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B_4-jJ74AwU
◈영적 성장의 단계들 요일2:12~17 2024.09.27.
※나이가 들어도, 젊은 청년 때의 체력과 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과,
그리고 설교 후반부에 아이, 청년, 아비들에 관한 해석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해석이 없이 성경만 읽으면 아리송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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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적인 체력 관리는, 신체적 체력 관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요즘 여러분 건강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죠.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도 많고, 또 사이트도 많고
유튜브에 들어가면 '이거 먹어라, 이거 먹지 마라,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와 너무 친절해요. 너무 정보가 넘쳐 흐릅니다.
그런 걸 보면서 느끼는 게 뭔가 하면, 건강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요즘 아픈 분들 많잖아요.
몸의 건강을 위한 간단한 비결.. 그런 간단한 비결은 없어요.
제가 관심을 갖고 보니까 비결이 간단하지 않아요.
건강을 유지한다는 게 단순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몸의 건강을 위해 피 하나만 해도, 이걸 깨끗하게 보존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피가 얼마나 중요해요?
피에 문제가 생겨서, 피가 막히고,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나 고혈압 같은 성인병이 생깁니다. 피에 불순물이 섞여서 피가 끈적해지는 거잖아요.
여러분 어떻게 해야 되죠? 먹는 거를 조심해야 되는 거예요.
'마음껏 먹고 건강하겠다?' 그거 불가능해요. 그렇게는 안 돼요.
기름진 것을 계속 먹으면, 혈관이 막히게 돼 있어요.
또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영양을 골고루 섭취해야 돼요.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돼요.
건강을 계속 망치는 음식물을 먹으면...
그게 습관화되면... 건강이 망가지는 거예요.
아무리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되어도,
지속적으로 몸을 망치는 생활습관, 식생활의 습관에 문제가 있으면
망가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건강은 먹는 문제나 좋은 습관만으로는 또 안 돼요.
운동도 해야 돼요. 적극적으로 운동을 해야 되고,
운동도 뭐 유산소 운동도 해야 되고, 근력 운동도 해야 되고... 운동도 복잡해요.
그러면 운동만 하면 됩니까?
운동도 마음대로 하면 안 돼요. 운동도 자기 신체 조건, 건강 상태에 맞게 운동을 해야지...
운동해가지고 몸이 망가진 분들도 많아요.
물론 운동 안 해가지고 망가진 분들이 더 많지만요...
그러니까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예요.
또 건강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도 어려운 거예요.
쉬운 게 아니에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건강함을 유지하고, 아주 단단한 몸이 되려고 하면,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됩니다.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고, 하루아침에 주어지지도 않아요.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조금씩 도달해 가야 된다는 거죠.
▲제가 오늘 저녁에 '건강 강의' 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 '영적 건강'과도 연결이 된다는 거예요.
신체적인 성장이나 건강 유지,
그리고 영적인 성장이나 건강 유지... 둘 다 원리는 비슷해요.
여러분 신체적인 것, 육체적인 것들이 그러하다면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들은 어떨까요? 여러분 똑같아요.
그리스도인이 되는 건 간단하잖아요.
예수를 믿고, 구원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 그저 주어진 거죠.
그런데 구원받고 난 이후에,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가는 것은
공짜가 아니에요.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에요.
운동하는 것,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해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쉽지 않은 일이에요. 매일 관리해야 돼요! *주제
'10년쯤 교회 다니면, 자연스럽게 내 믿음이 어나더 레벨이 되냐?' 그런 거 없어요.
'교회 경력이 10년쯤 되면 나는 이제 나쁜 죄는 안 짓는다' 그런 거 없어요.
'한 20년 믿으면, 이제 더 이상 내 삶에 유혹은 없어!' 그런 거 없어요.
여전히 싸워야 되는 거죠.
여러분 운동하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을 같이 비교해서 생각해 보세요.
저는 열심히 운동하는 그 운동선수들을 보면,
바울도 서신서에 보면 그들에 빗대어 말씀했거든요.
우리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마라톤 하는 선수와 같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라톤 하는 사람들 보세요. 군살이 하나도 없어요.
