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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는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LNCK 2024. 11. 5. 11:5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https://www.youtube.com/watch?v=PF_k352eKPs

신자는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후 4:7-12        2024.11.01

◑실패를 일상으로 대하는 태도가, 일면 필요합니다

 

오늘 금요철야기도회의 설교제목은 "신자는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실패에 대한 메시지를 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 보면 성공과 실패가 있습니다. 그죠? 
뭐 성공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다루기 보다는, 오늘은 '실패'에 집중해서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실패를 늘 경험합니다. 실패를 피할 수가 없어요. 
자 여러분, 우리 사람들은 다 실패합니다. 실패 안 하는 사람이 없어요. 

실패하면 어떻게 되죠? 실패가 오면 우리에게 경험되는 게 뭐죠? 
좌절이죠. 또 낙심하고, 절망하고, 우울해지죠. 

그러니까 자존심이 확 상하고... 사람 만나기도 싫어지죠. 그러니까 우울해지잖아요. 
실패하고 나면 우울해져요. 
그리고 그 우울이 계속되면 우울증이 오는 거예요. 

우울증이 금방 끝이 나야 되는데, 우울증이 계속되는 거예요. 
자주 오고, 계속되고, 깊어지고... 그러면 우울증이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될 관점이 하나 있는데, 
실패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일상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뭐냐면, 실패에 대한 긍정입니다. 
실패를 긍정해야 돼요. 내가 어떤 일에 실패했다고, 내 인생이 다 망가지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가 내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거기서 쉽게 못 헤어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실패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꿔야 됩니다. 
우리는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실패는 실패, 성공은 성공! 이렇게 딱 갈라놔버려요. 

그래서 실패하면 그냥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성공하면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나눌 수가 없어요. 

성공과 실패는.. 굉장히 밀접해요. 
성공했다고 해도, 그게 성공이 아니에요. 
성공의 정점에서 실패가 또 곧 찾아와요. 
성공한 사람들이 실패해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실패와 성공은 종이 한 장 차이에요. 

그리고 삶의 대부분은 실패예요. 삶은 실패투성이입니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까? 아니에요. 
성공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도 숱한 실패를 했고, 
그리고 지금은 성공을 했지만, 그 성공이 끝이 아니에요. 
또 다른 실패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더 많아요. 
성공한 사람이 보이지만, 그 사람이 진짜 성공한 사람인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여러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고요. 

 

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손 들어보세요. 
그런 사람이 없지만, 혹시 만에 하나 있더라도.. 그는 곧 실패할 거예요. 
제가 보증해요. 실패할 거예요. 

실패는 일상이라는 거죠. 성공은 예외적인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밤에, 여러분은 관점을 좀 바꾸셔야 돼요. 
성공은 사실은 예외적인 거예요. 실패가 대부분이라니까요. 

저에게 '목사님, 실패를 많이 해보셨나요?' 라고 물으신다면,
'네, 저도 실패를 많이 했습니다' 라고 답할 거예요.

제 어느 한 시기를 딱 잘라보면요. 캄캄해요.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실패, 실패, 실패의 연속이었죠. 그런 일은 제가 얘기하기도 싫어요. 

여러분, 식당 하시는 분들 보세요. 거의 다 망해요. 
지금 식당 하고 계신 분들에게 미안합니다. 식당해서 망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셀 수 없는 실패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 재벌들이 있잖아요. 
삼성도 몇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벌써 역사가 오래되었어요.

그러니 사업가적인 노하우들이, 대를 이어가며 굉장히 두껍게 층이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이제 시작하는 사람이, 그들과 어떻게 사업을 해요? 게임이 안 되죠.

여러분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비록 지금은 성공을 해도, 그게 끝이 아닙니다.
성공의 자리에서 추락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겉으로는 멋지게 보이지만, 내심은 불안해요. 

여러분 지금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가 과정이고요. 성공도 실패도 다 과정입니다. 
실패는 특이한 경험이 아니에요. 지극히 당연하다는 거예요. 

