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닮은 섬김의 자세 행20:19~32 2024.09.27. <로잔 운동>
Christlike Servanthood
Philip Ryken / 미국 휫튼 칼리지 총장
※한국어 통역 내용을 녹취, 요약, 정리하는 과정에서
원래 영어 설교와 다소 다를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동체에서, 우리 테이블은 74번 인데요.
저희 테이블에서 여러분의 테이블에 은혜와 사랑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참석자들이 약 6명씩 테이블에 그룹으로 나눠져 앉음. 설교자도 테이블에 같이 앉은 모양)
◑도입
예수님의 생애의 고난, 그리고 십자가의 수난, 죽은 후에 부활하시고
지금 통치하시는... 종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그 종의 영광을 나타내고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대회에서 우리는 세계 교회 다양성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교단과 사역 단체에 상관없이, 다양성은 우리 모두의 각자 은사 입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단 한 부류의 그리스도인 만이
대위임령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 선포자, 목회자, 교회개척자, 선교전략가, 크리스천 비즈니스맨들 중에,
단 한 부류, 진정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 즉 섬김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사람들 만이,
대위임령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종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제게도 사실이고, 여러분 개인에게도 사실이고,
또는 조직이나 공동체에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복음사역자들이 모이셨는데,
오직 한 부류의 이슈 네트워크, 협업 팀, 선교단체만이
복음을 복음 적으로 선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섬김'을 수용하고, 펼치는 공동체 입니다.
오늘날 많은 리더십들이 세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는 '서버트 리더십'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저는 다른 용어를 좀 더 선호합니다.
그것은 '이끄는 종 leading servant'이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이끈다 leading'는 말보다는 '섬김, 종 servant'에 더 강조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확실하게 말씀드리면, 리더십의 본질이 섬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목회자 종이든, 전도자 종이든, CEO 종이든,
여러분은 모두 종 servant 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교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초반에, 누가가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누가복음)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행1:1~2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여전히 예수님은 행하고, 선포 하시고, 나타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시작하심부터 계속~'
그래서 '사도들의 행적 Acts' 은, 단순히 사도들의 행적만이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행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복음적 행적이 (2천년 전에는) 사도들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고,
지금 오늘날은 그것을 교회가 세상에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이 1권이라면, 사도행전은 2권인 셈이고,
오늘날까지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사역은 3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메세지를 가지고, 예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의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그건 바로 섬김 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종 servant 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종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항상 낮은 자리를 찾으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고' 빌2:7
이 정신이 로잔 언약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름다운 신부의 발을 씻기시는...
허리를 숙이시고 신부를 발을 씻기는 그림이 있는데요. 이와 '비슷한' 그림이 되겠습니다. 주1)
예수님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인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막10:43~45
우리 모두는, 그 어떤 개인적 이익보다 이것(섬김)을 우선시 해야 합니다.
종의 마음으로 하는 섬김과 희생은,
우리의 메세지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 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울선언이 담고있는 대로,
그리스도를 닮는 실천으로 이것(종으로 섬김)을 행합니다.
'서울선언'에서 우리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우리는 나중에 이에 대해 테이블 별로 그룹토의를 할 것입니다.
서울선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선언한 것입니다.
서로의 종으로서, 예수님의 종으로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이 <섬김>에 대한 예를 잘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치유사역,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환대,
도르가의 긍휼 등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섬김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인데요.
사도 바울은 그의 '밀레도 작별 설교'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행20:24
▲1. '말씀'으로 섬깁니다.
바울은 복음의 종이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20:24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뭔가 훨씬 더 소중한 것을 섬기지 위해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섬김과 종의 끝판왕은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는 것이죠)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말씀을 신뢰 했습니다.
말씀이 일할 것을 신뢰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로잔 대회에서 지금 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그리고 교회에 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하고 가르치면, 그 말씀 선포를 통해 섬기면,
그 말씀히 능히 저희를 견고케 하시는 줄 믿습니다.
행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마르틴 루터의 명언이 생각나는데요.
