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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배낭과 전대를 가지라

LNCK 2024. 10. 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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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배낭과 전대를 가지라     눅22:35~38    2024.09.22.설교일부녹취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성경을 두루 보지 못하고,
성경의 일면만 보고, 그 일면이 진리의 전부인 줄 알고, 그렇게 믿고 가르치지 쉽습니다.

위 본문도, 매우 당혹스런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에 내내 '너희들은 전도하러 나갈 때에 전대와 배낭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죠.

그런데 십자가를 앞두시고 '이제는 전대와 배낭을 가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한 성경에 상반된 두 구절이 나오는 것입니다.       ☞ <모순, 양면성> 모음

이 시간에는 일단 '해석'을 먼저 시도하고,
'적용'이나 '묵상'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본문 눅22:35~38절은, 해석이 쉽지 않고 꽤 어렵습니다.
이 말씀 후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시죠.
그러니 이 대목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마지막 대화'라고 봐도 됩니다. 

눅22: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앞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마10장),
또 70인의 전도대를 보내실 때 (눅10장), 어떻게 명령하셨죠? 
'너희가 전도하러 갈 때는, 전대, 배낭, 신발 등을 다 준비할 필요 없어!' 마10:9~10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제자들은 부족한 것이 실제로 하나도 없었습니다. 

35절은 예수님이 이것을 회상하시듯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36절에 보면, 이와 정반대의 대조적인 교훈이 나옵니다. 

22:36 '이르시되 (그러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과거에는 '전대나 배낭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러나 '이제는 배낭이나 전대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검이 없는 자는, 그 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서 준비해라' :36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이거는 충격적인 말씀이죠.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학자들이 지적하는 공통점은 무엇이냐? 
'임박한 위험'입니다.  '이제 곧 폭풍이 몰려올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곧 붙잡히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게 되고, 
그들은 다 흩어지게 됩니다. 이런 폭풍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임박한 위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젠 이 폭풍이 바로 코앞에까지 왔으니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스스로 준비해라' 

왜 예수님은 믿음으로 '전대와 배낭을 가지지 말라'고 하시지 않고,
이성적으로 '이제는 전대와 배낭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는가요?

1) 이 같은 시대의 구분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닥칠
초대 교회의 박해 시대를 준비시킨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실제로 박해가 일어났죠.

그 박해는 거의 3백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평화의 시기가 있고, 박해의 시기가 있다는 거죠.

그때에 따라, 준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방 선교를 할 때는, 배낭과 전대가 필요하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다가, 슈바이처의 해석을 참고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인으로 불리는 슈바이처가  
도덕적, 윤리적인 면에서 성자일뿐만 아니라, 그분이 유명한 신약 학자입니다. 

그분은 이 구절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했느냐면,
'이 예수님의 교훈은 제자들에게는 선교의 새로운 장을 예고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때까지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는,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이 다 채워줄 수 있지만, 
이제 앞으로는 무대가 어디로 옮겨지느냐? 

이방인 지역으로 옮겨지게 될 때, 
그때는 분명히 믿음으로 준비해야 될 것도 있겠지만, 
'이제는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준비해라!' 
이런 선교의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 예고하는 것이다' 라고  슈바이처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도 바울의 예를 듭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죠? 그냥 믿음으로도 갔지만, 뭘 했습니까? 
텐트메이커! 
자기가 천막을 만들면서, 스스로 필요한 비용들을 벌면서,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할 때에도, 한쪽 길만 예수님이 가르치신게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히 믿음을 통해서, 때로는 배낭과 전대도 준비할 필요가 없이, 
믿음으로 채워 주실 때도 있지만, 

그러나 어떤 순간도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느냐? 
우리 스스로가 자비량으로 준비해야 되는 때도, 시기도 있다는 거죠.   <모순, 양면성
우리가 성경을 두루 두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앞 날을 준비해라' 라고 말씀하셨고, 
특별히 '칼'에 대한 준비를 언급하셨습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라는 거죠. 

그런데 37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을 해요.   *'가르', 개역성경에는 빠져있죠.
왜 예수님이 '칼을 준비하라'고 하셨는가요?

22:37 '(왜냐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7절에서, 원문을 한국말로 옮기다 보면, 어순이 좀 달라집니다. 
원래 어순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기록된 것은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구약에 기록된 내용이 나오죠.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기록된 것은 내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된다' 
근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이 말씀이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7b
'그 예언이 이루어질 때가 지금 다 되었다. 임박했다, 끝이다' 라는 겁니다.

이 예언은, 이사야 53:12절의 아래 밑줄의 인용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거는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할 뿐만 아니라,  
누구의 친구로 그가 여김을 받게 되느냐? 
'(칼로 무장한) 불법한 자 중 하나로 여김을 받을 거다'

이 말씀을 결국은 이루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검을 사라고 하셨다는 거죠. 

37절을 다시 보면 '기록된 이 말씀은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되고, 
구약성령에 기록된 내게 관한 일은 지금 이루어져 (99%) 가고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지금 칼을 사야 된다' 라는 겁니다.  *그래야 99.9% 된다..는 식으로

결국 예수님께서 이 명령을 주신 가장 직접적인 의도는 뭔가 하면,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원하시는 간절한 열망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단호한 결심입니다.
'나는 구약에 예언된 대로, 수난의 길을 가야 된다'는 거죠. 

이제 나의 당하는 수난으로 세상이 바뀔 것인데
이런 때는 '너희에게 전대와 배낭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준비해라' 

그래서 38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말합니다.  
22: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만약 예수님이 무장 봉기를 지시하신 거라면
'고작 칼 두 자루? 그것가지고 뭘 하겠니? 빨리 칼과 무기를 더 끌어모아라'
이렇게 이야기하셔야 돼요. 

근데 예수님께서 '족하다. 충분해, 됐어'  칼 두 자루면 충분하다는 거예요. 
무장이나 물리적인 충돌에 대비하라는 듯이 아니라, 그저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거죠.

그래서 요즘 대부분 학자들의 해석은 뭔가 하면, 
38절의 '족하다'는 예수님을 말씀을
'그래, 칼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 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칼(무기, 무장)에 대한 교훈을 주신 진짜 이유는, 
그들에게 무장 봉기를 가르치신 것도 아니고, 
예수님과 관계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의도이셨기 때문에, 
'그래, 칼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 하시게 됩니다...

 

"적용"은 각자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