모든 일에 성공한 사람은 없어요. 조심을 하면 실패하지 않을까요?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면, 실패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과 상관없이 실패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너무 스스로 자신을 닥달하지 말라는 거죠. 
계속 실패를 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생인데,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되는 거예요

특별히 젊은 날에는 실패가 일상이에요.          
'젊은 날에 성공한다?' 거의 희귀한 일이에요. 
그리고 혹시 젊은 날에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그 성공은 묘한 거예요. 
그 성공은 매우 위험한 걸 붙잡고 있는 거예요. 

젊은 날의 실패는 진짜 당연한 거예요. 
젊은 날에 성공? 그건 희귀 중에 희귀한 거예요. 

그리고 그 성공도,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아직 결론을 낼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젊은 날에 실패하면, 나이가 들면 실패를 안 할까요?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도 실패해요. 

나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로막지 않아요. 
언제까지요? 죽을 때까지 실패해요.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천상의 존재입니다. 
인간은 실패합니다. 삶은 실패로 가득합니다. 실패가 일상입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가만히 (복지부동) 있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그 순간, 그것도 실패가 됩니다. 
이렇게 실패는 피할 수 없어요. 

◑자 근데 문제는 실패가 아니에요.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에요. 
실패를 어떻게 다룰 거냐? 하는 거죠.

가장 잘못된 실패를 다루는 방식은 뭘까요? 
실패 자체에 몰두, 몰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실패로 인한 자책을 하며, 실패의식에 깊이 빠져 사는 거예요. 
여러분 실패할 때 찾아오는 감정이 뭐예요? 끔찍한 거잖아요. 그렇죠? 
너무너무 힘든 거예요. 

사람들은 실패할 때, 그 아픈 감정, 그 실패의 경험을 어떻게 하죠? 
주야로 묵상해요. 

아침에 일어났어도... 하루 종일 묵상하고,
낮에도, 밤에도, 실패한 그 끔찍한 경험을 계속 깊이 생각해요. 계속 분석해요. 
'내가 왜 그랬을까? 미쳤지.. 미쳤지...'  자기 머리를 막 쥐어뜯고.. 

 

갈수록 더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거죠. 두려움이 밀려와요. 의기소침해져요. 
마음이 오그라들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어떤 것도 시도하기 싫어져요.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려요. 

이렇게 문제는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에 대한 나의 태도'입니다. 
실패를 당연하게 생각해야 되는데, 실패는 실패일 뿐인데, 그걸 너무 확대하는 거죠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 상황 자체는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을 얘기하는 거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거죠. 동서남북이 그냥 완전히 압박을 하고 있는 
답답한 일을 당한 거예요. 박해를 받은 거죠. 
버림받은 것 같은... 거꾸러뜨림을 당한 그런 상황... 
여러분 이것보다 실패를 더 잘 묘사하는 표현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앞이 안 보이는 거예요. 
답이 없어요. 사방이 가로막고 있어요. 

그런데도 바울이 무슨 역설을 하고 있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즉 나는 실패를 해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우리 안에 누가 계시느냐? 
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놀라지 않는가요? 
왜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요? 

그 힘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내 안에 계신 분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걸 믿으면, 상황이 달라지는 거예요...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실패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결코 자신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일어났다고 생각을 해요. 
실패를 그야말로 원수로 여겨요. 

아닙니다. 실패는 원수로 여길 게 아니고 친구로 받아들여야 돼요. 
실패를 혐오해서는 안 돼요. 실패를 끌어안아야 된다는 거예요

실패는 나쁜 게 아니에요. 실패는 좋은 거예요. '약'이라 그러죠. 
실패는 필요한 거예요. 실패는 매우 유익한 거예요. 
그러므로 실패를 증오하거나 원수 취급하면 안 돼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불행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그 실패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저주하겠죠.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그 실패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요.
이 실패의 경험을 빨리 떨치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떨치고 싶을수록, 그 실패는 내게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나를 억압해버려요. 
그 실패를 통하여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요. 
실패를 통하여 주어질 보화, 어마어마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놓쳐버려요. 

여러분 실패가 없으면 안 돼요. 반드시 실패를 해야 돼요. 아멘 안 하실 거예요? 
아멘 하기 힘들죠! 

실패는 좋은 경험이에요. 여러분 실패의 경험이 
나중에 나에게 가져다 줄 선물이 얼마나 어메이징한 건지 몰라요. 
지나고 나면 그 실패가, 오늘의 나를 만드는 거예요. 

