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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고난을 먹고 자란다

LNCK 2024. 10. 16. 13:31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섭리, 경륜>
설 에디션 설교듣기ㅣ4시간 코스 | 2023 연말연초 특새 - YouTube

 

꿈은 고난을 먹고 자란다          창46:26~34            2023 신년특새   

우리가 요셉 스토리를 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요셉을 배우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살았느냐 이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요셉을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봐야 돼요. 

그래서 어제 우리가 살펴본 바대로, 요셉이 계속 말하죠.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나님이..." 

당신들이 한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게 엄청난 관점입니다. 
"형들이 나를 판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 앞서 여기 보냈습니다. 

목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45:5

이게 굉장히 중요한 관점인데, "하나님이 하셨다"는 거예요. 
주어가 "내가"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 입니다.

내 인생이 어떻게 꼬여가지고 이렇게 온게 아니고, 
형들이 그렇게 해서 내가 여기 온게 아니라는 거예요. 

아~ 이게 엄청난 관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도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관점을 가져야 돼요. '하나님 중심의 관점!' 

무슨 일이 일어나도, 표면적으로 일어난 걸 보고 해석하면 안 돼요.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뭘 하시려고 하는가?' 
'왜 이 일이 일어났는가?' 이 질문을 해야 돼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뭘 하기를 원하시는가?'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뭔가?'

요셉이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게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일하신다는 겁니다.

물론 이게 처음부터 되는 건 아니에요. 
시간이 흘러 가면서 이게 점점 확신이 오는 거죠. 
'와 이건 사람이 한게 아니다. 야~ 이거는 형들이 한게 아니다.' 
'이걸 어떻게 형들이 이렇게 만들 수 있어? 이 작품을 이렇게 만들 수 있어? 불가능한 거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왔는데, 보니까 아~ 이건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게 설명이 안 돼!'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해석된게 아니겠지요. 
처음에는 너무 억울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게 사람이 한게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의 믿음에 중요한 내용이 뭡니까?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계획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계획하신 것을 실행해 옮기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실뿐만 아니라, 실행할 수 있는 능력도 있으십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삶의 태도가 달라져요. 

그러면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아요. 
이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눈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이번 특새에 은혜 받은 겁니다. 
그것만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거예요.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눈! 
그러면 초조해 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손(섭리)을 믿기 때문에, 내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돼요. 
그냥 하면 돼요. 다른 거 걱정할게 하나도 없어요.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계속 훈련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내가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그냥 먹고 사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해요.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내가 먹고 사는 거예요. 
우리가 말로는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다' 라고 얘기하는데 
우리 영혼에 그게 깊이 새겨져 있어야 되거든요.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무엇인가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한다고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에 옮기고, 성취하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물어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 나에게 당황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도 놀라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물어야 돼요.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내 계획이 막혀도, 하나님의 계획은 바뀌지 않는다는 거죠. 

여러분, 만약에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주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과 실행하심.. 이거를 우리가 못 믿는다면,
그걸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정말 매 순간 바짝바짝 침이 마르는 거예요. 

우리의 미래가 뭐 어떻게 닥칠지 알 수가 없잖아요.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의 미래의 소망을 가지기 어렵잖아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모든 건 불투명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죠. 
AI가 모든 것을 예측하기도 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근거 없는 낙관론이죠. 

여러분 인간의 운명이, 인간의 손에 맡겨져 있다면, 그건 얼마나 불안한 일입니까?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시고 다스리신다!'
이 사실을 믿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늘 맡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 삶을 맡겨 드립니다. 이끄시는 대로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자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무서울 정도로 개입하시고, 간섭하십니다

때로는 인간들의 실수와 악까지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요셉의 형들의 증오심마저도,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데 사용하시잖아요. 
그 증오심! 형들의 증오심이 없었다면, 요셉은 애굽까지 팔려갈 수가 없었죠.

 

그 증오심 때문에 벌어진 결과는, 요셉에게는 어마어마하게 힘든 시간이지만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용하세요. 심지어 지나가는 애굽으로 가는 상인까지도 
그 타이밍에 사용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선을 이루신다'라고 할 때 하나님은 그 선을 
소극적으로 이루시는 분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의미 없이 당하는 고난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아요. 
포장길이 아니고 비포장이면서도, 굴곡진 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살기 때문에 
그 주권을 믿으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느긋해질 수가 있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은, 훨씬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과 박자를 맞추면, 훨씬 더 춤을 잘 출 수가 있어요. 

