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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갓난아이를 벗어나는 성숙함

LNCK 2024. 10. 14. 14:3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영적성장

https://www.youtube.com/watch?v=xdGAruhV-Tc

 

영적 갓난아이를 벗어나는 성숙함          히5:12-14        2024.10.06.

히5:12-14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도입

 

'우리가 이제 교회 창립 43년을 지나는데, 우리가 어떻게 성숙함에 이를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 의겨, 성숙함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최근에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는데,

첫 회에는 유연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두 번째는 담대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세 번째는 자유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성숙함에 대한 말씀을 나눕니다. 
혹시 놓친 분들은 유튜브로 들어가서 들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중략


믿음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뭔가요? 
저는 '우리들이 믿음이 있다' 이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나의 믿음이 성장하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오늘 여러분들에게 조금 불편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렇게 묻고 싶어요.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으면서 여러분들 스스로 믿음이 성장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에게 이게 분명해야 되지 않을까요? 

또 여러분 가운데는 '언제부터인가 내 믿음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어' 라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요. 
근데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계속 성숙해 가야 된다는 거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을 읽을 때, 눈으로, 입으로만 읽지 말고 
조금 생각하며 읽어보기 원합니다.

저는 이 히브리서 기자가 어떤 교회 공동체에 썼던 이 히브리서 말씀이 
저에겐 너무 와 닿는 거예요. 왜요? 목회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거예요.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언제까지 여러분들이 영적 갓난 아이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이제 여러분들의 믿음이 좀 성장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히5:12-14

제가 오늘 여러분들을 바라보면서, 제가 목자의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여러분 언제까지 여러분들의 믿음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믿음이 성숙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러면 <나의 믿음이 자라고 있지 않다는 증거>를 먼저 살펴볼게요.

그 다음에는 <영적 성숙의 척도> 이런 순서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내 믿음이 자라고 있지 않다는 증거

▲1. 첫 번째는,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신앙의 연수가 오래 됐는데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는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오래 예수를 믿는 데도, 늘 목회자에게 의존하려고 해요.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목회자를 의존하면, 제가 목회하기가 참 쉽습니다. 
왜요? 그냥 하라는 대로 여러분들이 따라오니까요.

근데 그것은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에요. 
목회자는 여러분들에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여러분들의 믿음과 신앙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는 거예요. 

중요한 건 여러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그것이 깊어 져야 된다는 거죠. 

▲2. 또 하나, 아무리 우리가 오랫동안 예수를 믿어도 내 성품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이 자란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과의 관계라고만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참 부족한 설명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이웃간에) 좋은 성품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게 증거로 드러나야지요.

 

여러분들에게 위 질문이 참 불편하지 않아요?  
그리고 여러분 머릿 속에 '그래, 그 사람은 참 예수 오래 믿었는데, 어찌 그 모양 그 꼴일까?' 
하고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있죠. 

그들이 어쩌면 여러분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네가 고작 그 꼴이냐?)

우리의 성품이 변하지 않는 것, 
또 아무리 우리들이 오래 예수를 믿어도 끝까지 그냥 에 머물러 있어요. 
제자까지 나아가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열광하는 
그것이 우리들의 믿음이라고 착각할 수 있어요. 

▲3. 또 하나, 아무리 오래 믿어도, 내 뜻을 내려 놓으려고 하지 않아요

제가 지난 주에도 이야기 했잖아요. 우리의 신념과 신앙은 다른 것이라고요.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념(생각 차원)으로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해요.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내려 놓으려고 하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지켜야 되는 것이지만 
우리의 신념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 꺾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그가 성숙한 성도이에요. 

△여러분들은 혹시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사람을 볼 때, 성숙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절대로 나는 잘못했다고 얘기하지 않아!' 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 
성숙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제가 이렇게 목회를 해 가면서, 제가 조금 성숙해 간다 라고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제가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 부목사님들 한테도, 제가 그런 얘기를 이렇게 종종 하거든요. 
'미안해, 이건 내가 잘못했던 것 같아...' 

근데 내가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내가 내 인격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내 인격의 성숙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저는 진짜 감사한 게 있어요. 남들이 착각이 라고 이야기할 지 모르지만, 
제가 진짜 '나이듦이 참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제가 이제 육십이 지나가면서, 저는 제가 지금 비로소 성숙해 가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게 너무 감사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아 그래 내 믿음이 성숙기에 가고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만일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갓난 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갓난 아이는 어떤 특징이 있어요. 굉장히 자기 중심적 이고 이기적이라서
자기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늘 징징대요.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갓난아이만 가득 차 있다면, 교회가 얼마나 시끄러울까요?
그러니까 교회의 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해져 가고 있는가? 
그게 교회의 진정한 힘이겠죠. 