지나고 나면, 그때 그 실패가 없었으면, 
오늘 내 인생은 다 망가져 있었을 거예요.

그 실패 때문에, 하나님은 그 실패를 재료로 삼아, 
내 인생에 축복을 담는 그릇을 만드신 거예요. 

여러분 실패가 아니면, 우린 잘 못 깨달아요. 못 깨달아요. 
실패가 아니면 도무지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 소중한 지혜가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실패를 내치지 말아야 돼요. 
오지 않아야 될 게 온 것처럼, 막 악을 쓰고 그냥 저주하고, 
막 화를 내고 발을 동동 구르고, 험한 말을 하고...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계속 바라보면서 
'그 실패.. 그 실패..' 하면서, 막 험한 말을 퍼붓는 거예요. 자기만 손해인 거죠.

여러분 실패의식 때문에, 실패를 통해서 얻는 교훈까지 버리면 안 돼요. 
실패를 끌어안고 사랑하면, 그 실패는 나에게 놀라운 것을 돌려줘요. 

그러니까 실패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거예요. 

▲멋진 실패가 있어요. 멋진 실패! 그게 뭘까요? 
실패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느냐는 거죠.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다루시느냐?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여러분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요. 
성공의 지점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없어요. 

성공한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 돼 있어요. 자기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굳이 필요 없어요.                                  

왜 사람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성공에 도달하려고 그래요? 
하나님에게 빌고 싶지 않은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궁색 떨며 매달리고 싶지 않은 거예요. 교만이죠.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을 보면,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요. 
실패의 지점에 주님이 딱 계세요. 아니 주님은 미리 와 계셨어요. 

근데 우리가 모르고 있었어요. 
근데 실패하니까.. 와 계신 주님이 보이는 거죠. 

베드로가 누가복음에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지마는' 
그 순간에 주님이 찾아오셨어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요21장에 디베랴 바닷가에 있던 베드로... 처절하게 실패했죠. 
제자로서 완전히 실패하고 낙향했어요. 

주님이 그를 다시 찾아오시고 그를 일으켜 세워주셨어요. 언제요? 실패했을 때! 
실패의 자리는 은총의 자리예요. 
실패의 자리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절대자의 손을 붙잡죠. 

여러분, 실패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실패로 인하여 너무너무 힘들어서, 교회에 올 힘마저도 없는데 
그래도 이것 아니면 살 길이 없어서, 금요철야를 선택하여 나온 분들이 
아마 이 자리에 있을 거예요. 
그분들을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거예요. 

◑실패를 통하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가는 방향을 확인시켜 주세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면.. 실패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방향을 놓쳐버려요. 
우리의 인생의 가는 길의 방향을 놓쳐버려요. 

그런데 실패가 우리가 가는 길을 멈추게 하고, 우리의 가는 길을 교정해 주는 거예요. 
실패를 통하여 진로를 수정하게 되는 거죠. 

안 그러면 Go straight 그냥 갔을 거예요. 내 길을 갔을 거라고요. 
그런데 실패를 통하여 stop하게 하시고,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하나님이 확인하게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은 더 끔찍한 실패를 하나님이 막으시기 위하여, 
더 끔찍한 실패를 하기 전에, 작은 실패를 하게 하시는 거예요. 

실패를 통해 우리 자신을 점검하게 하시고, 우리를 성찰하게 하시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확인하게 하시고... 
이렇게 실패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아~ 내가 너무 교만했구나... 내가 너무 내 열심에 치우쳤구나... 
내 욕망이 너무 앞섰구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없이 내 욕망이 요구하는 대로 전력질주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예요. 방향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조금의 오차가 나중에는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냅니다.
여러분 항해하는 배들이 나침반을 보고 가는데 
약간의 오차가 나중에 완전히 다른 대륙으로 가버린다는 거예요. 조금의 오차가! 

우리는 길을 잃을 때가 많아요.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아요. 
여러분 방향을 잃어버린 열심은, 너무너무 위험합니다. 

방향을 어떻게 잡죠? 우리는 스스로 방향을 잡지를 못해요. 
그러니까 실패의 순간에 비로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거에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은 고난이라고 하는 것을 통하여 크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다'라는 말이 있죠.