▲자 요셉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 중에 하나는 '기근'이라는 겁니다. 
이 기근은 요셉의 이야기의 중요한 배경입니다. 온 땅에 기근이 심했어요. 

여러분, 생존 문제보다 시급한게 어디 있습니까? 
죽고 사는 문제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 기근은, 역사 속에 늘 발생해 왔어요. 
오늘날에도 지구촌에 기근이 많아요. 

그런데 이 기근은 상징적인 그림입니다. 뭔가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세상의 모습이에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은 결핍이라는 거죠.

그래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워요.
아 이게 참 만만하지 않아요. 죽도록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 삽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싸우는가요? 생존본능이 있는 거거든요. 
복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그저 싸움으로 보지 마세요.

그 기저에 '복이 없는 상태'라는 증거입니다.

결핍을 느끼니까, 결핍이 사람을 사나워지게 만드는 거예요. 
근데 그 결핍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채우기가 어려워요. 

영적 기근은 어때요? 더 심각하죠. 
영적 공허함으로 고통하는 사람들... 이거는 먹는 문제보다 더 심각해요. 

자 이 기근 문제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데 쓰여집니다. 
기근이라는 이 환경이, 요셉이 등용되게 되는 도구가 되죠.        

그 기근이 없었다면 요셉은 총리가 될 수 없었어요. 
요셉이 그 기근을 관리하는 자리에 오르죠.

그래서 총리가 되고, 
그 기근 때문에 또 야곱의 가문을 애굽으로 불러들이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불가피하게 가나안 땅을 떠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불가피하게 살던 곳을 떠나거나 
또 직장을 옮기거나, 어떤 중요한 변화의 순간이 와요. 
지금 이제 그 모멘텀 입니다.       

▲야곱이 살던 땅은 가나안입니다. 
이 가나안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 있어요. 

가나안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니 가나안을 함부로 떠나면 안 돼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으로 이주하게 만드십니다. 

겉으로는 야곱의 집이 기근으로 양식을 구하러 애굽을 갑니다. 
그러나 배후에는 더 큰 뜻이 숨어 있는 거잖아요. 
애굽에서 한 민족을 일으키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죠.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은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어요. 
그리고 그에게 총리의 자리를 주시고, 가족들을 애굽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그리고 초청장을 보냅니다. 

바로도 그 일에 매우 호의적입니다.
창45:18절 '너희 (요셉의)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바로 왕은 요셉의 형들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풀어요. 
좋은 땅을 너희에게 줄테니까 오라는 거예요. 
애굽의 못쓰는 땅, 자투리 땅을 대충 준게 아니고 
가장 기름진 좋은 땅을 줬다는 것입니다.

45: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요즘으로 치면, 리무진을 보내주는 거예요. 

45:20 '또 너희의 기구(세간)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거기 가나안에서 쓰던 가구 이런 것들을 다 버려두고 오라는 거죠.

45: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여기 '옷'이 나오는데, 고대 사회에서는 옷이 중요하잖아요. 
근데 재밌는 것은 요셉의 채색 옷을 벗겼던 형들에게
이 옷을 선물로 주고 있는 것도 굉장히 뭔가를 시사하는 거죠

45: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버지에게 길에서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한 마디로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풀어요. 
근데 사실 형들이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오히려 요셉에게 고통을 준 형들에게 벌을 주어도 모자라는데,
이 엄청난 호의를 베풀어 주는 거예요. 너무 많은 걸 베풀어 주는 거죠.
형들은 얻어맞지 않은게 다행인데... 엄청난 호의를 베풀어 줍니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과분한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저 주시는 은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았던 것에 비해, 용서를 받는 것만 해도 헤아릴 수 없는 은혜인데,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결코 작지 않죠.  
그래서 우리의 고백이 언제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근데 형들이 아버지 야곱에게로 돌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에 대한 소리를 듣자, 야곱은 어리둥절했다고 그래요. 
그리고 감격해요. 

