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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LNCK 2024. 11. 11. 18:36

설교본문 색인             ☞ <하나님을 아는 지식>            ☞ 감사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YouTube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10:10~15          2024.11.10.

할렐루야! 오늘은 우리 교회가 한 해에 우리 성도들과 온 교회의   
감사의 총량을 다 모아서 예배드리는 추수감사주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9월, 10월, 11월 오늘까지 우리가 역대급으로 참 최선을 다하고 헌신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주님 앞에 감사로 승화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한 해를 시작할 때, (2024년이라서) 2024번의 감사를 드리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수천 번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감사주일날, 우리 하나님의 주소,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 
하나님의 주소는 어디에요? 

우리 교회 주소는 반포대로 121번지인데,
하나님의 주소가 어디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Father in Heaven' 
그래서 하늘 천국이 하나님의 주소도 되지만,

시22편에 보면, 하나님 계시는 주소 중에 하나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시22:3
과거 개역에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소가, 우리 찬송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또 주님 앞에 우리가, 시편에 보니까,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시100:4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의 주소(거주지)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암몬과 모압의 대군들이 막 쳐들어왔을 때 
'이걸 어떻게 이기나?' 그랬을 때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느냐 하면 

대하20:21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작전을 어떻게 짜야 되고, 전략은 어떻게 해야 되고... 
수많은 전쟁에 대한 어떤 계획이 필요하겠지만 

'아니야, 그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를 찬송하고 여호와께 감사하리라'
이렇게 찬송과 감사가 영적인 슬로건이요, 목표가 되었을 때 
큰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제가, 이 시간 진짜 찬송과 감사가 우리의 전심이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미래를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찬송과 감사의 지수를 높이면 되는 겁니다. 

젊은이들 용어로 말하면 '깨알같은 감사를 주님 앞에 올려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로하여금, 그야말로 삶의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건 그냥 (그렇게 되기를) 소원함 정도가 아니라, 이건 팩트고, 사실이고, 믿음입니다. 
자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찬송과 감사의 지수가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다 두 손을 들고, 오늘 추수감사절날, 
1년 동안의 감사의 총량을 다 모아가지고 
'다 감사하자 주께, 다 감사하자 주께' 찬양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주소가 우리의 찬송과 감사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것이 여러분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눈물 어린 감사의 창에, 미래의 빛이 들어오게 돼 있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래서 다함없는 감사를 오늘 주님께 올려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이와 같이 다함 없는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놀라운 이유가 하나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오늘 말씀의 제목인 '주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그리고 선한 목자가 되어주셔서, 
오늘 설교제목처럼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1. 그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얼마나 이 말씀이 귀한가 하면, 
우리는 흔히 '주님이 선한 목자이시다' 이렇게 얘기했을 때 
본문 요10:11절에 뭐라고 하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14절에도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나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정확히 살펴보면 I am the good shepherd, (and) the good shepherd... 
그냥 적당한 보통 목자가 아니라, 원어에 정관사가 붙여져 있죠. *the, 호
'바로 그 유일하게 선하시고, 유일한 그 목자이시다' 
그게 우리가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유일한 그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마2장에 보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마2:6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 목자 되기 위해 오신 것이에요. 

그리고 베드로가 사고치고 예수님을 배신하고 
진짜 얼굴이 뜨끈하여 주님 앞에 나올 수도 없는데,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다른 것 갖고는 안 됐어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시고 

그리고 '주님, 내가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십니다'
이렇게 문답하면서 주님이 그를 회복시키셨는데 
결국 '내 양을 먹이라!' 

'네가 이 목자의 심정을 깨닫고,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고, 
네가 목자가 되면, 
이 모든 아픔과, 배신과, 수많은 상처와, 수많은 어려움으로부터 
해결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사도요한이 계시록 7장에 보니까 한방을 날리는 거예요. 
계시의 언어를 가지고 이렇게 선포합니다.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할렐루야! 주님이 오늘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애환과, 배신과, 상처와, 수많은 트라우마를 
주님이 해결해 주셔야 되는데... 방법이 뭐냐? 