▲여러분 우리의 삶의 네비게이션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의 빛입니다. 말씀이 내 귀에 들려져야 돼요. 

말씀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 말씀 묵상을 게을리하고, 그리고 내 일상에 바빠서 취해서 열심히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방향을 잃어버릴 때, 
하나님은 실패라는 경험을 통하여, 나를 돌이키게 하십니다. 

여러분 가장 위험한 것은 방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내가 왜 이 일을 하지? 내가 왜 살지?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방향을 놓치고 나면 
여러분 그 다음에는 할 일이 없어요. 

여러분 '방향'에 있어서 가장 큰 주제, 가장 큰 고려조건은 뭔지 아십니까? 
우리의 방향성에 있어서 '내가 생존이냐 / 사명이냐?' 하는 거예요. 

나를 위해 살 것인가 /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인가? 
돈이냐 / 하나님이냐? .. 하는 거죠. 

▲여러분 아브라함과 롯을 보면 극명한 비교가 일어납니다.... 

아브라함도 실패, 롯도 실패해요. 
아브라함도 믿음의 조상으로 가는 길에서 그는 여러 번 실수를 했다고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방향이 하나님이었어요. 

그러나 조카 롯은 격이 다른 실패라고요. 
자기 정욕을 따라가는 도중의 실패였어요.

그러나 큰 방향에 있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거예요. 

그래서 목초지 문제가 왔을 때도 조카 롯에게 기꺼이 양보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장 자신의 양떼들에게 피해가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한 거예요. 
그 부르심을 향하여 나아간 거거든요. 

그런데 롯은 뭐예요? 당장 눈앞에 기름진 땅, 
자기의 재산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을 위한 수단에 모든 것을 다 걸었어요.
왜요?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목표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롯은 오직 생존에 모든 걸 걸었어요. 

그러니까 그의 방향은 항상 흔들리는 거예요. 
돈 좀 더 주면 그리로 가는 거예요. 
먹거리가 더 풍성하면 그리로 가는 거예요. 
개런티가 더 높은 데로 가는 거예요. 
연봉이 더 높으면 그리로 가는 거예요. 

'그게 신앙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가?' 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기 좋은 데를 선택하다가 보면, 그의 인생은 나침반이 없어요. 
방향이 없어요. 늘 시선이 흔들려요. 목표물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거죠.  

그러면 어디로 갈지 몰라요. 여러분, 이사를 해도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선택하셔야 돼요. 

매일 관심이 '아파트 값이 얼마 오를까?' 
여러분 아파트 값 올리는 그게 기준이 되면, 롯과 무슨 차이가 있어요? 

어떤 분은 아파트를 딱 팔았는데, 또 값이 그 다음부터 막 오른다고 속이 상해해요.

'목사님 제가 새벽기도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습니까?' 
그건 상관없는 얘기에요! 

▲여러분 고생을 하고 힘든 삶이 이어져도 
당할 만한 가치가 있으면 괜찮아요. 
힘들어도 의미를 붙잡고, 사명이 분명하면 감당하게 되거든요. 

 

고통의 순간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질문, 하나님께 질문하는 거예요. 왜? 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길, 하라고 하신 그 일, 
우리가 가는 길의 방향을 하나님은 묻고 계신 거예요. 

'너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제대로 가고 있느냐?
거길 가면 망하는 길인데... 거길 가면 엄청난 환란이 기다리는데...' 

실패는, 인생의 가는 방향성과 깊은 연관이 있어요. 
방향성에서 큰 차이가 나요. 
한쪽은 하늘이고, 다른 한쪽은 땅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가운데 실패는 괜찮아요. 
내가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찾아오는 실패는 괜찮아요.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믿음을 지켜내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데.. 내 삶의 현장이 어려워지고, 실패가 와요. 
그건 괜찮은 거예요. 

왜요? 그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겪어야 될 실패이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힘들지만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거예요. 

그러나 그 방향을 놓치면, 목적지에 어렵사리 갔는데, 그 목적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스스로 선택한 그 목적지는, 롯의 소돔과 고모라와 같아요. 망한 땅이 되는 거예요. 
그건 성공이 아니에요. 