무엇보다 야곱이 놀란 것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요? 요셉은 야곱에게는 이미 죽은 사람이거든요. 근데 살아 있다는 거예요.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다는 거죠. 
창45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때 당시에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았어요. 근데 죽은게 아니에요. 살아있는 거죠. 
여러분 요셉은 죽으면 안 되잖아요. 키 맨이라고 그러죠. 
이런 사람은 키 맨 이에요.
이 구원의 스토리를 이어가는데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죠.
그가 죽으면 얘기가 안 되는 거죠. 이 구원 역사의 흐름이 끊겨버리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요셉이 궁지에 몰리고 또 몰리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고, 
형들에게 죽을 뻔하고, 노예의 신분으로 죽을 뻔하고, 그 외에도 위기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근데 주인공은 죽지 않아요. 왜요? 

그를 통하여 만인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그 구원의 사역을 이루는 자니까요.

그러니까 요셉은 하나님의 관리 대상인 겁니다. 
요셉이 죽을 뻔한 일은 여러 번 있었지만, 죽지 않았어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뻔한 일이 있지만 죽지 않아요. 
그래서 '사명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007 제임스 본드는 죽지 않습니다. 
적이 모든 포화를 쏟아부어 가지고 막 불길이 치솟고 해도, 
주인공은 툭툭 털고 나옵니다. 미션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각본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죽기 전에는 영화가 끝나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부름을 받으면 어떻게 되죠? 
우리가 죽고 싶어도 못 죽어요. 이게 우리의 사명이죠.
하나님의 싸인이 없으면, 자기 마음대로 못 죽어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암에 걸려도 암 때문에 죽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싸인이 있어야 죽습니다. 

바울을 보세요. 죽을 것 같은 일이 한두 번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창45장 후반부는 '야곱의 말년'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야곱은 험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움켜쥐려고 했습니다. 
악을 쓰며 살았습니다. 근데 말년에 이 무슨 복인지요! 

여러분 이런 거죠. 그렇게 악을 쓰면서 하려고 했지만, 다 빼앗길 뻔했던 
아슬아슬한 삶을 살았던, 험악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야곱이에요. 

근데 지금은 자기와 전혀 상관없이 복이 덩굴채 굴러 들어오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향응을 받고, 기름진 고센 땅을 받고... 삶이 술술 풀리는 거죠. 

뭘 보여줍니까? 복은 내 힘으로 쟁취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부도 그렇습니다. 내가 쌓은 부와, 하나님이 주신 부는 다른 겁니다. 

내가 내 힘으로 쌓은 부가 있겠죠. 그러나 그 부는 언젠가 공중분해 됩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고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그게 진짜 복인 줄로 믿습니다. 

요셉으로 인해, 야곱에게 엄청난 부가 들어왔어요. 
요셉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게 야곱의 집에 일어난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고, 기근의 땅에서 풍요의 세계로 초대받습니다. 
가난과 수치가 떠나갔고, 특별한 지위로 높여 졌습니다. 

왜 이럴까요? 여러분, 풍요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앞으로 야곱의 후손들을 통하여 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도,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영적으로 보면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 우리의 삶이 확 풀렸습니다. 

예수 없이 살던 우리의 삶은 '기근'이었습니다. 결핍 증세로 허덕였습니다. 
물질 문제만이 아닙니다. 생명의 결핍이에요. 

여러분, 겨우 사는... 오늘날 세상에 예수의 생명 안에 살지 않는 사람은
겨우 근근이 살아가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은, 그 삶의 질 자체가 생명이 아니에요. 
그냥 곧 죽게 되는 생명,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지요. 

겨우 버티고 살아가는 삶이에요. 아무리 거부면 뭐해요? 
생명이 쪼그라들고 있는데, 곧 죽을 건데,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생명이 뭔 대단한게 있겠어요? 

10년이 금방이고, 20년이 금방이고, 30년이 금방입니다.
아무리 대단해도, 생명의 쪼그라듦, 죽음의 권세 앞에 꼼짝 못 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이 부활의 생명, 영원한 생명,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 
그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거잖아요. 

그게 영생의 삶이고, 그래서 '죽어도 살겠고' 라고 하는 이 확신이   요11:25
우리 안에 있는 거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 때문에 누리는 복이 많아요. 
요셉 한 사람 때문에 복을 받았는데,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누리는 복이 한량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요10:10
죽어도 죽지 않는 복, 그 충만한 생명이 우리 안에 있는 복,
이 구원의 복, 영생의 복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 요셉의 형제들과 아버지 야곱까지, 이제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온 땅에 기근 중에 야곱가는 애굽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거예요.