우리들의 뭐가 되사? 목자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내가 제대로 깨달을 때 
내 마음속에 진실된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그 목자의 음성을 제대로 들여야 돼요. 
요10:16절에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어떤 말씀은 오늘 여러분들의 세미한 음성이 될 것이고, 
어떤 말씀은 여러분들에게 미풍처럼 부드러운 말씀, 

또 어떤 말씀은 폭풍처럼 강한 말씀, 
그리고 바위를 깨뜨리시는 강력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아무도 못 알아듣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우리의 뭐라고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러면 선한 목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2.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

헬라어로 '나는 누구다' 라고 했을 때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라고 하죠, 
영어로 I am

'나는 선한 목자라' '에고 에이미...'      주1)                 
이렇게 '에고 에이미'를 쓰는 이유는, 강조할 때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선한 목자 되심'을 아주 힘주어 강조하셨다는 뜻이죠
영어로 I am the good shepherd. 

또 본문 7절에 보면 '양의 문이라' 역시 '에고 에이미'죠.
선한 목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신가요? '양의 문'이십니다.

'양의 문'은 너무 놀라운 개념입니다. 
유대나라 사람들은 양을 넓은 들판에서 방목하지만, 

이제 밤이 되었을 때, 양들을 다 불러모으죠.
들판에 둥글게 돌을 쌓아서 양우리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양이 출입할 수 있는 조그만 문(출입구)을 만들어 놓고, 

 

밤에는 양을 우리에 다 가둔 후에 (이리나 맹수로부터 보호하는 거죠)
목자가 딱 그 좁은 '양의 문' 앞에서 지키는 거예요.

밤이 깊으면, 양의 문, 그 출입구에서 목자는 가로질러 누워 잔다고 그러죠.
그러면 양이나 짐승이 지나가는 경우, 목자의 배 위로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목자가 금방 깨는 거죠.
그렇게 양들을 안전하게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다'
양들은 그 문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며 이제 보호를 받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찬송할 때도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하지만
2절에는 '양의 문이 되신 예수여 우리 영접하시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569장

주님은 우리의 뭐가 되어주셨다고요? 
양의 문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아주 세미한 음성으로, 미풍같은 음성으로, 부드러운 음성으로 
'양의 문'이 되셨습니다. 양 떼를 지키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양의 문 안에 있는 것과, 양의 문 밖에 있는 것은 
죽음과 생명을 가르는 천양지차, 천지차이가 나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양의 피를 가지고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어요. 즉 문에 바른 거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일부는 도덕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다 해도 
양의 피가 있는 것을 보고는 사망이 넘어갔어요. 그래서 그걸 유월절이라고 그러죠. 

양의 문 안에 있는 것, 또는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문 안에 거하는 자들은 
사망을 면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에요. 

요10: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고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진리이다.. 라는 것입니다.

진짜 진리는 하나밖에 없다. 이건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양의 문이 오직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10:9
양의 문을 들락날락하면서 꼴을 얻고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특히 목자는 양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보면서 
'아 이 양이 병들었구나.. 이 양이 아프구나.. 이 양을 내가 도와줘야 되겠구나..' 
이렇게 매일매일 점검하면서, 필요를 채워주고, 꼴을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의 '양의 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양의 문 밖에 있으면 이리떼들, 늑대들, 곰, 사자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데, 
마치 양이 도둑들 앞에 있는 것처럼, 엉터리 지도자들이 많이 있는데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꼴을 먹으며, 
구원의 진리로 보호받는 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3. 앞서 가시며 인도하시는 목자

더더구나 주님은 선한 목자, 양의 문이 되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본문 3~4절에 보니까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10:3~4

지휘관이 뒤에 있으면서, 자기는 전쟁도 안 하고, 
뒤에서 그저 회초리 가지고 때리며 다그치는 목자가 아니고, 
앞장 서서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앞서 가면' :4

그래서 저는 지난 세월 40여년 목회하면서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주여, 목자 되신 주님께서 매일매일 우리 성도들의 삶에 
앞서 인도하시는 은총의 표징을 보여주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떨 때는 절규하면서... '순간순간 우리 성도들을 지켜주시옵소서' 
'앞서 인도하시는 목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이렇게 양의 문이 되시고, 앞서 인도하실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요? 
양의 무력한 현실이 극복 되는 것입니다. 