말씀을 배제하고 자기의 욕망대로 살아서 이루어진 성공은.. 실패예요. 
세상은 그게 성공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건 실패예요. 완전한 실패예요. 

여러분 우리의 목표와 방향이 분명하면, 힘들어도 괜찮아요. 
내가 가는 이 길이 하나님이 개런티하는 길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방향이라면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과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그 길을 가는 도중에 실패가 왔다면..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시작하면 돼요. 오늘 실패했다 할지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죠.

▲여러분 실패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의식 가운데 하나가 뭔지 아십니까? 
'(나는 뭘 해도) 절대 안 돼!' 
절대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할 일이 없어요. 실패에 자초된 거죠. 그건 진짜 실패한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선한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고 
가는 사람들은, 실패가 올지라도, 그는 그 실패를 끝으로 보지 않아요. 

하나님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거죠. 
하나님 안에서 가능성을 찾는 거죠. 
다시 자신감을 주시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하시고 

내 인간적인 노력을 위해서 내 인생의 생존을 위해서 살다가 실패하면 
그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겠죠.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다가 나에게 찾아온 실패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지 않아요. 

왜요?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마땅히 겪는 찾아온 실패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존감이 회복이 돼요. 
실패에 짓눌리지 않아요.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실패를 통하여 면역항체가 생기는 거죠. 

여러분 세상에 살면서 실패했던 것들은, 실패하면 우울항체가 일어나요. 
우울해지죠.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른 목표를 향해 
그 방향으로 달려 나가다가... 때로는 넘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일곱 번째 일어나게 하심으로, 활성화된 항체가 막 일어나요. 
자신감이 생겨요. 멈추지 않아요. 

'절대 안 된다'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아요. 그래서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서 가는 거죠. 
여러분, 자기 가능성을 믿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갑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복음전도여행의 여정에 
그는 1차 2차 3차여행에 얼마나 많은... 
그를 죽이려고 하는 그런 어려움들이 있었습니까? 

또한 자기 육신의 찌르는 가시로 인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습니까? 
얼마나 연약함을 안고 살았습니까?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죠. 
오히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믿음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강해지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실패로 인해서 거기에서 굴을 파버려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해요. 
뒤로 막 물러나요. 이불을 뒤집어 써요...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성경의 인물 중에 실패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아브라함은 실패의 대명사예요. 아브라함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실패를 진짜 많이 했어요. 실패해도 작은 실패를 한 게 아니에요. 

특별히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실패의 사건은, 인류 역사에 오점을 낳았어요. 
지금도 이스라엘과 중동전쟁이 지금 심각하게 벌어졌는데 
아브라함 할아버지 때문이에요. 작은 실패가 아니에요. 

여러분 어떻게 이삭을 통하여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실 그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드라마에 잘못된 실패를 한 거잖아요. 

그럼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가 실패했을까요.? 아니에요. 
아브라함의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실패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어요. 

아브라함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구원의 드라마를 완성하세요.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하나님! 

베드로를 보세요. 한두 번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계속 사건과 사고를 일으킨 요주의 인물입니다. 사고뭉치입니다. 

가장 큰 사고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친 사건입니다. 총체적 실패입니다. 
기업으로 친다.면 퇴출 명단의 압도적 1위가 베드로예요. 내일로 퇴출이에요. 
여러분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의 실패는 다시 회복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패의 끝에서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를 다시 일어나게 하세요. 
이게 하나님의 끝처리 예요. 멋지게 마무리하세요. 
실수가 없으신 분이에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크로노스의 시간을 통과하고 카이로스의 시간이 오는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간이 꽉 차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거예요. 
우리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내 시간표만 들여다보면 실패처럼 여겨집니다. 

우리는 마음이 너무 조급해요. 
우리는 너무 빨리 결산을 하고, 너무 빨리 계산을 해서 
그것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안 돼요. 

조급한 사람은 지금의 현실을 실패로 판정해버리고 말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그 실패는 무한한 일이 이루어지는 한 점 과정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이것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믿음이에요. 
그래서 그 사건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지금의 실패는 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려야 되고, 그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란 말이죠. 

