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YJHaJ2d8XcY
◈거짓 선지자의 죄 렘23:23~40
우리는 지금 특별히 거짓 선지자들에게 선포되었던
예레미야의 열 번째 설교, 또는 열 번째 예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 : '너희 죄는 영원히 치욕과 수치를 당하게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열 번째 설교의 마지막에
거짓 선지자들을 향해, 엄중한 심판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매우 무섭게 심판을 선포하고 계시는데, 본문 39절과 40절을 한번 읽어 볼까요?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렇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렘23:39~40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버려
너희는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메시지(렘23장)를 마무리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잊어버릴 터인데, 완전히 잊어버리신대요.' :39
'또 치욕을 주시되
영원한 치욕,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40
그래서 지금 거짓 선지자에게 주어지는 심판은
그냥 단순히 한번 고통받고 끝나는게 아니에요. 영원히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남의 얘기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으나,
혹시 내게 해당되는 얘기라면... 이거는 큰 일 나는 거죠!
왜 하나님이 이렇게 거짓 선지자들에게, 영원하고도 엄중한 심판을 선포하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아마 첫 번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들은,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릇되게 만들었어요.
잘못된 길을 가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그리고의 남유다의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돌이키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그들은 뺏어버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을 영구히 심판하신다' 라고 말씀하지만,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영원히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 거짓선지자들의 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죄를 지은 게 아니에요.
그들은 또한 영원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의 죄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이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짓고 있는 죄가 뭐였는가요?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거짓 선지자들이 영구히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지었던 죄가 무엇인지, 세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1. 당시에 거짓선지자들이 지었던 죄의 첫 번째는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시켰다는 거예요.
즉 하나님을 오해되게 만들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23~24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가까운데 있는 하나님' 이란, 하나님의 내재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는 분이요,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 속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 한편 '먼데 있는 하나님' 은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시작하죠.
이것은 단순히 거리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해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하고는 존재 양식 자체가 다르고,
우리하고는 존재 자체가 다른,
하나님은 초월적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 속에 계시는, 내재하시는 하나님 임과 동시에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초월적인 존재다.. 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설명하세요.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하나님은 가까이 계신 분' .. 이 말은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니라' 이런 말씀도 있잖아요. 시73:28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안으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이다.. 라는 것을 설명하는 표현이에요.
그런데 '먼데 있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분은 우리를 징계하시고, 그분은 우리를 공의로 대하시며,
그분은 우리는 심판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라는 뜻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고,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을 버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기도 하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먼데 계시는 하나님
라는 하나님의 양면성, 하나님의이 성품, 하나님의 속성
이걸 전부 전해야 되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그 당시에 어떻게 얘기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가까운데 계신 분이야!' 이렇게만 말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심판하지 않아'
'예레미야는 늘 심판을 선포하는데, 그렇지 않아!'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때리신다고? (예레미야는 잘못된 거짓 선지자야)
이게 바로 '하나님은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고, 먼데 계신 하나님은 아니냐?'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이죠.
아니, 하나님 그런 분이 아니야!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되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야!' 이것만 강조했던 거예요. 한쪽 측면만 강조한 거죠.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살든지, 하나님이 너한테 손을 대지는 않으실 거야,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그저 자녀인 우리에게 복만 주시는 분이야!'
그 당시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왜곡시켰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무슨 합바지처럼 대했던 거죠.
하나님의 목전에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돌이키라 경고하시는데도
하나님 앞에서 콧방귀 뀌면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며 살았던 거예요.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그들이 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왜곡시켰더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주 우습게 보는 거예요.
사람들은 돈 떨어지면 걱정하거든요. 건강 잃으면 벌벌 떨어요.
근데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치시는 분이 아니야,
결코 하나님은 우리한테 저주를 내리실 분이 아니야'
이렇게 하나님을 왜곡시켜 놓아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시켰습니다.
그게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향해 지었던 첫 번째 죄예요.
◑2. 거짓선지자들이 영구한 심판을 받아야만 했던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훔쳤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23:30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이어진 31절 말씀과 연결해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았는데도,
'여호와가 내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가 나를 통해 말씀하셨다' 하고 뻥을 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자기 생각을 설교하면서도
'이것이 여호와께 받은 말씀이다' 하고, 스스로 자기의 권위를 높인 것입니다.
자기 설교가, 마치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전하는 것처럼...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들려주신 말씀이다!' 라고
말씀을 도적질했던 거죠.
요즘 말로 '도용 盜用'한 것입니다. *훔쳐서 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지으실 때, 아담을 지으실 때
'하나님이 머무시는 집 dwelling place' 으로 사람을 지으셨어요.
사람이 존귀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이 머무시는 집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지으셨어요.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으셨어요.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이시지만, 하나님은 온 천지에 충만히 계시지만,
특별히 하나님은 성전인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걸 예표하는 것이, 구약시대의 성막이요, 성전이죠.