제가 교회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면서 여쭈었습니다.
'하나님, 창립 43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에 제일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배드리냐?' 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성숙해져 가고 있는가?' 
그것을 실제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 교회가 받은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늘 누군가 나를 걱정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게아니라 '나를 바라보면 참 안심이 되고, 저 사람을 바라보니 내 마음이 참 기쁘다'
라고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 <영적 성숙 척도>를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1. 내가 미숙해서 염려의 대상이 되는가,

아니면 이웃을 염려하는 성숙한 사람인가? 

만일 여러분들이 염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아직 영적 갓난아이인 거예요. 

 

근데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 오늘 예배를 드리러 오면서도 
누군가를 염려해주고, 배려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여러분들은 영적으로 성숙해 가고 있는 거죠. 

과거에 제가 4월, 5월, 10월... 이런 때가 되면 굉장히 걱정이 많았던 때가 있었어요. 
'허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우리 교인들이 밖으로 놀러가고 교회 안 나오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했었던 때가 과거에 좀 있었어요. 

그리고 참 묘하게도 5월에 그런 걱정을 하고 딱 끝나야 되는데 
6월 말이 되면 그때부터 장마가 와요. 그러니 또 걱정과 염려가 계속되는 거죠.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우리 교인들이 예배에 안 오면 어떡하지?' 그런 염려가 있었어요. 

근데 여러분들 중에 '장마철에 비가 계속 오는데, 목사님이 오늘 설교 안 하면 어떡하지?' 
혹시 이런 걱정하는 사람은 없겠죠.
이건 염려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이렇게 염려 안 끼치는 성숙한 사람이 되자는 뜻)

내 주위의 성도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저 정도 신앙은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안심이 될 텐데...  

핵심은, 지금 내가 (미숙한) 염려 대상이 되어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염려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는가? ... 그걸 냉정하게 따져보자는 거죠.

▲2. 장애물을 디딤돌로 여기는 사람

제가 조금 이따가 장성한 자의 분량에 대해서 설명 하겠지만 
우리들은 신앙 생활 하면서 큰 어떤 장애물들을 겪을 수 있어요. 
우리들의 삶에 이렇게 걸림돌이 있는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 장애물에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신약성경에 보면 '실족, 스캔달리조'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서 스캔들 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걸려 넘어진다. 

여기에 장애물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걸려 넘어져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이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요. 
장애물이 도리어 디딤돌이 되는 거죠. 

어린 아이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걸려 넘어지지만 stumbling stone
성숙한 사람은 그걸 오히려 디딤돌 stepping stone 로 사용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그런 표현 많이 쓰잖아요. 
'아 나는 너무 상처 받았고, 누구 때문에 내가 이런 저런 시험 당했고...'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갓난 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그걸 디딤돌로 여겨서, 오히려 딛고 올라갑니다.  

△사도바울이 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딤전4:12절에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사도바울이 생각할 때 디모데가 지금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디모데야, 그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야. 
네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면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지 못해, 네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거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그런 거 아닌가요?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바라볼 때 염려하고 있어요. 
교인과 세상도 목회자를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어요. 

왜요? 우리들이 교회의 큰 건물들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으니, 끊임없는 근심 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거죠. 

▲3. 핑계 대지 않고, 방법을 찾는 사람

제가 늘 이렇게 설교를 준비하는 패턴이 있어요. 
저는 오늘도 이제 오후에 청년 예배까지 설교를 마치면 
다음 주에 설교할 원고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요. 

저녁을 먹고나서, 저는 한가한 시간에 일단 원고를 한 번 읽고 
그 다음 날 새벽부터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다음 주 설교 원고를 읽고, 또 메모하고 합니다. 

그래서 제 원고를 보면, 이런 메모 들이 많이 되어 있어요. 
제가 딤전4:12절을 읽으며 묵상할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들 주변에 보면 늘 핑계가 많은 사람이 있어요. 
내 마음에 안 들면 핑계가 많아요. 

그런데 이것이 해야 되는 일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핑계 대지 않고, 방법을 찾아요. 
'아 그럼 성숙한 사람은 핑계 대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는 것이구나' 
그게 어쩌면 신앙 성숙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4. 신앙이 성숙한 곳에는, 평화가 있고, 행복이 느껴집니다 

자 영적 갓난아이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영적 갓난아이가 많은 곳은 시끄러워요. 평화가 없어요. 

