일 일하는 일터가, 거룩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분들은 매일 출근하는 자기 직장을
감옥처럼 느끼는 분이 있습니다. 그곳이 감옥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도들은, 실제로 감옥이라 하더라도
그곳을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의 장로로 바꿔놓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행16장처럼요.

여러분이 여행을 하든, 또는 외국에 근로자로 일을 하러 가든,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함께 하시죠. 바울과 실라처럼 말이죠. 

여러분이 외국에 가실 때는,
바울과 실라가 외국이었던 빌립보에 가는 마음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마음 자세로 살면, 우리가 완전히 일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일터 와 일상 가운데 새로운 존엄성이 부여됩니다. 

▲2. 거룩한 터 위에서 일하는 성도는, 거룩한 제사장들이다. 

어느 신실한 직장인 크리스천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거 자체가 
동료들을 위해서 사역자(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동료 대부분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위해서 상담해주거나, 기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사와 동료들과 고객들을 위해서 늘 기도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게 사도 베드로가 벧전2:9절에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들의 일터, 직장은 거룩한 곳입니다. 
왜냐면 거룩한 여러분이 거기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일터에서 제사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벧전2:9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사무실에서 찬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냥하고 친절한 전화 통화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사장(하나님을 대표하고, 예수님을 대신 보여주는 사람)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조용히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거죠. 
'주님 우리 회사에서 내리는 이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도해 주세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열정과 또 가진 능력을 일터에서 발휘함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하듯 사람들을 대함으로써, 
일터에서 여러분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벧전3:15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그리고 그들 직장 동료들이 신앙적 질문들, 자기 삶의 질문들을 할 때, 
우리가 대답을 할 수 있는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하죠.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우리가 증거하게 되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만난 한 미용사는, 크리스천 여성으로 
잠비아에서 왔고, 굉장히 밝고 빛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미용실에 가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미용사는 곧 제가 크리스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머리를 어떤 스타일로 잘라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를 해야겠어요' 하면서, 잠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순간에, 그녀와 함께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성령님께서 그녀에게, 제 머리를 어떻게 잘라야 할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게 얘기했습니다. 
그녀는 고객의 머리카락을 차릴 때, 저뿐만 아니라 모든 고객들을 위해서
조용히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각 사람들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자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저 자기 직업적 업무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고객들을 대하고, 그들을 위하는 기도하는 마음을 늘 잃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의 일터에서, 여러분의 상황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위 미용사의 상황과는 또 다르고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여러분의 자리에서 필요한 지혜와 창의력과 
또 용기와 민감성을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정직함을 보고 
여러분들께 신앙적인 질문을 하는(받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3. 우리가 빌립보에서 배오는 세 번째 교훈은
이제 여러분들의 일터가 거룩한 곳이라고 인식한다면, 1.
또 여러분이 거룩한 제사장임을 인식했다면, 2.
이제는 당연히 거기 직장에서, 여러분은 거룩한 삶을 살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3.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찬양하며 기도 할 때, 지진이 나면서 감옥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거기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도관(간수)에게, 또 다른 재소자들에게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했고요, 
그래서 그 교도관이 자결하려던 것을 막아주고, 
또 자기 인생을 바꾸어 새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 그런 제사장 역할을 했습니다.

아울러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서 도망가지 않음으로써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의 모범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일터, 직장에서 제사장으로 살아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우리가 정직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와 함께 사역을 하는 친한 친구가 
한 때는 헤지펀드 회사를, 두 명의 파트너와 함께 운영했습니다. 

그가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 그의 일터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 했다고 합니다. 
'투자를 어디에 할지에 대해서 거룩한 원칙들을 세우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제부터는 더 이상 '무기 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헤지펀드를 잘 아신다면, 무기 산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고,
또한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래서 이 크리스천은, 이 문제 때문에 자신의 회사의 파트너 들과 
큰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이제 제 친구를, 배신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친구에게는, 회사가 더 이상 이윤을 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일터에서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커리어나, 여러분들의 연봉이 달라지게도 합니다. 

그렇지만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가를 부를 때처럼 
여러분에게는 변화시키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면 여러분의 일터는 거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여러분이 서 있으므로)
그 일터는, 여러분들의 동료나 고객과 그리고 상사에게도 거룩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용한 사역을 통해서요. 

