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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잔치하는 집

LNCK 2024. 10. 2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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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잔치하는 집       잠15:13~16          2003.01.26.정리

 

잠15:15b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여러분 다같이 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복과 행복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상당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형편이 없습니다.

어쩌면 모든 여건에서 가장 복스럽지 못한 생을 사는 나라지만,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로는 세계 제일입니다.

 

그러니까 복되다 하는 것과 행복지수는 결코 비례하지 않습니다.

융성한 음식을 복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입맛이 좋아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은 행복에 속합니다.

 

저는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은 것이 생각납니다.

사람의 몸이 좋아지지 않되 특히 간장이 나빠지면,

남들은 다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 순간에도, 그 음식 냄새가 들어올 때

이미 먹었던 것까지 다 올라온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든지...

세상에 이렇게 입맛을 잃어버리고 살려니까 참 고역스럽겠지요.

 

살기 위해서 먹긴 먹어야 하는데,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수가 없다고 쓰여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은 복이지만, 입맛은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그 행복과 복이 함께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집이나, 좋은 침대. 이것은 복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집에서 웃음이 넘쳐나는 것은 행복에 속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갖고, 좋은 침상을 가졌더라도

단잠을 자는 것. 그것은 행복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도다.’

 

집이 좋은가, 나쁜가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디서나 단잠을 자는 것. 그것은 행복입니다.

 

보십시오. 자식은 복입니다.

그러나 그 자식으로 인해서 기쁨을 얻는 것. 또한 자식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

그것은 행복에 속합니다.

 

자식이 있다고 다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버틀란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책에 써있는 말입니다.

“행복해지려면 음식, 집, 건강, 사랑, 성취 그리고 소속집단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외적인 여건들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자기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 마음이 먼저 중요하다.

자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애정과 선한 생활을 가지지 않고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의무라고 하는 것은 일에서는 매우 유용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매우 불쾌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 남편과 아내가 가정을 이루어 삽니다.

이것은 만날 때마다 새롭고 매일같이 사랑을 새롭게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현재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의무로 바뀌면,

‘결혼했으니 살아야지. 애도 있으니 살아야지. 지금까지 살았으니 마저 살아야지...’

이것(의무)은 기가 막힌 것입니다.

가정생활이 의무로 바뀌는 순간. 이것은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가 귀하고 아름다워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시중도 드는 것이지,

‘이것을 어떻게 하나, 낳았으니 키워야지...’ 이렇게 의무로 바뀐다면

이것처럼 무거운 십자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직장도 거기서 삶의 보람을 얻고 기쁨을 얻어야지.

그렇지 못하고 ‘먹고 살아야 하니 할 수 없이 나가서 일해야 한다...’

의무적으로 직장생활이 되어진다면, 그것은 감옥입니다.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특별히 인간 관계가 의무로 바뀔 때는

삶 자체의 의미가 추락되는 것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라고 하는 분이 쓴 <Called to Love>라는 책에서

“행복은 가까이 있다. 언제나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집착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든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어떻게 느끼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확실히 환경을 바꾸어서 행복이 오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그래서 직장도 바꾸어보고, 사람도 바꾸어보고, 그렇게 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복이라고 할 때에는 있을 수 있어도, 행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자기 자신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집착을 버리지 않고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먼저, 소유를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는 의존감정을 버려야 한다.”

 

돈이 있어야 하지만,

돈에 집착해서, 더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 하며, 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끝도 없습니다. 이런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의존감정에 집착되면, 사랑도 인간관계도 인격도 다 망가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의존관계의 위험과 극복
https://rfcdrfcd.tistory.com/791410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행복이 어디에 ‘의존(또는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는, 영영 행복할 길이 없습니다.

 

▲또 한가지는 ‘지금 가지고 있는 여건만 가지고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충분한 행복 여건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불안감이 생기면, 사람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행복할 수 있는 순간에, 이상한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 행복이 깨지면 어떻게 하는가?’

‘이 여건이 그만 바뀌면 어떻게 하는가?’ 하고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있는 것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아주 예쁜 여자를 만나서 죽도록 쫓아다녀서 사랑을 받아내어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고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잠자는 아내가 너무 예쁩니다.

걱정이 생겼습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이 여자가 바람을 피우면 어떻게 하나.