저도 우리 교회를 보면서 그런 꿈을 꿔요. 
'하나님,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우리 교인들 가운데 
정말 평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런 표현 잘 쓰잖아요. 
'나는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여러분들, 예배하는 여러분들이 
참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이 행복은, 영적 갓난아이들도 채워져 있으면, 

절대로 교회생활이 행복할 수 없는 거예요. 

영적 갓난아이/ 성숙한 성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요? 

 

▲1. 기도할 때 보면 알아요.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과 별로 관계가 없어요. 자기 소원 성취 중심이에요.

우리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우리의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죠. 

△자 한 번 생각하면서 적용해 봅시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분들의 삶에 가장 뜨거웠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다 동일하지 않지만, 처음 예수를 믿고,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 
우리의 마음이 제일 뜨거웠죠. 그때는 우리들의 삶의 간증이 참 많았어요. 

예수 믿은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막 달려와 가지고 
'목사님 제가 은혜를 받았는데요. 요번 주에도 기적이 일어났어요. 기적이' 
막 간증을 해요. 

근데 그 기적의 내용들을 보면, '아픈데 기도하고 나았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 됐거나...'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죠.

진짜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모든 것들이 내 원초적인 욕망들이 해결되는 

그런 기적을 경험 하거든요. 
여러분들도 그랬을 것 같아요. 그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이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거를 헤아릴 만한 그런 성숙한 믿음이 없어요. 

그들은 그냥 예수 믿고 자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 대하여 기뻐해요. 
그래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세요. 왠지 아세요? 
예수 믿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이게 뭔가 구분이 안 돼요. 
일단 자기가 불편하면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그거 채워주시지 않으면 
막 떼를 쓰고 울고, 이게 통제도 안 될 정도예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팁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예수 믿든 한 3년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마음껏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거의 다 들어주실 거예요. 

△근데 가만히 보니까 우리들이 어느 정도 신앙 생활을 했을 즈음에 
'왜 내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지?' 그런 경험이 있을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께서 '얘야 이제는 네 원초적인 욕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내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봐야 되지 않겠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때, 
우리의 믿음이 성숙했느냐/ 성숙하지 않았느냐가 드러나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자식들 보면서 그런 얘기 할 때가 있잖아요. 
'아유 저 놈 철 들었네' 언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줄 때 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시죠.  기도할 때 보면 알아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또 그런 도전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오늘 기도하는 그 기도의 내용을, 누가 주변 사람이 들을 때 
또는 내가 공개적으로 '내 기도 제목은 이것입니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가요?

 

▲2. 나는 이기는 사람입니까, 지는 사람입니까? 
우리가 이런 말을 종종 하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왜 부모가 자식을 못 이겨요? 돈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가 아니잖아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기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나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런 모습들이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바래요. 
'내가 성숙 했기 때문에, 굳이 이기려고 하지 않는 모습들...' 

제가 저를 스스로 돌아보는 거예요. 
제가 목회를 나면서, 처음 담임 목사가 됐을 때는 
그렇게 성도들을 이기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겨야 리더십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성숙해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 이기는 게 아니구나.. 목회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양들을.. 
내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인데, 
나에게 맡겨 주신 양을 이기는 게 목회가 아니라, 이 양을 잘 돌보는 게 목회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저는 '제가 성숙 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요즘 젊은 목회자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가 목회를 하면서 어떻게 교회가 성장하고, 어떻게 목회를 잘 하고, 
어떻게 리더쉽을 가지야 될지...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우리 양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선한 목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성숙한 성도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영광받으시죠.  
젊은 목회자들은 '늘 인정 받으려고 하는' 그런 욕구가 있죠.
근데 진짜 우리 목회자들은, '인정 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을 증명하려 들지 않고'
선한 목자로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자기가 먼저 누리며, 그 다음에 그걸 나누는 거죠.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성숙 함이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성숙함은...
왜요? 우리는 신앙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라고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신앙이다' 라고 이렇게 딱 생각하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독선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요...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이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증명되고 나타나느냐에 대한 문제예요. 
(즉 이웃과의 관계에 달려있어요)

우리 그리스도인 중에서 가장 성숙한 사람이, 그리스도 인으로서 살아갈 때 
나타나는 명백한 현상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숙함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내가 하나님만 잘 믿으면 돼!'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증명 돼야 되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경험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거든요. 