◑적용

 

▲1. 선한 목자는 양의 무력한 현실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 그랬어요.

주님이 나를 속속들이 아시면, 나의 연약함도 속속들이 아시고, 세밀하게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양은 미련하기 짝이 없어요. 
양은 무력하고, 양은 방향 감각도 없고, 양은 빨리 뛰지도 못하고, 
양은 공격도 못하고, 방어도 못하는 연약한 동물입니다. 게다가 눈도 나쁩니다. 
그래서 양은 죽을 때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죽는 거예요. 

개나 돼지는, 죽을 때 난리를 치고, 온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양은, 죽을 때 아무 소리도 없이 턱 죽습니다. 

제가 호주에 가서 양털 깎는 체험을 해 보았어요.
양떼 목장에 가서, 양털 깎는 기계가 꼭 이발하는 기계인 바리깡 비슷한 거였어요. 
그걸 가지고 제가 막 이렇게 양털을 깎는데요. 

제가 익숙하지 못해서, 전문가가 아니니까, 양털을 깎다가 
그냥 양이 피부를 살짝 건드려버렸어요. 양에게서 피가 막 나는데 제가 너무 놀랐어요.

'양님,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양이 아무 소리도 안 해요. 음매~도 안 해요. 그냥 가만히 있는 거예요. 
내가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너무 깜짝 놀랐다니까요. 
양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예요. 

새들도, 기러기도 방향 감각이 있어서, 저녁에는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데 
양은 방향 감각이 없어요. 

여우도 저녁이 되면 자기 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양은 방향 감각이 없어요. 
양은 사자처럼 세지도 못하고, 소처럼 뿔로 공격도 못합니다. 

여러분 양이 개처럼 달려들고, 들이받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양이 개처럼 왈왈 짖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양, 너무나 연약한 양, 
죽을 때도 아무 소리도 못내는 양이... 강할 때가 있습니다.
 
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 그랬어요. 
여러분, 이걸 깨닫고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양이지만 
방향 감각도 없고, 스스로 살아갈 힘도 없는 존재이지만 
딱 하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안다'

양을 아는 착한(=선한) 목자만 있으면 양의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저는 오늘 같은 이 약육강식의 시대에, 
양이 멸종되지 않는 것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이 무력한 양은, 이 약육강식의 시대에 다 도태되어야 되는 것인데 
양이 아직 살아남아 있는 거예요. 그 이유는 바로 뭐 때문에요? 
양을 아는 목자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양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인은 양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인들이 이 치열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정말 미련하기 짝이 없는 연약한 양이에요. 우리는 무력하기 짝이 없어요. 
무력 곱하기 100제곱이에요. 
진짜 우리는 양같아요. 

오죽하면 요15:5절에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양같기 때문에, 선한목자 되신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날마다 고백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무능력한 존재라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주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요. 
여러분 몸이 아프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달 내내 감기 걸려서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갑자기 여러분들 심정지를 당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여러분 연세 드신 분들은 '내 노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준비한 것도 없는데, 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특별히 우리 교회의 자영업자들 얼마나 어렵습니까? 어떻게 될 것입니까? 
4차 산업시대의 변화에 못 좇아가는 우리 70, 80대 어른들, 
양처럼 무능력한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근데 주님은 우리에게, 이제 부드럽고 세미한 음성 정도가 아니라 
천둥같은 음성으로 
'나는 너의 선한 목자이니라, 양의 문이니라, 앞서서 인도하시는 목자이니라!'

'앞서 인도하며 은총의 표징을 보여주시는 분이니라. 
너희는 내 음성을 들어야 할 것이니라' 

▲2. 선한 목자는 모든 얽매임에서 나를 자유케 하십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뭐냐면 
본문 요10장 앞에 요9장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나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니까, 꿈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완전 결핍증 가운데 일평생을 사는 거죠.

사랑도 못 받아보고, 필요도 못 채워보고... 
여러분 사람이 결핍이 있으면,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맨날 상처 트라우마의 연속입니다. 어느 정도냐? 

