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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열정이 식지 않는 교회

LNCK 2024. 10. 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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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열정이 식지 않는 교회 | 롬 1:13-17 | THE ONE | 24.9.29 - YouTube

 

복음의 열정이 식지 않는 교회        롬1:13~17      2024.09.29.   

본문 롬1:13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얘기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자기는 빚진 자다. 
복음의 빚진 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라는 기독교의 걸출한 인물의 그 삶을 움직이는 핵심에 
뭐가 있느냐 하면 '내가 복음의 빚을 졌다'는 의식입니다. 빚진 자의 감정입니다. 
아 이게 엄청난 거예요. 

제가 호주에서 한 20년 살았는데, 호주가 굉장히 큰 나라예요. 
어마어마한 대륙이죠. 끝도 없이 가는 거예요. 

드라이브를 하는데 끝도 없이 고속도로가 연결되는데, 도로가 잘 닦여 있더라고요. 
그런데 가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냐면 
'야 이 도로를 도대체 누가 깔았나? 이 길고 긴 길을, 누가 만들었을까?'

누군가 공사를 해서, 땀을 흘려서 그 도로가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 공사 현장을 제가 본 적은 없어요. 

근데 누군가 숱한 사람들의 땀이, 그 길에 스며있는 거죠. 
저절로 그 도로가 놓아졌을리는 없는 거죠. 

호주 대륙 외곽을 도는 순환하는 고속도로가 다 만들어져 있거든요. 
시드니에 있는 그 하버브릿지도, 그게 1920년도부터 시작해서 30년도에 완공됐는데, 
어마어마한 다리죠.
우리나라에 '대교'가 많은데, 하버브릿지를 보고 나면, '대교'라는 말을 붙이기가 좀
머슥해지는 다리도 일부 있어요.

그것도 마찬가지죠.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었나?' 너무 신기해요. 
그 공사를 할 때, 작업 인부 열 몇 명이 죽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버브릿지를 쉽게 지나다니는데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한 거예요. 
국가적으로, 재정적으로, 또 백성들이 세금을 내고... 
어마어마한 세금을 다 내서 그런 공사를 했는데, 
나는 거의 공짜로 다니는 거죠. (빚진 자의 심정을 잃어버릴 때가 많죠)

여러분 밥을 먹을 때 곡식 한 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농사를 짓는 분들 보면, 하루도 집을 못 비워요. 그들의 땀과 눈물이 있는 거죠. 

물론 우리가 돈을 주고, 농사 지은 농산물을 사서 먹긴 하지만, 
그게 그저 주어진 건 아니라는 거죠.  (빚진 자의 심정을 잃어버릴 때가 많죠)
농사를 직접 지어보기 전에는, 그 심정을 헤아릴 길이 없어요...

여러분 저는 병원에 갈 때도 마찬가지예요. 병원에 신세를 질 때, 
그 의사 선생님들의 수고로, 아주 내가 고생했던 게 간단하게 해결된단 말이에요. 
근데 간단하게 해결되지만, 그 의사 선생님은 엄청나게 많은 대가를 지불한 거예요. 
그 과정을 거쳐서, 간단하고 쉽게 치료하는 그 경지에 이른 것이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게, 사실은 사랑의 빚이죠.
그걸 깨닫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 바울이 느낀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키워본 부모들은 다 압니다. 
아기는 태어난 후에, 하루도 그냥 스스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사랑을 베풀어야 아기가 자랄 수 있어요.

'난 나 혼자 자랐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근데 일평생 그 부모의 사랑과 그 은혜를 우리가 깨닫는가요? 못 깨달아요. 
합당할만큼의 감사함을 자녀는 느끼지 못합니다. 느끼지 못하니 감사를 돌리지도 못합니다.   

어느 순간인가 '내 힘으로, 내 재주로, 내 능력으로, 내가 잘 나서 이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모든게 빚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목회하는 것도, 제가 제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경험으로, 
내 실력으로 하는게 아니에요. 
앞선 믿음의 세대들이 보여준 것들... 다 그분들에게 큰 빚을 진 거죠.

책을 한 권 읽어도... '야 이 책 하나도 이 신학자가 얼마나 오랜 세월 곰삭여서, 
이런 기가 막힌 신학을 연구해서, 정리를 해서, 교리로 신학으로 정립해서 
오늘날 우리가 건강한 신앙을 하도록 돕는 이 신학자들의 노력...' 어마어마한 거예요. 