뱃살이 출렁거리면 42.195 Km 못 뛰어요. 중간에서 나가 떨어져 버려요.
그런 걸 보면서, 육체적 운동하는 사람들도 고단한데,
영적인 운동, 영적인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이게 쉽지 않은 '달리기' 입니다.
운동선수들을 보면, 그냥 마구잡이로 해가지고 안 돼요. 꾸준히 하잖아요.
운동을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해가지고, 운동에 효력이 있습니까? No
꾸준히 하는 거잖아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을 하는 거예요.
피트니스 센터에 가면, 등록을 해놓고 안 나오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집에도 러닝머신 샀는데, 다 빨래걸이 한다고 그러죠.
여러분 육신의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일정한 시간을 운동에 투자해야 돼요.
여러분 그냥 10~20분 운동해 가지고는는 별로 효과 없어요.
TV 선전에 '하루 3분만 하면 건강해 진다, 뱃살 빠진다'
그건 다 거짓말이에요.
▲여러분 영적으로 적용해 보세요. 기도가 어떻습니까?
기도를 했다 말았다, 했다 말았다 하면, 기도가 깊어질까요? 안 깊어져요.
기도를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는 안 하고,
문제 생기면 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하고,
오늘은 기도할 마음이 안 생겨서 안 하고...
여러분 기도하는데, 한 10분 정도만 하면, 살짝 발 담근 것하고 똑같아요.
그렇게 해서 기도를 배울 수가 없어요. 기도가 깊어지지 않아요.
영적인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가 없다고요.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당장 문제가 생기는 거는 아닙니다.
운동 안 해도 대충 살아가요. 괜찮아요.
근데 (그게 5년 10년 지나면) 어느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마찬가지로 기도하지 않는다고,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근데 그게 어느 순간에 기도하지 않았던 삶이 (5년 10년) 누적되면.. 이제 큰 문제가 생겨요.
그러니까 운동하는 것과, 신앙생활의 원리는 너무너무 비슷해요.
우리가 너무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거죠.
'쉽게 뭔가 승리의 삶을 살겠다?' 그건 불가능한 거예요.
▲히12: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성도는 경주하는 자예요. 마라톤 선수와 같아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달리는 긴 레이싱입니다.
우리를 뛰지 못하게 만드는 얽어매는 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걸 벗어 던져야 되거든요.
여러분, 신앙생활을 그냥 너무 가볍게 하면, 점점 내 삶이 무거워져요.
옛 습관은 그대로 있고,
죄의 유혹은 그대로 내가 따라가고,
작은 일에도 그냥 쉽게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지고, 타협해버리고...
그러면 갈수록 내 신앙은 더 무거워지는 거예요.
여러분, 마치 운동하는 사람들이, 역기를 든다면
역기를 한꺼번에 무거운 거 못 들잖아요.
그러나 조금씩 훈련을 하다 보면, 그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는 힘이 점점 생기는 거거든요.
영적인 근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죄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는 경험을 점점 쌓아가는 거거든요.
여러분 유혹은 작은 것에서 시작이 돼요.
처음부터 엄청난 유혹이 오는 게 아니에요.
일상에서 작은 유혹, 그거 이기지 못하면... 그걸로 끝나지 않아요.
또 다른 유혹이 오는데... 점점 커져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거죠.
처음에 작은 유혹을 이겼으면, 거기서는 성취감도 있고
승리의 확신을 가지면서 신앙이 자라가게 되는데
그 쉬운 작은 죄 앞에 쉽게 무릎을 꿇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게 되는 거예요.
작은 유혹도 못 이겼는데 큰 유혹을 무슨 재주로 이겨요?
여러분 작은 습관 하나도 못 바꾸는데, 어떻게 인생을 통째로 바꿔요?
여러분 그러니까 영적 근력을 키워야 된다는 거예요.
50KG도 못 드는데 100KG을 어떻게 들어요?
100KG를 한꺼번에 들 수 없는 거거든요.
작은 것에서부터 훈련을 해야 돼요.
영적 훈련, 디스플린 displine 을 해야 돼요.
