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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

LNCK 2024. 10. 30. 20:27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십자가

2024-10-27 주일예배 // 십자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 - YouTube

 

십자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      눅23:26~43       

 

순서대로 누가복음을 설교하는 가운데,
요즘은 눅23장 끝 부분을 저희들이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복음도 곧  마치게 될 것 같은데, 
오늘 다루는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게 됩니다. 못 박히시죠.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 또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어떤 태도를 보였고, 
또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 를 살펴보겠습니다.

23: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그들이'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향해 무죄 선언을 했지만,  
유대 지도자들, 또 그들과 동참했던 백성들의 압력, 
그 압력에  굴복해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하고, 
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십자가 형에 예수님을 내어줍니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그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 또 동참했던 백성들,   
사형을 집행하는 로마 군병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골고다로 끌고 가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첫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 하면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로마 군병들이 그를 지목해서,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습니다. :26

◑1. 구레네 시몬

그 당시  십자가 형은, 혹시 여러분들이 성지 순례를 가시게 되면, 
예루살렘에 가면 빠지지 않고, 꼭 한 번은 걷게 되는 길이 
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Via Dolorosa 라는  *고통의 길, Sorrowful Way 라는 뜻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걷게 되는데  

오늘 본문 그대로 빌라도 총독 관저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채찍질을 당하시게 됩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출발을 하셔서 어디를 통과 하느냐? 
요즘 같으면 도심을 통과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도심을 통과합니다. 이유는 뭔가 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한테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죠. 

도심을 통과한 후에 예루살렘 성을 빠져 나가서  
'해골'이라는 뜻을 가진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못박히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셨던 십자가는, 대부분 학자들이 다 동의합니다. 
'십자가의 가로 기둥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십자가의 세로 기둥은, 이미 골고다 언덕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수들은 가로 기둥을 그들이 지고, 이 길을 걸어가서  
골고다에 올라가서, 이미 세워져 있는 세로 기둥과 연결이 되어져서 
십자가 처형을 하게 됩니다. 

근데 그 길에서 예수님은 구레네 사람 시몬을 만나게 되고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강제적으로 지게 됩니다.  :26

이유는, 이미 예수님께서는 채찍질을 당하셨기 때문에  요19:1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군병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 더 이상 십자가 가로 기둥을 지고,
언덕 길을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 라고 판단이 든 것입니다.

당시 로마군인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뭔가 하면, 
그들은 아무나 붙잡아서 예수님이 져야 될 십자가를 
대신 지우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산상수훈에 '오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가며' 이 말씀도, 당시 로마군인은 
길 가는 행인에게, 임의로 물건을 운반해서 5리를 가게 하는 권한이 있었다고 하죠.

구소련 시절에 목화 수확철이 되면,
군인들이 지나가던 버스를 세워서, 사람들을 강제로 다 내리게 한 후에,
길가 목화밭에서 강제로 목화를 따도록 시켰다고 합니다. 총부리을 앞세워서.)

그래서 군병들이 구레네 사람을 붙잡아서, 예수님이 지었던 십자가 가로기둥을 
그에게 대신 지우고, 그는 예수님을 뒤따라 가게 됩니다. 

'구레네'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리비아 지역입니다. 
로마가 그 당시에 구레네도 지배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수도 capital city 가 구레네 입니다. 

이 구레네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구레네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유대인들이 또 역으로 예루살렘에 와서 정착해서 살았고,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구레네 출신의 사람들만 따로 모이는 회당이 있을 정도로 
구레네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한 사람인, 시몬을 붙잡아서 
예수님이 지셔야 될 그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아마 시몬이 건장하게 생겼나 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강제로  십자가를 지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구레네 사람 시몬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분 나쁜 그런 경험이 되겠죠. 
자기가 뭐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가지고, 졸지에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 가지 가질 수 있는 질문은,  
이 경험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 경험 때문에 구레네 시몬과, 그의 가족들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을까요?

