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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은 .. 재림을 기다리는 것

LNCK 2024. 11. 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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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은 .. 재림을 기다리는 것        슥10:1, 약5:7~8       펀 글 정리, 출처 분실

 

부흥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자기 교회 숫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만,

숫자가 늘어나든지 / 말든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성도들이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게 될 때..’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흥이 일어났다는데.. 재림을 사모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된 부흥이 아닙니다.

아래 글은, 성경과 교회사를 통하여

<부흥과 재림의 동반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부흥과 재림 대망 신앙 *대망 : 大望 간절히 기다림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재림 대망 신앙이었다.

 

강력한 말씀선포와 소유의 공유, 코이노니아,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은사는

이렇듯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강한 소망에 근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 하는 길이 어떤 것일까?

요한일서 3:3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는데,

    ☞관련글 rfcdrfcd.tistory.com/15981978

 

또 살전3:13에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였는데,

 

이와 같이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만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우리로 거룩함을 유지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원동력을 가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적 각성운동, 즉 성령의 부흥과 동반되는 현상이다.

 

성령의 부흥이 임하면 잠자던 교회는 각성되고,

세상적인 모든 더러움이 자취를 감추게 되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깨끗하고 거룩해진다.

 

△실례로 1904년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일어났던 영적 대각성운동의 원동력은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자각에서 일어났다.

 

그 지방의 부흥운동을 주도해온 R. B. 존스에 의하면

"1904년 이전 웨일즈 지방의 교회 강단에서는 대다수의 목회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설교하였고 그와 함께 부흥이 임하였다"라고 했다.

 

오늘날처럼 하루하루가 긴박하게 종말을 향해서 치닫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죄악 세상이 빨리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기를

막연히 앉아 기다려야만 할 것인가?

 

아니다. 종말의 때가 가까울수록,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죽어 가는 영혼들을 위하여

성령에 의한 부흥을 더욱 더 간구해야 할 것이다.

성령에 의한 부흥을 경험한 개인의 심령만이.. 재림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는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지고

교회 안에서조차 믿음이 식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잘못 받아들여,

재림을 대망 하는 실질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관망만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 자세가 아니다.

 

2천년 기독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부흥이 임하였던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영적 각성운동은

재림에 대한 뜨거운 인식과 적극적인 성령의 부흥을 간구 할 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이런 역사의 흐름이 언제부턴가 사라져 버렸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가며,

이 땅 위에 부어질 성령에 의한 부흥을 위해 깨어 간구 하는

밝은 빛의 군사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깨어 준비하는 무리들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2. 늦은 비와 영적 각성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4월부터 시작하여 10월말까지

오랜 기간 동안의 건기(dry season)가 있어서,

땅이 매 말라 갈라지고 저수지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지경에 이른다.

 

중동에서 이 '건기'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비가 다시 오기를 온 마음을 다하여 기다리게 되는데,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라고 고백한 다윗의 말은 얼마나 생생한가? 시63:1

 

우기 rainy season는 늘상 부드럽게 땅을 적시는 가벼운 소낙비를 동반하여

10월 말부터 시작된다.

 

시65:10절에 개역은 '단비', KJV는 showers(소낙비)로 나오는데,

이 비는 ‘우기의 시작’이다.

 

그 후 2-3일간씩 빈번히 많은 비가 내리며, 11월과 12월까지 계속되는데,

이런 많은 비를 성경에서는 '이른 비'(요레, former or early rain)라 칭한다.

 

이때에 농부는 바위처럼 딱딱한 흙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기 위해

이른 비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도 이런 일과 연관하여 기록하기를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릴 때 농부는 밭 갈기를 시작해야 한다.

우박이나 눈이나 폭풍, 역병이 돈다 해도 반드시 밭을 갈아야 한다.

만일 때를 놓쳐 기경하지 않고 이른 비가 내릴 때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늦은 비가 내릴 때 거두어 드릴 곡식이 없다" (잠20:4, 전11:4 참조)고 했다.

 

많은 비가 내린 이후에 간간이 소낙비(적은 양의 비, the small rain 신32:2)

가 내리는데 겨울 내내 끊이지 않고 온다.

 

그리고 추수기(5~6월)가 다가옴에 따라

또 한 차례의 장맛비(늦은 비 latter rain)가 내리게 되는데,

이 비는 낱알을 알곡이 되도록 성숙시키는 준비단계이다.