바로 왕의 호의로 가족 초청 비자를 받고 입국을 하는 거죠. 
46:26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자 여기서 우리가 이제 초점을 맞춰야 될 부분은 '애굽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애굽이 어떤 곳인가 하는 겁니다. 

창12장을 보면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 살아갔던 아브라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말씀을 따라갔는데 기근이 온 거예요. 
여러분 말씀대로 사는 데도 어려움이 와요. 그때가 중요한 겁니다. 

근데 말씀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겁니다.
무슨 문제가 터졌어요? 아내 사래를 빼앗길뻔 했어요.

여러분 애굽은 언제나 유혹의 땅이었어요. 
기름진 땅은 언제나 큰 유혹입니다.

조카 롯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름진 땅에 대한 욕심을 가지죠. 
그는 말씀의 인도보다, 눈에 보이는 기름진 땅을 추구합니다. 

롯은 결국 아브라함과 목초지 문제로 결별하죠. 
그래서 기름진 땅을 좇아갔다가, 나중에 소돔과 고모라까지 들어가서 
결국은 모든 걸 빼앗기고,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아니라, 자기가 획득한 땅은, 복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롯은 그토록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했어요. 

그러니까 항상 에덴동산을 떠난 인간은, 에덴동산처럼 보이는 것에 유혹을 받아요. 
믿음을 잃어버리면,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될 위험성이 많아요. 
그러면 이제 늪에 빠지는 거예요. 모든 걸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죠.

창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근데 이삭도 불순종하고 애굽에 내려갔다가 
거짓말하고 아내를 빼앗기고... 아버지의 실수를 반복해요.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에 머물러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거주지를 옮길 때, 직장을 옮길 때, 
뭐 이민을 가든지, 이사를 가든지, 주거지를 옮기든지 할 때, 
중요한 문제를 선택할 때, 너무 다급하게 결정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거기에 언제나 유혹이 따라요. 성공을 좇아가려고 하는 유혹!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위험해요. 거기서 사고가 나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중요한 기준이 있어야 돼요. 

그 인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말씀에 순종하는 길과, 성공의 길 사이에 갈등이 있어요. 

우선 눈이 보기에 좋은 곳, 
말씀에 순종하는 길은,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 수가 있어요. 
'이게 돈이 안 되는데... 과연 먹고 살 수 있겠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속아요. 

결정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돼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말씀을 인도를 받는 거죠.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가다가 기근이라고 하는 상황 때문에, 방향을 바꾼 거거든요. 
여러분의 삶의 전환점에, 실수하지 않아야 돼요. 

과거를 돌아보세요. 내 삶의 변곡점에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가?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맞는 결정인가? 이거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왜요? 요셉 이야기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기 때문이죠. 

애굽 행은 단순한 삶의 근거지를 옮기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었어요. 그 땅을 버리고 가는 것이... 과연 맞는 결정이냐는 거죠.

▲그런 기로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 허락해 주십니다.
46: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 야곱의 생애에 굉장히 중요한 시점마다 꼭 나타나셨어요.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 꺼림칙한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허락해 주시는 겁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벧엘에 나타나셔서 야곱과 약속하신 것이 있죠.
창28:13~14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그래서 야곱에게 '가나안' 땅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죠.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땅인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이라는 땅은 
구원의 의미, 구원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야곱이 꺼림칙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감을 허락해 주십니다.  

46:3~4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4절에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는 거예요. 
이 확신이 있어야 돼요. 
내가 지금 이 길을 선택했는데, 
'하나님이 이 선택을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신다'는 확신이 없으면 
1년이든 2년이든 기다리셔야 돼요. 

그 결재가 안 떨어졌는데,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 돼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실수를 해요.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받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덜컹 결정해서 가는 거예요.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에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거예요. 
애굽이 너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잠시 가는 거고,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올 거라는 거죠.

하나님이 야곱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내려오겠다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오게 하겠다 
-요셉이 너의 눈을 감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야곱에게 분명히 말씀하시죠. 
'지금 네가 애굽으로 가지만, 애굽은 목적지가 아니야' 

'얼마 동안만 애굽에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
근데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일지, 자세히 알 수는 없어요.
분명한 것은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겠다'

그러니까 '애굽에서의 풍요의 삶이 너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라' 
하나님은 중요한 걸 주지시켜 주시는 거예요. 

