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게? vs. 탐심을 물리쳐라! | 누가복음 12:13-21 - YouTube
◈공평하게? vs 탐심을 물리쳐라! 눅12:13~21
▲서두의 비디오 클립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던 예수님! 마13:34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는 바르게 이해되고 있을까요?
"예배 시리즈 - 예수님의 마음 알기"는 예수님의 비유를 올바로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그 첫 번째 비유의 주인공은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부자' 하면 흔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돈이 많거나, 비싼 차를 타거나, 좋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
202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금융 자산 10억 원이 넘는 사람은 45만여명 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 절반 이상은, 1백억 원 이상의 자산이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죠.
그렇다면 1백억 원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할까요?
아마 자신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부자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 하니까요.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많은 재산, 더 높은 명예와 사회적 계급을 추구하며 욕심을 부리던 사람들이 있었죠.
누가 봐도 풍족하게 살아가던 어리석은 부자처럼 말입니다.
먼저 이 부자는, 토지를 자신의 소유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밭의 주인은, 자신을 대신해 밭을 경작해 줄 소작농들을 고용하는 게 일반적이었죠.
이미 많은 재산과 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었던 높은 신분의 지배계층 이었음을 알 수 있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소작농들과는 달리, 수확한 곡식을 쌓아두던 창고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곡식의 양이 한도를 초과한 겁니다.
이제 어리석은 부자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죠.
-창고에 넘쳐나는 곡식을, 자신의 이웃과 가난한 고아와 과부에게 나눌 것인가,
-아니면 수확한 곡식을 저장할 수 있는 더 큰 창고를 지을 것인가?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도입
자 오늘부터 시작하는 설교시리즈가 좀 기대가 되십니까?
"예수님의 마음 알기" 시리즈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비유를 말씀 하셨을까?' 라는 주제로
12회의 설교를 열심히 준비했어요.
여러분들이 함께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게 축복과 유익이 우리들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공평 과 탐심' 이라는 주제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설교를 한 편 들었는데,
제게 굉장히 인상적인 이야기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김다O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에, 이제 교회가 건축비 상환으로 어려운 시간을 지나갈 때,
담임목사님이 '건축비 작정 헌금을 기쁨으로 참여할 사람들만 저녁예배 때 모이시오'
그렇게 광고를 하셨대요.
당시 전도사 였던 이 분도 그때 참여를 했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대요.
'네가 받는 일년 월급을 다 드려라'
그 당시에 일 년에 1천3백만 원 정도를 받았답니다.
1년 월급(사례비)을 다 드리면, 그 다음에 1년 동안 어떻게 생활이 돼요?
그런데 기도하는데 자꾸 그런 소원을 주셔서
혹시 '아 이게 사탄이 역사 하나 보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막 대적기도를 하기도 했대요.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근데 생각해보니까 사탄이 헌금하라고 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순종을 해야 되겠다' 생각을 하고, 그렇게 작정을 하셨대요.
자기 아버지가 미국에서 목사님인데, 전화를 했대요.
'아버지, 하나님이 이런 이런 마음을 제게 주셔서
제가 1년 전도사 전체 연봉을 헌금을 하기로 했으니까 기도해 주세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기도만 해주셨대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그때 그 순간을 지나가면서 '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런 간증을 하셨고, 제가 지난 주간에 그 설교를 듣고서 은혜를 받았어요.
'물질'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삶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상태가 어떠한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그게 바로 물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부터 복음서에 나오는 12개의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이 물질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인지,
또 우리들 속에 있는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
한번 들여다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끔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에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성경말씀은 우리들이 받아들이기에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은
어쩌면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쩌면 오늘 설교가, 여러분들 가운데 조금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여름에, 저는 뉴저지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가족 수련회를 인도하게 되었어요.
제가 거기서 3일 동안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수련회를 인도하게 됐습니다.
수련회가 다 끝날 즈음 마지막 날 행사로, 조별 연극을 발표했어요.
우리도 옛날에 이렇게 했던 기억나세요?
거기 있는 교인들은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셨어요.
근데 그분들이 뭐 다윗을 분장하고, 또 다니엘을 분장하고... 이렇게 촌극을 하는데
문제는 저한테 심사를 봐달라는 거예요.
등수를 가리는 건 문제가 아닌데 '저분들이 어떻게 하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그게 이제 저에게 쉽지 않은 과제였어요.
어쩔 수 없이 1등, 2등, 3등을 제가 정했고요.
담임목사님이 이제 '1등, 2등, 3등 상품을 발표하겠습니다' 하면서,
이렇게 봉투를 세 개를 가지고 나온 거예요.