그런데 성막이나 성전을 보면, 그곳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 안에는, 법궤, 즉 언약궤가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 두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 속에도, 하나님은 말씀을 거기에 두십니다.
성막이나 성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 언약궤가 있듯이
하나님은, 성전된 우리 각자 속에, 가장 깊은 우리 영혼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두셨어요.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셔서, 지금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세요.
그리고요.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전해줌으로써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두도록 하셨단 말입니다.
그런데 29절을 읽어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 말씀은, 우리를 정결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바위와 같은 우리의 마음도 깨뜨리고,
우리의 더럽고 추악한 죄도 깨뜨리는 방망이 같이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역사하는, 이 아름다운 말씀을 선지자들에게 주셔서
그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이 말씀을 담아둬야 되는데,
그 선지자들이 어떻게 했다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말씀을 훔쳐버리고, 뒤로 탁 제껴버리고,
엉뚱한 자기 뇌피셜, 자기 생각이 담긴 설교가... 거기 영혼에 담아두게 한 거죠.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영혼에서) 도적질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32절에 보면,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
하나님이 세우신 목회자들을 선지자들, 하나님의 사역자들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두도록,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단 말입니다.
자 그래서요. 저는 지금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되죠.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아요.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지금 여러분들 안에 그 말씀을 심어주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거죠.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달하라고 하셨고,
그래서 지금 저같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 받은 거예요.
그런데 이걸 여러분들에게 전해 줘야 되는데
요거는 싹 뒤로 제껴 놓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내가 꿈을 꾸었다. 내가 꿈을 꾸었다. 신비한 방식으로 내가 뭔가 들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부패한 말들과,
자기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게 꿈으로 보여질 때, 그 꿈을 선포하는 거죠.
내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계시라고!
여러분 꿈은, 그 사람이 골똘히 어떤 생각을 하는 게 꿈으로 종종 잘 나타나요.
(신령한 꿈과, 개꿈을 분별해야 합니다. 아무리 신령한 사람도 개꿈을 꿉니다.)
그러니까 자기 생각 안에 있었던 것을 가지고
'내가 꿈을 꿨는데, 이게 여호와의 말씀이다' 라고 말하면서,
참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제껴놓고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 자기 생각에서 나오는 말들을 가지고
하나님 백성들 안에 막 심어줬단 말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둘러싸였어요.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예루살렘이 멸망한다' 하나님께서 점점 옥죄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다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믿어요.
그들이 말하는 꿈과 환상... 이런 것을 따라가고 있는 거예요.
그 거짓선지자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자기가 본 꿈과 환상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었던 거죠.
▲이 땅이, 이 세상이 결국 심판 받을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성경에 경고하셨고,
오늘도 여러가지 징조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뭐 심판이 언제 오는데? 뭐 코로나도 지나간 것 같고...'
이렇게 나태하게 영적 긴장을 풀고, 살 수도 있는 거죠.
근데 하나님께서 점점 바다가 병든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큰 면적이 캐나다에서 산불로 타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쟁의 소문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점점 이렇게 보여주세요.
그때 하나님께서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회개해라 돌이켜야 된다. 하나님께 가야 된다' 하는 말씀을 주시는데
이 불과 같고 방망이 같은 하나님 말씀은 뒤로 다 제껴 놓고
'평안하다. 평안하다. 내가 꿈꿨는데 여호와의 말이다...' 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훔치고(도용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속에 자신의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심어줬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그들을 향해서 뭐라고 말하는 거예요.
'내 말을 훔쳤다(도용했다).'
'그 거짓선지자들의 죄가 크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영구히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요. 영원히 심판할 것이다.' :39~30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거짓선지자들의 세 번째 죄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했다.. 라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는 상당히 불쾌하시면서
'너희가 그렇게 말했어? 내가 그러면 가만히 안 있는다' 라고 말하십니다.
하나님이 상당히 듣기 불쾌히 여기신,
백성들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본문에 나와 있어요.
23:33절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 (예레미야) 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위 구절을,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했어요.
이 백성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예언자나 제사장이 너에게 와서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 있느냐'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여라.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그래서 내가 이제 너희를 버리겠다 말하였다고 하여라.'
즉 '엄중한 말씀'을, 새번역은 '부담이 되는 말씀'으로 번역했어요.
둘 다 맞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새번역이 더 쉽습니다.
KJV도 burden (짐) 으로 번역했어요.
지금 하나님께서 상당히 거슬려하시고, 상당히 불쾌해 하시는데,
그 표현이 뭐냐면
백성들의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엄중한 - 마싸'라는 단어예요.
*같은 단어가 성경에 주로 '무거운 짐 burden'으로 번역되었어요.
백성들, 선지자들, 제사장들이 예레미야 한테 와서
'여호와의 엄중한(무거운) 말씀이 뭐야?' 이렇게 물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불쾌하셨다는 거예요. 왜일까요?