여러분 현실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실력을 익혀가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심각해진다는 거예요.
▲우리의 신앙의 늘 딜레마는 뭡니까? 신앙과 삶이 따로 노는 거죠.
내가 믿는 것과, 실제의 삶이 톱니바퀴가 안 맞아 떨어지는 거죠.
그럼 이게 계속되면 어떻게 돼요? 무기력증이 오는 거예요.
그리고 신앙으로 현실에서 파이팅을 하는 게 아니고, 자꾸 도피하는 거예요. 다른 걸로...
여러분, 육체의 건강유지, 영성을 쌓는 게 너무 비슷해요.
내가 건강하고 내가 몸을 탄탄하게 만들려고 하면, 땀을 흘려야 되는 거거든요.
러닝머신이든지, 해변에서 30분은 뛰어야 땀이 나지,
그냥 누가 운동을 내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
여러분 영성을 쌓아가는 게,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거는, 누가 대신해 주는 게 아니에요.
영적 성숙이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큐티를 예를 들어보세요. 말씀묵상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근데 이 말씀묵상이 우리의 삶에 베이직한 거거든요.
우리교회가 늘 두 달마다 나오는 <매일 성경>을 권장하는 이유가 뭐예요?
그게 베이직이에요. everyday 말씀 묵상하는 거,
밥을 먹듯이 영혼의 양식을 내가 먹어야, 내 영혼이 힘을 내는 거죠.
그거 외에 다른 길이 있나요?
오늘 내가 저녁에 뷔페로 그냥 많이 먹어도, 내일 아침에는 또 밥을 먹어야 돼요.
'오늘 내가 열흘치 먹을 거 다 먹었다' 그런 거는 없어요. 매일 먹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말씀 묵상이 그런 거라는 거죠.
이게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본 중의 기본이란 말이에요.
여러분, 운동에도 스쿼터 같은 게 기본이잖아요. 그렇죠?
그 기본기가 몸에 붙어야 된다는 거예요.
영적 습관도 마찬가지죠.
이 습관이 제2의 천성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씀 묵상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를 만들어내요.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는 것, 컨시스턴스예요.
꾸준히 계속적으로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말씀 묵상이 깊어지려면,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0분만으로 말씀 묵상이 깊어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이 말씀의 세계 안에 들어가면, 시간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부족해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루 종일 말씀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죠.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 때는, 10분, 20분은 안 돼요.
시간을 확보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꾸준히 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는 엄연히 다릅니다.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영과 육은 다른 세계입니다.
영과 육을 구분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영이 죽어있으면 육은 그냥 육이에요.
육신은 강한데 영이 약해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육신의 힘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거예요.
이 육을 이길 영의 힘이 없으니까,
심한 경우 영이 죽어 있으니까,
지금 이건 니고데모에게 얘기를 하시잖아요.
니고데모는 영으로 태어나지도 않아서, 영의 세계가 없는 거예요.
그 사회의 관원이고, 굉장히 대단한 사람인데,
예수님 보기에 그는 태어나지도 않은 거예요. 영의 세계를 모르는 거예요.
육만 있는 거잖아요.
여러분 왜 바울이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얘기했을까요?
내 몸을 쳐서 복종을 시키는 거예요. 육신을 훈련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몸이, 육신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몸은 body 이고, 육신은 flesh 인데, 둘은 종종 같이 붙어서 역사하죠. 호환됩니다.)
이 몸뚱아리, 이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몸뚱아리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육신적 추구보다, 먼저 영적인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영을 추구하는 사람은, 육체적인 것보다 훨씬 더 영적인 것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는 것은, 그냥 몸 body 이죠.
그래서 딤전4:8절에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유익이 없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여러분 영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육체적인 연단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건강한 몸이 죄의 도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영은 죽어 있는데, 건강한 몸이 되어 있으면
이 몸으로 뭐해요? 죄 지어요.
그 건강, 그냥 활력이 넘치는 그 건강 가지고 뭐 하겠어요? 죄 지어요.
멋진 몸매를 갖고 있으면, 죄를 지을 유혹이 많아져요. 유혹의 도구로 쓰여진다고요.