이제 상품 개봉 시간이 되었습니다. 3등 봉투를 개봉하니, 카드가 하나 나왔는데
거기에 이런 상이 적혀 있었습니다. "영적 능력을 갖추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사도행전 1독하기"가 경품으로 주어졌어요. 받는 사람들이 별로 기뻐하지 않았어요.
2등 봉투 안에는 "축복" 이라는 말과 함께
"사십일 기도"라는 경품이 주어졌는데,
역시 사람들 표정이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어요.
마지막 1등 상품, '거기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열어 보니까 "천국 열쇠" 그리고 부상으로 "교회 부엌 설거지" 라는 경품이 주어졌어요.
많은 교인들이 다 웃었지요. 일부 교인들은 실망하는 눈빛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인생이 진짜 좋은 가치가 주어져도,
우리들이 그것을 진짜 좋은 가치로 인식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진정 기대하는 그 가치들은 무엇인가?
어쩌면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은 것은 아닌가?'
◑본론
오늘 설교의 제일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예수님께서 "탐심을 물리쳐라" 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눅12:15
오늘 우리는, 이 '탐심'의 정체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covetousness, greed
오늘 10시 예배를 드렸던 어떤 분이, 제게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목사님, 제가 평생 교회를 다녀 봤지만
설교 시간에 이렇게 안 조는 교회는 처음 봤습니다!'
오늘 이 설교가 좀 시리어스 serious 할 것 같은데 잘 들어보세요.
▲언젠가 제가 기독교 방송에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제가 한 번 했던 이야기 때문에, 저에게 아주 악의적인 수사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인터넷에 쳐보면 '돈만 아는 목사, OO교회 OOO'
이런 수식어가 좀 붙어 있어요. 제가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예수님의 말씀과 비유를 보면, 굉장히 많은 분량, 대부분의 분량이
돈과 관계된 얘기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주1)
그리고 제가 수 년 전에 책을 한 권 썼죠. <하나님, 솔직히 돈이 좋아요>
그러다 보니까 '돈만 아는 목사' 이런 수식어가 붙어 있어요.
예수님은 왜 그렇게 돈 이야기를 많이 하셨을까요?
그리고 저는 왜 여러분들에게, 이 <돈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요?
돈이 우리들의 삶에 참 필요한 것이기는 한데,
잘못하면 돈이 우리들에게 악이 될 수도 있고, 우리들에게 죄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돈은,
-우리들이 사랑해야 되는 것이냐?
-우리들이 사용해야 되는 것이냐?
를 분명히 알지 못하면, 돈은 우리들에게 악이 될 수 있는 거죠.
▲오늘 본문의 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너무나 익숙한 비유라서
제가 따로 설명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문제는, 오늘 이 비유를 예수님이 말씀하시게 된 이유가,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바로 직전 절인 눅12:13절에 나와 있어요.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 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아니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게 된 이유가,
좀 엉뚱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유산 분배'에 대하여 불평을 말하는 거예요.
형이 유산을 많이 가져서, 자기와 나누게 해 달라는 거죠.
성경에는 어떤 이유로 분쟁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요.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흥미로운 거예요.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2:15
예수님께서 '유산 문제 가지고 싸우지 마, 유산을 물리 쳐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유산의 문제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탐심의 문제다' 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어쩌면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들 가운데도
유산 분배의 문제로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사실은 그 문제의 핵심에는,
그 안에 탐심을 물리칠 수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오늘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물질의 문제에 대하여 꼭 기억해야 될 것은,
성경은 이 물질에 대하여 언제든지 <가치 중립>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문제이지,
물질이 본질적으로 악하거나/ 선하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만약 부자와 가난한 자가 싸우면, 우리는 누구 편을 들어야 될까요?
그 답은, 의로운 사람 편을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싸우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 편에 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약자로 보는 심리 때문이죠.
그런데 잠22:2절에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공동체 안에도,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섞여 있을 거예요.
성경은, 그 둘을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같이 살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 안에
가난한 자와 부자가 공존하는 것은, 하나도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부자가 악한 이유는, 부자라서 악한 게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기 때문에 악한 거예요.
가난한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되는 것은
가난한 자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긍휼의 대상이기 때문인 거예요.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물질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돌아가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조금 이름난 부자들,
이름난 어떤 유명한 분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따로 하신 적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왜 목사님은 저렇게 특별한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공부를 인도하실까?'
근데 목사님이 부목사님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대요.