그는 복음의 말씀이 16세기 유럽에서 개혁을 일으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는데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제가 잠들어 있는 동안, 말씀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20:32
바울이 가졌던 '말씀의 비밀'을, 마르틴 루터가 깨달았던 거죠.
전능하신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죠.
그래서 신실한 전도자로서 우리도 '말씀이 스스로 일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복음의 말씀으로 신실하게 섬기고,
어떤 고난이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 복음의 말씀이 스스로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잠 자는 시간에도 말이죠.
그 심어진, 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앗에서 싹이 나고, 위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목숨을 버림'의 자세로 섬김
나이지리아의 한 형제는, 자국에서 맞닥뜨린 핍박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음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함께 서서 증언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노라' 행20:24
우리의 삶보다 복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그래서 필요한 경우, 우리 삶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이, 바울과 같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 받는 것(복음을 위해 기꺼이 죽는 것)이란 대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이번 로잔대회가 '박해 받는 교회'에 포커스를 맞춰,
온전히 하루를 할애한 날이 있었습니다. 설교와 간증과 토의를
모두 '박해 받는 교회'에 맞춰서 진행했습니다. *2024.09.25. 수요일
우리 중 일부는,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성령으로 섬깁니다
우리는 성령의 종이기도 한데요.
이는 사도 바울 에게서 볼 수 있는 섬김의 두 번째 측면입니다.
제자들은 인내로 오순절까지 성령을 기다렸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그의 종들에게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은 땅끝까지 성령을 따라 갔습니다.
그래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사역을 할 때, 간구하며 성령님의 확인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습니다.
그의 밀레도의 작별 설교를 보면,
'내가 성령에 매여 (묶여 bound) 예루살렘으로 가노니' 라고 말했습니다. 행20:22
바울을 한 번도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독자적으로 전도 계획을 세운 적도 없습니다.
우리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을 거스르지 않았고, 성령보다 앞서가지 않았고, 오직 성령에 의지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하시는 일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르고, 섬김고, 실천할 때, 우리는 성령의 일하심을 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더 섬기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십대 소녀가 자기 오빠의 엄청난 변화를 목격 했는데요.
특히 오빠는 자기에게 친절한 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오빠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오더니
너무나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아버지, 성령님이 능력이 있는 분이신 걸 알고는 있었는데요.
그렇게 능력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을 만질 때, 사람들이 겸손하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굉장한 능력을 선령님께서 갖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실까요?
로잔운동이 관심가지고 있는 모든 사역들, 특별히 사회적 책임에 관련된 분야들에,
우리가 성령의 종으로서, 성령님을 의지해서 나아가면,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시고, 성령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3. 바울은 모든 겸손과 눈물로, 참음으로 섬겼습니다.
바울이 이것에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면서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행하는 지를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18~19
그리고 '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20:34
바울의 힘든 노동은 매일 하는 전도의 일부였습니다.
교회의 제자를 양육하고,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사역,
자신이 치른 희생을 상기시켰을 때 (그의 밀레도 작별 설교에서)
그는 자기 자랑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의 본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려고 의도한 것입니다.
바울의 섬김의 증거는, 바울의 권면이 끝난 뒤에 나타나는데요.
모든 에베소의 장로들이 바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37
얼마나 바울을 사랑한 걸까요?
왜냐면 그리스도를 닮은 삶으로 섬기면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 굉장히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자기 자신을 내주었기 때문입니다.
로잔 언약의 내용을 바로 실천에 옮긴 건데요.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자신을 비우고 진정성만 가지고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내어주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는 가요?
이번 L4 로잔대회에서 한국 사람들은 정말 종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환대해 주셨습니다. (제공되는 식사도 좋았다고 합니다) 짝짝짝짝짝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엄지랑 검지를 교차시켜서 조그만 하트를 만드는데요.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의 환대를 한국에서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진행위원, 자원봉사자들을 통해서요!)
▲4. 가족을 최우선해서 섬겨야 합니다.
중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한 사랑을 먼저 해야 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데요.