그래서 내 몸을 가꾸듯이, 내 몸의 건강을 위해서, 외모를 위해서 수고하는
그 갑절의 노력으로 영적인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바울은 여러분 몸이 약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복이었어요.
그 몸이 약하니까 겸손할 수 있고, 몸이 약하니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고,
그러니까 '네가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바울 같은 영성을 갖고 있는 분도
그 육체의 가시가 없었으면, 자고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거예요....
◑2. 자녀들, 청년들, 아비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자녀들아, 청년들아, 아비들아
이 세 단계가 있어요. 영적 성장의 세 단계예요.
처음부터 아비로 태어나지 않았어요. 청년으로 태어난 사람도 없어요.
단계가 있다는 거예요. 레벨이 있는 거죠. 성장의 단계가 있어요.
▲1. 자녀들
요일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시작은 뭐예요? 젖먹이 아이의 단계.
처음부터 밥을 먹는 아기는 없어요. 젖을 먹죠.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젖을 먹는 거예요. 의존적이죠.
젖을 먹을 때는 그냥 가만히 먹기만 하는 거죠. 젖먹이가 일은 못 해요.
근데 여러분 몇 달 지나면, 얘가 막 뒤집고, 또 금방 또 지나면 또 기어다니고
나중에 혼자 앉고, 뭘 붙잡고 또 일어서고, 또 이제 돐 지나면
갑자기 애가 몇 발짝 걸으면, 온 집안이 난리가 나죠. 걸었다는 거죠.
아이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는데 옹알이를 하기 시작하고, 나중에 대화를 하게 됩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죠. 처음에는 기도를 할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아이가 말을 배워서 말을 하기 시작하듯이
기도를 배워서, 기도를 하게 되는 거죠.
근데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도,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분들이 계시는 거예요.
옹알이만 하는 거예요.
좀 더 성장하고 청년이 되면, 그가 걸어다니는 것 때문에 감동하지 않아요.
당연하기 때문이죠.
어린아이가 자라서 청년이 되는 거죠. 성장이 계속된다는 거죠.
▲2. 청년들아
2:13b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b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3절 14절에 반복되는 게 뭐냐면 '이겼다'는 거예요.
'악한 자를 이겼다'
여러분 청년 때의 특징이 뭐예요? 이제 강한 자가 된 거죠.
스트롱한 자가 된 거예요.
어린아이 때는 자라나는 때예요.
이제 청년의 때는, 자라서 스트롱해진 거예요. 단단해진 거예요.
그래서 이기는 자가 된다는 거예요. 싸워 이길 줄 안다는 거죠.
여러분 상대가 누구예요? 악한 자들이 싸움을 걸어오는데
악한 자들이 싸움을 걸어올 때 우리가 지면 어떻게 해요? 죄를 짓는 거예요.
악한 자들은 우리를 늘 노리고 있습니다.
늘 넘어지게 하고, 실패하게 만들고, 시험에 들게 하고,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무너지게 만들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늘 싸우고 있는 겁니다.
죄와 싸우고 있고, 세상과 싸우고 있고, 마귀와 싸우고 있는 거잖아요.
지면 어떡해요? 끌려다니는 겁니다.
여러분 성도는 '이기는' 자이어야 됩니다.
여러분, 악한 자를 '이겨야' 비로소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가 있죠.
성도는 이기는 자여야 되고, 이겨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지면 비참한 거예요.
자 근데 여러분, 어떻게 이기는 자입니까?
14절에 보면 '청년들아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말씀으로 이기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래요. 강해야 돼요.
종종 자주 시험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여러분 시험에 왜 들었을까요? 시험에 들게 한 사람 때문이겠죠? No
그러나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내가 약하기 때문이에요.
약하면 늘 넘어지게 돼 있어요.
아침에도 시험, 점심에도 시험, 저녁에도 시험,
교회 오다가도 시험, 마치고 가다가도 시험, 집에 가자마자 시험,
영혼이 약해져서 그래요. 아니면 영혼이 어린아이 이거나요.
