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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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의 책임 눅16:19-24 1999.12.12
우리는 눅12장과 16장을 함께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대로 오늘의 이 두 본문 가운데 공통점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부자 에 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 등
다른복음서 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고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눅16장
그리고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는 *눅12장
우리들 모두가 다 익히 잘 아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사실은 이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 마음속에 떠 오르는 한 가지 의문은
비록 이 말씀이 하나님 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말씀이 라 할지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들의 보통 세상 상식으로는 잘 납득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우리가 보는 대로
부자는 죽 어서 지옥에 갔고
그 부자의 집에서 구걸하던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이 천국에 나사로가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을 아무리 자세히 살펴본다 할지라도
부자가 지옥에 갈만한 그런 특별한 이유를 우리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나중에 설명합니다)
또 이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갈 만큼 무슨 좋은 일을 했다,
천국에 갈만한 이유가 기록되어있는 것을 우리는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별로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부자는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천국에 간 나사로는 기분이 좋았을는지 모르지만
별 이유도 없이, 특별한 하자도 없이 지옥에 간 부자는
참 억울했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저는 해봅니다.
▲여러분, 본문을 한번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지옥에 갈만한 무슨 나쁜 짓을 부자가 한 것입니까?
아무리 살펴보더라도 이 부자는 보통 우리가 세상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부자들이 세상을 사는 것처럼, 그렇게 별 다르지 않게 세상을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특별하게 무슨 지옥에 가야될 그런 이유를 우리는 본문 가운데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한가지 오늘 본문에 부자가한 일에 대해서 한 구절이 나오기는 나옵니다.
눅16:19 '한부자가 있어 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날 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한마디로 이 부자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았던 사람이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도대체 왜 나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떻게 그것이 지옥에 갈 만큼 나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보통 세상에서 부자들이 어떻게 삽니까?
돈 있고 여유가 있으면, 당연히 좋은 옷 입고, 잘 먹고, 이런 저런 취미 생활도 하고,
재미있게 인생을 사는 것... 당연한 일이라고 여러분들 생각하지 않습니까?
부자들도 세상에서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부자가 돈이 있어서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입고, 뭐 조금 인생을 즐기는 것,
그것이 무슨 잘못이고, 더군다나 그것이 왜 지옥에까지 가야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까?
더군다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한다면
이 부자가 돈을 모을 때 무슨 나쁜 짓을 했다던가,
누구를 억울하게 해서 돈을 모았다던가, 불의한 방법으로 축제를 했다던가...
그런 말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성경의 판단에 의하면, 이 부자는 지옥에 갈만큼 나쁜 짓을 한 사람입니다.
지옥에 갈 만한 충분한 이유가 그에게 있다 하는 것이 성경의 판단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과연 부자에게 지옥에 갈만한 죄가 된 것일까요?
우리가 본문을 잘 살펴보면그 실마리를 한가지 찾아 볼 수 있는 근거가 나옵니다.
그것은 20절의 말씀입니다.
16: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나사로라는 거지가 그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으로 연명하여 살아갔다.'
'개들이 거지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
아마 이거지 나사로는 몸도 성치 않았던 그런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이 구절로 미루어볼 때, 바로 이 나사로가 부자에게 있어서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자가 지옥으로 가게 된 것이, 바로 이 나사로 때문이었다... 그런 말씀입니다.
나사로라는 거지가 이 부자의 집에서 얼씬거리지 않았다고 하면,
이 부자는 지옥에 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하필이면 이 거지 나사로가 이 부자의 집에서 얼씬거려서
이 부자가 지옥에 가는 날벼락을 맞게된 것이다... 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바로 이 나사로와의 관계였음을
우리는 본문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었기에
부자가 지옥에 가는 그런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도대체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21
거지 나사로가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었다는 얘기죠.
혹시 거지가 여러분들 집에 와서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해라"면서 너그럽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밥맛 떨어진다."
정 안 나가면 112 불러서라도 내보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부자가 거지에게 잘한 것입니다.
적어도 저(설교자)보다는 훨씬 잘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냉정하게 우리가 따져본다고 하면
나사로가 거지가 되어서 남의 집에서 빌어먹고 병이 들은 것은 부자의 책임이 아닙니다.
부자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거지 나사로를 도와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꼭 도와줘야 된다는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와주면 고마운 일이요, 뭐 도와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자를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 칭찬받을 일이지만
그렇게 안 한다고 해서, 사회 통념적으로 그것이 문제가 될 일이 아닙니다.
안 하면 그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통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 가고 있지 않습니까!
부자가 빈자를 도와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안 도와주더라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상식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들의 이와 같은 보통 상식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것,
이것이 부자가 잘못한 것이다. 이것이 죄다.
잘못도 보통 잘못이 아니라, 지옥에 갈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당연히 지옥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본문 성경의 판단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부자가 지옥에 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 부자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아프리카나 최빈국에 가서도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벌었으니 내 돈 내 마음대로 쓴다.
내가 이 돈을 버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얼마나 수고를 했는데.. 이걸 누구에게 줘?
내가 번 돈, 내가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고 그래? 그게 무슨 잘못이야?'