 

그 후 늦은 비가 멈추게 되면 *건기 시작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곡식은 추수를 위해 익어간다.

 

봄에 오는 이 비는 추수기 직전에 내리는 비를 의미하여

'늦은 비'(말코쉬, the latter rain)라 부르며,

 

이 늦은 비는 '이른 비'와 성격상 유사하여 억수같은 비라는 뜻의 히브리어

'게쉠'(gushing rain,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스10:9, 13

 

예레미야 5:24, 요엘 2:23,24, 호세아 6:3에 읽어보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지칭할 때 "게쉠"이라는 단어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렘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Let us now fear the Lord our God, that giveth rain (geshem),

both the former and the latter, in its season;

that reserveth unto us the appointed weeks of the harvest" 렘5:24 KJV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성경에 나타난

여러 다른 종류의 비와 구별이 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아무 때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계절이 있기 때문이다. 신11:14

 

이런 이른 비와 늦은 비 없이는

씨를 뿌리거나 알곡을 거두어들이는 추수기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생각할 때,

교회시대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곧 발견하게 된다.

 

'이른 비'는 세례요한의 사역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즉 영적 건조기가 끝나고

새롭고 영광스러운 '은혜의 단비'가 도래하게 됨을 나타내며,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은 그 '이른 비'의 시작을 알리는 기점이다.

 

사도행전 2:17에 하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선포하셨는데,

이러한 부어주심(the outpourings)이 초대교회 내내 계속되었고,

중세를 거치는 동안 '간간이 소낙비'가 여기저기에서 내렸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성령의 부어주심은 또다시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늦은 비'는 익은 열매를 거두는 추수의 때를 위한 마지막 준비,

즉 추수 직전의 '마지막 장마철'(the last epoch of the rainy season)이다.

 

여기서 말하는 '추수 때'는 세상 끝(마13:30,39)을 의미하고,

'세상'은 시간적 현세, '끝'은 완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결국 '세상 끝'이란 현세대가 종결되고 새로운 다른 세대가 시작될 때를 가리키며,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의미한다.

 

▲정리하면

오순절 날은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발점이었으며

이러한 강력한 성령님의 부어주심을 통하여 복음이 천하만국에 뿌려져 심겨지게 되었고,

 

마침내 추수를 위한 마지막 '늦은 비'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교회는 20세기 초부터 ‘늦은비’가 시작됐다고 봄

 

(※18세기는 웨슬리, 에드워즈의 부흥인데, 저자는 18세기를 ‘늦은 비의 시작’으로 보지만

그러나 보통은 ‘늦은 비’를.. 20세기 초에 부어졌던

세계 곳곳의 동시다발적 성령의 부어짐의 역사를 두고 ‘성령의 늦은 비’로 부른다.)

 

이 기간 동안에 오순절에 임한 것과 같은

사도행전적 현상을 동반한

커다란 성령의 불길이 조나단 에드워즈·존 웨슬리·휫필드·무디

그 외의 기라성 같은 수많은 부흥사들을 통하여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야고보 사도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8)고 했다.

 

이스라엘 농업 문화적으로, 늦은비가 지나면 '추수'이듯이

위 구절에서 야고보서도 이른비와 늦은 비 후에 주의 강림을 있을 것이므로

재림을 기다린다고 했다.

 

즉, 늦은비 후에 재림이 있을 것을 야고보는 가르치고 있으며,

그 늦은비가 20세기 초에, 1백년 전에 이미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저자는 18세기부터 '늦은 비'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여러분은 진정 익은 열매를 거두는 (늦은 비) 추수의 날을 열망하고 있는가?

바꾸어 말하면, 주님의 재림을 인내로써 기다리고 있는가?

 

마치 농부가 기다림을 통해 귀중한 알곡을 추수하듯

우리는 교회시대가 끝나기 전 최후 최대의 '늦은 비'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스가랴서 10:1에, "봄비(in the time of the latter rain, 늦은 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소산을 각 사람에게 주리라"라고

스가랴 선지자가 고백하였던 믿음이..

오늘날 우리의 소원이 되었으면 한다.

 

사랑의 주님, 다시 한번 주님의 성령을 부어주소서!

'늦은 비'를 갈망하는 우리의 부르짖음이 상달되게 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한마음 되게 하셔서

제2의 오순절 날이 임하게 하소서! (E. M. 그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