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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0:41절 큐티 묵상

LNCK 2024. 11. 11. 11:24

▣ 마10:41절 큐티 묵상               마10:40~41               편집자 큐티 

 

마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위 구절은, 마10:1절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이 12제자를 전도하러 각 동네로

파송하시는 가운데,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 중 마지막 부분이다.

 

▲1. 위 구절을 쓰윽 읽어보면, 주님이 '환대 Hospitality'에 대해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우리가 '주님이 보내신 종들'을 잘 영접하면, 곧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영접한 셈이 된다.

그래서 과거부터 우리 기독교 문화에는 '주의 종을 잘 대접하는' 문화가 있었다.

아마 이런 구절에서 그 근거를 두었나 보다...

 

'주의 종을 잘 대접하면, 정말 내가 복을 받을까?'

그럴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주의 종을 대접한 만큼,

기도 많이 하는 저가, 대접한 나를 위해, 고마워서 간절히 기도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요즘은 사람들이 '주의 종'을 잘 대접하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예전처럼 그렇게 극진하게 대접하지는 않는다.

 

왜 이런 흐름(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이 생긴 것일까?

정말 왠만한 집안에, 목사가 한 두 명은 꼭 있기 때문일까? (흔해서 하찮아진 건가?)

 

그것보다는, '주의 종이 주의 종 다워 보이지 않는' 것일 것이다.

겉모습만, 무늬만 '주의 종'이니, '주의 종' 대접을 해 주기 싫은 것이다.

 

까놓고 말하면, 요즘 '주의 종'이 기도를 간절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신령한 영적 권위 같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언행심사가, 별로 그렇게 거룩해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보면 그나 내나 똑 같은 사람이듯이,

주의 종이라고 해서, 뭐 특별히 특출난 것도 없는 것이다. 라이센스만 빼고는.

 

정리하면, 내가 '주의 종'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영적인 권위가 있어야 되겠다.

먼저 그것은 깊고 진지한 기도에서 나올 것이다.

모세처럼 얼굴에 빛이 나지는 않더라도, 뭔가 거룩한 기운이 내게서 맴돌아야 한다.

그것은 깊고 진지한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에서 나온다.

 

그리고 언행심사에 있어서, Virtue is power 라는 말이 있듯이,  *덕, 인격이 능력이다는 말

나의 인격, 언행심사가... 예수님이 보내신 특사, 사신, 대표 다워야 하겠다.

그래서 오늘은, 사람들이 나를 주의 종으로 대접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며, 스스로 자책해본다.

 

▲2. 오늘 아침 본격적으로 묵상해 볼 대목은 바로 이것이다.

 

마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이 대목은 이해가 어렵지 않다.

내가 아내에게 늘 잘 써 먹는 클리셰이다.   *뻔한 교훈, 뻔한 말

 

그런데 이건 뭐지?

'선지자의 이름으로'

이게 해석이 딱 막힌다.

이 구절의 의중을 퍼뜩 모르겠다. Meaning이 당장 파악되지 않는 것이다.

 

'왜 선지자를 그냥 영접하면 되지 꼭 <선지자의 이름으로> 해야 되는가?

예수님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신 건가?'

 

무슨 자료를 찾아보려면, 그것도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

그런데 쉽게 '지혜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 선지자의 이름으로 라는 것은,

그를 영접할 때, 선지자 대접을 해 주라는 것이구나...'

 

왜냐면, 그 선지자를 대접하면서도 

선지자로 인정해 주지 않고, 

그저 가난한 사람 돕는 구제로, 그를 대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1

이 구절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대접할 때, 그를 '의인'으로 먼저 인정해 주라는 것이다. 

그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 돕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래야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누구를 도울 때, 누구를 영접할 때,

'그를 선지자로 대접하거나, 그를 의인으로 진정 대접했는가?

아니면 그를 대접하거나 영접할 때

그저 동네 아저씨, 동네 아줌마 대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그를 영접했는가?'

 

자칫 잘못하면 대접하고 나서도, 영접하고 나서도

나는 선지자의 상, 의인의 상을 주님으로부터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오늘 한 번 점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