△제가 오래 전에 군목 훈련을 12주 동안 받을 때 
그때 내무반에 군 법사, 신부, 목사 이렇게 세 그룹이 한 내무반에서 함께 12주간을 지냈어요. 
제 평생에 그런 경험은 처음인 거예요. 

근데 제가 그때 가톨릭 신부, 불교 법사, 기독교 목사와 함께 살아가면서 *군목 후보생들
제 경험은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그냥 그때 제 개인적 경험이에요.) 
평소에 저는 신부님들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어요. 
'아 결혼을 하지 않고, 성직자 로서 평생을 살아가는 신부님들의 어떤 고결함...' 

근데 제가 훈련을 받는 동안, 그 환상이 다 깨졌어요. 이건 제 경험이에요. 
그때 내무반을 같이 쓰던 신부님들 중에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공동 생활을 못 하는지... 
'정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는 경험을 가지게 됐어요. 

근데 그때 같이 내무반을 쓰던 법사님들 중에, 
군에 오는 그 법사들은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동국대를 나온 분들이 군법사로 와요. 

그 분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동자승으로, 어렸을 때부터 절에서 자란 사람들이 있어요. 
동자승들은 어렸을 때 절을 청소하는 일부터, 이렇게 허드레 일부터 배워 나갑니다. 

근데 그 분들이 내무반 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모범적인지 몰라요. 
제가 그걸 보면서... 그때 제 개인적 경험인 거예요... 

여러분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또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생각하게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성숙해서, 여러분들의 성숙함을 통하여 
하나님이 증명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믿음이 이렇게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게 되는 삶이 되는 거죠. 

자 믿음이 자라면, 우리들이 성숙 해야 되는데 
성숙의 제일 첫 번째 척도는 뭘까요? 
누군가를 배려하고,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우리 한국 교계를 이렇게 보면서 참 마음 아픈 게 
너무 서로를 향해 비난하는 거예요. 

'어쩌면 저렇게 믿음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향하여 저렇게 비난할 수 있을까?' 
근데 그 비난이 뭐냐면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많이 비난 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비난보다, 조금 더 용납 하고 사랑하는 모습들이 우리들에게 보여지면 어떨까?' 

우리가 위선적이거나 독선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사랑하고 용납 하는 모습들이 우리들에게 보여지는 것, 
그게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면서, 마6:33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실 우리가 굉장히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아니라, 
내 나라(영역)와 의를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일 경우가 참 많이 있죠. 

△여러분, 솔로몬이 하나님께 1천번제를 드리니 
하나님이 너무 기쁘셔서, 솔로몬 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시죠. 

왕상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아 내 마음에 든다. 
네가 구하는 것이 정말 내 마음에 든다.'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기도 
그 성숙 함이 우리들에게 있는가요? 

▲4. 우리가 성숙하게 되면 우리의 신앙에 뭐가 달라질까요? 
우리의 먹는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오늘 본문 말씀해 보니까 
영적 갓난 아이는 딱딱한 것을 못 먹고 젖을 먹어요. 우유를 먹어요. 

갓난 아이는 젖이 맛있어서 먹을까요?
딱딱한 것은, 뼈를 발라 내지 못하니까, 젖만 먹는 거예요. 

그런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히브리서 기자가 안타까운 거예요. 
'너희들이 조금 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는데, 너희들이 이거 소화를 못 시키는구나' 

제가 말씀을 이렇게 준비하다가 그런 생각이 났어요. 
'어린 아이들이 먹는 것, 그리고 어른들이 먹는 것, 이게 뭐가 다른가?' 

△최근에 어느 교우가 <긍정 닥터> 라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이경실 선생님이 있는데 
그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어서, 제가 한 주간 동안 쭉 읽어 보았어요. 

그 책에 보니까, 우리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인스턴트 음식,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먹는 사람의 기분은 좋게 할 수는 있으나, 
우리들의 몸에 어떻게 해가 되는지를 이렇게 쭉 설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고 보니까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 생각해 보니까 
자기 입맛에 맞는 취향인 거예요. 

어린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 중에 하나가 스팸 이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스팸을 아주 좋아했어요.

따끈따끈한 흰 쌀밥에 스팸을 딱 구워서 밥에 올려가지고 김에 싸서 먹으면, 
제가 어릴 때, 그게 너무너무 맛있는 거예요. 

