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3 새벽 / 무화과 두 광주리를 통해 주신 메시지 / 렘24장 / - YouTube 정리, 축약
◈무화과 두 광주리를 통해 주신 메시지 렘24:1~10
본문 렘24장을 신약적으로 잘 해석하고 있습니다!
▲도입
본문 렘24장은 이제 예레미야의 12편의 설교 가운데 11번째 설교로,
남유다의 19대왕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20대왕 시드기야가 남유다를 다스리던 때,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 어느 시점에 선포된 메시지입니다.
24: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유다의 고관들 (여기는 에스겔도 포함되었었죠.)
여호야긴, 유다의 고관들, 목공, 철공들이 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난 이후
선포되었죠. 24:1
24:1~3절까지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담겨 있고요.
또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 열매가 거기 담겨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물으세요.
3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어요.
본문은, 참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가? 누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유대인 자신들과
-그렇지 않은 나머지 이방인...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눠요.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두 종류로 나누죠?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천국 가는 한 부류와
-교회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지옥 가는 또 한 부류..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눕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두 부류로 나누십니까?
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이냐,
혹은 그 사람이 교회를 다니느냐는 사실과 크게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지금 살아있는 믿음을 가짐으로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는 거예요.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진짜 참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안에도, 그리고 교회 안에도,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즉 좋은 무화과, 나쁜 무화과가 있는 것입니다.
둘은 다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이방인, 또는 교회 밖의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진짜 믿음을 가지고서 천국 가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약)
-이스라엘 안에, 참 믿음이 없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 (구약)
이렇게 두 부류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창세기, 세상을 처음 창조했을 때부터 그렇게 하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둘 다 아담의 아들이지만
가인은 아니고, 아벨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둘 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이스마일은 아니고, 이삭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둘 다 이삭의 아들이지만
에서는 아니고, 야곱만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전부가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아니고 그 가운데 진짜 믿음을 가진 자만, 즉 '남은 자'만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당시 사람들의 착각
오늘 본문의 남유다 사람들도, 모두 다 유대인이에요.
모두 다 예루살렘 안에 살고 있었어요.
그러나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5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1절에 나오는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2차포로죠. 1차포로는 BC605 다니엘
그들이 '좋은 무화과 (열매)' 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여호야긴, 고관들, 거기는 에스겔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목공들, 철공들,
그들이 좋은 무화과래요.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반대로, 거꾸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들은.. 죄가 많아서, 벌을 받아서 포로로 잡혀갔을 것이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자기들은.. 그래도 의인이라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8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그런데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자들,
즉 시드기야과 그 고관들은 '나쁜 무화과 (열매)' 라고 하나님은 규정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정반대의 평가와 판단을 하셨어요.
여러분, 이 당시에는 이게 정말 큰 이슈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거든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이집트로 피신을 갔어요. :8
그래서 어떤 소문이 있었냐면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그들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끌려갈 리가 없다는 것이죠.
대신에 예루살렘에 남아있고, 혹은 애굽에 피신한 사람들(:8)만
하나님의 백성이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서,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다는 거죠.
이때 예레미야가, 본문의 환상을 통해서, 정반대로 예언을 했던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좋은 무화과'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24:5~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예루살렘 그 땅은 더러워졌습니다.
예루살렘 거기는 '옛 사람'을 따라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거기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거기는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거기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거기는 더럽고 추악한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고, 그냥 무늬만 하나님의 백성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하셨어요?
'그냥 그렇게 살아라 그냥 교회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드리고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데 그냥 그대로 살아라'
그냥 내버려 두신 자들이에요.
예를 들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데도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면
'아, 나는 아직 하나님의 참 백성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계속 고생스러워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거기서 지금 생고생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들은 예루살렘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그냥 이전에 드리던 예배 그대로, 이전에 듣던 말씀 그대로,
거짓 선지자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 받고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는 말을 그대로 들으면서 6:14,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애굽으로 내려간 자들도, 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8절을 다시 보실까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의 특징이 여기 또 한 가지 나옵니다.
'애굽 땅에 (피난가서) 사는 자들' 이에요.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죠?
성도는,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끄집어내어진 자들이에요.
그런데 애굽에 다시 돌아가서 사는 거예요. 그냥 세상에 사는 거예요.
세상에 파묻혀 사는 거죠.
출애굽 때 '애굽으로 돌아가자' 했는데, 이들은 진짜 애굽으로 돌아가 버렸어요.
그들이 왜 애굽으로 피난 갔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여서 '바벨론 왕에게 복종하라'고 했는데,
또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데리고 가시려고 했는데, 거기서 연단시키시려고요.