'엄중한 (마싸)' 라는 말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 존중하는' 뜻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비꼬듯이 하는 말이었다는 거죠. '여호와의 무거운 짐같은 말씀!'
예를 들면, '엄중' 이라고 쓰고 '무거운 짐' 이라 읽는다' ... 그와 같은 거죠.
예를 들면, '그 교수님 참 강의를 매우 깊게 하십니다' ... 말은 칭찬같지만,
'학생들이 강의를 못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말할 때가 있는 거죠.
이 말이 33절에 이어, 36절에 한 번 더 나와요.
23:36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
사람이 가장 기분 나쁠 때가 언제냐면,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서 매우 진중하게 얘기했는데,
그 말씀을 우습게 여기거나, 가볍게 여길 때... 나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엄중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예언의 말씀을, 무겁게, 무거운 짐으로 여긴다는 거죠.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백성들은 '엄중한 - 마싸' 라는 말을, 조롱하는 투로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 가운데 '거짓선지자'들이 있었다는 거죠. :25~26
▲그러니까 사실 지금 이들이 예레미야 한테 와가지고
예레미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는데
예레미야가 선포했던 말씀은 대부분 '너희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 너희가 돌이켜야 된다' 이죠.
근데 그 말씀이 선포되고 나서 곧바로 이루어졌습니까?
빨리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대개는 20년 후에 (BC 609), 또 늦은 것은 40년 뒤에 (BC586)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지금 예레미한테 와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예요?
놀리는 거예요. 조롱하는 거예요.
'너 그렇게 맨날 말하던 그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하고
뭐 우리를 때리실 거라고 말하고 멸망할 거라고 말했던 그 말, 그 무거운 짐짝 같은 말,
그게 다 어디갔니? 새로운 거 있으면 또 해 봐!'
그들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걸 짐처럼 여기고 있었고
이루어지지도 않는 것 같은, 이런 잔소리 같은,
마치 자식들이 엄마가 하는 말을 '또 그 소리.. 진짜 짜증 나네!' 반응하듯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예레미야 한테 와서 지금 조롱하는 거에요.
'야,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라는 그 짐짝 같은 말, 그 엄중한 말,
그래, 뭐 심판하신다고? 네 말대로 되었으면 벌써 심판받았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겠다...'
지금 와가지고 예레미야를 놀리고 조롱한 거예요.
그러니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짐짝 같이 여기고 있고
자신의 삶에 당장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우습게 여기고, 조롱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레미야 한테 와가지고
이제 아마 그런 식으로 별명을 붙였던 것 같아요.
많은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했는데
예레미야는 망한다, 망한다, 망한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러니까 예레미야의 설교의 제목을 그들은 '마싸' 라고 붙인 거예요.
'오늘도 예레미야가 또 엄중한 말씀을 선포했네...
이루어지지도 않는 그런 말... 아휴 듣기도 싫은 그 짐짝 같은 말!
그래 예레미야야, 하나님이 또 뭐라고
또 무거운 짐 같은 말을 하시더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당히 짐짝같이 여기고, 귀찮아 하고 있었고,
또 한편 '이 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었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돌아오셔야 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그거 하지 마셔야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 손 대실 겁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징계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정신이 언제 드냐 하면,
하나님이 실제로 이제 손을 대시면, 그제야 깜짝 놀라는 거예요.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그 당시에 거짓 선지자들에게 선포되었던이 10번째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아휴 이 선지자들이 이런 죄를 지었구나.
아휴 이 나쁜 사람들' 이렇게 하고 마치면 안 돼요. 왜요?
이 선지자들을 향하여 엄하게 심판을 선포하는 메시지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적용되는 메시지입니다.
왕들에게 선포되었던 메시지가
그들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향해서 주어진 메시지였던 것처럼 *22장
지금 거짓 선지자들을 향해 선포되던 이 메시지도 *23장 본문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서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왜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주셨고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말씀을 주셨어요.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또한, 오늘 이들에게 선포된 메시지를 통해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모습이 아닌지?' 오늘 점검해 봐야 돼요.
1) 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왜곡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들이 교회에서의 행동과, 집에서의 행동이 다르고
부모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의 모습과, 자녀인 내게 말하는 모습이 달라서,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시켜 버렸어요. 그때 자식들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게 됩니다.
내가 배우자로서 가정에서, 또한 직장인으로서 일터에서
제대로 된 믿음 생활을 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내 행동이 하나님을 왜곡시키고,
그로 인해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게 만들지는 않았나요?
2)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지는 않았나요?
내 생각과, 내 의견과, 내 뇌피셜을 가지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인양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다'하고 말하진 않았나요?
특별히 잘못된 꿈과 환상의 계시를 보고서도,
마치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꿈과 환상과 계시인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계시를 도용(도적질)하지는 않았나요?
3) 그리고 오늘도 매일 설교를 듣고, 매주 설교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면서
내 삶은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치시든지 말든지'
오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면서
'여호와의 마싸(엄중한 말씀)가 뭐냐?'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