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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사명

LNCK 2024. 10. 11. 11:19

설교본문 색인            <북한, 통일>           ▣ 기도

https://www.youtube.com/watch?v=vRYyRn2IU-A

 

기도와 사명

[1025차 쥬빌리 기도회]   *통일 기원 기도모임

◑20년이 넘게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쥬빌리 기도회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 이 저녁에 주어진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와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수원 주빌리 기도회가 2017년도에 시작돼서  8년 째 계속되고 있고, 
또 제가 저희 교회에 부임한 지 13년 되는데, 
'북한 사역을 위해서 우리 교회 자체적으로도 10년 프로젝트를 좀 진행해 보자' 

그래서 2017년부터 '수원 주빌리'를 시작하면서 
또 교회 자체적으로 북한 사역을 위한 10년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지금 팔 년째 진행을 하고 있고, 

 1년이 마무리될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 모르겠지만 
또 경우에 따라서는 또 10년 더 연장하면 되겠죠. 

그러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서 
항상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그 은혜가 
<주빌리 통일 구국 기도회>를 통해서, 또 각 처소에서 하나님의 그 은혜를 사모하는 
그 모든 곳곳마다 임할 줄로 믿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들으시기, 요즘에 통일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계십니다. 

대외적으로 뭐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의 전쟁이 지금 2년 넘게 계속되고 있고, 
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에 더하여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거의 전면전에 가까운 태세로, 서로 전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 
또 우리 한국, 일본, 미국, 
마치 신 냉전 체제가 더 공고해지는 것 같은, 그런 안타까운 상황들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대내적으로 뭐 계층 간의 갈등도 있고 ,또 세대 간의 갈등도 있고, 
이념간의 갈등도 있고, 여러 가지 참 어려운 일들이 겹겹이 쌓여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한국 교회의 사회적인 신뢰도도 곤두박질 치고 있고,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이 축소 시대를 맞이해 갖고 다운사이징 되면서부터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한국 교회를 더 이렇게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보니까 남북 간의 강대강 대치 국면이 
정말 해결의 기미 라기 보다는, 점점 더 어려운 형국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뭐 아시겠지만, 북한이 계속 오물 풍선을 날리면서 
는 대한민국을 적대적 국가로 규정을 하고 
최근에는 북한이 핵시설까지 공개적으로 이렇게 보여주면서 
자신들의 핵 역량이 얼마나 강화되고, 또 자신감이 있는지를 
대내외에 선전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많이 우려하는 그런 목소리 가운데는 
'미국 대선 전에 북한에서 7차 핵실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나라만 보더라도 뭐 보수든 진보든 간에 
통일과 관련해서도 흡수 통일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고 
최근에 야당의 어떤 국회 의원이 '는 현실적으로 볼 때 두 국가론이 맞다. 
일단 평화를  모색하고 난 그 이후에, 통일의 문제는 다음 세대에게 맡기는 것이 옳지 않느냐?' 
이렇게 발언한 것 때문에, 엄청난 후폭풍이 있었던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들은 사실은 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시기 시기 때마다 약간의 업앤 다운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들이 펼쳐 지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정말 이런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소식들을 들으면서 
정말 내 마음에 중심을 잘 잡아야 되고, 
또 내 귀에 들려지는 그런 모든 것들 이면에 
정말 믿음의 눈을 가지고, 믿음의 시야를 가지고 바라본다면, 

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위기는, 
항상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개입 하셔서 일할 수 있는 영적인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쥬빌리언들이 각 처소 에서, 
또 오늘처럼 목요집회로 모여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는 것 아닙니까. 

2004년도에 시작된 이 기도회가,  20년 넘게 지속되어 오면서 
금년 초에 벌써 1천회 차 연합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매달 1회 x 52주 x 20년