'애굽으로 가는 길은 좋아 보이지만 경계해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인간은 편안해지면, 그 편안함이 주는 향응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해 버립니다.
우리의 죄성이 있는 거죠.

그 편안함에 취해서, 그것에 취해 사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망각증! 

하나님의 은혜로 기근에서 살려주셨는데 
세월이 흐르면 그냥 띵까띵까 하는 거예요. 
'애굽에서 계속 살지 않고, 너는 가나안으로 돌아와야 된다'

여러분, 언제나 우리에게 찾아는 유혹이죠. 
십자가는 멀고, 영광은 가까이 있다고 손짓하는 겁니다. 

가능하면 우리는, 고난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합니다. 
편하게 살고 싶은 그게 본능이에요. 

마귀는 우리를 늘 비슷한 방식으로 유혹합니다. 
'뭘 그렇게 힘들게 사냐? 편안하게 사는 길이 여기 있잖아?' 

십자가 없는 영광의 길로, 사탄은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십자가 없어도 영광의 길로 가는 길이 있다고 속삭여요. 

그런 길은 없어요.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세 가지도 크게는 하나예요. 
'십자가 없는 영광'이에요. 

근데 우리는 잘 속아요. 
고난에 대한 기피 증세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고난은 피하고 싶은 거죠. 

자 야곱 집안은 이제 애굽에서의 풍요를 누리며 사는 길이 열렸습니다. 
애굽은 이방 문화, 우상이 우글거리는 그 문화 안에 들어가서, 예속될 위험성이 있었어요. 
그 문화에 흡입될 위험성이 있었죠.

이것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를 통해서, 우리가 받는 똑같은 교훈입니다.
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문화의 흡수되어 버리는 위험이 따랐던 거죠.


◑자 애굽으로 들어간 자의 명단이 나옵니다. 이민자 명단이 46:8~24절까지 나오죠.
근데 왜 이 긴 명단을 이렇게 세세하게 다 기록했을까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일에 있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본문의 명단은 알려주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한 사람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연결되어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가는 거죠. 

나중에 이스라엘이 큰 민족이 되었을 때 
초기 인물들을 열거할 때, 의미가 있었을 거예요. 
'아~ 이분들이 우리 민족, 우리 지파를 이루는데 기초였구나' 

자손들이 늘어난 걸 자랑하고 있는게 아니에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연결되어,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가는 거죠.

46:26~27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야곱 가문의 70명이 행렬을 지어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몰라요. 이 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 큰 계획이 있는지, 얼마나 불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나 여러분, 오늘 이 70인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가는 이 광경은 
놀라운 장면이에요. 

왜냐면 이것은, 창세기 12:3절의 성취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에요.
이 언약은 창11장 후반부터 시작해서 50장까지 계속되는 이야기의 핵심 근간입니다. 

우리는 사건 하나만 보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에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스토리도 창12:2~3절의, 하나님이 하신 언약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그리고 그 언약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 언약 안에 들어가 있는 모든 이야기의 구성은, 하나님이 끌고 가신다는 겁니다. 

그 안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어요?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셉의 이야기는, 따로 떨어져 있는 이야기나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시야를 넓혀서, 요셉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한 거죠. 

현미경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자세히는 보이는데, 큰 그림을 보기는 어려운 단점이 있죠.
그래서 때로는 멀리서 큰 그림을 볼 줄도 알아야 해요.

요셉의 일생을 큰 그림으로 볼 줄 알아야 해요.
현미경으로만 보면, 왜 요셉이 구덩이에 빠졌는데,
왜 구덩이에 빠져서 살려달라 하는 건지, 왜 노예로 팔려갔는지...
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는지.... 하나도 안 보여요.

근데 큰 그림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를 더듬어 가면, 실타래가 다 풀려요. 
그가 받았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져 가는 거예요. 

고난이 깊어지면서, 꿈은 조금씩 더 선명해져 가고... 요셉은 그걸 본 거죠.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시는 거예요. 

요셉의 꼼꼼한 개인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스토리예요. 
그 큰 그림을 알게 되면서, 고난은 재해석되는 거죠. 

▲자 아브라함에게 언약이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 
여러분 아브라함의 언약이 끝이 아니에요. 
아브라함 보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야 돼요. 