맨날 사람들이 와가지고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 맹인된 것이 
이 사람의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세상에 자기를 앞에 세워놓고, 이런 모진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계속 반복해서 들을 때 
그의 마음에 그 상처는 말할 수 없어요. 트라우마예요. 

대부분의 경우, 상처는 사람들의 인생의 발목을 잡습니다. 
발목을 잡으니까 자유함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건 직후에, 주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하시며 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이에요. 

여러분 38년 된 병자가 구원받고 난 다음에는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이 그 병자를 압박하고 난리치니까 
약간 배신 비슷한 걸 때렸어요. '나를 누가 고쳐주었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랬죠. 

그런데 이 시각장애인은 예수님께 대해 끝까지 신뢰를 지켰어요. 
그러면서 여러분 이 맹인의 꿈이 회복되었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 때문에 꿈이 회복되니까,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에요. 
이 눈 멀고 결핍된 것을 주님이 치유해 주시니까,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트라우마와 상처로 이 맹인의 발목을 잡고 인생을 괴롭혔던 
그 모든 상황이... 눈이 떠지고,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양의 문이 되시고, 앞서서 인도하셔서 해결해 주시니까, 
이 맹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모든 얽매임 으로부터 자유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영적 가족 여러분,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삶의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이 나의 목자이셔, 주님이 나의 선한 목자이셔!' 
이걸 여러분들이 진실로 고백하고, 외치고, 확신하고 선포할 때,
수많은 무력감들과, 수많은 꿈이 없는 것, 수많은 핍절함과 두려움과 상처들로부터 
주님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게 믿음이에요. 
이걸 깨닫는 것은, 억만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 억만금보다 더 귀한 진리를 깨우친 분이 다윗 왕이었어요. 
다윗 왕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 주옥같이 아름다운... 
지난 3천년 동안 모든 그리스도 인의 삶과 죽음과 인생의 현장에서 
주옥같이 애송한 시인 시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말씀입니다. 
다윗은 목자가 무엇인지... 베들레헴 들판에서 
그 한낮의 열기와 한밤의 냉기를 다 경험한 사람이에요. 

골리앗 앞에서, 틴에이저 어린 청소년이 뭘 하겠어요? 딱 하나예요. 
'나를 목자로서 훈련을 시키시고 
곰의 발톱과 사자의 발톱에서 내 양을 보호하게 하신 하나님!'

그래서 그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다윗이 어리지만, 자기 양을 지키던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 가지고... 골리앗을 대적해서 싸워 이긴 것이죠.
 
여러분, 인생의 무력감과 미래가 보이지 않고 수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말씀을 
여러분들이 열 번, 스무 번 확실하게 선포하고, 암송하고, 외치고, 반복하고 
여러분들의 것으로 고백하게 되면, 

인생의 수많은 죽음의 골짜기와, 사망의 문제와, 죽음의 골짜기들이 
돌파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선한 목자는, 나를 식탁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요?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시23: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멘! 이게 너무나 놀라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원수의 목전에서 어떻게 상 table 을 차려주십니까? 

원수의 목전에서 말도 안 되는 만찬을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원수의 목전에서 밥이 넘어가겠습니까? 
원수의 목전에서 여러분 소화되겠냐고요? 

그런데 성도는, 만찬을 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되신다'는 말은 
여러분이 앞으로 식사할 때마다. 주님과 함께 식사하십시오. 
목자 되신 그분과 함께 식사하십시오. 

여러분 식탁의 테이블의 중심에 예수님이 좌정하게 하십시오. 
이게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아내는 남편과 부부싸움하고 난 다음에 
밥 먹을 때 그 상에, 뭐냐면 남편에 대한 분노를 갖고 와서 앉아있는 거예요. 
예수님 대신에 분노를 앞에 놓고 식사를 하는 거예요.