'아니, 저 사람들에게 더 복음이 필요해!'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 생활을 하는데
우리들이 늘 이분법적으로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의 구도가 아니라
'누구에게 복음이 필요한가?' 를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시각입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아담과 하와야, 여기에 있는 것 다 먹어, 자유롭게 먹어!' 라고 이야기하세요.
하나님은 우리들을 창조한 이 세상을, 선하게 우리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먼저 권한을 주셨어요.
그리고 이어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저 동산 중앙에 선악을 분별 하게 하는 열매가 있는데, 그것은 절대 먹지 마!'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금하시거나, 나쁘게 보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선하게 주셨는데,
'너희들이 지켜야 할 것이 있어!'
이게 이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우리의 신앙관이에요.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을 악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선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들이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구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거죠.
본문의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물질의 악함'을 지적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선하게 사용하지 않는.. 부자의 악한 행동을 지적하고 계세요.
▲자, 이제 탐심을 물리치는 방법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15
착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우리들에게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스카이 제서니 가 쓴 <예수님의 진심> 책에 보면
아주 쉬운 내용이 나옵니다. 제가 좀 읽어드릴게요.
「성경을 보면 부유하면서도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자신의 부로 그 분의 사역에 자금을 보낸 이들이 있었다.
돈은 의로운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더 없이 유익하게 쓰일 수 있지만
위험한, 어두운 면도 갖고 있다.
또 돈은 신적인 힘을 지닌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실로 매력적인 주인이다.
돈만 있으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돈이 있으면 필요한 것을 사고, 주변 사람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겪는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돈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온갖 기회를 누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돈은 하나님을 대신할 아주 매력적인 대안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렇게 경고하신 바이다.
'낙타가 바늘 기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돈 처럼 강력한 우상의 완전히 빠진 마음은, 하나님을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아가 그런 마음은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의로운 사람은 정 반대로 행동한다.
그는 삶의 통제권을 하나님께 드리고, 자신의 부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자, 우리가 양심에 손을 얹고 정직하게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그 돈의 힘을 가지고
누구를 통제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마치 우리들이 주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그것은 '돈이 너희 삶에 주인이 되었다' 라는 증거이죠.
돈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우리들이 어떻게 이 돈을 복되게 사용해야 하는가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탐심을 물리쳐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어요.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조심하여라 털끝 만한 탐심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너희 자신을 지켜라.
너희의 소유가 많더라도, 그 소유가 너희의 삶을 규정해 주지 않는다.」
▲왜 예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부자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창고를 짓는 모습,
그런데 이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거예요.
NIV 성경에 보면 '탐심을 물리치라'를 Watch out 으로 번역했어요. :15
우리들에게 탐심이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거예요.
팀 캘러 목사님이 쓴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에 보면,
유명한 앤드류 카네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앤드류 카네기는 미국의 갑부 예요.
33세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그는 33살에 자기 자신에게 비망록을 쓴 사람입니다.
그는 이런 글을 썼어요.
「인간에게는 우상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부의 축적을 우상 숭배 중에서도 최악에 속한다.
돈을 숭배하는 것보다 사람의 격을 떨어뜨리는 우상은 없다. ....
그래서 나는 35세에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이며,
앞으로 2년 동안도 오후 시간은 꼭 공부하고 체계적으로 책을 읽으며 보내고 싶다.」
그는 33살에 이 글을 쓰고, 35살에 이상적인 삶을 살겠다고 비망록에 썼으나,
그는 결국 35세에 은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가 많은 일을 했지만, 그가 한 일 가운데
앤드류 카네기가 미국에 2059개의 도서관을 지었고, 그걸 다 기부한 사람입니다.
굉장히 큰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운영하고 있었던 제철소의 한 노동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노동자를 대변하여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에게 바란 것은 도서관 건축이 아니라 임금 인상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일에 돈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의 소유를 자기 것으로 알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썼고, 그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해야 했다는 거죠.
오늘 이 어리석은 부자의 말 가운데 계속해서 반복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나' '나를 위해' '나, 나'
나를 위해 사는 기쁨, 그것으로 인하여
타인 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을 쌓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마음의 감옥을 자꾸 자꾸 늘여서 짓고 있는 것이죠. *부자가 창고를 늘인 것에 비유
오늘 비유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돈의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 창고를 짓는 탐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12:20
▲자, 12:19절에서 부자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이렇게 얘기를 하죠.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때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0
어리석음의 이유는, 내가 가지고 떠날 수 없는 것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거예요.
4세기의 유명한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우리가 베풀었던 긍휼만이 (천국에서) 우리를 따라올 뿐이다.'
자기 생명의 유한성을 모르면, 우리는 어리석은 일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적용
제가 이제 나이 60이 되면서, 제 삶에 연습하려는 게 있어요.