(실제로 후에 이스라엘 역사는,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사람들,
또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사람들 중심으로 이어집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 스룹바벨, 요엘, 학개, 스가랴 등..)
그들은 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까? 애굽(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딤후4:10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어요.'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까?
무늬는 하나님의 백성의 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거예요.
세상 가치관 그대로.. 그냥 세상이 원하는 대로...
세상에서 좋다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인생...
그 인생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거예요.
교회에 와서 앉아 있다 해도,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 해도,
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거예요.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서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성화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주제
또 하나, 오늘 이 무화과 두 광주리를 통해
주시는 두 번째 교훈은 무엇이냐면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으면 재미있잖아요.
우리가 성경통독을 해도, 출애굽기에서 멈추는 분들이 별로 없거든요.
그러다가 레위기에서 이제 많이 통독을 그만두죠.
그래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어디에서 확인합니까?
출애굽기에서 자꾸 확인해요. 출애굽기까지만 '구원'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출애굽기에만 있는 것처럼 얘기해요.
그러니까 '출애굽 시키시는 하나님'만 기억을 해요.
그러나 창세기부터 ~ 요한계시록 전체가,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출애굽기까지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요한계시록까지 나와요.
예레미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서는 더 명확하게, '출애굽기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출애굽한 이후에
<계속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먼저 하나님은,
어린 양의 죽음으로 인하여서 죄의 형벌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시는
출애굽기의 하나님이세요. 이건 '칭의의 하나님'이시죠.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만 멈추는 게 아니에요.
그 이후에 하나님은 또 어떻게 하십니까?
본문 5절을 보실까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바벨론 왕이 끌고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기로 데리고 가셨대요.
그리고 7절에 보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그들 '좋은 무화과'들을 바벨론에서 연단시키시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 내세요.
7절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래서 하나님은, 죄의 영향력에, 죄 가운데 빠져 살던 옛 사람을 건지셔서(출애굽)
어디로 데리고 가신 거예요? 바벨론으로 데리고 가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가 있는 자들에게
'너희는 여기서 집을 짓고, 터를 잡고, 결혼하고, 여기서 농사를 지으며,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여기서 살아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곳에서 그들의 마음을 고치시고, 그들의 옛 자아를 깨트리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가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화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단 말입니다.
▲연단 후에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6절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바벨론에서 연단을 받고 성화된 그들을, 변화된 그들을
하나님은 다시 약속하신 그 땅으로 데리고 와서
'다시는 헐거나 뽑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을 통하여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그를 건져내세요.
그 다음에는 옛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있었던 그들을,
옛 자아로부터 그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바벨론에 보내셔서, 거기서 연단을 받으며 살게 하셨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을 결국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그 새하늘과 새 땅,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으로 옮겨놓고 나서
예루살렘을 70년 동안 쉬게 하시면서, 그 땅을 새롭게 하셨어요.
그 다음에 6~7절이 이루어지는 거죠.
6절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절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정리하면,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져내
주셨습니다. 칭의의 하나님이시죠.
그리고 지금 하나님은 뭐하고 계세요?
건져낸 자기 백성들을 어디에 두셨습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 어디에 있습니까?
바벨론(세상) 가운데에 있잖아요. 지금 세상 가운데 살고 있잖아요.
심령 천국은 임했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세상 가운데 있잖아요.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만나 주시잖아요.
지금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고치고 계시잖아요.
지금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 정결하게 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그분은 바벨론의 하나님, 성화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하늘과 새 땅으로 데리고 가실 거예요.
출애굽의 하나님만 있는 게 아니라, 바벨론의 하나님도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하나님이다' 라고
자기를 계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는 좋은 무화과입니까? 아니면 나는 나쁜 무화과입니까?
'나쁜 무화과'에 속했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있었던 자들, 또는 애굽에 피신갔던 자들이에요.
그들은 스스로가 자기가 옳다 라고 주장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기의 옛습관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어요.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도 섬기는
양다리 걸치기 신앙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끌려갔던 자들은
우리가 끌려왔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가?
내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가?' 그렇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바벨론에서의 연단을 통해서, 성화를 이루어가고 있었지요.
나중에 그들이, 또는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됩니다.
마치 베드로가 '돌이킨 후에'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가 되었듯이요. 눅22:32
하나님은 우리를 이 바벨론 가운데에 두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지금도 고치고 계세요.