오늘 그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거예요. 무엇을? 하나님의 약속을! 
그리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실 것을 신뢰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안에서의 이 실패의 경험은
세상 사람과 전혀 달라요. 
하나님은 우리의 이 실패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를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세요. 

실패를 통하여 우리를 더 깊어지게 만드세요.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아요. 
자기 과신에 빠지지 않아요. 

여러분 성공만 거듭한 사람들은 성공만 거듭한 사람들의 약점이 뭐냐면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거예요. 신뢰하는 거예요. 예외가 없어요. 

여러분 성공만 경험한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뭔지 아세요? 교만이에요. 자기는 몰라요. 
자기도 모르게 고개는 약간 기울어져 있고, 사람들을 알로 딱 보고... 
약간 그런 게 있죠. 

여러분 성공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이 되어 있어요. 
우쭐거림이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 자아가 매우 강해요.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그런 주도형이에요. 

여러분 그런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께 잘 안 물어요. 
하나님 뜻을 찾지도 않아요. 막 밀고 나가는 거죠. 
자기가 알아서 결정하고 시도를 해버려요. 

내가 주인이 된 삶, 여러분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계속 하나님께 물어야 됩니다. 하나님 할까요, 말까요.? 

여러분 언제 깨어졌습니까? 언제 실패를 했습니까? 
내 마음대로 하다가 실패했잖아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셔야죠. 
응답이 아직 안 됐으면 기다려야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기다려야죠.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해야죠. 하나님의 싸인이 나야죠. 뭐든지입니다. 
뭐든지 사업을 시작하는데 여러분 이사를 가는데, 
어떤 학교를 결정하는데 기도를 해야죠. 

여러분 실패는... 우리가 언제 깨져요? 
내 마음대로 한 것에 대한 그런 경험이죠. 

그래서 실패를 통해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거죠.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우는 겁니다. 
실패를 통해서 기도를 배우는 겁니다. 교만하면 기도 못합니다. 
교만한데 어떻게 기도를 해요? 

자기가 능력이 있는데 기도를 배운 사람들이 특징은 환란과 시련을 통했습니다. 
실패가 아니면 결코 기도를 배우기 어려워요. 
그래서 기도가 광야의 학교를 통과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경험이죠. 
실패를 통한 고통의 순간을 지나는 동안에 기도를 하게 되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인간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 속으로 몰려야 기도하는 거죠. 
여러분 실패가 아니었다면 금요철야기도회에 나오기 어려워요. 
금철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과 정직한 대면이 일어나는 실패를 통해서 강인해지는 거죠. 
실패 자체의 그 자체가 우리를 강인하게 해주는 게 아니고 
실패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강인하게 빚어 가신다는 거예요. 

우리의 영혼이 강하게 강하게 
그래서 광야를 거쳐간 영혼은 쉽게 시들지 않아요. 
고난을 통과하고 실패를 통과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다뤄진 그 영혼의 질이 있잖아요. 
이 퀄리티가 강한 거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평소에 우리의 영혼의 질이 그렇게 온전하지 않아요. 불순물이 많고... 
그러나 실패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빚어지면서 그 영혼의 결이나 
그 모든 영혼의 질 자체가 쉽게 다른 것에 의해서 굴복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내게 만드는 힘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역본에는 그래요. '요셉의 그 영혼 속에 철이 들어갔다' 
이런 표현들이 있어요.

시105:18절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의 본래 뜻은 
쇠가 그의 영혼을 꿰뚫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철이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콘크리트에 철근을 넣은 것 같이 그죠? 
이 다리 같은데 큰 다리에 철근을 안 넣어 놓으면, 그 다리가 부스러져 무너지겠죠. 
근데 철근 콘크리트가 되면, 그냥 뭐 어마어마한 덤프트럭이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잖아요. 그죠. 
마치 오늘 우리 건물이 이렇게 크지만 곳곳에 어마어마한 철근 콘크리트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걸 받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흔들려도 안 무너지는 거예요. 

실패를 통하여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빚어지면서 
하나님의 손에 다뤄져서 우리의 영혼이 강인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웬만한 시련과 혼란이 와도 끄떡없는 거예요. 