저는 다른 거 뭐 귀하고 뭐 값 나가는 것을 가진 것은 없지만
제가 20여 년 동안 수집한 게 있어요.
어느 나라에 가든지, 멋진 특별한 십자가가 있으면, 제가 사가지고 와서 모읍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제가 모았던 많은 십자가를, 선교 바자회 때 제가 내놨어요.
그리고 그거 팔아서 선교 비로 쓸 수 있도록.
근데 사실은 좋은 건 제가 다 가지고 있었어요.
여러분들이 그래도 그거 많이 다 사 가셨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서, 제가 진짜 귀하게 생각하는 십자가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기 시작했어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님에게, 부활의 십자가를 드리면서 위로가 되기를 기원했고요,
아들이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엄마에게, 제가 예루살렘에서 사 왔던
눈물 흘리는 예수님의 조각을 드리면서, 위로가 되기를 기도했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 있는 것이 누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그게 진짜 가치 있는 일이구나!' 이 비움과 나눔을
제 삶에 연습을 이제 시작을 했어요.
제가 이제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렇게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요.
▲제가 오늘 이 설교를 하면서, '이 설교가 듣기에 참 불편하고 힘들 거다' 생각이 들어요.
나도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 예수 잘 믿고 부자가 되고 많이 누리세요!'
라고 말하면 참 좋겠지만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 삶의 방식은
우리를 위하여 '모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거예요.
'너희들에게 주신 돈과, 재능, 건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게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에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1
▲지난 해에 <국민일보사>에서 포럼이 있었어요.
제가 이제 강의, 발표를 하게 되었어요.
저도 이제 나이가 든 책임이 있는 목사니까요.
'지금 한국 교회를 바라보며
한국 교회가 어떻게 나가야 될까?'
그런 걱정과 염려들이 있는 거예요.
「코로나를 마치고 한국교회의 제일 큰 숙제는, 예배 회복이었어요.
'코로나 때 교회를 떠나간 사람들을 어떻게 예배로 불러모을 것인가?'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예배로 불러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사람들 가운데 복음의 본질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안다고 하는 것, 제게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각자가, 또한 우리 교회가
'이 세상에 대하여 공공선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 위에 살아가게 하셨다면,
우리들이 져야 되는 책임이 마땅한 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이 교회 안에서, 우리들이 가진 것들을 자랑하고
우리들이 가진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면,
우리가 마땅히 자랑 해야 될 것은
사실 교회가 가지지 않은 것을 자랑 해야 되고,
교회가 나눈 것에 대한 자랑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한 자랑과 그 고백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는가? 어떤 선한 일을 하는가?'
2천 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이런 논쟁 들이 계속 있어 왔어요.
'선한 사람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냐? or 옳은 일을 해야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냐?'
여러분들은 어느 편에 서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게 있어요.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선한 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들이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를 기만하고 속이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복음으로 살게 하셨다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에 대하여
우리들이 분명히 알고 있어야 되는 거죠.
이러므로 우리가 (미래) 인생을 준비(저축)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후의) 어떤 것을 준비해도,
'그것이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바로 알고 믿을 때,
우리는 탐심에 빠져 살지 않는 거예요.
이게 오늘 여러분들에게 도전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돈이 절대로 나쁜 건 아닙니다. 물질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탐심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물질, 건강, 우리들의 재능 등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맡겨 주신 모든 것에
우리는 청지기가 되어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기독교 역사관, 우리들의 생각이에요.
근데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어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청지기로 맡겨 주셨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지기로 받은 우리가, 그 맡은 것에 대하여 주인 의식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들이 그것을 잘 사용해야 되는 거예요. *청지기(종) vs 주인
만일 우리들이 청지기 의식만 가지고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방치 한다면
우리들이 잘못 살아가고 있는 거죠.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물질을 소유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가 탐심으로 인한 것이 아닌지를 경계하라는 것이고,
우리들이 죽음과 관계 되어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들을 우리들이 어떻게 사용 하느냐를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제가 몇 년 전부터 <유산 기부 운동>을 시작을 했어요.
'죽어서 (죽은 후에) 어떻게 나누느냐?' 저는 그런 유산 기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들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생명을 유지시켜 주셨을 때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여러분 이건 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들에게 주신 모든 자원들을, 우리들이 어떻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쓸 수 있을까?'