또 자기하고 안 맞는 사람들, 나를 막 그냥 괴롭히는 사람들, 미운 사람들, 
누군가가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때에, 
여러분의 그 식탁에서 원수를 곱씹으면 안 됩니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table을 차려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셔 앉히십시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선한 목자 대신에 증오를 앉히고, 미움을 앉히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여러분의 식탁에 원망과 복수를 앉게 하면...
큰 일 나는 거죠. 병이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진짜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여러분 생의 식탁의 중심에 좌정하게 하시고 
예수님과, 선한 목자 되신 주님과 함께 식사하시기 바랍니다. 
시23:5절을 암송하시면서요.
여러분 인생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4.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목자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오늘 요절인데요. 
요10: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양처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아무 말씀도, 원수에 대한 항거나 저주의 말씀을 안 하시고,
그냥 끌려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을 제물로 받으셨어요. 
여기에 너무나 놀라운 진리가 있는데, 
어린 양으로서 목숨을 버리는 것에 놀라운 진리가 있는데요. 

구약의 중요한 신앙의 원칙 중에 하나가,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제사를 드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제물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제물을 드릴 때, 사자를 제물로 드리는 거 봤어요? 
호랑이를 제물로 드리는 거 봤어요? 

약삭빠른 여우를 제물로 못 드립니다.
포악한 이리를 제물로 못 드립니다.

그런데 연약하고 무력한 양을, 제물로 받으시는 것이에요. 놀라운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사자도 안 받으시고, 호랑이도 안 받으시고, 늑대도 안 받으시는데,
아무 힘이 없는 무력한 양을 제물로 받으시고, 
그걸로 끝나지 않으시고, 부활의 능력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이 유다의 사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양과 사자는, 둘 다 영어 L자로 시작하고, 알파벳이 4개입니다. 
양은 LAMB, 사자는 LION, 

from Lamb to Lion 양이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진리입니다.

그 로마 시대에, 그 당당한 로마 제국이 
어린 양들이... 남들이 볼 때 보잘것없는... 초대교회 초신자들을 통하여 
대로마 제국이 백기를 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시대를 향하여, 양처럼 제물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려면 우리도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능력을 받습니까? 

'주님이 나의 선한 목자이시다'를 계속 고백하면서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고백할 때 
하나님은 양으로서의 역할도 하게 하시지만, 
from Lamb to Lion 양이 사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유다의 사자의 능력과 권세와 기품과 권위와 능력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28절에 나오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 임종의 시간에도, 우리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도 
저는 임종 예배를 인도할 때,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합니다. 
'선한 목자 되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양이 사자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론을 뭐냐면, 28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28 

영생이란 말은 Eternal Life, '영원한 생명'이란 뜻입니다. 
28절의 시제는, 과거 시제도 아니고, 미래 시제도 아니고, 현재 시제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Synoptic Gospel
그 공관복음에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하여, 또는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며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근데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는 말이 
뭐로 치환이 됐냐, 뭐로 바뀌어졌냐 하면 
영생이라는 말로 바뀌어졌습니다.             

어린 양이 되친 주님께서 선한 복자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뭘 주셨다고요? 
영생 eternal life 을 주셨습니다. 

이 구절이 '현재 시제'란 말은 
그 영생을 미래의 천국에 가서만 누리지 말고, 
벌써 이 땅에서도 천국의 예고편을 맛보고 살아라! 

이걸 일컬어서 '천국적 삶, 현재 천국'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 땅에 있으면서 여러분들이 천국적 삶에 대해서 눈이 열려야 하는 것이에요. 

그 천국적 삶이 뭐예요? 
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라' 
소위 어반던트 라이프 abundant life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그 풍성한 생명을, 영생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생명을 
이 땅에서도 예고편으로 누리고 살아라!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누리려고 하지 말고 
이 땅에서도 누리고 살아라! 

영생의 삶, 영생의 삶의 예고편, 
천국적 삶, 하나님 나라의 삶,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못 누리면, 내세에서 누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적 삶을 누리는 자가, 내세에서도 누리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풍성한 삶은,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벌써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23편의 표현으로는 뭐냐? 
'여호하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는 선한 목자라, 그는 양의 문이라, 
그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기 때문에 
그가 주신 영생을 뺏을 자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느니라!'

이걸 깨닫고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걸 기쁘고 감사함으로, 총량의 감사로 올려드릴 때 
오늘 추수감사절은 복되리라고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가슴에 손을 앉겠습니다. '주님 오늘 이 말씀이 
억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진리의 말씀으로 내게 확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존귀하신 이름, 선하신 목자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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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ός·
    I am the shepherd the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