그리고 곧 우리를 새하늘과 새 땅으로 데리고 가실 그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고쳐져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절별 해석 (참고자료)
24: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1-3절에는 무화과의 환상이 나오고, 4절이하에는 이 환상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본문의 환상은 내용 면에서 암8:1-3의 '여름 실과 환상'과 유사하다.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이 환상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기 전에
우선 역사적 연대를 나타내는 어구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구문상 괄호로 묶어두어야 할 부분이며, 그 연대가 명확하게 지시되어 있다.
이 연대에 따르면 이 환상은 B.C.597년 이후에 주어진 것이다.
여고냐는 다른 곳에서는 고니야라고도 불렀으며, 또한 왕명(王名)으로는 여호야긴으로 불렀다.
24: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24: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나이다 하니
성전 앞에 놓여 있는 무화과 두 광주리 중
하나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들어 있었고
다른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들어있었다.
이 광주리들이 성전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을 중시하여,
어떤 학자들은 이를 성전 제단에 바쳐진 예물 혹은 여호와께 드리는 수확의 맏물 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사실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환상에 대한 묘사인 까닭에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 이해함이 나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무화과들은 여호와께 나아오는 유다 백성들을 상징하며,
좋은 무화과란 여호와께서 인정해주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자들로서
여기서는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을 지칭하고 있다(5절).
24: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4: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본문은 여호와께서 포로로 이미 붙잡혀 간 자들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고자 하심을 보여주신다.
그들은 비록 죄를 범했을지라도 여호와의 자비를 구하며 회개할 것이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선한 존재들로 보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회개하는 심령을 주시는 분도 바로 여호와시다(7절).
이제 미래는 그들에게 있다.
한편 B.C. 597년에 바벨론으로 옮겨진 자들은 이 나라의 지도층이었으며,
핵심되는 인사들이었다(왕하 24:14-17). 이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거부하였으나,
막상 그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자, 많은 이들이 뉘우치기 시작했을 것이다.
반면에 끝까지 유다땅에 남아 있던 자들은 예레미야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면 그는 이 기간 곧 B.C. 597-586년 사이에 심각한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24: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세우고', '헐고', '심고', '뽑는다'는 동사들은
1:10에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본서에서 계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12:14-17, 31:27, 28).
이들 동사들은 심판과 회복이라는 이중적 주제의 메세지에 주로 등장하고 있으며,
예레미야의 소명 기사에서는 그의 설교의 핵심을 가리키는 내용으로 쓰였다(1:10).
물론 그의 설교의 대부분은 심판 선포에 할애되었으나
군데군데에 회복과 갱신의 메세지도 나타나고 있다.
24: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여호와께서는 특별한 섭리를 그들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며,
그들은 본토로 귀환하게 될 것이다.
본절 내용은 신 30:1'10에 나타난 약속,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추방당할지라도 다시금 회개하면 새롭게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언약을 갱신하실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그들은 '전심으로'(베칼 레브) 그에게로 돌아올 것인데,
이러한 전인적인 돌이킴은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누차 강조된 바이다.
(29:13, 31:33, 겔 36:26,27, 37:13, 14, 27 28, 슥 13:9 등)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심판이란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새로운 시작이 임하고 있음을
알리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포로 중에 있던 자들과 B.C. 586년 이후의 사람들은
이런 메세지에 굉장한 격려를 받았을 것이다.
24: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는 이 땅에 남아 있거나 애굽에 거주하는 자들에 비유되고 있다.
우리는 백성들이 언제 애굽으로 도망쳤는지에 관한 충분한 기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친애굽들은 여호아하스가 B.C. 609년 그곳으로 잡혀갔을 때
함께 건너가 그곳에 거주했을 수도 있을 것이며(왕하 23:34),
아니면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의 봉신이 되었을 때(B.C. 609년경)
또는 느부갓네살이 B.C. 597년에 유다를 침공했을 때 애굽으로 피신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기록이 있는 것은, 보다 후대에 일군의 유다인들이
애굽으로 달아났던 사실에 관한 언급이다(43, 44장).
24: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24: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뜻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유다 땅에 남거나 애굽으로 피신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더욱더 마음이 완악해져서 회복 불가능의 상태에 처한 가운데 파멸당하고 만다는 예언이다.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이들 중에 많은 자들은 갈대아인들과 벌이는 전쟁의 칼과 기근으로 쓰러지게 될 것이다.
먼저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은 훗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중에 잡혀가는 이들은 먼저의 사건에서 교훈을 받고 돌이켜야 마땅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전보다 더욱더 마음을 굳게 하고 완악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에 대부분은 결코 귀환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이방 민족들과 뒤섞이게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