자료를 보니까 연간 3만 명 이상, 연인원을 20년 합해 보면,
60명 이상이 지금도 복음 통일을 위한 기도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 
이것은 정말 사람이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북한 땅을 향해, 이 한반도를 향하시는 분명한 뜻과 계획이 계시기 때문에 
이런 기도의 물결을 계속해서 일으키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번에 <베를린 통일 서밋>에 가서 
또 몽골에서 '몽골 주빌리' 발족 때, 조슈아 무문 목사님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야 우리 한 민족과는 피 한방을 섞이지 않은 분인데 
정말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그 열망을 가지고 
몽골에 나와 있는 북한 노동자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면서 
북한의 통일을 위해서, 어찌 보면 대한민국의 한국인들보다도 
더 열심히, 더 뜨겁게 기도하는 그런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꼭 몽골인 뿐만 아니라, 
제가 북한사역을 한 8년 정도 깊이 관여해서 참여해 보면서 
세계 곳곳에 기도의 용사들의 하나님이 세우겠다는 것을 
정말 생생하게 목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기도의 용사들을 세우셨다는 것은 
그 기도의 용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일을 진행하고 계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줄로 믿습니다. 

요번에 독일에 가서도 제가 말로만 들었던 라이프치히 교회! 
아시는 것처럼 거기서 1982년도에 월요일마다 평화기도회가 시작됐고, 
마침내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죠.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독일 통일의 시작점이 됐던 바로 그 교회, 
또 그 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역사를 만드셨는 지를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이 주빌리 통일 구국 기도회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이것은 
정말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정말 끝까지 지치지 않는 그런 열정과,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마음들을 가지고 
우리가 이 기도의 자리를 지켜낼 때 
하나님께서 이 기도회를 통해서, 정말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소돔과 고모라가 문제를 놓고 일종의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근데 우리가 얼핏 들여다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포기하려고 하는 것 같고, 
또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을 막 뜯어 말리면서 
'소돔과 고모라를 한 번 더 생각해 주십시오' 이렇게 애원하고 탄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본문을 들여다 보면, 상황은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제가 문맥을 살펴보면서 읽어보면 

사실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대동해 가지고 아브라함을 방문하기 전까지 
사실 소돔과 고모라 바로 옆 동네에 살고있는 사람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하늘에까지 그 죄악이 사무쳐가지고 하나님의 귀까지 들렸다면,
하루 옆 동네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에게도 
분명히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대한 파다한 소문이, 수시로 들려 왔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문을 받기 전까지 아브라함은, 
어렵게 어렵게 고향 땅을 떠나서 
이제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해서 나름대로  삶의 터전을 다 잡고 천하태평으로 살고 있었어요.

뭐 자신의 가정과 집안을 살펴볼 때는, 이제는 아무런 걸리적 거리는 것이 없습니다. 
문제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편안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을, 자신과 연관시켜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 그 죄악이 
자신의 사명과 연루 돼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깊이있게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자신의 삶, 주어진 환경을 즐기면서 
천하태평 하고 있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천사들 직접 대동하시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겁니다. 
사명을 까마득하게 망각한 채로,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영적인 단 잠을 
막 흔들어 깨우시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거죠. 

사실 오늘 이 본문의 앞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부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흘리십니다.

'아브라함아, 소돔과 고모라의 죄에 대한 소식이 하늘에 까지 사무치니까
정말 내 귀에 들린 대로 그렇게, 정말 죄악이 가득 차 있는지 
내가 지금 가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런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비로소 까마득한 잊고 있었던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시작으로 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시작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 그 소돔과 고모라 성에 오십 명의 의인이 살고 있다면, 
그 의인 오십 명을 악인과 함께 심판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시작된 기도가, 아시는 것처럼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낮아지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떠나시는 시점이 어느 시점인가 하면 

드디어  이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심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받는 게 아니고 
그 소돔과 고모라가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길 원하시는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라는 사실을, 기도의 자리에서 아브라함이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담아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간절히 부르짖는 그 상황에 다다르게 되자 
그제야 하나님께서 '이제는 됐다' 하고 아브라함을 떠나시는 거죠.

△우리가 이 <주빌리 통일 구국 기도회>로 모여서 정말 북한을 위해서 기도할 때 
또 복음 통일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저도  지난 한 8여년 동안, 저희 교회에서도 매달 한 번씩 이렇게 집회를 하면서 기도를 하다 보면, 

또 언론에서 들려오는 그런 소식들 때문에, 어떤 때는 막 열정적으로 부르짖다가도 
'야 이게 기도가 정말 허공을 맴도는 것 아닌가? 그냥 흩어져 버리고 마는 것 아닌가?' 
정말 눈에 보이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손에 잡히는 상황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때때로 위축될 때가 있습니다. 낙심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 개인적, 감정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또 한반도의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여러 가지 돌출 변수들이 발생하면서 

한반도의 상황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하든지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우리가 정말 이 북한의 문제를 하나님의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복음적 통일을 위해서 지치지 않는 그 열정을 가지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처럼, 기도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비결을, 오늘 본문이 소개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이 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분석을 하면서 
아브라함의 기도에 세 가지 특징이 있다... 그랬습니다.>

▲1. 첫 번째 특징은, 아브라함의 기도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기도다. 