여러분 시험에 들면, 혼자 신앙 지키기도 힘든 거예요.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해서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가요.
어떤 분은 시험에 들면, 또 이제 목사님이 심방 가야 돼요.
어떤 분 한테는, 한 열 번도 갔다 와야 돼요.
그러는 동안에 교구 목사님이 할 일을 못해요.
회복될 때까지 수고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요.
여러분 시험 든 신자들이 많은 교회는, 교회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려운 교회들을 보면, 교회 안의 내부의 문제들 치닥거리 하다가 끝나는 거예요.
그 교회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다 베이비들이 있는 거죠. 스트롱하지 않은 거죠. '청년'들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아이와 청년의 차이는 뭘까요?
아이는 책임이 없어요. 그러나 청년은 책임을 지는 나이가 됐다는 거예요.
아이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식이에요.
'일어나라, 밥 먹어라, 학교 가라, 공부해라'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움직이죠.
아이는 책임질 일이 없어요. 책임은 아이가 지는 게 아니라
아이의 모든 책임은 부모가 지는 거예요.
그러나 청년은 책임을 지기 시작하는 때예요.
스스로 결정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제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되는 거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해야 될 때가 청년의 때라는 거예요.
영적으로도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분별해내는..
그래서 스스로의 자기 의지를 사용해야 되는 때라는 거예요.
그래서 '청년'은, 내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 아는 시기라는 거죠.
여러분 초신자 때는요. 너무 좋아요. 은혜만 받으면 돼요.
초신자에게 뭘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일날 교회만 안 빼먹고 다녀도, 칭찬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초신자로 계속 있고 싶어 하시는 분은 없을 거예요.
자라가야 되는 거예요. '청년'이 돼야 되는 거예요.
청년은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는 단계예요.
말씀을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들은 대로 행동에 옮기는, 순종하려고 하는 것,
여러분 말씀에 순종하는 그 자체가,
내 인생을 하나님 앞에 맡기면서.. 자기 스스로 책임지려는 삶을 사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항상 저항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나, 어디에서나,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믿음을 갖지 않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너무 커요.
그렇기 때문에 맞바람이 생기고 삶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 난관을 뚫고, 지나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강한 청년'이 되라는 거죠.
여러분 강하면 적수가 없어지는 거예요. 시험을 이겨낸다는 거죠. 고난도 이겨냅니다.
약하면 안 돼요. 약하면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초신자도 아닌데, 어린아이처럼 약하면 안 됩니다.
14b절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그러니까 어떻게 강해지느냐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강해진다는 거죠.
악한 자를 이긴다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수1장에서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거예요.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러니까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지면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채우고,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순종 못해요.
순종을 누가 하느냐? 말씀을 묵상한 사람이
말씀이 자기 속에 채워지면, 그 말씀의 힘이 나를 행동하게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청년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그 청년의 힘이 혈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말씀 안에 거할 때 주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 듣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요즘 우리 영혼에, 심령에 온갖 잡 것이 다 달라붙어요.
너무 자극적인 문화잖아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자극적입니까.
얼마나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가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는지요.
그런 것들이 즐비하잖아요.
이 가운데서 나의 모든 행동을 이끌어주는 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거예요?
청년의 이기는, 승리하는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 묵상에 있습니다.
그 말씀을 추구하는 사람은, 더 이상 이제 어린아이처럼
젖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히5:13~14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의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어린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뭘 말하는 거예요? 먹는 걸 보면 달라요.
아이가 먹는 것은 젖이요, 어른은 단단한 음식을 먹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미국의 농구선수 중에 최고 스타가 르브론 제임스예요.
1884년생이니까 지금 40살이에요.
고등학생 때도 물론 탁월했지만, NBA에 뛰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이 됐어요.
르브론 제임스가 20년 동안 뛰었는데, 그의 신체 조건이 20대 때 컨디션과 똑같아요.
(영적 지도자들이, 이걸 보고 배워야 된다는 거죠)
그는 여전히 20대처럼 초스피드로 뛰어요.
모든 기록을 지금 갈아 치우고 있어요. 그 신체능력과 농구 실력이 탁월해요.