요즘은 제가 좀처럼 스팸을 잘 먹지 않아요. 그게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요.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거 보면, 아이들은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먹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이 음식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될까'를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 중에 아직도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거 먹다가 죽을 거야, 나 말리지 마!'
이러는 사람이 있으면.. 아직 어린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생각이 또 나요. 
저는 어렸을 때 계란을 먹을 때면, 노른자위만 골라서 먹었고, 흰자위는 맛이 없어서 안 먹었어요.
또 국이나 찌개를 먹을 때는, 제가 파를 다 골라내고 먹었던 것 같아요. 

또 어렸을 때 제일 먹기 싫었던 게 가지 였어요. 
가지의 그 식감 때문에, 먹기를 기피했죠. 
근데 요즘은 가지를 잘 먹어요. 

△자 보세요. 여러분들의 영적인 상태에 적용해 보세요. 
'나는 내 취향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취하는 사람인가?' 

우리 교회는 10년 전부터 <이열치열 부흥회>를 해요. 
여러분 이열치열 부흥회에 오는 강사님들이 다 마음에 드세요?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할 거예요. 

여러분이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의 강사가 오면 
'어 이번에 정말 은혜스럽군' 

근데 반대로 내 스타일하고 잘 맞지 않으면 
'어 왠지 좀 불편해' 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 강사를 보면, 우리 교회 스타일에 잘 맞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고... 
그런데 여러 스타일의 강사들을 제가 초청하는데, 의도가 하나 있어요.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의 영적 스펙트럼을 좀 넓혀주고 싶어요. 
제게도 제가 선호하는 신앙의 성향, 제가 설교하는 스타일, 
우리 교회 예배 스타일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우리가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이것이 진리예요. 
저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우리들에게 잘 맞지는 않지만 
이런 신앙의 유형도 있고,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들을 좀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왜 예수를 믿으면서 왜 그렇게 편협해 질까?'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왜 우리는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누구를 향하여 그렇게 블레임(비난)을 할까?' 

'나하고 다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같은 믿음의 공동체라면, 
이것이 비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라면 
그것을 좀 우리들이 소화해 낼 수 있고 
혹시 나에게 맞지 않는 부분은 '가시도 좀 발라 내고' 해서 
우리들이 소화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된다면, 
우리가 진짜 성숙한 신앙인이 될 텐데... 왜 이렇게 되지 못할까...?'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가지는 안타까운 마음,
또 우리 한국의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왜 우리가 이렇게 서로 정죄할까?'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좀 용납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장성한 자는' 행함으로 선악을 분별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 부분으로 넘어가 볼게요. 
제가 TLV 성경으로 이렇게 나옵니다. 

히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 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Learn right from wrong by practicing doing right
(성숙한 사람은 훈련을 받아서 좋고 나쁜 것을 분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옳은 것을 우리들이 연습하고 행할 때,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고, 
그것을 통하여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거예요. 

우리들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뭘 해야 되냐면, 
옳은 것을 플렉티스(실천, 실행) 하는 사람이 돼야 돼요. 

그때 우리들이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우리의 삶에서 틀린 것이 드러나요. 

그리고 그 틀린 것이 드러날 때,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알아요. 
문제는 우리들이 옳은 것을 우리들이 실천 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경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제 여러분들에게 대한 도전을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면, 여러분들의 삶에서 
'아 이건 하나님의 말씀인데 진리야, 이것은 옳은 일이야!' 라는 것을 실천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들이 옳은 것을 이렇게 연습하고 실천해야 될까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올바른 성숙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에게 가장 큰 삶의 약점이 무엇인지, 
무엇이 여러분들의 성장을 저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경험을 하거든요. 

▲저는 목회를 하면서 '아 내가 참 조심해야 될 게 있다. 
내가 그래도 이렇게 성숙한 목회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돈 문제나 명예 문제나 혹은 여자에 대한 문제 이건 내가 잘 지켜야 되겠다.'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잘 지켜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다 보니까, 제 모습이 떠오르는 거예요. 

저는 일단 '제가 쓴 책들에 대한 인세는 무조건 우리 교회 헌금으로 드린다'
그 원칙을 스스로 정했어요.

그리고 제가 외부에서 이제 받는 사례들은, 
내가 만나교회 목사로서 하는 일이니까, 
'이건 내가 이제 헌금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책의 인세가 들어왔을 때, 바로 헌금을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인세가 들어왔을 때, 바로 헌금을 못하고, 한 5~6개월 이렇게 쌓이잖아요. 
참 이상한 게, 바로 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게 쌓이면... 아까워요. 참 이상해요. 