그렇지만 에베소서에 보면,
아내와 남편이 가정에서 서로를 먼저 사랑해야 하며
그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 넓은 세계에 나누라고 했습니다.
섬기는 종으로 서는 삶에서 최우선에 있어야 할 것이 가족입니다.
가정을 희생 하면서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안 됩니다.
가족들이 주는 힘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종의 마음을, 가정에서 먼저 실천하시고
그 다음에 사역에서, 즉 교회에서 섬겨야 합니다.
영적인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을, 영적인 가족들도 최우선으로 '섬겨야' 합니다.
행20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가르친 장로들을 언급합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을 말합니다. 20:19
그 대상에는 에베소 성도들, 장로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또 바울은 젊은 디모데도 섬겼고,
병든 에바브로 디도를 도왔습니다.
로잔운동은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 목사님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은 겸손과 우정의 정신이었고, 섬김의 정신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잔의 정신인데요, 모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정신이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다른 리더들의 종입니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예를 들어서 중국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요.
'종'이나 '섬김' 이라는 말 자체가, 중국에서는 아주 비천한 단어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섬김은 갈보리 언덕 만큼이나 높은 곳입니다.
여기(갈보리)서 우리의 고난 받으신 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섬김 우리의 특권입니다.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회로, 단체로,
국가가 서로를 섬기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에서 이끌라고 부르셨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섬기라고 부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로잔)모임이, 사도행전 사도들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분들이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유산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섬김을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가 더욱 아름다워 지는 때는
우리의 사역을 함께 하기 위해 협력하고,
함께 성경을 번역하고,
미전도 종족을 위해 전략을 조정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도자를 육성하고,
제자도를 육성하고, 문제를 해소할 때... 우리가 서로 섬기면서 협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의 시간, 물질, 경험, 우리의 중보, 우리의 전문성,
또한 우리 스스로 자신을, 다른 지도자를 위해서 내어 주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다른 사역을 위해서, 다른 세계를 위해서
우리 스스로를 내어 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함께 복음을 선포하고, 나타내라고 하십니다.
▲5. 마지막으로 섬김은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세계 교회 여러분, 우리의 섬김은
모든 언어를 쓰는 사람들, 모든 민족과 나라, 아시아, 그리고 땅 끝까지
아직 예수님을 아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한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놓치기는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성령으로 복음을 섬기고,
그리고 교회에서 다른 지도자들을 섬기면서 그렇게 한 것은,
그리스도 없이 영생의 길을 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보다도 우리가 지금 이 로잔대회에 있는 이유는
이 로잔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복음을 듣지 못합니다.
복음을 들었다고 해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우리가 지금 하는 찬양을 경험해 본 적도 없습니다.
우리의 천국의 문으로 데려다주는 이런 경배를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 하도록 해야 합니다.
장로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섬기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광장에서 매일, 2년도 넘는 시간 동안,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찾아 가야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공동체 내에서 섬김의 행위를 또 볼 수 있는 것은 27장~28장인데요.
거센 폭풍이 몰아 쳤는데, 선원들은 구조의 희망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리더십 덕분에 한 명도 빠짐 없이 구조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 섬김 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은 천하를 어지럽게 한다'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여전히 이것이 세상을 바꾸고, 영혼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행28:1절에, 바울은 선원들과 배에 탄 사람들을 안전하게 멜리데 섬에 도착시킵니다.
원주민들이 그들을 위해 불을 피워 줬는데요.
우리가 바울을 떠올릴 때,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거나
뭐 철학자 들과 토론을 하거나, 성난 군중 속에서도 설교하는...
그런 위대한 모습을 떠올리는 데요.
또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을 구조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예수님이 마지막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바울은 허리를 숙이고, 나무 한 묶음을 줍습니다. 이건 종이나 낮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나무 한 묶음을 줍는 바울을 보면, 그가 어떤 리더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겸손했고, 평소의 삶에서 자신의 위엄보다 섬김이 우선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교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섬김을 하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은혜를 나타내고,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
주1) 예수님이 신부의 발을 씻기시는 사진을 못 구해서, 대신 이 사진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