◑고린도에서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장막을 짓는 동종 업종의 
가죽 작업을 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행18:2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18:3
여기에 바울이 '자기 생계를 위해서 일을 했다'는 명백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런 텐트 메이킹은 바울이 가진 기술인데, 
유대인들은 반드시 이런 '먹고 사는 기술' 하나는 가지도록, 어려서부터 훈련받았습니다.

중세 때까지도 유대인 랍비들은, 자기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안식일에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행18:4
그러면서 유대인과 헬라인 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18:4

원래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인데, 
어떻게 헬라인들도 함께 모여 있었을까요? 

물론 행10장에서 보듯이, 고넬료 같은
이방인이지만 유대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유대교 신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근데 저는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아마 바울이 주중에 천막업에 종사하다가, 거기서 만난 헬라인들을
회당에 초대했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목적으로 회당에 그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 헬라인들과 함께 '비즈니스 점심'을 같이 하면서 
전도하며 회당으로 초청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꼭 전임자역자, 풀타임 사역자가 아니라고 해서 
하나님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자기 직업적인 일에 종사하면서도,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던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삶과 사역은, 참으로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은, 거룩한 일이 될 수 있고,
또 여러분의 일터는,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주제

물론 바울이 늘 그렇게 텐트메이킹을 한 것은 아닙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와서 고린도에서 바울과 합류했을 때,
그들은 마게도냐 사람들의 헌금을 가져왔습니다.  행18:5, 고후11:9

 

그래서 그 헌금으로 바울은 자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때,
또 다시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다시 전임사역으로 돌아갔던 거죠.

초대교회 때는, 직업에 있어서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 짓지 않았고, 
사역자와 직장인들을 엄격히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분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다 동일합니다. (당시에 성직자, 평신도 구분이 아직 엄격히 없었음)
어쩌면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전임 사역'같은 용어조차 몰랐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얘기했겠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우리 모두는 전임 사역자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일터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우리가 일한다'고 말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것을 '만인 제사장설' 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것은 루터가 만든 이론이 아니라, 사실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특정한 곳에 두어, 그곳에서 주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각각 다른 책임감이 주어지지만,
우리는 한 가지에 동일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에 두시든지, 그 분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죠. 

△전 세계에는 오늘날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이나, 코스나 
우리가 아름다운 주일 예배를 통해서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교회로 나오기를 무척 꺼려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가 전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날 하루의 점심 식사로 끝내서 안 됩니다. 

그것들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그 신앙이 우리에게 체화 되는 것 
그래서 우리가 변호사에게 변호사로, 요리사 에게는 요리사로,
교사에게는 교사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아름다움은, 바로 우리가 그 곳(일터, 현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 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치인들로, 약사로, 자기 직업으로, 우리 교회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질문은
내가 스스로 교회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우리의 소명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 스스로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훈련하고 사랑하고 사람들을 밖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 99%의 크리스찬 직장인들을 일터로 보내서 
매일의 삶에서, 그들의 사무실에서, 그들의 가게에서, 증언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쩌면 다양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이 
주일 아침 예배 시간에 함께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우리가 교회로서 그 직장인들에게 배울 게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같이 기도 모임을 통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어떨까요? 

제 친구가 전임 목사 였는데, 그가 이제 (텐트메이킹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훨씬 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고민을 하고, 함께 기도하면 어떨까요?
그래서 우리가 크리스천 세일즈 맨으로, 또 간호사로, 또 선생님을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서로 나누면 어떨까요? 

그래서 교회가 함께 예배를 통해서 
성도들이 일터에서, 사역자로서 소명을 다하도록 임명, 파송하는 날을 가지면 어떨까요?

그들이 우리 모두 하나의 같은 소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교를, 이 세상 속에서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같은 소명을 가지고 있숩나다. 
그래서 함께 걸어가면서, 그들 평신도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가운데,
일터에서 주님을 섬기고 계신다면, 
지금 잠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께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짝짝짝짝짝짝!

우리가 교회로서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계속 일터에서 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그 거룩한 곳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삶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