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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허락된 공간, 시간 그리고 사람

LNCK 2024. 10. 8. 11:2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사도행전

https://www.youtube.com/watch?v=PJEwVip2IVk

내게 허락된 공간, 시간 그리고 사람      행18:1~17        2024.09.29.  

◑도입 / 고린도에서 사역을 시작한 바울

 

바울은 아덴(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한 후에, 고린도로 갑니다. 
고린도는 아덴에서 남서쪽으로 약 80킬로 떨어져 있습니다. 

고린도 도시의 양쪽이 모두 바다를 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기에 운하가 연결되어 있죠.   *1893년 완공, 6.3Km
사도행전 당시부터 여기가 지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산업과 무역의 요충지었습니다. 

그 당시 말 중에 '아무나 고린도 살 수 없다' 
엄청난 물가, 화려한 문화, 그리고 향락의 도시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도시였습니다. 돈도 많았던 그런 도시였습니다. 
국제 도시에 바울이 도착했습니다. 

▲행18:1~3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여비가 떨어졌는지) 생계를 위해서 일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인데 
이 분들은 로마에 살다가, 글라우디오 황제(네로 전 황제, 네로의 양아버지) 때
추방령을 내려서,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모두 쫓아냈습니다. 

그때 이 부부는 고린도로 이주해 와서, 이제 막 천막제조 사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집에 취직해서 함께 숙식 하며 살았습니다.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러니 여기 일터가, 상점인데, 살림 집까지 겸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고린도를 방문해 보면, 이런 아고라 (시장, 광장)를 볼 수 있습니다. 


위 고린도 유적 사진에 보면, 길 오른편에 똑같은 크기의 상점들이 쫙 나열되어 있습니다. 
각 상점의 크기는, 보면 폭은 3M, 길이는 4M, 높이가 4M 정도 되는 
작은 상점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낮에는 밑에서 일하고, 밤에는 다락 방이 있어서 가족들이 올라가서 자는 분위기 였다면, 
바울이 만약 여기에 기거했다면, 아마도 밤에 그냥 작업장에서 그대로 뭘 깔고 자는 
그런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조그만 공간에서 24시간 함께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같이 일하고, 대화하고, 밥 먹고 친구가 됩니다. 

여기서 바울이 집중적으로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요즘 말로 하면 일대일 제자 훈련이죠. 
성경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근데 가르치면서 또 배우는 거예요. 
바울도 이 부부를 가르치면서 받았던 은혜가 많았을 거예요.

 

◑국제도시 고린도에서, 시야가 넓어진 바울

특별히 바울의 시야에, 이때 비로소 로마가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 브리스길라 부부는 로마에서 살다가 왔잖아요.
그러니까 말하다 보면, 로마 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을 거예요.
'로마 시와, 로마 교회에 이런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이런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왔을 거예요. 

저도 종종 시카고 얘기를 합니다. 제가 30대 초반에서 50세가 될 때까지 살았기 때문이죠.
담임목회 첫 경험도 시카고였고요...
그래서인지 우리 교인들 중에도 '제가 미국에 가면, 시카고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요'
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가지고, 그런 느낌이 있겠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서, 바울은 '로마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서 바울은, 에베소 사역을 정리할 때 쯤에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는 비전을 말합니다. 19:21

이 좁은 공간, 몇 미터가 되지 않는 이 좁은 공간에서, *아굴라의 작업장
세계를 향한 꿈이 잉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만남이 정말 중요합니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대화를 하고 살아가는가...' 
지금 세계는 정말 글로벌 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L4 로잔대회 때 전 세계 200여 개 국에서 약 6천 명 되는 분들이 모였고, 
한국의 자원 봉사자들까지 합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한 20분 정도가 버스를 타고 올라 왔었는데요. 
다들 깜짝 놀랐어요. 첫 번째는 규모가 어마어마 해서 놀랐습니다. 
동원된 미디어도 굉장했고요. 
'목사님 여기 오니까 외국 온 것 같아요.' 
왜냐면 대회 참석자 90~95%이상이 전부 외국인이었으니까요. 
세계 오대양 육대주의 복음주의권 기독교 대표들이 다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대회 기간 1주일 동안 계속해서 말씀 듣고, 소그룹으로 모이고 그랬는데, 
제가 속한 그룹에는, 
-캐나다에서 온 분, 
-호주의 사역자, 
-한국 태생인데,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 됐습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가서 난민 사역하는 미국인 자매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 인데, 지금은 홍콩에 가서 사역하는 분,
-또 한 분은 완전히 한국 사람처럼 생긴 인도네시아 분이에요. 
그는 한국 직장에 몇 년 동안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주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한국 사람이지만, 미국에 오래 살았었죠. 
그래서 굉장히 다양한 분들이 함께 섞이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조금씩 그렇잖아요. 
가운데 차이니즈 코리안도 있고, 필리피노 코리안도 있습니다. 
이 분들이 다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세계적인 차원으로 안내해 주는 분들입니다. 