직장에 나가서도 편하지가 않습니다.

저 여자가 무사한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행복하겠습니까?

 

또 아주 예쁜 아이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예쁩니까? 그대로 행복하면 되겠는데..

‘이 아이가 병들면 어떻게 하나. 얘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나를 떠나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행복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불안감 때문에 사람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여러 가지 전략이 있는데, 가장 널리 쓰는 전략이 불안, 두려움입니다.

불안, 두려움은 오직 성령충만으로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함께 느끼는 행복입니다.

들판에 피는 꽃, 그리고 그 꽃향기...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쳐다보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혼자 느끼기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느낄 때.. 참 행복합니다.

 

그랜드 캐년을 처음 본 사람은,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내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올 걸!’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혼자 즐기기보다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때.. 행복한 것이거든요!

 

여기에 지금 꽃꽂이를 해놓았습니다. 이 꽃꽂이를 한 사람이 정성을 다했습니다.

이것을 해놓고 나만 본다면.. 뭐가 행복하겠습니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 줘야,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들에 핀 꽃을 보면서 나만 보겠다고 꺾어서 주머니에 넣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합니다. 나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보아야 합니다.

함께 향기를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것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나만 먹으려 하고,

나만 손에 쥐려하고 나의 맘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은 안됩니다.

거기서부터 벗어나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15: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공동번역) ‘낯을 찡그리고 살면 세월이 괴롭고, 마음이 편하면 하루하루가 잔치 기분이다.’

 

항상 잔치한다. 이 잔치란 기쁨의 극치입니다. 행복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항상 잔치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집입니까?

요즘 말로 해서 매일 파티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즐거운 파티가 이어지는 그런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 잔치라는 것은 엄격히 말해서 사람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제입니다.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어는 음식의 문제도 아닙니다.

사람, 좋은 사람이 모여야 행복하고,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잔치란 사람입니다. 제가,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결혼주례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결혼주례를 하려고 올라가다 밖을 내다보면,

마당에다 화환을 주욱 수십 개 늘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돈이 많은 집인가보다, 아마 오늘은 손님이 많은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들어가보니, 정작 예식장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그곳의 혼주들은 저와 인사를 할 때, 어떤 사람은 참 민망해하며

이렇게까지 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부덕해서 손님이 적게 와서 죄송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밖에는 서성거리는 사람이 많은데,

식장에 들어가보니, 그 큰 예배실에 너무 적게 앉아서, 주례하기도 재미가 없더라구요.

손님이 너무 없습니다. 그것이 왜 그럴 것 같습니까?

 

이것은 잔치가 아닙니다. 잔치는 손님이 많아야 합니다.

음식이 부족할만큼 손님이 많아야 합니다. 와글와글 해야 합니다.

시끌시끌해야 잔치지.. 사람이 없는데, 무슨 잔치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 좋은 마음으로 모여서 서로 친교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이것이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즐거운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잔치집에 가서 조심하십시오. 잔치집에 가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시간만은 ‘반갑습니다. 잘 있었습니까?’ 이런 좋은 말, 덕담만 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 ‘누가 어떻고, 누가 이혼했고, 누가 죽었고’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소리하는 것 아닙니다.

 

더욱이 신랑 신부를 향해서는 더욱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

‘아주 신랑이 의젓하고 신부가 예쁘다’ 이런 소리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이고 신부가 아깝다’ 이런 소리를 합니다.

여러분, 결혼식에 가서 신랑신부가 좀 덜 예쁘더라도 칭찬하는 것은 죄가 안 된다고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칭찬해야 합니다. ‘신랑 아주 훌륭하다.’

 

신부가 키가 작으면 ‘단아하다’, 커면 ‘늘씬하다’, 통통하면 ‘복스러서 좋다’

그냥 이렇게 오로지 덕담만, 잔치집에서는 덕담만 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식사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제가 자꾸 붙들고 이야기를 해서 많이 오리엔테이션이 되어 갑니다.

 

‘식사를 할 때에는 절대로 교회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 때 앉아서 나라가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이야기해서 입맛 다 떨어지게 왜 그러십니까?

그 시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만 하십시오!’ 그랬더니 요즘 우리 장로님들은

‘나는 오늘 준비한 것이 없는데...’ 이러십니다. 준비해 가지고 다니셔야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꽃피우며 먹어야 잔치고, 잔치 음식이지요.

