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렘27장, 목에 멍에를 메고 예언한 예레미야

LNCK 2024. 11. 22. 18:21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예레미야

 

◈렘27장, 목에 멍에를 메고 예언한 예레미야      렘27:1~22         여러 설교 정리

 

이미 오래 전부터 유다의 파멸을 예언해 왔던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왕 즉위 초기에 주변 열국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한 멸망을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왕이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아울러 시드기야왕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신뢰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징계를 수용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본 장의 개요>

열방 왕들에게 전한 예언(1-11절),

유다왕 시드기에게 전한 예언(12-15절),

유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에 전한 예언(16-22절)

 

◑1. 열방 왕들에게 전한 예언(1-11절)

 

27: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시드기야)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본절에는 연대기적 상황이 언급되고 있는데, 26:1의 연대기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3, 12, 28:1등을 참조할 때, '여호야김''시드기야'를 필사자가

오기(誤記)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므로 본절의 사건은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 이후인

B.C. 597년의 2차포로 사건(여호야긴 유배)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수리아역과 아랍어역, 그리고 몇 개의 다른 맛소라 사본들 및

영역본 KJV, RSV, ASV등도 이를 '시드기야'로 읽고 있죠. 여호야김이 아니라요.

 

27: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멍에'는 것은 소의 목에 매는 것이고, 줄은 그 멍에를 잡아매는 가죽 끈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멍에를 자기 목에다 걸었으며,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은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27:3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주어

에돔의 왕과 모압의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의 왕과 시돈의 왕에게 보내며

 

지금 시드기야가 즉위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주변국들의 사신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 예레미야가 ‘열국의 선지자’로서,   렘1:10

이렇게 자기가 멍에를 메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입니다.

원래 퍼포먼스는 에스겔 선지자의 특기였죠. 겔4~5장. 예레미야도 그걸 보여줍니다.

(두 분은 동시대에 활동했는데,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예레미야는 남유다에서 활동)

 

무슨 의미인가요?

이스라엘과 열방이 바벨론의 멍에를 메게 된다, 포로로 잡혀간다.. 는 뜻이었죠.

 

아시다시피 바벨론의 정복은, 유다만 당한 고난이 아니라,

바벨론에서 애굽에 이르는 모든 나라들이, 다 함께 당한 고난(정복)이었고,

그것은,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들어 사용하신

결과였습니다.

그러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순순히 받으라’는 메시지를 열방에 전한 것이었죠.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들)을 주어'

'그것을 주어 send'란 말은 '그것을 보내어'라는 의미죠.

이는 본절에 열거되어 있는 하신들에게, 멍에가 하나씩 보내졌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혹자는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멍에를 하나만 사용했으며,

그것을 그의 목에다 걸었음을 근거로 하여

아마도 이것은 사신들이 자기 왕들에게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보고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멍에가 아니라요.

 

그게 '멍에'든지, '멍에를 메게 된다는 메시지'든지

시드기야의 즉위를 때 맟춰 예루살렘에 모인 주변국의 사신들은,

그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분명히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주변국들의 사신들은

반바벨론 동맹의 결성 문제를 두고

시드기야와 의논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파견된 특사였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유다의 수도에 모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시드기야가 반바벨론 운동의 주동자였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죠.

 

이러한 연유에서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정복 후 시드기야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렸던 것입니다.

 

27:4 그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의 주께 말하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의 주께 이같이 전하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여호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백성과 그 안의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이들을 정복할 임무를 주신 역사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5

 

27:5 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쳐든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

 

'나의 쳐든 팔’이라는 표현은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는 말로 종종 사용되었죠. 출6:6, 신4:34 등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조차 여호와의 능력으로 인함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

하나님이 그 나라의 왕을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왕을 세우시는 주권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27: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해서

그가 여호와를 잘 섬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여서 자신의 신적(神的) 작정을 성취하는 데

잠시 사용했다는 뜻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도 ‘내 기름부은 자’로 성경은 불렀죠. 사45:1

 

열방의 운명을 통제하시는 분은 당연히 그들에게

자신의 신적 의지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열방은 ‘바벨론 왕이 주는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든지 않든지 상관없이

결국 하나님의 뜻(바벨론을 통한 열방 징계)은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7절에는

바벨론 자체도 결국에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됩니다.

 

27:7 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실제로 바벨론 나라의 치세는 길지 않았습니다.

BC 539년에 메데-바사의 고레스에게 망했죠.