△지난 추석 직전에, 우리가 경기도 곤지암 있는 소망수양관에 갔을 때였습니다. 
<목회자 설교 멘토링>을 섬기러 갔었는데 
그때 그 소망수양관 직원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해요. 

'목사님 다음 주에 여기에 차이스타가 옵니다.' 
'차이스타'란 중국인들이 코스타를 모델로 본 따서 하는 집회입니다.
Kosta : KOrean StudenTs Abroad (or in All nations)

차이스타가 생겼습니다. Chinese StudenTs Abroad
미국에도 지금 차이스타 집회가 있고요. 한국에서도 차이스타 집회로 
매 추석 연휴 때마다 이렇게 모입니다. 과거에 온누리교회에서 종종 열렸죠.

여러분, 외국 유학생들은 얼마나 외롭고 갈급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아마도 본토 중국에서 살았으면, 평생 교회 근처도 안 가봤을 사람들이 
한국 등 외국에 오니까 마음이 가난해져요. 그래서 예수님 믿기 시작한 사람들 많습니다. 

 

지금부터 39년 전에 코스타가 시작됐습니다. 
워싱턴 DC 근처에서 목사님 몇 분이 모여서 
'아 우리가 재미 한국 유학생들을 위해서 뭔가 좀 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 
워싱턴 지구촌교회가 중심이 되었는데, 처음부터 유학생 2백명이 모였습니다.

제가 재작년(2022)에 그 교회에 집회 인도차 갔었습니다. 
그 워싱턴 지구촌교회 분들은, 지금까지도 코스타 처음 시작할 때 
그 설레임과 감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머리가 하얀 집사님, 권사님들이 
그때 집회를 위해 기도하던 이야기, 의논하던 이야기, 
특별히 집회를 위해 김치 담근 이야기... 
또 남은 김치를 병에 담아서 일일이 싸주면서, 유학생들을 도왔죠.
특별히 예수 안 믿는 학생들이, 예수님을 알고 의지하게 되기를 바라면서요.

그렇게 했던 그 이야기를 정말 어제 일처럼 말씀하세요. 
그 사역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알았겠습니까, 상상했겠습니까? 

지금은 중국 사람들이 차이스타로 모이고, 
일본 사람들이 세계에서 재스타로 모이고, 
몽골 사람들이 모스타로 모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러스타로 모입니다.                 

이 시작이 코스타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랍습니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 고린도의 조그만 공방에서 함께 말씀을 공부하면서 
그 복음이 이렇게 번져갈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18:4~5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마게도냐에 주축인 두 교회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핍박을 피하여, 혼자 먼저 아덴을 거쳐서 고린도로 내려왔고요, 
나중에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내려와 합류한 것입니다.

그들은 마게도냐 교회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복음들은 사람들이 예수 잘 믿고 있습니다'하는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또 하나, 빌립보 사람들이 이때, 바울을 위한 선교헌금을 모아서 보내왔습니다. 
고후11: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천막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이제 복음 사역에만 온전히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18:5
아마도 이때부터 생계 걱정하지 않고, 바울이 풀 타임으로 말씀 사역을 할 수 있었다.. 
라는 말인 것 같아요. 

 

◑두려웠지만, 하나님이 주신 용기를 받은 바울

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이제 풀타임으로 열심히 사역했는데, 비방이 돌아오는 겁니다. 박해가 일어나는 겁니다. 
사역을 열심히 해 본 사람은 압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당장 좋은 결과가 있는 거 아닙니다. 