그 시간에 심각한 이야기하려고 오는 사람은. 반갑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정에서도, 식사시간에는 절대로 다른 이야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 시간에 모처럼 만났으니 잔소리하듯이 ‘공부해라, 연애 잘하고 있냐?’는 둥 별소리를 다합니다.

그러면 애들이 화가 나서 수저를 던지고 나가버리잖아요.

지금 웃는 사람들은 다 경험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적어도 잠깐의 식사도 잔치입니다. 잔치는 잔치답게 덕담을 하고,

칭찬을 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제가 어제 책을 선물 받았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서로 칭찬하고 존경하고 사랑은 나누어야 이것이 잔치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사랑만이 있고 덕담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잠15: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음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의 문제입니다.

 

잠17:1절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행복한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음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화목하고 사랑하면 이것이 잔치입니다.

 

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또한 특별히 본문에 보니,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잔치하는 사람의 인생관으로 사는 사람은, 얼굴이 빛이 납니다.

늘 빛나는 얼굴로 사시기 바랍니다.

 

잔치하는 사람은, 얼굴이 빛나고

얼굴이 빛나는 사람은, 잔치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얼굴도 빛이 나야 합니다.

찬송하는 사람의 얼굴도 빛이 나야 합니다. 아니 자연 발광체가 됩니다.

 

얼굴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가요?

마음에 은혜가 있으면 얼굴이 빛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잔치입니다.

 

빛나는 사람들끼리 모여야 잔치이지,

모여서 시비하고 질투하고 울고 싸우고 그것이 무슨 잔치입니까?

잔치는 이렇게 항상 기쁨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은 믿어지지 않는데, 지옥은 믿어지는 사람입니다.

‘나는 틀림없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항상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밤낮 죽는다는 소리만 합니다.

죽지도 못하면서... 그게 바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잔치하는 자입니다.

 

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5절과 16절을 연결해서 보면,

항상 잔치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진실한 가운데서 온유 겸손한 마음으로 모여서 주님을 찬양할 때

그것이 잔치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저는 신학 서적에서 읽은 말 한마디를 가끔 기억합니다.

God's Love concreted in His wrath.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진노 속에서 구체화된다’ 얼마나 중요한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고 신학적인 지식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진노 속에서 사랑합니다. 징계 속에서 사랑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사랑합니다.

 

어떤 두 아이가 서로 다투는데, 형이 동생보고 하는 말입니다.

‘네가 그렇게 못되게 놀면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동생이 찔끔했습니다. 그 때 옆방에서 문을 확 열고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무슨 소리냐? 너희들이 착하게 살면 기쁨으로 사랑하고,

너희가 말썽을 부리면 아픈 마음으로 사랑한다. 사랑은 틀림없다.’

 

그러니까 동생이 뛰쳐나가며 말하더랍니다. “거봐!”

자신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아들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매일매일 깊이 깨닫고 간증을 하고

그리고 사랑이 넘칠 때 바로 그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매일같이 잔치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잠언10:27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얼굴에 빛이 있고 항상 잔치하는 마음으로 살면 장수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즐거운 자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잔치합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오늘도 내일도, 가난해도 부해도, 건강해도 병들어도,

그는 항상 잔치하는 마음으로 살아갔다는 말입니다.

 

옛날 우리 한국사에 나오는 목사님들은 비유로 쉽게 교리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불교는 마치 초상집과 같다. 유교는 마치 제사집과 같다. 기독교는 잔치집과 같다.

 

누가 예수님을 잘 믿느냐고요? 잘 웃는 사람이 잘 믿는 것입니다.

얼굴이 빛이 날 정도로 환하게 잔치집에 가서 즐기는 것 같은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잘 믿는 사람입니다.

 

이제 음력 정초가 됩니다. 우리는 복에 대해서 말하고, 복 받으라 복을 비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여러분 그 많은 날 복을 생각했지만, 이제 묻고 싶은 것은 얼마나 행복하냐고 묻고 싶습니다.

 

복된 여건을 생각하지 말고 행복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자의 그 행복의 뜻이 어디 있느냐를 생각하십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사랑할 때에

잔치하는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