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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된 라이프찌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의 기도회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라이프찌히 시의 니콜라이교회는
구 동독의 공산정권 하에서 억압당하고 있었던 동독 백성들의 피난처였다.
당시 동독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도 자기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논의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서도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한 공간이 있었다.
바로 성 니콜라이 교회였다. 그곳에서는 말씀이 강론되고 있었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80년대 초 어느 월요일 저녁에,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라이프찌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에 모여서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 앞에 고하는
첫 기도회가 담임목사 크리스티안 퓌러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그 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소문이 퍼져나가기를 시작했다.
이 억압의 상황 속에서도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바로 성 니콜라이 교회가 “자유의 공간(Space Freedom)”이라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이 점차로 퍼져나가자,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들의 가장 큰 소원이었던 통일에 대한 염원을 함께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결국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 월요일마다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열렸던
‘월요기도’는 1990년 10월 3일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시발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몇 명밖에 참석하지 않은 조용한 기도회로 시작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이 기도회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셨다.
구동독의 경찰이 촛불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을 검거하여
이 평화로운 집회를 통제하고 차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의 수는 차츰 많아져
나중에는 매주 십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와서
민주주의, 자유, 독일 통일을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는 거대한 행사가 되었다.
기도회가 끝나면, 저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통일에 대한 저들의 염원을 알렸다.
매주 월요일마다 이루어졌던 기도회와 촛불행렬은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불어났다.
그들의 기도회는 10년동안 계속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만 명, 이만 명, 나중에 1989년 10월 모임에는
12만명이라는 숫자가 운집해 기도회를 개최했다.
1989년 10월 9일
촛불 기도회를 계속한다면 유혈 진압을 감행하겠다는 당국의 발표가 신문에 실렸다.
군대, 전투 경찰, 사복 경찰들이 이 교회를 에워싸고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촛불 기도회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채 조용히 진행되었다.
기도회 후 사람들은 평화의 시위를 이어갔고,
이 시위가 동독 정부의 예상과 달리 라이프치히를 넘어서서
드레스덴, 카를 마르크스 슈타트, 동베를린 등 주요도시에 까지 번지기 시작해서
동독 당국의 통제 밖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동독 정부는 당황해 지도자였던 에리히 호네커를 축출했다.
당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요 옛 동구권 지휘자의 지존인
쿠르트 마주어 Kurt Masur의 호소문이 발표된 후
- 1989년 10월 9일 동독의 민중 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동독 사회주의 정권이 무력진압을 하지 않도록
그는 다른 5명(풍자작가, 목사, 3개 정당원)과 함께
모두들 진정하고 양측이 평화로운 대화를 하도록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동독 보안군이 거리를 봉쇄하고 청년 학생들이 마지막 결전을 위해 가족에게 작별을 고한 뒤
거리로 나섰을 때
전국의 방송망과 확성기를 통해 이 호소문이 수없이 방송되지 않았더라면
거리는 피로 물들었을 것이라고 마주어는 회고했다.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 니콜라이 교회 밖으로 나갔다.
뜻밖에 광장에는 수천 명이 이미 촛불을 들고 모여 있었던 것이다.
군대, 전경, 사복 경찰들은 그들의 기도에 감화되고 음악이 울려나오는 거룩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군중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대규모 평화 시위가 도화선이 되어 구동독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처럼 성 니콜라이 교회는 독일 통일의 기치를 처음 올린 역사적인 교회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얼마 뒤 (1달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독일통일의 첫 시발점이 되었으니
결국 이 기도회후 약 한달만인 1989년11월9일 베를린의 장벽은 무너지고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 진 것이다.
후에 역사가와 정치인들은 독일이 이룬 통일의 과업이,
바로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이루어졌던 월요일 기도모임 때문이었다는 사실 앞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작은 기도회로 시작한 진실된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신 것이다.
그들의 기도회를 해산시키고 박해하려고 모인 군인들과 경찰들은
회개하여 그들의 모임을 허용하고 함께 했다.
어느 누구도 그 작은 월요기도회가 그처럼 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기도회의 모습이다.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3: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