교회학교도 그럴 거예요. 내가 열심히 하는데,
아이들은 더 튕기고, 막 냉소적이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약도 먹으면, 이게 낫지도 않는데 
당장은 치료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더 심해지는 듯이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그 전체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바울이 옮깁니다.

 

18:7~8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  
이 말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이란 말이죠.   *관용어

그리고 디도 유스도의 집에 갔는데, 회당 바로 옆이라 그랬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
당시 유대인 문화에서, 이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어었는지 여러분은 아실 거예요. 

처음에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 
'저는 못 들어갑니다.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랬잖아요. 
그 이방인의 집 문 지방을 넘기가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바울은 그 높은 장벽을 뛰어넘고 있는 거예요. 

디도 유스도의 집은 '회당 바로 옆 집'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집들이 있지만, 과거에 집을 지을 때, 벽을 하나 두고 양쪽에 집을 짓습니다. 
그래야 건축비를 아끼니까요. 당시 대부분의 집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벽 하나 사이에 두고, 한 쪽은 회당이고, 또 한 쪽은 디도 유스도의 집입니다.
거기서 이제 교회가 시작된 거죠. 

여러분 요즘처럼 방음이 되는 때가 아니잖아요. 옆집에서 다 들립니다. 
이게 신경이 쓰였을 겁니다. 회당이 어떤 곳입니까? 

당시에 회당은, 기독교를 대적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의 집합처 였어요. 
데살로니가에서 회당 사람들이 핍박 했잖아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에서도 그랬죠.
베뢰아까지 찾아와가지고 행패를 부렸잖아요. 

지금 회당 바로 옆집입니다. 순식간에 들이닥칠 수 있잖아요. 대단히 두려웠던 것입니다. 
'예배드리는데 누가 난입하지 않을까?' 문만 덜컥 해도..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똑똑똑 하고, 그 회당장이 찾아옵니다. 
'올 것이 왔구나' 
바울과 형제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이제 몇 사람 잡히거나 끌려가겠다' 싶었는데, 
이 분의 표정이 묘해요.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데 머뭇 거려요. 

그런데 그 회당장 그리스보는, '나도 예수 믿고 싶어요. 우리 집에도 와주세요' 
그래서 이제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8
그런데 바울은 두려워합니다...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바울이 두려워서 위축돼 가지고,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어야 되겠다'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 이게 성경이 참 재밌는 게 '바울이 두려워 했다'는 말은 안 나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는데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했다는 것은 :9
바울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뜻이죠.

한참 후에 바울은 고린도에 편지를 쓰면서 이런 말을 해요.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그 편지 받고요. 고린도 교인들이 '아 그때 그랬어요?'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거예요. 

우리는 바울이 늘 담대한 줄 알았는데, 조금도 안 흔들린 줄 알았는데, 
고린도에서 '속으로는 많이 흔들렸다' 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흔들리면, 성도들이 힘들어 할 거 아닙니까? 더 흔들릴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담대 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래놓고 자기도 두려운 거예요. 
바울은 그때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후에 편지에 쓰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10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하나님이 이렇게 바울에게 힘을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데, 외적인 대적자들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우리 심령에 힘을 공급해 주시는 empower 하시는 겁니다. 

외적인 박해 전혀 없어도, 내적인 능력이 충만 하지 않으면, 힘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Protect 할실 뿐 아니라 Empower 해주시는 거예요. 
그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죽원합니다. 

우리가 여기 와서 예배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는 것도 있지만, 
이 예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임파워 Empower 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타이밍을 놓치지 마십시오!

▲18: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그러면서 하나님이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머물 수 있도록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 1년6개월 일하는 시간이 어떻게 끝나는가요? :12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고린도에 신임 총독이 부임하자, 유대인들이 일제히 바울을 고발한 거죠.
이때 이 총독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고발에 선을 딱 긋습니다. 

'이렇게 흥분해서 난리칠 일이 아니다. 그는 로마 사이를 어지럽게 하는 일이 아니다. 
소란케 하지 말라. 내가 총독으로서 관여할 일이 아니다' 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 버립니다. :14~16

그래서 여기서 유대인들의 계략이 실패한 거예요. 
근데 여러분 이 갈리오 만큼 지혜로운 총독은 대단히 드물었습니다. 
굉장히 예외적인 사람이었어요. 
로마 법으로 볼 때, 갈리오는 올바른 법적 판단을 했습니다. 