과거에 제가 청년들을 섬길 때, 청년들이 한 번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청소년 기에, 부모님들이 은혜를 너무 세게 받으셔 가지고 
그래서 제가 학원비 내야 될 돈까지 다 교회에 갖다바쳐 가지고 
제가 (구레네 시몬처럼) 강제로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이런 하소연을 했던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우스개 말로 이런 이야기하죠. 
'목사님, 교회 부흥회 하면, 부모님들만 조마조마한 게 아니라 
우리도 조마조마 합니다. 또 저한테 줘야 할 돈을, 또 교회에 갖다 바치나?' 
그래서 자기들도 조마조마 했었다는 거예요. 
그런 피해의식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 피해의식의 원조가 이 구레네 시몬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강제적으로 졌던 사람이죠. 

그런데 그 후에, 구레네 시몬의 가정은 어떻게 됐을까요?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마가복음은 아주 인상적으로, 그의 두 아들을 소개합니다.
그냥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쓰면 될 것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 이렇게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유는, 마가가 이 마가복음서를 기록할 때 
이미 구레네 사람 시몬의 두 아들들은 
아마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어 있었던 것 같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상당수가, 이미 그 두 아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가가 무명으로 처리하지 않고,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이 시몬을 상세하게 소개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부분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위인지는 모르지만, 또 정확하게 그 시기도 모르지만, 
이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들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제자들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루포가 로마서에 또 나옵니다. 
롬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나서 마지막에 
주위에 있는 성도들 한테 안부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막15장의 루포와 롬16장의 루포가 동명이인 일 가능성도 있지만,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죠.

만약에 그렇다면 '그의 (루포의) 어머니'는 누가 되겠습니까? 
바로 구레네 시몬의 아내가 되겠죠.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 니라'
구레네 시몬의 아내는,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바로 내 어머니다' 라고 불렀을 만큼 
사도 바울을 되게 신실한 사랑으로 돌보았던 것입니다.

즉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보았고, 
그 이후에 예수님이 부활 하시고, 그와 관계되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마 그와 그의 가족들은 예수님을 믿게 됐고, 
또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신실한 제자들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는 사도 바울에게 '내 어머니라'고 불릴 만큼 
신앙의 훌륭한 그런 어머니요, 아내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통해서 결론을 하나 내린다면, 
강제로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시몬, 
그러나 그 경험은 그에게 아픔과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주셨을 때 
그와 그의 가족들이,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세워지게 되는 
그런 귀한 기회로,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셨습니다. 

혹시라도 과거에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너무 교회를 열심히 섬기셔서
그것 때문에 아픈 기억을 갖고 계신 분들은,  
구레네 시몬에게 일어난 일들을 바라 보시면서, 

그래도 우리가 억지로라도 영광의 주님을 섬겼을 때, 
주님은 그 섬김을 귀하게 보시고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여러분의 가정을, 주님 앞에 신실한 제자들로 세우실 것을 믿습니다.  

◑2. 슬피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

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실 때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앞으로 눅23~24장에는 여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두드러지게 누가가 기록하는 것이, 여인들입니다. *누가복음의 특징
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말씀하시죠. 유명한 말씀입니다.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한 신학자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기대한 것은, 동정심이 아니라 회심이었다'
동정심의 눈물이 아니고,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회심의 눈물을 기대하셨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명령을 하셨는가요? 그 이유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너희가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어야 되는가?'

23: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을 당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짧은 시간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고통은  짧은 시간의 고통이죠.  
그 고통은 어떻게 끝났는가요? 부활과 영광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의 딸들과, 그 자녀들에게는 무엇이 주어집니까? 
주님을 받아들이기를 끝까지 거부했던 이 불순종한 예루살렘, 
이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지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은, 시간적으로 긴 심판이 되겠죠.  
그리고 그 심판의 끝은 어디로 갈 것인가요? 수치와 멸망으로 그들을 이끌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바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어라'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오는 이 두려운 심판을, 
예수님은 두 가지의 모습으로 설명을 하십니다. 

'보라, 날이 이를 텐데'  :29
선지자들이 정말 즐겨 사용했던 표현이죠. 

'하나님이 준비하신 날이 바로 이를 텐데,
그 때는 잉태 하지 못하는 배,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말하게 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29

즉 잉태 하지 못하는 여인, 자녀를 키우지 못하는 여인을 보고 
'복이 있다' 라고 말하는 날이 다가올 거라는 겁니다. 