서재에 있는 책 한 권 한 권만 봐도 '야 내가 엄청난 수혜를 입고 내가 목회를 하는 거지, 
내가 내 힘으로, 내 저절로 뭔가를 깨달아 가지고 하는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이게 다 빚인 거죠. 저와 여러분이 다 빚진 자들인 거죠. 
꼭 복음만 아니라, 복음 말고도 우리는 빚진 게 수두룩하죠.

▲여러분 대한민국의 역사가 마찬가지잖아요. 
앞선 세대들의 그 눈물과 헌신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세대는 없는 거죠. 

이번에 L4 로잔 대회에서, 140년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12개의 중요한 사건들로 나누어 가지고, 잠깐 잠깐 훑어서 설명했는데 
'야 진짜 우리나라는 기적 위에 서 있는 나라예요. 
어느 것 하나도 우연히 된게 없어요' 내외국인 모두가 탄성지르며 감동 받았어요.

오늘의 우리 나라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나라가 된 것도 
앞선 세대들의 눈물과 헌신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만큼 자리매김 하게 된 것도,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던 것이고, 
140년 전부터 서구의 선교사들이 너무도 많이 들어와서 
자신의 젊음과 청춘을 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산 경남은 데이비스 선교사 라는 
그 20대 젊은 나이의 엘리트가, 호주의 빅토리아 장로교 교단에 소속된 그가, 
그 여동생과 함께 조선에 온 거예요. 

인천 항구로 들어와서, 당시엔 비행기가 없었으니까요, 
부산에 와서 선교해보지도 못하고, 인천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에 병으로 죽고 말았죠... 
얼마나 고귀한 희생입니까!  https://rfcdrfcd.tistory.com/15974053

「1885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에 온 선교사 숫자는 2,956명입니다. 
그 중 상당수 선교사들이 의료선교사였습니다. 
이들 중 10%는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질병과 사고로 죽었습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 자녀 중에는 태어나자마자 질병에 걸려 이름도 없이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많습니다. 
양화진에 있는 선교사들의 묘지가 그들의 희생을 보여줍니다.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 숫자가 145명인데, 그 중 65명이 선교사의 자녀입니다.」 *출처 : 온누리신문

우리가 복음의 빚을 진 거죠. 
여러분 사실 우리 조선이라는 나라는 감추어져 있던 은둔의 나라였어요. 

▲빚을 졌는데, 빚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빚을 지면, 거의 정신적으로 노예가 돼요. 빚에 매여요. 자유롭지 않아요. 억눌림이 있어요. 
빚은 갚아야 돼는 거거든요.

바울의 심정에는 그게 있는 거죠. 빚을 갚아야 된다는 심정!
'이 엄청난 빚을 내가 지고 있는데... 이 은혜의 빚, 사랑의 빚, 복음의 빚을 갚아야 된다...'

저희 집안에서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큰 실패를 하셨어요. 
와 그러니까 집안이 막 내리막 길을 가는데,  
나중에는 완전 빚더미 위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 집달리 이런 거 아세요? 
그러니까 집에 있는 모든 물품에 다 딱지를 붙여 버리는 거죠.
법적으로 모든게 다 넘어가 버려요. 

빚쟁이들이 막 한두 명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들이 그 빚쟁이에 시달리는 모습이.. 제게는 아주 많이 남아 있어요. 

빚쟁이가 빚을 받으러 올 때는, 항상 저를 또 대표 선수로 내보내요. 
'가서 아무도 없다고 해라' 아 끔찍했어요. 

제가 대문 밖에 나가서 부드럽게 얘기하고... 어린 나이에 그렇게 했어요.
저는 그래서 '야 빚을 지고 살면 안 되는 거구나' 그걸 절실히 느꼈어요. 
'나는 죽어도 빚은 안 진다. 나는 앞으로 절대 빚을 얻지 않을 것이다!' 뼈저리게 느꼈어요.

여러분 빚진 사람들은, 빚을 갚으며 살게 되어 있어요. 갚지 않고 살 수가 없어요. 
언제나... 잠을 잘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늘 생각이 '어떻게 하면 빚을 갚을까?' 
이게 바로 채무의식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이 복음이 주는 '빚진 감정'이 굉장히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가치를 깨닫는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 '복음의 빛을 졌다'는 것은 엄청난 거예요. 작은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복음의 가치를 깨닫는 사람일수록, 그 채무의식은 더 커져가는 거예요. 
이게 뭐 100만불, 뭐 200만불 이런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 존재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게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바울 사도는, 롬1:16절에서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 능력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이루는 능력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전체를 바꾸어 놓는 능력인 것이죠.