근데 어디 정치가 그렇습니까? 여론이 있잖아요. 
여러분 이 고린도 지역에 유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조직이 있고 파워가 있습니다. 압력 단체를 결성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소수자 예요. 
사회적으로 아무 영향력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둘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면 총독이 누구 눈치를 보겠습니까? 
사도행전에 나오는 로마 관원들 대부분은 
그냥 한 쪽에서 막 소란을 피우고 들고 일어나면,
자세히 묻지도 않고 그리스도 인들을 때리고 잡아 가두고 그랬습니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요. 

물론 그건 불법입니다. 그러나 여론의 압박에 굴복하는 거예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막 난리치니까... 여론과 대세에 굴복하는 거예요. 소신을 접는 거죠.

빌라도 총독이 그랬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잖아요. 
시류에 따라가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이 갈리오는 대단히 예외적인 사람입니다. 
갈리오는 여러분 네로의 스승이었던 그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의 동생이에요. 
아주 똑똑한 사람입니다. 

만약에 유대인들이, 갈리오 때가 아닌, 다른 총독 때 
그러니 조금만 일찍 들고 일어났으면, 
그 총독은 이 유대인들 편을 들어주었을 거예요. 성공했을 거예요. 
유대인들은 타이밍이 안 맞았던 거죠.

△여러분, 우리가 살다 보면, 이 타이밍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결제 서류 들고 사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이거 굉장히 우리 회사에 중요한 프로젝트인데.. 사장님이 잘 봐주셔야 되는데..' 

근데 마침 그날 아침에, 사장님이 부부 싸움을 해서, 화가 대단히 났어요. 
그러면 결재가 잘 될 리가 없죠. 타이밍이 나빴던 거예요.

반대로 어떤 사업 투자를 받아야 되는데, 사업 파트너를 설득해야 되는데, 
마침 상대방이 그 날 따라 아주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충만 해요. 
그럴 땐 싸인을 잘 합니다. 타이밍이 좋았던 거죠.

여러분 인간의 모든 일이 이렇게, 언제 하는가에 따라서, 
어떤 시간인가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핍박이라는 것도 그래요. 
막 대적하고 죽일듯이 덤비다가도, 어느 순간에 딱 멈출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떤 느낌을 갖는가 하면, 여러분 태엽감아서 움직이는 인형이 있잖아요. 
영원히 돌아 다닙니까? 태엽이 다 되면 딱 멈춰요. 
핍박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어떤 독재 정권도, 어떤 압제자도 영원하지 않은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삶의 어려운 시간도, 어떤 시련도... 영원하지 않는 줄 믿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한 시간 안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금 바울을 보호하십니다. 
'보호하신다'는 말이, 영원히 '네게 아무 일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 줄 게!' 
그 말이 아니에요. 

바울이 어떤 일정 기간 동안, 1년 6개월 동안에 
정말 소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겁니다. 

바울에게 주어진 1년 6개월이라는 이 시간은, 
복음을 전파할 시간이고, 양육할 시간이고, 사랑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지난 추석 명절 연휴 때, 어디 아울렛에서 갔는데 
요즘 아울렛에서 가니까, 명절 전날 젊은 부부들이 꼬마 아이들 데리고 와서, 
거기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는 팀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맡겨 놓고, 자기들은 쇼핑하고... 
그게 트렌드가 싶을 정도로 그런 팀들이 많이 보여요. 뭐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굉장히 좋아하시고요... 

그 아웃렛의 만남의 광장 같은 터에서, 
조그만 여자 애에 하나가, 저기에 할아버지가 보이니까 
'할아버지!' 소리를 지르면서, 막 달려가서 품에 안기는 거예요. 

그 순간에 제가 그 할아버지 얼굴을 보니까, 그 얼굴이 완전히 천국이에요. 
그렇게 보고 싶던 그 손녀를 만나는 그 순간에, 
그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얼마나 밝아 보이는지요. 
제가 진짜 사진을 찍어서 가지고 싶을 정도로, 환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잠시, 저희 딸의 꼬마 때 생각이 났어요. 
그때 할아버지 만날 때마다 '할아버지!' 하고 소리지르며 달려 갔거든요. 
그때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아 하셨거든요. 그 웃음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근데 이제 그 할아버지는 세상에 안 계십니다. 
이제 그 꼬마 아이(제 딸)도 자라서, 더 이상 '할아버지' 하고 달려 가지 않는, 
멀뚱멀뚱 쳐다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나에게 허락된 시간, 바울에게 주어진 
고린도에서의 1년 6개월은,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붙었던 시간이었을 거예요. 