이게 영혼의 질이 퀄리파이드 됐다는 거예요. 질적으로 상승한 거예요. 
영혼의 질이 부실하면 어떻게 돼요? 
마치 콘크리트가 철근 없이, 시멘트도 많이 안 들어가고 
모래도 소금 있는 바다 모래을 가져와서 공사해서... 성수대교가 무너졌잖아요. 

그냥 무너져 버려요. 다리가 견디지를 못하는 거예요. 질이 떨어진 거예요. 
여러분 이 실패를 통하여 우리의 고난과 시련이 우리의 영혼의 질을 성숙하게 해줘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저 사람 진짜 저 사건과 저 일 때문에 이제는 망했구나'
정작 그는 큰 데미지가 없어요. 룰루랄라 해요. 
'오늘도 나는 철야한다' 하면서 금철에 와서 부르짖는 거예요. 

우리의 인격이 실패를 통하여 빚어내어진 그런 퀄리파이된 영혼이 될 때 
그래서 실패를 통해 얻는 유익은 
실패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더욱더 정결해지고 더욱더 강인해지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중심을 잡은...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 인생에 실패가 오지만 
그 실패는 오히려 더 내 영혼을 더 견고하게 해주고 더 스트롱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 실패 많은 세상에서도, 결코 실패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더 고결한, 더 숭고한, 더 수준 높은, 더 강력한 영혼의 질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를 통해 또 다른 유익이 뭘까요?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돼요. 
여러분 교계에서도 보면요. 실패를 많이 경험한 목회자들이 
후배들에게 매우 좋은 그런 모델이 돼요. 큰 위로를 줘요. 

'당신 같은 분이 어떻게 그런 실패를 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당신은 실패를 모르는 줄 알았는데, 당신도 우리와 같이 실패를 했군요.'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왜 힘이 납니까? 

'내가 실패했듯이 저분도 실패했구나..' 그래서 힘이 나는가요?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 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배우게 돼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인간의 실패를 통하여, 인간의 연약함을 통하여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일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배우는 거예요. 

저런 대단한 것 같아 보이는 목사님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인생이요. 
실패의 생으로 점철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저분을 쓰시는... 
하나님 그분이 위대하시다는 거죠. 

여러분 실패를 통하여 만난 하나님, 실패를 통하여 배운 하나님, 
실패를 통하여 더 깊어지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힘을 얻는 거죠. 

여러분, 복음안에서 성공과 실패를 우리는 다르게 바라봐야 돼요. 
우리의 성공이 실패고, 실패가 변하여 축복이 된다는 사실! 

그래서 고후4:12절에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실패해도 괜찮아요. 아니 실패해야 돼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실패를 향해 욕하지 마세요. 실패를 귀중하게 받아들이세요. 
실패가 아니면 배울 수 없는 레슨, 실패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하나님, 
실패는 좋은 거예요. 실패는 필수예요.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지 아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잘나서 쓰시는 거 아니에요. 못나서 우리를 부르고 쓰시는 거예요. 

 

우리가 실패하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거예요. 
우리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아요. 
하나님은 필요도 없어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어요. 내 잘난 맛에 살 거예요. 

실패를 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한계를 느끼고, 
우리의 절대적 부족을 느끼고,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를 통해서 내가 나를 붙들지 않아야 돼요.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되는 것입니다.
실패로 인한 피해자가 되지 말고, 실패의 수혜자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실패가 잔인한 경험으로만 남아, 자신을 끊임없이 자학하고 
실패의 또 실패의 그 실패의 범벅이 되어서
자기의 인생을 절망으로 몰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 

실패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그 실패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을 찾고 
실패를 통하여 나를 온전히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실패를 통하여 내 인격을 더욱더 기가 막히게 빚어내시고 

우리를 경고하게 하셔서 그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게 하시고 
연약한 우리를 통하여 실패투성이인 우리를 통하여 
오늘도 하나님은 위대하심을 드러내시고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빚어가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십시오.  

실패는 과정이요.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의 끝은 그분의 손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합력하여 선을 일수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 여러분들이 인생 가운데 어떤 실패로의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자학하거나 두려움에 빠지지 마시고 
그 실패를 끌어안으시고 하나님의 마음께로 나아가셔서 다시 한번 일어서는 
위대한 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