복음이 들어가면 여러분, 그 삶이 바뀌는 것이죠. 달라지는 것이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복음과 정면으로 부딪혔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아직 복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만약 복음을 경험했다면, 그 복음은 완전히 우리 인생을 뒤집어놓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복음에 대한 채무의식이 생기는 겁니다.
'이 복음은 나 혼자만 가지고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잠잠할 수 없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누가 복음을 전하는가 하면, 
'복음은 전하라' 해가지고 전하는게 아니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은, 전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여러분 바울은 그 복음의 빛을 발견하자 
도무지 혼자 그 복음을 붙들고 있을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많이 전하고 싶었던 거죠.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로마에 이미 복음을 복음이 들어갔고,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바울은 이 로마에 다시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너희 보기를 원한다'라는 얘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을 빨리 로마에 가서 로마의 그 성도들과 함께 나누며
이 복음의 광휘로움을, 위대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라는 마음이 간절해서 
지금 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우리에게도 전달되어집니다. 

1:13절에 '내가 너희에게 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여러분 오늘 우리 '복음의 빚진 자들'은
'한국 땅에 복음이 어떻게 들어왔는가?'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대한민국,
이 복음이 민족의 역사를 바꿔 놓았어요. 
여러분 대한민국은 사실 설명이 안 되는 나라에요. 

이번에 로잔 대회에 온 남반구 나라들 대표들은
사실 한국에 다들 처음 온 것입니다. 
그들이 이구동성 묻는 것은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요인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설명이 잘 안되는 나라예요. 
오직 복음으로만 설명이 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으로만 설명이 되는 나라입니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나라예요.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이 일어나고, 북한에 신실한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전쟁으로 인하여, 그 북한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남하하여
이 땅의 곳곳에 교회를 세웠어요.
부산 경남 지방에도, 이북 성도들이 내려와서 세운 교회들이 있어요.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죠. 

▲여러분 우리는 복음의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어여야 됩니다.

내가 왜 돈을 버는가요? 돈을 버는 목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돈을 벌고 나서 그 후에 복음을 전하는게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거예요. 
그게 우리 존재의 목적이고, 그게 우리 아이덴티티 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그냥 돈 벌다가 죽는 거예요. 돈 벌면서 살다가.. 죽는 거예요.
돈 못 벌고 죽든지, 좀 많이 벌다가 죽든지, 돈 벌다가 죽는 거예요.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없어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에게 그냥 돈을 달라고 기도하지 마세요. 
그냥 직장 취직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마세요.  (*대학청년부 예배 설교) 

왜 직장에 취직하기 원하십니까? 
복음을 위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왜 공부를 하느냐는 거죠.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그 소명, 사명이 확실하지 않으면
결국은 여러분 어느 순간에 가면 딱 멈추는 겁니다. 
어느 순간에 가면 갈등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거죠. 인생에 답이 없는 거죠.

이 세상에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정립하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가 성공하고, 내가 하는 일들이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거예요. 

바울은 이 빚진 자의 의식, 그것이 그의 삶을 움직이는,
삶의 모든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이 복음에 빚을 일평생 우리가 갚을 수는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이 복음을 위해 살아갈 때 
주어지는 삶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여러분, 빚진 사람들에게 놀라운 기쁨 가운데 하나는,
빚을 조금씩 조금씩 갚아갈 때 찾아오는 기쁨이에요. 와 그건 대단한 거예요. 

저는 그날을 잊지 못해요. 우리 아버지가 빚을 다 갚은 날!
그 날을 제가 잊지를 못해요. 그 날, 우리 가족들은 완전히 자유인이 된 거예요. 
그렇지만 그 전에, 빚을 조금씩 조금씩 갚아갈 때 찾아오는 기쁨도 상당해요.
우리가 복음의 빚을 갚아가는 기쁨 가운데 살아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복음을 전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에 가면, 기쁨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루틴이 생기고, 뭔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별로 즐거운 것이 사라지고, 
초신자 때는 그런게 있는데, 좀 지나면 밋밋해져요.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교회 안에 갇혀 있어서 그래요.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으로 나가야 돼요.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전하다가 핍박을 받기도 하고, 
또 전하다가 그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에 가서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감격적인 순간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게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기꺼이,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롬1: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의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바울은 거대한 로마 제국을 향하여서, 
그 당시에 기독교 인구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사도행전 마지막 구절에 보면 '바울이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했다고 나옵니다.