20년 동안 변함없이 커리어를 갈아 치우는 거예요.
자기의 소원은 뭐냐면 50세까지, 앞으로 10년 더
이 컨디션을 계속 유지할 거라는 거예요.
지금 아들과 함께 레이커스 팀에서 뛴단 말이에요.
그는 설탕을 섭취 하지 않는다고 해요.
생일 파티 등등 어떤 것으로도, 늦은 시간까지 어디에서 그냥 노는 법이 없어요.
친구들이 옆에서 팝콘을 막 먹어대어도, 자기는 맛없는 너트를 먹고 있고,
철저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자기 몸 관리를 하는 걸 보면
운동선수인데 거의 수도승처럼 해요. 완벽한 몸매를 갖고 있는 거예요.
최상의 몸 컨디션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래서 어느 언론이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고 찬사를 하는 거죠.
그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계속 스트롱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화려한 스타플레이어 예요. 화려해 보여요. 몸값이 천문학적이에요.
그 자리에 올라서는 것도 어렵지만, 계속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워요.」
사람이 세상의 영광을 위해서도 그렇게 살아요.
우리는 세상의 영광과 비교 안 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에요.
한순간 사라질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세계에서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영적으로 강한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영적 컨디션을 최고로 늘 유지해야 돼요.
여러분 나이가 든다고 영적으로 쇠퇴하는 건 아니거든요.
몸은 쇠퇴해요. 그러나 영적으로는 더 스트롱해질 수 있어요.
고후4:16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우리 영은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더 스트롱해질 수 있어요.
바울사도 얘기가 바로 그 말이예요.
'내 속사람은, inner man은 날로 새로워져 가는 도다' 고후4:16
중요한 건,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거냐는 거예요.
'내가 이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내 영혼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 물어보세요.
르브론 제임스가 자기 몸을 20년 동안 조금도 나빠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미라클이에요. 그가 어떤 생활을 했는가는 상상하기 어려워요.
내 신앙의 퀄리티가, 내가 믿으면 믿을수록 더 순수해지고, 더 하나님과 깊어지고,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내 영혼을 지켜낼 수 있는가요?
하루아침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작은 일에도 승리를 체험하셔야 돼요. 작은 유혹 앞에서 내가 이겨내야 돼요.
끊임없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과 싸워야 합니다.
▲3. 아비들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14절에 같은 말씀이 한 번 더 반복됩니다.
'안다'는 것은, 깊이 교제하며 성숙해져가는 것을 뜻합니다. *기노스코
고전13:11절에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그래요. 어릴 때는 말하는 게 어린아이와 같아도 돼요.
근데 그게 어린아이 때로 끝나야 돼요.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았어요' 고전13:11
옛날에는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어요.'
영적으로 어릴 때는 잘 못 깨달아요.
그때는 생각하는 거, 말하는 거, 깨닫는 게 다 베이비였어요.
근데 이제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이제 청년이 되어서는, 이제 아비가 되어서는
그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그래요. 버려야죠. 버리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죠!
왜 어리석은 삶을 삽니까?
어리석은 삶을 살고 싶어서 누가 그렇게 살겠어요?
그게 어리석은 줄 모르니까 그렇게 사는 거지요.
신앙적으로 어린아이라서 그런 거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죠.
'아비들아' 아비는 누구예요?
아비는 이제 청년의 단계를 넘어서, 또 다음 단계로 간 거예요.
아비는 누구인 줄 아세요? 리더예요.
아비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따라오게 하는 삶이에요.
옛날에는 본받고 따라갔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따라오는, 그 위치에 서는 거예요.
아비가 된 거예요. 자녀를 둔 사람을 아비라고 그러잖아요.
나를 바라보고, 나를 믿고 따라주는 자녀들이 있으니까, 내가 아비가 된 거잖아요.
사랑방 목자가 된 거는, 아비가 된 거잖아요.
공동체 안에서도 팀 리더가 되면, 그게 아비예요.
이제 내가 돌봐줘야 될 대상들이 생긴 거예요.
옛날에는 내가 돌봄을 받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돌봄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된 거예요.