또한 '살아있는 자들이, 바로 죽은 자를 복 되다 할 만큼, 
죽은 자를 부러워할 만큼,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 표현은 이미 눅19:43~44절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하셨죠. *종려주일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19:43~44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날 거다'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은 산 자들이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날이 될 거다'

삶이 얼마나 괴로우면...  

이어지는 30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위 말씀은 예수님께서 호10: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그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가 할 때,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무슨 뜻이죠? 
사람들이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이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산채로 묻혀지는 것, 그것을 더 좋게 여길 것이라는 거죠.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는 것보다 더 원할 만큼, 
그런 두려움의 날이 될 것이다. 
이런 날이 너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위 구절은 좀 어려운 표현인데, 이것은 유대인의 격언을 소개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과 비교해서 작은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는 기법입니다. 

'푸른 나무에게도 이같이 하거든' 
즉 물의 젖은 나무라도 태울 수 있는 맹렬한 불이라면,
마른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물이 차 오른 푸른 나무도 태울 수 있는 그런 맹렬한 불이라면,
바짝 말라 있는 나무를 태우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푸른 나무'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의로우신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맹렬한 것이라면, 

'마른 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마른 나무와 같이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뜨겁고 맹렬할 것인가!' 

바로 이 심판의 날이 너희들에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너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된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도전을 하셨습니다. 

▲2024.10.27. 오늘 아침 7시 반에,  
서울에서 차별금지법 악법 저지를 위한 2백만 성도 연합예배가 있으므로,
저희 교회에서는 약 85명 성도, 또 개인적으로 기차로 가시는 분들이 있어서 
한 90여 분 정도가 출발했습니다 집회에 참여를 하게 되겠습니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 이거를 꼭 이렇게까지 야단스럽게 저지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그런 질문들을 많이 가지실 수가 있습니다. 

근데 요번에  결정적인 계기는  
대법원에서 동성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의료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대법원에서 인정을 해줬습니다. 2024.07.19.
한국에서 동성혼이 합법화 되는 일종의 둑이 하나 열린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제가 20년 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5년 정도 공부하면서
'동성애가 어떻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이상한 세상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저도 눈으로 목격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 토론토에 있는 신실한 후배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연락이 오는 거죠.
'목사님, 지금 아이들을 일반 공립학교 보냈다가 결국 포기하고 
돈이 많이 들어도, 기독교 학교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아직 초등학교 1학년도 아닌 유치원생 들에게 
'자기 주관적 성 gender 을 결정하라'고 교육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관적 성의 개념이 바로 '젠더' 입니다. 
지금은 생물학적 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젠더가 중요하다... 
이렇게 해서, 캐나다는 표기할 때, 

남자는 M이고 여자는 F죠.  Male / Female
그런데 그 옆에 X가 있습니다. 이것은 뭔가 하면  '기타 성'입니다. 

제가 후배들과 이야기 나눌 때, 그 즈음에는 남성 여성을 포함해서 
젠더가 22가지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31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초등학교 때, 또는 초등학교 가지도 않은 아이들한테 
'야, 너의 주관적 성, 바로 그것을 따라서 사는 거야' 

그러면서 남자지만, 자기가 여성에 가깝다고 느끼면 
성 전환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정당한 권리로 이야기하고, 
그래서 15세가 지나면 부모들의 간섭 없이 이 모든 것들을 성전환 할 수 있음이
지금 학교에서 실제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토론토와 미국 지역의 교회들은, '동성애가 죄' 라고 말했다가
교회 건물과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나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 교단 속에 계속 머물러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동성애가 죄가 아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그들이 교회 건물을 계속 유지하고, 그 교단에 속할 수가가 있게 됐습니다. 

여러분, 이거는 뭐 하나의 단초죠.
제가 2024년 6월 말에 토론토에 갔을 때 
'정말 토론토가 이 정도까지 빗나갈 수 있구나. 
동성애가 만연되는 이런 세상이 바로 올 수도 있구나!' 