그는 복음의 완전성을 확신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 복음 이외에는 답이 없다'는 걸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복음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28:31

여러분, 요즘 동성애자들 보세요. 커밍아웃을 해가지고 얼마나 담대하게 거리를 활보합니까?
옛날에는 다 숨어 있었거든요.
동성애자들도 그렇게 담대한데, 왜 그리스도인들이 주눅들어 있어야 하나요?
우리가 훨씬 더 완전한 복음을 가지고 있는데요. 

복음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복음은, 우리가 생명을 걸고 자랑스러워야 될 것이에요.
복음 밖에는 세상에 답이 없다는 걸 우리가 믿기 때문이죠. 
복음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그리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생명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담대하게,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그걸 영광으로 알고, 자랑으로 알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경험하면,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미쳐요. 
자기가 예수 믿는 걸 막 정체를 드러내고, 
어디 가든지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좀 너무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복음을 부끄러워 한다는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그것은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죠. 

복음을 아는 사람은, 잠잠히 있을 수가 없어요.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며 전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전도와 선교의 DNA를 갖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Missional Church, 선교적 공동체라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을
오늘 이 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붙잡아야 해요. 

미셔널 처치, 이 말이 나오는 것은
전통적 교회와 구별이 된다는 거죠.

지금까지 전통적 교회들의 모델들의 특징은 뭐냐? 
바깥으로 아울리치를 하는게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나가고, 세상에 퍼지고 흩어지는게 아니라 
교회 안으로 모으는 데에 힘을 썼던 거예요. 그게 전통적 교회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모든 것을 다 소비하고,
바깥으로는 조금 나누어주고, 
그 외에는 모든 관심이 교회 안으로만 쏠려 있는... 
이런 전통적 교회 모델은 앞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 라고 봅니다. 

지난 역사에도 보면, 교회가 성을 쌓고, 울타리를 강화하고, 벽을 쌓고, 
외부와 점점 단절되면서, 아이솔레이트(고립) 되고, 
세상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섹터화 돼 있는 이런 구조로 가면, 
그게 전통적 모델의 교회예요. 그건 자연 소멸되는 거죠. 촛대가 옮겨지고 마는 거죠.

우리는 흩어지기 위해서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흩어져야 돼요.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은혜를 받았으면.. 흩어져야 돼요. 

그래서 또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은혜를 받았으면 나가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섬길 곳은 세상이라는 거예요. 

미셔널 처치는.. '우리가 (안 하던) 선교를 (이제부터) 하자'는 게 아니에요.
교회의 본질 자체가 '선교'라는 거죠.
성도는 모두 보냄을 받은 선교사이고, 교회 자체가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는 거죠.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교회의 모든 요소가 다 선교 덩어리인... 그게 미셔널 처지입니다.

여러분 요20: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할 때
'너희'는 신약의 교회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특정한 사람만 선교사로 보낸게 아니라는 거죠.

성도인 우리는 다 선교사라는 거죠. 여러분은 다 선교사예요. 
특정한 사람만 선교사가 아니에요. 
사도행전을 보세요. 사도행전의 교회는 여러분 다 선교 공동체죠.
교인들이 다 선교사였어요. 핍박으로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어요. 

선교하는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돼요. 왜요? 
선교하게 하는 에너지는 기도에서 나오니까요. 

아무리 여러분 선교하고 싶어도 안 됩니다. 내 힘으로는 못 갑니다. 
제자훈련 받았다고 선교 갈까요? 못 갑니다. 
우리의 힘으로, 내 생각에는, 내 계산으로는 절대 선교 못 갑니다. 
선교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기 때문에... 
그걸 해체해 버린게 성령이시고, 그 성령은 어떻게 받는 거예요? 
그들이 모여 기도할 때! 기도하는 교회가 선교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기도 안 하는데 어떻게 선교를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해요. 

 

선교 현장은 전쟁터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현장으로 가면 전쟁터입니다. 화약고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복음의 빚을 너무 많이 줬어요.이 민족이 존재하는 것은 복음의 빛이에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선교적 사명, 세계선교! 
또 온 세계가 지금 한국으로 모여오는 이주민 선교, 
또 너무너무 중요한 '다음 세대 선교'
이 거대한 사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선교지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곳이 선교지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선교사입니다. 오늘은 올 라운드 플레이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복음으로 무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을 늘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을 늘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이구나!' 복음이 액세서리가 아니라
이 복음이 실제로 내 삶을 바꾸어 놓는 것을, 우리가 먼저 경험해야 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전통적 모델을 좇아가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미셔널 처치로, 흩어지는 거예요. 모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모여서 흩어지는 공동체!
이게 나아갈 돌파구인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