우리 하나님은 크게 보면,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사랑의 하나님이세요. 
근데 이 아브라함의 기도는,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 자신의 생각에 의지한 기도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해서 기도합니다.
즉 '하나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정의를 시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살고 있는데, 
그 의인들을 악인과 함께 동격으로 취급하시면서 모조리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에 어울리지 않는 겁니다. 어긋나는 겁니다.' 

이렇게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해서 기도했을 때,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실 꼭 의인이 뭐 50명, 아니 10명도 살지 않다 할지라도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계시고 궁휼히 여기시는 
그런 하나님의 성품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성품을 의지해서,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로 나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 하든지 간에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에서 기도할 때, 

그 성품을 가지신 그 하나님이, 그 성품을 근거에서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 아브라함이 드린 기도의 특징은,
굉장히 겸손 하면서도, 담대하게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은 티끌에 불과합니다. 먼지에 불과해요. 
그래서 수시로 고백하는 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저는 티끌에 불과합니다. 
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겸손이 인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신 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인지,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 지를 인지하면서,
그는 겸손한 태도를 갖고 있지만, 얼마나 담대하게 기도하고 있는지 몰라요. 

여러분들 한 번 '족장 시대'라는 이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보면, 
이게 어찌 보면 굉장히 경만한 기도 같잖아요. 
하나님과 꼭 거래를 하는 것 같잖아요. 

하나님, 오십 명이요, 사십오 명이요, 사십 명이요, 
삼십 명이요, 이십 명이요,  열 명의 의인이요...'
이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하나님과 마치 거래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담대한 기도가 어떻게 가능 했느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이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얼마나 좋으신 분 인지를 
이미 삶 속에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 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상 시에 그 하나님과 누리던 친밀한 관계를 근거로 해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이 
부르짖을 수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 구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 가운데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았던 유일한 사람이 아브라함 이에요. 약2:23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는, 정말 겸비한 심령으로 늘 서야 되겠지만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 지를 알고 계시다면, 
그 하나님과 평상시에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계시다면, 
오늘 아브라함처럼 담대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우리의 마음의 중심과 소원들을 아뢰며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아브라함이 드린 기도의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 즉 언약에 근거한 기도 였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내 핏줄, 조카 롯이 살고 있는데,
그 피붙이를 좀 구원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피붙이 조카 롯을 위한 기도일 뿐만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해서 중보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기도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여러분, 창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약속 하셨던 
두 가지 약속이 있죠. 

첫 번째 약속은,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 
두 번째 약속은, 때가 되면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아서 
주변 이웃과 민족들 뿐만 아니라, 세계 민족과 열방을 축복하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겠다. 
이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 직접 약속해 주신 말씀입니다. 

근데 내용상 두 가지인 것 같지만, 이건 하나로 연결이 돼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면, 그 복을 주시는 게 최종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그 복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세계 민족과 열방을 축복하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으라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가장 중요한 핵심 골자는 
물론 자녀도 주시고, 그때의 재산 가치인 가축도 풍성하게 주셨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핵심 골자는, '하나님 자신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자기 부모님과 조상 대대로 섬겼던 
우상을 숨겼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조건 없이 먼저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만나 주셨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 보니까 
나를 찾아주시고, 나를 만나 주시니...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얼마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 분인지,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인지, 
온 세상에 주가 되실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전부가 되신다는 것, 
그래서 이 좋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를 
그가 살면서 느낀 거예요. 

여러분들, 예수님을 믿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저는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오늘 이 목요일 저녁에도 여기 와 앉아 계신 이유가 뭡니까? 