창6:18절에 보면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이 노아의 8가족을, 하나님은 홍수 심판 가운데 살려 놓으세요. 
여러분 노아 방주에 들어간 8명은, 뭘 의미합니까? 
폐역하고 반역하는 시대에, 살아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당시가 너무너무 패역하고, 너무너무 반역하는 시대였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단 8명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 편에서 아무리 살려고 해도, 인간이 너무 패역했어요.
겨우 순종하는 8명만 건지신 거예요. 

근데 물이 범람하는 데서는 8명을 살려내셨고, 
기근 속에 죽어가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살려낸 자들은 70 명이에요.

이 모든 계획이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창세기 3장 15절로 가는 거예요. 
원시복음이라 그래요. 여기에 '여자의 후손'이 나와요. 

모든 것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이루어져 가는 거예요.
창3:15절부터 시작해서 ~ 노아의 언약에 이르기까지.. 그게 창1~11장의 주제죠. 

창세기 12장에 가면, 이스라엘을 통한 세계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는데,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고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 하시고 
그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많아지게 하겠다'하고 언약하셨어요. 

어떤 분이 스위스에 갔는데, 그날 밤에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데 
밤 중에 너무 추워서 잠이 깨서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하늘에 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약간 보태서 말하면 '낮처럼 환하게 밝았대요.' 
진짜 셀 수 없는 별들이 있어가지고, 별빛 때문에 대낮처럼 밝았다는 거죠.

그 얘기를 들으면, 아마 아브라함이 쳐다봤던 별들도 그와 같았을 거예요.
그 맥락으로 지금 야곱-요셉 시대에 구속의 역사가 이어서 진행되어져가고 있는 거죠.

드디어 야곱과 70인이 애굽에 내려갑니다. 
아브라함에서 시작했던 게 70인으로 늘어났어요.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기예요. 

여러분, 많지 않은 70명이지만, 거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그 안에 들어가 있어요.
마치 겨자씨 같이, 엄청난 큰 민족이 일어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 속에 들어있어요.

요셉이 꾸었던 꿈은 계속 자라가고 있고, 하나님이 주신 꿈은 시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직 겉으로는 평범한 한 가정의 이민처럼 보입니다.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좇아 애굽으로 가는, 한 가정의 가족사처럼 보여요. 
그러나 그 안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고 있어요.

하나님은 야곱을 야곱가를 고센으로 옮기셔요.
이 고센이라는 곳은, 이스라엘 민족의 인큐베이터였어요.
마치 노아 시대에는, 노아의 방주 같은 역할을, 고센이 하는 거예요.

노아 때 홍수가 범람하는 것에서, 방주로 보호해 주셨던 것처럼,
지금 기근 가운데서, 비옥하고 물이 많은 고센 땅에서 보호하시는 거예요.

그 보호의 이유는, 너희가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씨앗을 심고, 번성한 나무를 키워내기 위한 모판으로
이 고센 땅을 사용하시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 고센에서 빠른 시간안에
2~300만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르죠.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세상을 준비해 놓고 계시죠. 
우리가 가는 길을 우리는 몰라요. 

'70인이 무슨 민족으로 이루겠나?' 그런 상상이나 했겠어요?
기근에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초청받아가는 그 70인의 나그네의 모습은 
그때는 미미해 보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 마굿간에 태어나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노예로 팔려가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 70인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너무도 놀라운 일이죠. 야곱의 70인으로 시작해서 히브리 민족을 태동시키시고, 
그 히브리 민족을 통해서, 모든 열방을 구원해 내시려고 하는 그 언약에 
그들이, 또한 우리가 들어와 있었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언제나 놀랍습니다.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성경은 구원의 책이에요. 하나님은 구원의 드라마를 연출, 기획, 감독하시고 
구원의 드라마의 핵심 안에는, 언약이 있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구원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책이죠. 
*언약=약속

성경은 온통 하나님의 약속, 언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요셉의 스토리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의 언약에 관한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핵심부에 있는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언약에 기초하는 겁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그 말은, 
'하나님은 그 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 뜻이에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믿으시고,
그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고, 언약도 변치 않고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그 언약 위에 우리의 삶을 올려놓을 때, 흔들 자가 없는 거예요. 

출1:5~7절에 이런 말이 나와요.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의 생육과 번성은, 아무도 못 말려요. 
실수 많고, 욕심꾸러기였고, 문제가 있었던 야곱이었지만 
그 한 사람을 통하여 70인이라는 가족이 만들어지죠. 