 

진정한 바벨론 제국의 시작을, BC 605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과 앗수르를

완전히 꺾은 때부터라고 볼 때, 제국이 고작 66년 가량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세계사를 호령하며 천하에 위세를 떨친 제국의 위세에 비하면,

그 치세 기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27: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전하는 예레미야의 예언를 거부한다는 것은

곧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과 사실상 동일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로서는 하나님의 징벌이 하필 바벨론같은

이방 세력에 의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을 들어서 유다와 기타 열방들까지 징계하시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큰 섭리를 인정하게 됩니다.

 

예레미야의 선임자였던 이사야는,

앗수르가 여호와의 목적을 달성시키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임무가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던 바 있는데,  사10:5-12

예레미야도 이와 똑같이 바벨론의 임무를 엄격하게 한정시켰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와의 종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가 그를 쓰시는 한

남유다와 주변국들은, 그의 통치에 따르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입니다.

가급적 나라의 피해를 줄이는 선택이었던 것이었죠.

 

27: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

 

여기에는 다양한 직책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주1)

이스라엘에서는 가증스럽게 여겨서 금지된 것들입니다. 신18:9-13

 

9절에서 말하는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나비)와

단어는 같지만, 문맥상 이방 선지자, 또는 거짓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혹자는 위 구절을 인용해서 ‘선지자’를 폄훼하기도 하는데,

같은 선지자(나비)이지만,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선지자와

-이방 나라의 선지자, 또는 거짓 선지자와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이곳에 언급된 다섯 가지 직책들을 엄격히 서로 구별하기란 힘듭니다.

다만 9절을 근거해서 볼 때, 당시 백성들이 여호와의 메시지를 거부하면서도

이방의 온갖 거짓 사술들에 미혹되어 있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27: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 너희가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는 대다수 지배 계층의 주장에 편승하며

또 그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바벨론에 대항하도록 선동하고 다녔습니다.

 

비단 유다뿐만 아니라 그 주변국에도

신흥 세력인 바벨론의 조기 패망설이 나돌고 있었으므로,

(그 당시에 바벨론에 내부 쿠데타가 일어났다가 진압된 적도 있었죠)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입다.

 

27:11 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바벨론에 항복하면 그 순간은 괴롭고,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모든 평화와 환난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으므로

당신께서 반드시 도우사 과거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느부갓네살의 임무는 이스라엘과 열방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징계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자기 임무를 다 하면, 느부갓네살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치밀한 정치적 선견지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역사적 필연에 관한 계시였습니다.

 

▲적용 ‘상식에 어긋나는 여호와의 예언’

 

당시 남유다 나라에서 통하던 상식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거룩한 성전을 보호해 주신다

-선민이 악한 이방 나라(바벨론)에 망할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강대국 애굽도, 앗수르도 꺾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할례를 받았고, 율법을 가진 민족인데, 절대 안 망한다

 

아마 당시에 예루살렘 타임즈나, 이스라엘 포스트 같은 언론이 있었다면,

매일 그런 뉴스나 사설이 보도되었을 것입니다. 소위 전문가의 견해로!

 

그런데 본문은 그들을 ‘(거짓) 선지자, 꿈꾸는 자, 요술자’가

그렇게 예언했다고 합니다.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9

하는 그들의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었죠.

 

△그런데 예레미야의 예언은, 대단히 파격적이며,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바벨론의 멍에를 메라’

그것도 모자라 볼썽사납게 예레미야는 나무 멍에를 만들어,

그것을 자기 어깨에 메고,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찾아온 외국 사절들에게, 그렇게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언을 주시고, 꿈과 환상을 주실 때는... 비상식적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비상 상황의 때인 거죠.

예언, 꿈, 환상이 아니고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예언, 꿈, 환상으로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바꾸어 말해서, 상식적인 상황이라면, 굳이 예언이 필요 없습니다.

굳이 예언 안 해도.. 다 알아 들으니까요.

 

즉, 바벨론의 침략에, 남유다가 선민으로서 승리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그렇게 되리라고... 예레미야가 예언할 필요도 없습니다.

뻔한 걸 뭐하러 예언합니까? 가만 놔둬도 그렇게 되어질 일은.. 예언할 필요 없죠.

 

그러나 안 가르쳐주면 못 깨달을 일,

다시 말해서 비상식적인 일, 통념을 깨는 일, 전혀 예상치 못한 일,

전부가 동쪽으로 가고 있는데, 서쪽으로 가는 게 하나님의 뜻일 때...

이때 비로소 ‘예언, 꿈, 환상’이 주어지는 정황이 되는 거죠.