그리고 제가 외부에서 설교를 하고서 제가 받은 봉투를 
그냥 바로 그냥 직원에게 건네주면서 '헌금 통장에 넣으세요'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2~3일째 가방 속에 이렇게 모르고 넣고 다니다가 
어느 날 그걸 발견하고, 그 다음에 헌금으로 내려면... 아까워요. 

그래서 제가 연습하려고 하는 게 있습니다. 
'헌금을, 받은 즉시 바로바로 하는 게 중요하구나. 그래야 내가 흔들리지 않는 거구나' 
이걸 요즘 제가 연습 practice 하는 거예요. 

'연습'은 아주 어려운, 커다란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갈 때 
'이것은 지켜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행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믿음의 단계를 
오스왈드 챔버스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믿음은 저 위대한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 앞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우리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라고요. 

옛날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을 따라다니면서 
집회에서 찬양을 하던 킴 웍스 라는 여인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사람인데 미국으로 입양이 되어서 
오스트리아 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과 함께 집회에 가서 이렇게 찬양을 하는 분이었어요. 

그 분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내가 길을 갈 때 사람들은 눈을 못 보는 나에게 
저기 오십 미터 백 미터 앞에 층계 가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이런 얘기 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몇 발자국 앞에 계단이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이렇게 말해 준다는 거죠. 

우리들 신앙에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먼 미래의 여러분들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올바로 프렉티스 하는가? 
옳은 것을 우리들이 행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근데 옳은 것인지 아닌지 우리들이 어떻게 아냐고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지각을 주셨대요.' 

우리 신앙이, 믿음이, 지각으로 분별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분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들이 옳은 것을 행하는 거는 좋아요. 
그런데 옳고 그른 것을 우리들이 어떻게 분별 해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진짜 옳고 그른 거 몰라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지각을 주셔서 그것을 분별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여러분들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않는 이유는,
옳은 일을 행했을 때, 여러분들에게 돌아올 불이익과, 
그 일을 행하는 것에 대한 힘듦을 인하여 
여러분들이 혹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분별을 외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믿음은, 신앙은 우리들에게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고 
그 행함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증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분명히 해야 돼요. 믿음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행함을 통하여 증명 되어지는 거예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했어요. 
행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지각을 주셨다고 말씀하세요. 
지각을 사용함으로, 우리들이 옳은 일을 행하는 게, 어렵고 힘든 일입니까? No

▲여러분 살아가면서 어떤 운동을 배워본 적이 있잖아요. 
테니스를 예를 들면, 테니스 처음 배우면 제일 힘든 게 
손바닥에 물집 생기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테니스를 좀 치다가 물집이 생기면 
아파서 못 하겠어요... 그리고 그만두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테니스를 열심히 잘 하려면, 물집이 생기고, 그 물집이 터져서 
터진 물 집에 굳은 살이 박히고, 그 굳은 살이 벗겨져야 
그때 비로소 테니스를 잘 칠 수 있잖아요. 

우리들이 선을 행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데 
우리의 영혼의 물집이 터지는 아픔도 경험해야 
그게 우리들의 삶의 간증이 되잖아요. 
그리고 그 간증의 시간들을 지나가야, 우리들이 선을 행할 수 있는 성숙함이 
우리들에게 생겨지는 거예요. 

▲마치는 말

저는 오늘 창립기념일을 지나면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도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믿음이 더 이상 어린 아이의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믿음이 성숙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각을 사용하면서 여러분들이 옳은 일을 행함으로써  
그리고 옳지 않은 것이 드러 나도록 하세요. 선을 행할 때, 악도 드러나는(분별되는) 거예요.

우리들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겁니다.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제 꿈이에요. 뭐냐면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주일 날 예배 시간에 딱 나올 때에 
저 앞에 있는 십자가를 보면, 여러분들에게 눈물이 났으면 좋겠어요. 

왜 눈물이 나냐면 '하나님, 제가 일주일을 살아왔는데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하나님 제가 승리하고, 그 말씀 붙들고 이 자리에 나왔어요.' 
그래서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십자가를 볼 때, 우리에게 감격이 있어야 되잖아요. 

여러분들이 예배당에 들어왔는데도, 그냥 무감각 해요. 그 얘기는 뭐예요?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지 않은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그 부딪힘, 그 용기가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 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저와 함께 꿈을 봅시다. 
우리 안에 믿음이 잘 자라나서, 사랑과 용납이 있는 그런 공동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그런 공동체, 

이제 더 이상 여러분들이 내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 것 때문에 
내가 만족 되지 않는 것 때문에, 불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