지금 우리의 시간 감각으로는, 이게 별로 긴 기간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목회자들이 뭐 한 교회에서 3년, 5년, 10년 있어도 
그게 미안하지만 큰 의미 없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안 그랬잖아요. 
바울에게는 1년 6개월은 정말 놀라운 시간입니다. 
이 복잡하고 골치 아픈 고린도 도시에 처음 왔을 때
1년 6개월을 버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하나님이 막아 주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계십니까?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 하십시오. 
또한 여러분 회사의 직원들, 동료들, 
교우들, 사랑방, 
이 사람들이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사람들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시간안에서만, 우리가 같이 지내는 겁니다.

우리 교회 중등부, 고등부 아이들, 부모 따라 교회에 오잖아요. 
이것이 어른들에게 허락된 시간이에요. 영원하지 않습니다. 
같이 있을 때, 잘 해야 됩니다. 소중한 시간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 교회는 (아이들이 나오니까) 괜찮을 거야' 여러분, 자만하지 말아야 됩니다. 
한국 교회에 허락하신,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양육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간일지... 우리는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래요. 
여러분 오늘 아침에 내가 눈을 떴다면... 감사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나에게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먹을 양식이 있다면, 배고프지 않은 걸 감사 하십시오. 
배고프면 아직 먹을 수 있는 건강(식욕)이 있는 걸 감사해야 됩니다. 
언제까지 건강해서 먹을 수 있겠습니까? (남이 떠 먹여 줘야 하는 시간이 곧 옵니다)

오늘 나가서 걸을 수 있으면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내 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시간, 그것도 영원하지 않아요. 

여러분, 책 읽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언제 내 눈이 침침해져 가지고, 책도 못 읽을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도 읽고, 성경도 읽으세요. 
허락된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식 걱정이 있습니까? 걱정할 자식이 있다면 감사한 거예요. 
자식 걱정이 생기면, 기도하면 됩니다. 
나에게 주신 소중한 시간이요, 기회들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헤어질 날이 왔습니다.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바울이 고린도를 떠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사업을 정리하고, 에베소까지 바울과 같이 갑니다.
(실라와 디모데는 고린도에 머문 것으로 여겨집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과 동행해서 에베소로 건너와서
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납니다. :21~22

이제 에베소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남게 되었죠.
이 부부가, 거기서 아볼로를 만나서 말씀을 가르칩니다.

 

◑인생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전에 고린도에서,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가르쳤는데, 일대일 성경공부했죠.
이제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가르칩니다. 일대일 성경공부한 거죠.
제자 훈련 받은 사람이, 다시 제자를 만드는 거예요. 
이렇게 양육된 아볼로는 나중에 탁월한 사역자가 되죠. 
그는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로 건너가서, 말씀을 가르치고 :27
고린도전서에 보면 '아볼로 파'가 있을 정도로, 고린도 교회에서 지도자가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역사를 보면, 첫 번째 목회자가 바울이고, 
두 번째 목회자가 아볼로가 됩니다.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브리스길라 부부도, 
에베소를 떠나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사망하자, 로마로 다시 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브리스길라의 친정)

후에 바울은 이 브리스길라 부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롬16:3~4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란 브리스길라 부부가 사역했던
고린도, 에베소 교회를 뜻합니다.

여러분, 브리스길라 부부의 삶이 어땠을까요? 
'힘들지 않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제 생각에는 '아뇨, 행복합니다. 너무 너무 기쁩니다.' 라고 대답했을 거예요. 

여러분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게 정말 기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여러분 인생에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기쁨은 내 자녀에게 있습니다. 
내 기쁨은 내 아내에게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여러분 아니에요. 행복은 늘 사이에 있습니다. 
너와 나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부부 사이에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 부부는, 목숨까지 내어놓기를 즐겨 했습니다. 롬16:4
저와 여러분이, 그 정도로 즐거운 일을 가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산 사람들입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놓을 정도로, 중요한 일을 발견했던 부부였으니까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