여러분 우리 한국 사회에도, 지금 우리가 단호한 대처를 하지 않으면 
뚝이 한 번 열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정말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많은 성도들이 서울 시청 앞에 모여서 
오후 2시부터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연합된 성도들의 그런 기도를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다시 한 번  한국 교회가 하나님 말씀 위에 세워지고,  
거룩한 가정, 거룩한 교회, 거룩한 사회를 만들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이 마지막 때,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가 세워지는 것이  
우리 다음 세대에도 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슬피 우는 여인들에게 하셨던 이 도전의 말씀을 :28
우리가 좀 겸손히 받아들이고 

그래서 남은 성도들은 서울에는 가지 못했지만 
여러분들 기대하십시오. 다음 주간 후부터  
여러분들이 정말 간절히 사모하는 후반기 특새가 시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번 특새 2주간 동안에는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말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울수 있는 
그런 귀한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3. 조롱하는 백성들의 반응

23:32~39절까지 보면,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됩니다. 
그 중에 32~33절은, 두 행악자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34절을 보면,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핍박하고, 또 자기를 죽음에 내몰았던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사53:12b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 이사야의 예언은 지금 본문의 장면(:34)이죠.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성취하셨죠. 
그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기도하셨는데 
35절부터는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1) 먼저 관리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던 관리들은, 예수님을 비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죠. 

23: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2) 로마 군병들도 희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신포도주를 마시게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23:36~37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절은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합니다. 
23: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이것은 조롱하는 표시죠. '유대인의 왕이 십자가에 못 박히다'
이러면서 로마 군병들이 '너 자신을 한 번 네가 구원해 봐라' 

3)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강도 중 하나가 또 예수님을 비방하는데
가장 센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신성모독 합니다.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이렇게 예수님을 향해, 바로 신성모독을 하게 됩니다. 

관리들,  로마 군병들, 같이 못 박혔던 행악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조롱하죠. 비방을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똑같죠. 
세 번이나 반복된 표현이 뭡니까? '너 자신을 구원하라. 너 자신을 구원해 봐라!' 
이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마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실 때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중에 하나는, 
이 말씀 중에 하나가, 우리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들추어 낼 때가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예수님을 조롱하는 무리들이 뱉어냈던 말, '너 자신을 구원하라'는
이 말이, 제게도 상처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모태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어릴 때부터 쭉 하면서 
약간의 아픈 상처 같은 게 뭔가 하면, 

저는 우리 집이  예수님을 나름대로 열심히 섬긴다고 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버님 사업도 뜻대로 되지 않고, 그래서 누가 봐도 어려운... 
그런 상황 속에 저희들이 놓였던 적이 많습니다. 

그러면 저희 외가 또 친가가, 지금은 많은 분들이 믿으시지만, 
당시에는 많은 친척 분들이 예수를 믿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저희 가정을 보시면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야, 너희들이 예수님 믿는다면서... 또 장로, 집사. 권사라며? 
그러면 너 자신부터 한 번 구원해 봐! 
너 자신부터 한 번 구원하면, 우리도 예수님 믿을 게!'
정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 집안에 참 존경 받는 어르신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명절에 그렇게 말씀 했어요. 

"야, 관형아, 내가 너희 집을 참  좋아하고 
내가 지금까지 관찰해 왔는데 
왜 이렇게 너희 집안이 하는 일마다 안 되냐? 
내가 생각해 보니까 '너희가 조상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너희 아버지는 설득이 안 되니까, 
네가 장남으로서 아버지를 설득해서, 지금부터라도 제사를 드려라. 
그러면 너희 집이 회복될 거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결국 그분들이 이야기하시는 거는 뭐죠? 
'예수님 믿는 게 생명의 길이고, 구원의 길이면 
너희 자신부터 한번 구원해 봐!' 
여러분, 이게 바로 오늘날에도 세상이 성도를 향해 던지는 도전이 아닙니까!   

우리 성도들 중에도 형통한 분도 계시지만, 참 어려운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꼭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들 머릿속에서 울리는, 우리들의 생각과 말이, 그분들을 힘겹게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면, 그 분이 참된 구원자라면 
너 자신부터 한 번 구원해 봐!' 

이런 외침이, 저한테는 하나의 작은 트라우마 처럼, 예전에 저에게 있었습니다. 

