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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복음을 땅끝까지로! / Ronaldo Lidorio

LNCK 2024. 9. 30. 20:35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복음을 땅끝까지로!        행28:16~31        <로잔 대회>
The Gospel to the Ends of the Earth Under Christ's Reign
Ronaldo Lidorio

※한글 통역을 녹취, 정리하는 과정에서 원래 설교와 일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 L4 로잔대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께로부터, 또한 우리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오늘은 그 놀라운 시간의 마지막 날인데요. *1주간 대회 마지막 날 토요일 
그리고 사도행전 강해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지난 5일 동안 우리는 사도행전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곳으로 전파 되었는지 살펴봤고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봤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마지막 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도행전을 리뷰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주님께서 5가지의 물결을 사용해서 복음을 전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처음은 영적 능력의 물결이었습니다. Wave of the Spiritual Power (행1~2장)
오순절 동안 교회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예수님을 알리고 경배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우리 죄인을 위해서 죽으셨고, 부활해서 여전히 살아계신다'고 설교 했고. 
3천 명, 5천 명의 사람들이 주님께 나왔습니다. 정말 폭발적인 시기였습니다. 

2) 두 번째 물결은 고난의 물결 이었는데요. Wave of Suffering (행5~8장)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핍박은 주님께 사용 되어져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행8:1~3절을 보면, 제자들의 육체적, 정서적, 영적인 고통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박해에 직면합니다.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1

여기서 '박해'는 헬라어로 '디오그모스' 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육체적 고통을 뜻하는 말입니다. 

8:2절에서는 교회가 '크게 울었다' 고 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서 울었던 것입니다. '울었다'는 헬라어로 코페토스 인데,
가슴을 치며 감정적으로 큰 고통으로 우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8:3절에서는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라고 했는데,
'잔멸하다'는 이것은 '뤼마이노'인데, 황폐하게 만드는 것을 뜻하죠.

이런 모든 고통에 불구하고 
8:4절에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로 갔고,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3) 세 번째 물결은, 일꾼 파송의 물결 입니다. Wave of Sending Our Workers (행13장)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인들에게 파송 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주님이 바나바와 바울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13:2

NIV 성경에서는 이것을 '주님을 경배하고 있었다'고 번역했는데요. 
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 NIV (좀 부정확합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여기서 '섬기다'의 헬라어는 '레이투르게오'로,
'그들이 형제 자매를 섬김으로써,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이미 지역 교회에 복이 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부름을 받았을 때, 이미 지역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잘 섬기고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도 이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서 복이 되지 않는 사람을, 멀리 선교지로 보내면 안 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여, 선교 지도자 여러분 
지역교회에서 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선교지로 보내면 안 됩니다. 

4) 네 번째 물결은, 교회 증가의 물결 입니다. Wave of Church Multiplication (16~21장)
바울과 동역자들이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격려했고, 
그들이 세운 교회들이, 또 다시 새로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지고, 빌립보 교회는 
데살로니가, 베뢰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교회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5) 마지막은 땅끝까지 가는 물결 입니다. 

Wave of Reaching the Ends of the Earth (27~28장)

바울은 로마로 가면서, 스페인과 그 외 지역에 전도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도들도 다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도마는 인도로 갔고, 마태는 에티오피아로 갔고, 요한은 그리스로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이 5가지의 물결은 
복음을 많은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언어로 전했습니다.

1세기에도 그랬습니다. 
오늘 날에도 우리 하나님은, 계속해서 교회를 땅 끝까지 움직이고 계십니다. 

◑이제 본론으로 사도행전 28장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인 본문을 보면, 4가지 사실이 굉장히 분명해 집니다. 

▲1. 첫 번째는 복음이 반대 Opposition 에 부딪힐 것이라는 겁니다. 

로마에서 바울은 감옥에 갇혔는데, 가택연금 상태에 있고, 한 군인의 감시를 받습니다. 
여러 명도 아닌, 한 군인입니다.  

28:16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바울의 삶과 사역에서 
바울은 종종 체포당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계속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오늘 날은 21세기이지만, 세상의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복음은 압력과, 반대와, 어떤 박해 없이는 선포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우리의 가족과 교회와 단체들을 준비시켜서 
세 가지 중요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핍박 속에서도 이 확신을 지켜내야 합니다. 

1) 신학적 확신인데요.  Theological Conviction
이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전쟁이나 박해, 자연재해, 개인적인 고통의 상황에서 
그런 시기에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 하시는지, 
이런 신학적 (성경적, 말씀을 통한) 확신들은, 
영적인 실질적인 토대를 구축해 줍니다. 그래서 교회가 흔들리지 않게 하십니다. 

2) 또한 선교신학적 확신도 있는데요.  Missiological Conviction
특별히 이것은 하나님의 선교로 부르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사명에 대한 부르심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은 교회를 부르셔서, 불가능한 일을 맡기시는 데요.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열방을 제자 삼으라고 하셨고, 복음을 모든 언어로 전하라고 하셨고, 
언제나 신실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약속이 함께 따르는데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선교적 확신이죠.
이 확신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고통스럽고 핍박이 많아도, 인내하고 견딥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 사명을 이루어냅니다.