 

요셉이 바로의 꿈의 해석을 통해 ‘7년 풍년, 7년 흉년’을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도 꾸고 있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시에 성경이 있었다 해도, 이런 일은 성경에도 구체적으로 안 나옵니다)

이때 기름부음 받은 예언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능력을 발휘할 때입니다!

 

오늘날 우리 개인/가정/공동체/사회에도

하나님이 때로는 비상식적이고, 전혀 예측이 안 되는 일을 행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는 일도, 가끔씩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그래서 미리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에도 ‘선지자’를 세워주시고,

교회에도 ‘선지자’를 세워주시고

공동체에도 ‘선지자’를 세워주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는 선지자 은사가 전혀 없다고 해도

한 때 one time relief 로 선지자로 쓰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선지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빠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아내나 자녀가 경고해 주는 거죠.

 

어쨌든 우리는 ‘상식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인’

‘지금의 흐름과는 완전 역행하는’ 또는 ‘얼토 당치도 않는’

그런 주님의 음성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민감하게 깨어있어야 합니다.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예레미야 당시에 안 살았기에 정말 다행이지,

내가 당시에 살았으면, 나도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너무 ‘비상식적이고, 사회 통념에 어긋하고 역행하는’ 예언이었기 때문이죠.

어쨌든 우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서 분별해야’ 하니까요!

 

사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참 역설적인 게 많습니다.

우리는 멍에를 벗고 이 고통에서부터 벗어 나야지 살 거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너희가 멍에를 메야지 산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그런 시기가 있는 거죠. 특별히 징계를 당할 때죠.

‘바벨론을 벗어날 때 사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 이라는 멍에를 질 때에 네가 산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마11:28~30절 참조

오늘 내가 당하는 바벨론의 멍에가 혹시 있다면, 그걸 기꺼이 감당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2. 유다왕 시드기에게 전한 예언   (12-15절)

 

27: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이방 나라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선포하던 예레미야는

이제 유다 나라로 그 방향을 바꿉니다.

사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이방이 아니라 바로 유다에 있었습니다.

 

27:13 어찌하여 당신과 당신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바벨론 왕에게 굴복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임을 알고 이러한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여서 생명을 보존하라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러한 예레미야의 말은, 바벨론에 대한 저항에 사기를 떨어뜨릴 만한 것이었고,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예레미야는 반국가적 선동을 야기시킨 반역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27:14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경고가 계속 주어지고 있는데,

이는 왕을 위시한 대다수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꾐에 너무도 깊이 빠져 있었음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당시 그 거짓 선지자들은, 애국자로 존경받았을 것이고,

많은 백성들의 신망과 지지를 받았을 것입니다.

 

27:15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적용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면, 징계 중에도 피해를 최소화 합니다'

 

결국 결과를 놓고 보십시오. 예레미야의 예언이 맞았습니다.

자로 가든, 모로 가든.. 여호와의 뜻이 성취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남유다가 순순히 항복하고, 바벨론 포로를 수용했으면.. 피해가 적었을 겁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최후 멸망(BC 586) 을 앞두고

3년간인가 (찾아봐야 됨) 결사항전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바벨론은, 굶겨서 죽일 작정이었나 봅니다.

신28장에 예언된 모든 저주가, 이때 남유다에게 다 응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인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잡아먹고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성소에서 살육을 당하며, 애2:20

젊은이와 늙은이가 길바닥에 엎드러졌고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으며, 애2:21

 

젖먹이는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고

어린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고(애4:3),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음(애4:10)’을 보고

자신이 예언한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에 대한 애통을

예레미야애가를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 대한 반역을 시도한 결과로

B.C. 586년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살해했으며, 그런 다음 시드기야의 눈을 뽑았고,

그를 쇠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데려갔고, (왕하 25:1-7). 거기서 죽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놓고 볼 때,

자로 가도, 모로 가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었어요.

예레미야가 그래서 항복하고 순순히 멍에를 메라고 예언했거든요.

 

그런데 예언을 무시하니까

환난은 환난대로 다 당하고, 결국에는 포로로 끌려간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빨리 항복했으면, 피해를 크게 줄였을 것입니다.

 

이런 것은 역사학자에게 물어봐야 되지만, 가만히 보면

2차대전 때도, 초기에 독일이 진격작전으로 거세게 밀어붙일 때,

아주 작고 약한 나라들 중에, 빨리 독일에 항복함으로써,

그들의 요구를 조금 들어주고,

대신에 자국 국민들의 죽음과 도시 파괴를 면한 몇몇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항복은, 국가와 국민 정서에는 치욕스런 것이지만,

어쩌면 현실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는 거죠. 또 ‘뜻’일 수도 있습니다.