▲근데 저한테 한 번 치료가 된 것은, 
벧전2:21~25절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1

이것은  베드로가 세월이 지난 후에,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당시 고난 속에 있는 성도들,  
그들이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너 자신부터 한번 구원해 봐' 라는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는 성도들 한테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본이 되셨고, 그 길을 너희로 따라오게 하셨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과 관계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벧전2:22~23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의 죄가 아니죠.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했느냐? 
'그 몸으로 자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 됐고 
그가 채찍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게 됐고, :24b
그렇게 우리가 회복되었다는 겁니다.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저한테 생생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분이셨는데 
바로 우리들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소리 질렀죠. '너 자신 먼저 구원해 봐라' 
근데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묵묵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부활에 이를 뿐만 아니라, 
바로 길을 잃어버렸던 수많은 사람들, 
이 땅에서 상하고 고통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들이 나타났다는 거죠. 

자신의 죄가 아닌, 사람들의 죄로 인한 그 고통을 
예수님과 함께 묵묵히 감당하게 될 때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바로 내 주변이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날 거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한테 그런 확신을 주셨어요. 
'야, 너도 예수님을 생각해 봐!'

어떻게 보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조금 고생했던 것은, 저 자신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조상 세대부터 뭔가 쌓인 것들이,   
나같은 사람들을, 그냥 고생하게 그렇게 만들었죠. 

그렇지만 여러분 바로 그것을 
우리가 그냥 예수님처럼 묵묵히... 
'거기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계획이 있을 것이다' 라고 믿고 
묵묵히 감당할 때,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내가 살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을 살리는 사람으로 
우리 각자를 세워 주신다는 겁니다. 

▲저는, 세월이 (환갑이) 지나서, 지금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면, 
저도 목회를 얼마나 더 할지,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은데, 
저도 요즘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 자신이 우리 성도들 한테,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난 것일까?' 라고 생각하면, 

저는 한 마디로, 저도  조금 살면서, 
꼭 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정말 주변에 이 모든 것들이 뒤엉켜서, 나도 어쩌면 억울한 고생을 했을 수 있는데, 

 

그러나 그것을 예수님처럼, 묵묵히 믿음으로 감당을 했을 때 
하나님이 그 가운데 나를 다듬어 주시고, 연단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해 주셔서,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많이 만들어 주셨구나...' 

저는 여러분들 가운데도 혹시 지금,
여러분 자신이 꼭 잘못한 게 아니지만, 
이 악한 세상 때문에, 그리고 오랫동안 묵어왔던 그 모든 조상들의 허물때문에
 
오늘 내가 부당한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우리가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그것을 잘 감당하게 되면, 십자가를 지고 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을 살리는 사람으로. 만드실 수가 있습니다.  

◑4. (낙원에 들어간) 한 편 강도 

23:40~42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어쩌면 그는 도덕적으로 새로워 질 수 있는 기회가 이제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이런 간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중에 하나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드리셨던 기도, 그 기도가 어쩌면 응답 된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무죄하신 분이에요. 십자가를 지셨고,  
그 분은 무엇이라고 자기 곁에서 외치시면서 기도 하셨느냐?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알지 못해서 저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를 들을 때, 어쩌면 이 죄수의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이제 예수님이 누구신 줄 확신하게 되느냐?, 

'지금이라도 내 인생을 바로 그 분에게 맡기기만 하면 
나를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끄실 수 있는 능력과 사랑을 가진 분이시다' 
라고 그는 확신하고, 예수님께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이죠.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옥과 대조되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장 복된 상태,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가 있는 가장 복된 곳, 
그 낙원에, 오늘 today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연세 드신 분들 중에 한 번씩 저한테 오셔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제가 이렇게 이 나이에 자녀들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왔는데, 
평생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예수 믿어서 소용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때 제가 꼭 이 구절을 소개합니다. 

"지금 강도는 죽기 몇 시간 전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빨리 안 죽거든요. 몇 시간 걸려요) 
그러니까 그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어르신도 더 늦기 전에,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십시오.
우리 주님의 사랑과 능력은 얼마나 큰 가요?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음을 눈 앞에 둔 그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자신을 믿음으로 맡겼을 때, 

그를 오늘 낙원으로 인도 하실 수 있는 능력과 사랑을 가지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믿고, 마음으로 영접하시고, 
이 구세주 예수님께, 당신의 삶을 의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