3) 또 개인적인 확신도 필요합니다. Personal Conviction
하나님이 이미 계획이 있으시고, 그리고 자기 백성을 위한 목적이 있으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계획과 목적이 있다는 확신 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곳 L4에 모여있지만, 아주 놀라운 시간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마음속으로 고통을 겪을 수도 있고, 끔찍한 시기를 지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다 계획이 있으니, 그것을 신뢰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에 의지하십시오. 그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한 계획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지하십시오. 

△명심해야 할 것은,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복음이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How Does the Gospel Relate to Culture?

1) 요약하자면, 복음은 초문화적 supercultural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완전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2) 성경에 나와 있는데요. 복음은 또한 다문화적 Multicultural 입니다. 
모든 국가의 사람들, 모든 언어의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3) 그리고 또한 복음은 융합문화적 Intercultural 입니다. 
즉 그 문화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며, 그 복음이 문화와 뒤섞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복음적 문화를 만들어내게 되는 거죠.

서로 다른 문화권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들 사이에 영적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온 우리가 지금 여기 L4 대회에 와서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4) 복음은 또한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Cross-cultural
복음은, 자기 문화를 뛰어넘어, 다른 문화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선교죠.

5) 복음은 친문화적 이기도 하면서, 또한 반문화적입니다. Pro-Cultural, Anti-Cultural
복음은 문화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문화 친화적이지만,
그렇지만 복음은, 세상 문화, 세속 문화, 죄악된 문화로부터 회개를 촉구하며
새로운 하나님 나라 문화를 전해주는 것이므로, 반문화적 이기도 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은, 세상 문화에 대해 복음은 반문화적이기 때문에 
불의와 폭력, 차별, 억압 등과 싸우고, 그 때문에 복음은 반대에 직면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가 이 세상에는 구원의 단 한 길이 있을 뿐이며,
구세주는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이렇게 증거할 때, 
그 나라에서는 반문화가 되는 것이고, 제자들은 핍박을 받게 되죠.

▲2. 복음은 듣든지 아니듣든지,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28:24절인데요.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바울이 로마에 가서도, 자기 셋집에서 유대인들을 초대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 합니다. 
그의 복음 전도를 믿는 사람도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8:28

복음은 열방에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그것은 그 다음 문제이고, 
우리의 사명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그러나 선포하는 것은 우리 사명입니다.

결과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그래서 여러분의 우선순위는, 
예수님의 복음을 모든 열방의 세대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지스베르투스 보헤티우스는 네덜란드 신학자로 17세기 사람인데요. Gisbertus Voetius

그가 선교를 말할 때 '그리스도의 교회는 복음 선포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고, 보내심을 받았다' 라고 했습니다.
The church is called by Jesus for salvation and sent by Jesus for proclamation.

복음선포가 중요하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복음선포 proclamation'를 하고 있습니까?
믿든지 안 믿든지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우리의 사명은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아마존 지역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 우리는 처음으로, 원주민들을 초대해서 복음을 선포하는 집회를 가졌습니다. 

아마존 원주민 목회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1200명이 넘는 원주민들이, 47개 부족에서 참석을 했고 
다함께 모여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이 집회에 참석한 특별한 두 부족이 있었는데 
조로 족 과 소로이 족이었습니다. 
이들은 수 세대에 걸쳐, 서로 싸워오던 부족이었는데, 
도대체 언제 싸우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부족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그들을 찾아왔고,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용서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전도집회에 두 부족을 함께 초대를 했고, 
그래서 조로 족과 소로이 족 사람들이, 같이 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우리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같은 보트를 타고 4일 동안이나 그들이 함께 여행을 했기 때문인데요.
거주 지역이 서로 가까우니, 같은 보트를 타고 4일을 달려와 집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아마존 밀림은 도로가 없고, S자로 굽어진 아마존 지류를 따라 소형보트로 다니는데,
그 넓은 지역을 다니려면, 보트를 타고 3~4일 다니는 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밀림에서 밥 해 먹으면서, 어두워지면 해먹을 걸고 자면서... 그렇게 이동하죠) 

그들이 집회에 도착했을 때, 우리 선교회 리더들이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심하세요. 두 부족을 같은 곳에 두면 안 됩니다.' 

아마존 에서는 해먹을 사용해서 이제 잠을 자는 데요. 
그래서 자는 장소를 여러 곳으로 분산해서 자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부족들은 '그럴 필요 없이 함께 자겠다'고 말을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 날 밤 예배 시간에, 모든 부족이 찬양이나 간증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조로 족과 소로이 족이 나와서 함께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우리가 지금 함께 춤추고 찬양하는 것은 예수님 덕분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지금 로잔대회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노래하고 찬양하는 것은 다 예수님 덕분입니다. 