보통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마 본문의 부자도 그렇게 생각을 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와 같은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하나님이 주신 책임입니다. (*이 점은 본문에는 직접 명시되지 않아도,
성경 전반적으로 나타나 있는 부자의 책임입니다. 본문에는 행간에 명시되어 있죠)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책임이 있되, 무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반드시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줘야 된다.
자기가 가진 물질, 그것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자기 혼자만이 쓸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적어도 가난한 자와 함께 가질 수밖에 없는,
(심하게 말하자면) 가난한 자와의 공동소유다.’ 이 말씀입니다.
(이 말은, 어떤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것이지, ‘공동재산이다’ 라는 뜻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유재산제도를 지지합니다)
▲교회 헌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 헌금이, 내 교회만을 위해서 쓰여져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종종 헌금을 걷는 일에 대해서는 열심히 합니다. *20년 전 상황
그런데 이 헌금을 쓰는 일에 있어서는 성경대로 쓰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종종 교회의 헌금은, 그 교회만의 것(지출)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신명기 14장 29절 에 보면 십일조를 걷어서 어떻게 써야 되는가요?
‘레위인과 교회를 위해서 써야 된다. 그 다음에는 성중에있는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들,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헌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기 위해서 걷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다른 어떤 목적들보다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헌금은 꼭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외국인 노동자 선교를 하면서
그들에게 우리가 조그마한 사랑을 베풉니다만,
이것은 우리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지만... 호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헌금을 가지고 꼭 그런 일을 해야 되는 것이다..
교회 헌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교회의 헌금을 혜택받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성경의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돈이 있는 부자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 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는 순간, 그 책임도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대교, 유대인, 심지어 구약에 영향 받은 회교도들까지
이런 원칙이 오늘날까지 내려와서, 그들은 아주 구제와 형제 돕는 일에 열심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는, 단지 돈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이 주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기술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시간을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다 마찬가지 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그것을 남보다 많이 갖는 순간, 그것은
그것이 부족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될 책임이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의사는 병자에 대해서 책임이 있습니다.
의사가 되는 순간, 아픈 사람에 대해서 무한한 책임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돈 내고 내가 노력해서 의사가 됐는데 내 마음대로지 뭐"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병든 사람에 대해서 조건 없이 의사가 되는 순간
그때부터 조건 없이 무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피아노 반주자가 ‘왜 나만 매번 힘들게 피아노 반주하냐?
여러분도 좀 하세요!’ 하면서, 반주를 안 해 버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모든 사회에,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에 대해, 무한책임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고, 기독교 사회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2
▲독일 나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대학교수가 나치 정부의 비밀경찰에 붙잡혀 갔습니다. 이 교수가 항변을 합니다.
"나는 나치정부에 대해서 한번도 비판을 하거나, 나치정부를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조용하게 살았고, 정부를 반대한 적도 없습니다. 나는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나처럼 죄가 없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감금하니 나는 참으로 억울합니다."
그때 그 교수의 옆자리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언도를 받은 목사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교수님, 당신은 이 시대에 지성인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야 될 선생님입니다.
당신의 말대로 이 잔학하고 불의한 나치정권을
당신이 한 번도 비판하지 않고, 그 정부를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지은 큰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지성인으로서, 대학교수로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큰 잘못이요, 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지난 날 군부 독재시절을 지내왔습니다.
‘그때 나는 조용하게 살았다. 아무런 비판과 항거를 해보지도 않았다.’
그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런 사람이 바로 우리 역사에 대해서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 가만히 살펴보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면서 사는가?’ 우리 스스로 한번 잘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여유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도,
내가 건강한 육체를 가졌다는 것,
내가 특별한 재능과 기술을 가졌다는 것, 내가 지식을 가졌다는 것,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그런 힘들을 가졌다는 것,
그것 때문에내가 얼마나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가요?
만약 내가,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을 우리가 다 하지 못한다고 하면
혹시 나는 (본문의 부자처럼)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 해야 될 것입니다.
부자가 괜히 지옥에 갔습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가 사람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부자는 나쁜 짓을 안 했습니다.
다만 그가 부자로서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입니다.
여러분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를
‘나는 세상을 살아갈 때, 뭐 남들에게 그렇게 특별한 잘못한 일을 한 것도 없고,
죄를 지은 것도 없고, 나쁜 일 한 것도 없고,
그냥 선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주어진 생활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소시민이다 그런 말이지요.
’누가 나를 손가락 질을 할 것인가?‘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그렇게 사는 것으로써, 여러분들이 인생을 바르게 사는 것이고,
그것으로써 여러분들이 인생을 바르게 사는 것이고
그것으로써 만족한 인생의 삶을 사는 것이... 뭐 훌륭하고 만족스러운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평범하게 사는 사람,
주어진 일에 열심하며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누구에게 나쁜 짓도, 해로운 짓도 안 하고
그저 내가 벌어서 내가 먹고산다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나쁜사람입니다. 자기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들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 앞에서, 그리고 역사앞에서 두려운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는 순간, 그것에 대한 청지기적 책임이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엄중한 책임 추궁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쓰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 그것을 가지는 순간,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십니까?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