하나님은 이 공동체 안에서, 영적 아비들이 많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누가 아비가 되는가요?
성숙해져야 돼요. Matured 해야죠.
여러분 리더가 성숙하지 않으면, 따르는 사람들이 불안해요.
영적인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하는 거죠.
여호수아가 이제 그 위치에 선 거죠. 이스라엘의 아비가 된 거죠.
여러분 이런 '아비'는, 아이의 일을 벗어버려야 되고,
강한 청년의 그 수준을 넘어서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뭐예요? 계속적인 성장을 해온 사람이에요.
계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신앙은 위기를 맞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성장이 뭐예요? 말로는 안 돼요. 능력을 갖춰야 된다는 거예요.
그 신앙은 게임이 아니라는 거예요. 실전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사람과 똑같아요.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면, 실력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 이전에는 훈련을 하고, 자기의 몸을 다스려야 돼요.
멋있게 보이는 것과, 실전에 들어가서 싸워서 실력을 드러내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과 실제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거죠.
말과 실력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거죠.
자기의 자신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성숙해 가는 거죠.
여러분 죄의 힘은 큽니다. 우리를 한순간에 무력화시킬 수가 있어요.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그렇게 간단한 싸움이 아니에요.
우리의 죄의 뿌리가 얼마나 깊어요?
그래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세 가지 상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2:16~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셋을 전체로 묶으면 뭐예요?
'나를 기쁘게 하며 살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살 것인가?
내 육체를 만족시키며 살 것이냐,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살 것이냐?'
여러분 유혹은 매일 계속되는 거예요. 유혹에 매일 우리가 노출되어 있어요.
매일이 실전이에요. 치열한 경기가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 싸움에서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승리를 경험해 가야 돼요.
그래서 영적 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마치는 말
여러분,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돼요. 물론 우리의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에요.
성령이 도와주셔야 돼요. 근데 누구를 성령이 도우시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애를 쓰는 사람을 도우시는 거죠.
그냥 내가 가만히 있는데, 도우시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치열하게 부딪혀야 돼요.
말씀을 따라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찾아오는 죄의 유혹과, 그냥 막 싸워야 되는 거죠.
여러분 우리를 한순간에 죄의 유혹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우리를 한순간에 순수를 잃어버리게 만들고
우리 거룩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우리 옛날의 옛습관이 끊임없이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할 때
그것과 싸워야 되는 거잖아요.
여러분 영적 싸움에서 게으름이 찾아오면, 그 게으름과 싸워야 되는 거예요.
어떤 때는 기도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그죠?
싫을 때는 하지 마세요. 그럼 며칠 쉴 수는 있겠죠.
근데 다시 해야죠. 기도해야 사니까요.
기도를 게을리하려는 내 육신과 싸워야 된다는 거죠.
어느 날은 그냥 궁시렁 궁시렁 하면서 새벽기도 나오셔야 되는 거예요.
'새벽기도 누가 만들었나?' 이러면서 나와야 돼요.
예수님이 만드셨어요.
쉽게 살려고 해서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연세 드신 분들 잘 아시잖아요.
노인들이 그냥 아파서 병실에 좀 누워있으면, 아파서 한 달 누워있잖아요.
그러면 그냥 완전히 근육이 빠져 버려요.
근육이 빠지면 다리에 힘이 없으니까, 걷다가 후들거리면서 넘어져요.
넘어지면 뼈가 상해요. 다시 병원에 가요. 병원에 가면 거기서 돌아가시는 거예요.
못 나오시는 거예요.
그러니 평소에 근력이 빠지지 않도록, 늘 움직이고 운동을 해야 된다는 거죠.
영적으로 기도를 게을리하면, 영적인 근력이 며칠 사이에 다 빠져버린다는 거죠...
저와 여러분이 영적으로 탄탄해서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안에 찾아오는 어떤 연약하게 만드는 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해서, 영적인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서
영적 활력과 에너지가 넘쳐서,
하나님이 맡기실 일을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체력도 마찬가지고, 영적인 체력 관리를 매일 하셔야 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