 

◑3. 유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에 전한 예언  (16-22절)

 

27:16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전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시드기야 왕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내용의 말씀이

본 절에서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전의 기구들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성전 기구들중 대부분의 품목들은

바벨론 정복자들에 의해 이미 옮겨져 있었기 때문에 (B.C.598년, 왕하24:13)

현재로서는 성전기구라 불리울 만한 물건이 남아 있지 못하였습니다.

 

왕하24: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그렇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소도구들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19절 참조)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2차포로 때) 빼앗겨 버린 성전기구들이

머잖아 모두 되돌려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장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남아 있는 성전 기구들마저

예루살렘 함락 후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아래 19~20절에 '기둥들과 놋바다와 받침들'이 또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27:17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거짓 선지자들이 이들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들려준 예언이란 것은

실제로는 거짓이었으며, 헛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납한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고 심판을 자초하는 행위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이 이제 곧 돌아올 것이며,

재앙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예언, 설교는 바벨론에 대한 저항과 반역을 자극하고 선동함으로써

유다의 패망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7: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여기서 예레미야는 유다의 조속한 회복을 주장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아 있는 것이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말로 그들을 공박합니다.

 

27:19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큰 대야와 받침들과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기둥들과 놋바다와 받침들'

이것들은 성전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구들이었죠.

여기서 '받침들'이란 왕상 7:27-37에 언급된 바퀴가 달린 기구(작은 물두멍)였을 것 같아요.

 

'기둥'은 왕상7:15-22에 언급된 내용과 같은 것이고,

'놋바다' 역시 왕상 7:23-26에 언급되어 있죠.

 

27:20 이것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인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가져가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

'여고니야'의 축약형 명칭은 22:24에 언급된 바와 같이 '고니야'이며,

왕명으로 '여호야긴'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죠.

 

느부갓네살은 1, 2차 예루살렘 침공에서 성전의 보배들 중 일부를 가져갔습니다.

왕하24:13, 단1:2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어떤 기구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며, 왕하25:13-17

빼앗겨 버린 기구들 중에 어떤 것은 규칙적인 성전 예배에서 사용되었던

중요 항목이었기 때문에 새로이 만들어져서 대체되었을 것입니다.

 

27: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과 유다의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7: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것을 옮겨 이곳에 다시 두리라'

용기와 기구들이 비록 바벨론으로 옮겨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복귀될 것입니다.

 

비록 남유다가 심판하에 놓이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심판 너머에서 하나님이 이 백성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심판 가운데 나타나는 희망의 메시지는, 본서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오직 심판과 절망의 메시지만을 전했다고 할 수는 없고,

 

오히려 선지자의 궁극적 관심사는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섭리에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때는,

위로의 메시지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습니다.

 

▲적용 ‘거짓 선지자를 따르면 결국 망합니다’

‘너희에게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16

 

나 자신부터가 거짓 선지자를 따라서 늘 그들을 좇아가려 합니다.

왜냐면 그들의 메시지는, 듣기에 기분이 좋고, 뭔가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실은 ‘희망 고문’이지만, 그걸 분별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셨는데, 예언하는’ 것입니다.

 

렘29: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신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만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셨는데’

신학교 가서, 안수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주의 종은, ‘소명 calling’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역이 어렵든지, 쉽든지

그 어떤 환경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자기 사명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 15절에서,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거짓 예언을 듣는 사람들을 함께 멸망시키겠다고 하십니다.

 

렘27:15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우리는 거짓 예언을 듣기 좋아하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 본능이겠죠.

그래서 수많은 ‘점 보는 집, 타로 점, 무슨 사주팔자’ 이런 게 성업하는 이유는,

그 수요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는 대부분 ‘소비자가 듣고 싶어하는 기분 좋은 말’을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의 주님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다같이) 멸망하리라

 

.........................................

 

주1)

'선지자'(나비)는 하늘에서 어떤 계시를 받았다고 거짓으로 주장하였던 자들이며,

'복술자'(카삼)는 제비나 화살 등의 여러 수단을 사용하여 어떤 징조를 받아

미래를 알아 맞히는자들로 통하였다.

'꿈꾸는 자'(하롬)는 구름의 형태나 밀도 등을 통해서 점을 치는 자를 가리키고

'술사'(아난)란 구름이나 별을 보고 장래사를 예언하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내는 자를 말한다.

'요술자'(카솨프)은 신비로운 것이나 초자연적 결과 등을 마법의 방법으로 알아내는 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