▲3. 복음이 자유롭게 그리고 용감하게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바울이 2년 동안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대접하고 복음을 나눈 것을 볼수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을 보면 참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31 

여기서 살펴볼 키워드는 '담대하게, 거침없이' 입니다.
with all openness, unhindered / NASB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굉장히 인상적인 말씀이죠. 
그런데 때로는, 우리가 이런 '담대함과 거침 없음'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심하게 되고, 선포를 주저할 때가 있죠.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능력이 있고,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경이 있고,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에게 교회가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가 우리를 격려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있고, 하나님의 메세지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우리가 '담대함'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는 거죠.

에베소서 6:18~20절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자신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데 
기도 제목이 한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용기를 가지고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엡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어째서 바울 우리가 아는 가장 용감한 복음전파자인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내가 담대하게 용기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 요청을 했을까요?

본문 행28:31절에는 '담대하게 거침이 없었더라'고 했는데,
(그 로마에서 썼다고 여겨지는) 에베소서에는 '내게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해 줘요'
하고 교인들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당연한 거죠. 대부분의 시기에 바울은 복음선포에 담대했지만,
그래도 '담대함'이 또 필요했던 것입니다. 담대함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에베소 교인들이 기도해준 결과, 바울은 담대하고 거침없을 수 있었던 거죠.
 
예수님을 증거하는 담대함은, 우리가 타고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훈련이나 지식, 경험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 복음선포에 있어서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선포하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히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나에게 용기와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께서 압박을 받고 있다면,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지금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역을 게속해야 할 동기나 목적을 잃으셨다면, 용기를 가지십시오.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있다면, 용기를 가지십시오. 
선교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담대함을 달라고, 바울처럼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우리 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담대하게 거침없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1
with all openness, unhindered / NASB
복음을 전하되,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놓고, 공개적으로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장벽 없이!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바울은 감옥에 있었고, 한 군인의 감시를 받았고 
어떻게 감옥(가택연금)에 갇힌 사람이, 장벽 없이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단 말입니까? 
거침 없이 어떻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까? 

저는 바울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삶을 관찰하고, 현실을 관찰하고, 사역을 관찰 했고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장벽만 쳐다보는데, 
바울은 '막힌 곳에도 하나님은 길을 만드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고, 거침이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입니까? 
장벽 속에 열린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갇힌 상황이니까, 그는 서신서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서신서 옥중서신은, 그가 자유롭게 선교할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인데 
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28:31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전했습니다.' 

교회나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기회를 활용해서, 불편한 기회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예수님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확신하는 것은 우리가 다뤄야 할 오늘 날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의 마음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교단과 지도자들, 선교 단체들, 선교 전략의 깃발을 너무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 자신의 이름을 너무 소중히 여깁니다. 너무 지나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에 대해 더 말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덜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길게 말하고, 지도자들이나 자신에 대해서는 덜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더 말하고, 우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덜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깃발을 낮추고, 예수님의 깃발은 높이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그럼 어떻게 복음을 이렇게 혼란스런 세상에서 선포하고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을까요? 

여기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by being people of faith
전략이나 논리에 의해서만 인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의 방향을 따르는 겁니다. 

주님은 연구, 분석, 전략을 사용하시고, 우리는 여기에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성령을 따라야 합니다. 

2)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by being people of prayer
주님께 인도하심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구하십시오. 
우리는 기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고, 기도의 삶을 살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놀라운 도전에 동참하고 싶다면, 열방에 예수님을 알리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연합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by being people of unity
비판하지 말아야 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경쟁하지 말 것이고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함께 협력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함께 협력하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전략을 함께 개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서로 돌봐야 합니다. 

4) 마지막으로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by being people of courage who share and live out the gospel

복음을 나누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우리 모든 언어로,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 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저는 가나에서 9년 동안 사역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성경 번역을 하고, 교회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수 년 동안 저희는 언어와 문화를 배웠고, 그 후에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나무 아래서, 제가 교우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에, 어떤 발을 저는 여성 한 명이 저희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그 여성은 소아마비 환자였고, 그래서 다시를 땅바닥에 끌듯이 다녔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는데, 계속해서 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합니다. 
'내게는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말이, 계속 자기 뇌리를 맴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 그녀는, 마을에서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살았는데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먼 길을 걸어서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를 우리 교회로 데려다 주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녀는 수 시간 동안 광야 길을 기다시피 해서 왔습니다. 

겨우 우리 교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손에서 날카로운 돌에 찔린 때문인지 피가 막 흘렀습니다. 

오늘까지 제 기억에 아주 생생한데, 그녀는 땅바닥에서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그녀가 씻는 것을 도왔고 
그녀는 자기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했는데 (회교도들이 이렇게 잘 하죠)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 준다는 뜻이었습니다. 

놀라운 날이었습니다. 그 날 밤에 집에 돌아가서 이렇게 저는 스스로 자문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힘이 이 여성을 수 시간 동안이나 광야 길을 걸어서 나오게 했고, 
그렇게 (이슬람) 동네 사람들의 압박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드릴 수 있었을까? 그게 도대체 어떤 힘 일까?' 

여러분, 그것은 설교자의 힘도 아니고, 교회의 힘도 아니고, 단체의 힘도 아니고,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누구든지 불신과 미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 어떤 불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주님의 능력은 그를 자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지고, 그 복음을 선포하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기도 하시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함께 기도 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