내가 믿는 예수님, 믿어 보면 볼수록 좋아서 
내가 믿는 예수님을 섬겨보면 볼수록 좋아서...
복음성가 가사처럼 '섬길수록 너무 귀하니까' 
그 주님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찬양하고, 예배하고, 경배하며 섬기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기가 얼마나 좋으신 분인 지를 아브라함으로 먼저 체험하게 하시고 
이 좋으신 하나님을 혼자만 간직하지 말고, 
주변의 이웃들에게, 안 믿는 가족들에게, 또 주변 민족들에게 전하면서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는 사실, 
이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이 약속, 
이 약속에 근거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나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제가 기도하니까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셔서, 소돔과 고모라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여러분 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찬찬히 뜯어보면,
이 소돔과 고모라의 문제는, 아브라함의 개인적인 비즈니스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일이에요. 하나님의 비즈니스 예요. 

아브라함의 개인적인 관심사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지대한 관심사 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염두에 두고, 

 

또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생각하면서 
겸비한 심정을 견지하되, 담대하게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 모든 기도들은, 내 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일이에요. 
내 관심사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관심사 예요.                     

내가 그렇게 사모하고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거 그 이상으로 
더 큰 열망과, 더 큰 사모함, 더 큰 애절함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 응답하길 원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쥬빌리언으로, 복음 통일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이 아브라함이 가졌던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되는 거죠. 

사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도 더 강력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고, 
아브라함보다도 더 놀라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금 하나님과 소돔과 고모라사이에 중보자로 나선 사람이 아브라함이에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해서, 
또 평상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기초해서, 담대하게 기도하고 있어요. 

그가 개인의 사사로운 생각에 근거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 하잖아요. 

근데 여러분, 소돔을 우리 북한 문제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인생의 어떤 문제라고 생각해 보세요. 

근데 우리는, 하나님과 북한 사이에 우리가 서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를 위하시는 아브라함 보다 더 위대한 중보자 
가장 완벽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운데 서 계세요. 
나와 문제 사이에, 
우리와 북한 기도제목 사이에 중보자로 서 계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가지신지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사실은 아무런 죄가 없으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공의를 통한 죄에 대한 진노가 다 쏟아 부어지는 그 현장 한 가운데 
당신 홀로 모든 진노를 다 받아들였던 분이, 우리 예수님 이세요. 

그리고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위하시는 중보자 예수님은, 또 얼마나 이 땅에 사는 인생들을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시면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당신의 생명의 핏 값을 뿌리시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 중보자 예수님이 
하나님과 소돔과 고모라 사이에,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하나님과 북한 사이에, 
하나님과 여러분들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인생의 문제들 사이에, 
우리를 위해서 가장 완벽한 중보자로 서 계시다는 거죠.    

그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주시면, 거칠 게 뭐가 있습니까? 염려할 게 뭐가 있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 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그 옛날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친밀한,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 받을 만큼 
친밀한 관계를 유지 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아브라함보다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고,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미 알려주신 게 뭐예요? 
하나님을 너무 멀리 있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제자들에게 
'야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이제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해라!' 

여러분, 예수 믿을 때 우리를 찾아오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신 성령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 뭡니까? 
바로 '양자의 영'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증가하고 있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양자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것을, 우리의 영과 더불어 날마다 증언하는 거예요. 

우리 안의 성령 하나님이, 양자의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날마다 부르짖게 하실 뿐만 아니라 

또 성령 하나님의 다른 이름은 '기도의 영' 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영을 대신해서 강력하게 중보 해 주시는 그런 은혜!

 

그런 성령 하나님을 내가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브라함 보다도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 속에서 
아브라함이 드렸던 담대한 기도 보다도 
우리는 더 담대하고 강력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가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자 앞에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어떤 문제든지 간에, 담대하게 당당하게 갖고 나가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너희들이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기만 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이다.' 밀4:6~7
이런 기도를, 우리가 이 저녁에, 올려 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정리하면,

창19장에 가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 하시는 중에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를 기억 하셔서 
조카 롯의 가족을 구원해 내시는 역사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중보자 아브라함 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장 위대한 중보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데 
그 중보자 예수님을 힘입어, 그 분을 의지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자리로 나갈 때 
아브라함 보다 더 강력한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고, 
아브라함이 받았던 응답보다도 더 놀라운 응답을 
저와 여러분들이 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