사실은 오늘 제가 설교를 하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우리 교회의 어떤 패턴들이
다른 모든 교회에 해당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우리 중대형 교회 목사님들부터
우리가 물질 소유에 대한 것들을, 먼저 좀 본을 보여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우리 교인들이 그것을 본받고 따라올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본을 보여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제가 두려운 게 뭐냐면, 저는 사실 작년에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교회에서 은퇴할 때 저에게 사 준 집을, 제가 교회에 다시 내놨어요.
그리고 제가 죽을 때까지만 거기서 살다가 갑니다.
그리고 제가 결심한 것 중에 하나가
'저는 만나교회 담임으로 있으면서 저는 재산을 소유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했으니
제가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요.
근데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두려운 게 뭐냐면,
저는 그렇게 해도, 살아가는 데 별로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저는 얼마든지 그렇게 나눌 수 있어요.
그런데 많은 어려운 교회 목사님들은, 사실은 제산을 나누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이제 은퇴를 하고 나서는,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소유를, 나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들의 삶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얘기하는 게 굉장히 세속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좀 폼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죽어서 유산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상속세, 증여세로 가정 안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들을 어떻게 잘 쓸 수 있는가?'
자, 이건 돈 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들에게 주신 건강과, 우리들에게 주신 재능을, 우리들이 어떻게 잘 쓸 수 있는가?
오늘 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통하여, 하나님은 이 물질관을
나에게서 → 우리로,
우리에게서 →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바꾸어 보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청지기 의식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탐욕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탐욕의 영이 우리들 가운데 들어오면, 악한 영이 되고요.
청지기가 도둑으로 변할 수 있는 거예요.
재물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비웃지만, 성경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어요.
약5:1~3절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경고하는 거예요.
▲여러분 김형석 교수님 아시죠? 그 분이 이제 104세 되셨나요?
이 분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라는 책을 썼는데,
제가 지난 해에 보았던 이야기에요.
「그 분이 알고 있던 한 의사 선생님이 시골에서 개업을 했는데
옛날에는 의사들이 돈을 많이 잘 벌었잖아요.
의사로 돈을 벌었는데, 이렇게 땅을 사고, 부동산을 사다 보니까
의사로 진료해서 버는 돈보다, 땅 사서 돈 버는 게 훨씬 쉽고 많이 버는 거예요.
그래서 이 분이 땅 사는 데 주력을 하게 돼요.
그런데 문제는, 그 땅에 뭐 그린벨트에도 걸리고 문제가 생기면서
굉장히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던 아들에게
'네가 지금 내려와서 나를 좀 도와줘야 되겠다'
근데 아들이 생각해도 '공부하는 것보다는 그 땅 관리하는 게 훨씬 낫겠다' 싶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내려 왔대요.
근데 일이 잘못되고,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아버지는 병으로 죽게 되었고, 아들도 어려움을 당하게 된 거요.
이 의사의 불행한 말년을 바라보며 김형석 교수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소명을 잃어버리고, 육신의 만족과 물질의 만족을 추구하다가
어느 날 허물어진 인생의 모습, 허망한 인생의 모습"」
제가 여러분들에게 도전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들의 삶의 가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 그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자원들을, 탐욕이 아니라
우리들이 올바로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저는 그런 꿈을 꿉니다.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야~ 당신은 예수 믿는군요.'
세상이 우리 교회를 바라보며 '저기는 교회 맞네!'
제가 너무 아이디얼한 이상주의자 인가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서 살아가는 게 정상입니다.
저도 노력하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들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일들이
우리들 가운데서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 가운데 이거 하나 기억 합시다.
예수님께서, 유산 나눔의 문제를 가지고 찾아온 그 사람의 질문에 대해 말씀할 때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4
성경주석에 보니까 '이 사람아!' 라고 하는 말은 *안쓰로포스
그 당시 중동지방에서 아주 퉁명하게 상대방을 지칭하는 말이었대요.
그러니까 '친구여!' 하지 않으셨다는 거죠. 비하하는 말은 아닙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얘기야?'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사람아,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야?'
'이 사람아!' 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가요?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이 사람아!' 가 아니라
'내 사랑하는 친구야, 내 아들아, 내 형제야, 네가 참 귀하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어야
우리들이 올바른 그리스도 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주님으로부터 '이 사람아!' 그런 호칭을 듣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야,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나님의 사람아!'
그런 호칭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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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Jesus spoke about money roughly 15% of his preaching and 11 out of 39 parables.
예수님은 자기 설교에서 대략 (분량으로) 15%를 돈에 관해 말씀하셨고,
총 39개 비유에서 11번 돈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런데 꼭 직접적 교훈은 아니더라도, 간접으로 물질을 언급하신 것을 포함시키면,
더 많은 비율이 나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