창세기의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어요. 
히브리 민족의 번성을 막을 수가 없었어요. 낳고 낳고 낳았어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서 
히브리 민족의 번성을 두려워할 정도가 됐어요.

출1: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더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막겠어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거예요. 
애굽 왕이 출산을 억제하기 위해서, 산파들을 겁박해서
남자애면 그대로 죽여버리게 하는데도... 
그냥 하나님의 번성케 하시는 역사를 막을 수가 없었어요.
70인이 거대한 민족으로 일어나게 되었어요.

▲여러분, 사도행전 초기의 기독교는 미미했어요. 
12명의 제자, 그게 70인으로 불어났고, 
70인이 행1장에는 120 문도로, 
행2장으로 가면, 하루에 3천명으로, 하루에 5천명으로 
나중에는 수를 세지 않아요. 

핍박이 일어났지만,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세계적으로 영적인 가족들은 계속 늘어나요. 

지금 남미의 부흥은 엄청나요.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엄청난 부흥이 일어나고 있어요.
중국의 핍박 속에, 성도들 숫자가 계속 늘어나서, 1억이 넘는 
기독교인 최대 국가가 되었어요. 


◑한국은 어떻습니까? 140여년 전 조선은 영적 물질적 기근속에 살았어요. 

지극히 소수의 그리스도들이 생겨났지만 
1907년 대부흥 이전에, 1903년 원산 기도운동부터 시작해서 한국은 들끓기 시작했어요.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으로 급속도로 성도들이 늘어났어요. 
역사적 혼란 속에 있습니다. 
일본의 외침과 6.25 사변의 폐허더미 속에 한국 역사는 암울했습니다. 

근데 6.25 전쟁 이후에 엄청난 부흥이 일어나요. 
여러분 전쟁 이전에는 북한이 훨씬 더 교회가 강했어요. 더 많았어요. 

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북한의 엄청난 믿음 좋은 성도들이 
남한으로 많이 월남했어요. 피난 내려 왔어요.

이런 고난의 역사, 우리 민족이 구덩이에 빠졌던 순간들이 많아요. 
그야말로 먹을 것도 없었던 나라예요. 
그런 고난의 시기에, 복음은 빠르게 전파되었고, 
1백년도 안 된 시기에 민족 종교가 바꾸어진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그 힘든 시기에, 먹고 살기 위해서 외국으로 이주했던 민족이 
지금은 디아스포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에 한국인이 없는 나라가 없고, 
한국인은 가는 곳곳마다 교회를 세웠어요. 

지금은 한국의 인구가 줄어들긴 하지만, 이주민들이 끊임없이 오게 되고,
이 이주민의 사역이 온 열방에, 디아스포라에, 
또 하나님의 복음을 흩어지게 하는... 
또 다른 하나님의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을 거예요. 
지금은 통일이 비밀로 남아 있어요.

안으로 보면 지금도 이 땅은 영적으로는 기근이에요. 
마지막 시대에 방황하는 사람들의 많고, 젊은이들이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단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참 크고 작은 일들 가운데,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그 일들 속에,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로 스토리를 써 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된 일입니다. 
우리의 사소한 일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마스터 플랜의 한 조각으로 사용해 주시는 것, 
우리가 하는 작은 일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어 가시고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구원의 약속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요셉의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는, 앞이 보이지 않았죠. 
어둠 속에 빠져 모든게 끝난 것 같지만, 그때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던 거죠. 

하나님의 구원의 두라마를 완성하시는 날까지,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시고, 우리가 하는 일과 하나님의 일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 우리가 들어가 있을 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신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도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는 자라가고 있습니다. 그건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요. 
기독교 역사 속에, 성경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자가 없는 거예요. 

오늘 그 일을 성취해 가는데 별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때로는 우리가 실패처럼 우리는 일들도 있고, 우여곡절도 있고, 
얽히고 설키고 그러나 홀실과 날실을 섞어 기가 막힌 옷을 짜 내는 것처럼 

내가 보기에는 그 일이 실패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일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당신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돼요.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실패가 아니에요.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걸 우리가 붙들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때로는 용기를 주시고, 위로를 주시고, 
우리를 이기게 하시고, 끝까지 완주하도록,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그 구원의 드라마를 완성하는데 우리를 사용해 주실 것을 믿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맡은,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나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