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유일한 선택 렘29:10~14 2012.08.24.
우리는 아무도 위기의 상황을 환영하고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편안한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편안하고 축복만 있는 삶은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언제나 축복은 위기를 통과하고 얻게 됩니다.
위기가 축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기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배운다는 것만큼 축복은 없습니다.
인생은 위기의 여행입니다. 계속 닥쳐오는 위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다스릴 것인가가 능력입니다.
위기를 이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가 모든 것을 가졌어도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위기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다룰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위기를 이길 수 있는 딱 한 가지 길이 있는데,
그것은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를 배우기만 하면, 위기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든, 성공했든, 돈을 얼마를 가지고 있든
대단한 것 같이 보여도 위기를 만나면 다 넘어집니다.
기도를 제대로 배우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데
기도를 배운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기도의 중요성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는 신자는 없지만, 그만큼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도가 습관이나 형식이 되어버리고
기도를 제일 우선순위에 놓고, 생명을 걸고 기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편에 따라 기도하는 것과,
기도를 내 삶의 중심에 두고 집중해서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형편에 따라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내 삶에서 가장 중심에 놓고 지속적으로 깊이 있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기도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절대 필수가 아닌 필수,
혹은 선택으로 밀려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기도는 최후의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기도를 마지막 수단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별일이 없는 평안한 때는, 기도하지 않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부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인간의 본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기도를 거부하는 마음, 죄성이 있습니다.
인간 죄성의 특징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완악함입니다.
누구의 도움으로 성공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 속에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은 하나님마저도 거추장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탕자의 심리인데, 탕자의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의 뿌리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피가 흐르는 인간에게는 탕자의 심리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심리인 하나님 없이 살고 싶은 욕망,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과 내가 쌓아놓은 것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기도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일어나면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내가 잘났고 능력이 있다면 이 밤에 기도하러 나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만이 긍휼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불쌍한 자의 모습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조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섰을 때 고백했던 말이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에게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어떤 것도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갈 곳이 없습니다.”
겸손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생활을 어떻게 배우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새가족을 새벽기도부터 인도하게 되면
새벽기도가 몸에 배서 계속 나가게 되고
또 새벽기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훈련을 받는 것 보다 꾸준히 기도의 자리에 나가는 사람이, 더 신앙생활을 잘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강조하지만, 교회의 핵심 프로그램 안에 기도가 있는지,
기도가 우리의 모임 안에서 중심부에 있는지,
여러 기도회가 있는데 정작 찬양과 말씀 시간보다
기도의 시간이 더 짧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기도가 많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복시켜야 합니다.
특히 철야기도와 새벽기도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고전적인 책들과 기도에 관련된 책들이 아주 많이 있지만,
우리는 책을 읽고 도전은 받아도 갈급함이 없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에 관한 여러 세미나를 들어도
기도가 지속적이지 않고 동기부여가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본성을 꺾는 작업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최고의 기도 교사인 위기를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절대 쉽게 기도를 하지 않는 속성과 기질을 잘 아셔서
위기상황을 허락하십니다. 확실한 것은 위기가 기도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헌신한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위기를 자주 경험한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벼랑 끝으로 몰려 부르짖다 보니
영의 세계 안으로 깊이 진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에게 축복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결코, 환영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나고 보니
나를 나답게 만드시고, 기도를 알게 하셔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위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렘29:12절을 보면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13절에서도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렘33장 3절에도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시편의 곳곳에서도 ‘부르짖는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묵상적인 기도와 다릅니다.
우리는 묵상적인 기도로 개인적인 영성을 다듬어야 할 필요는 있지만,
그런 기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피가 마르는 기도입니다. 애간장이 녹는 기도입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선택이 아무것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평상시의 기도와 다릅니다.
▲기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한나입니다.
한나의 시대는 어둔 시대였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단지 아들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시대의 상황을 끌어안고 그 시대를 일으킬 역사적인 인물을 만들어내는
애끓는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서
'대낮에 낮술한 사람'처럼 봤을 정도로.. 그는 부르짖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아들 사무엘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두운 시대에 대안이 없는 환경 속에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자신이 기도를 놓친다면 이스라엘은 더욱 깊은 흑암 속에 빠질 것이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부르짖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방의 포로로 잡혀가 우상숭배의 도전으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최후의 승부 앞에서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엘리야의 시대도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아합 왕의 폭정과 백성 전체가 우상을 섬기고
신앙을 잃어버린 시대에, 이스라엘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는 부르짖는 기도를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되어있는데
그것은 위기감에서 나온 기도였습니다.
▲이 모든 특징을 보면, 위기를 통해서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편안한 환경과 웬만한 위기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 (수영로) 교회의 산상기도는 올해 30주년이 되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산기도의 영성이 있었습니다.
소나무를 붙잡고 기도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산에서 구국기도를 했습니다.
산에서 개인기도도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과 교회는
산에서 부르짖었던 백성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한국교회의 통성기도가 유명합니다.
그래서 통성기도를 영어로 ‘Korean style prayer’ 라고 합니다.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되는 어둡고 소망이 없는 역사 속에서
위기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산기도와 통성기도, 새벽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세계교회에서 '세계 선교가 눈에 띄는 부흥을 일으키게 된 이유는
한국교회의 기도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기도는 세미나를 통해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책을 통해서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아픔을 안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위기 속에서는 기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위기를 통해서 우리는 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건 기도의 투지가 한국교회를 낳았고, 한국교회의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위기가 기도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기는 우리를 잡초처럼 강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는, 늘 위기가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장의 죽음, 가족의 질병과 사고, 실직 등
여러 위기는 늘 일어납니다.
이어령 교수는 20대에 베스트셀러를 쓴 한국 지성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지성과 논리로 무장한 무신론자로 살아가면서,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딸의 실명, 손자의 죽음, 이혼으로 이어진 위기 앞에 그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딸에게 육신의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자랑하던 지성은 사랑하는 딸에게 조금도 쓸모가 없어서
초라하게 위기 앞에 섰을 때, 그의 내면에서 진정한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딸을 실명의 위기에서 건져주신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위기는 이어령 교수에게만 닥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도 변화무쌍한 문제들이 파도처럼 일어나
사람들의 인생을 한순간에 할퀴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유명 작가 박완서 씨는 하나뿐인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인정받는 의사였던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되어, 그는 일기 형식으로 책을 씁니다.
그는 그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자후를 토해내는 기도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소리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북받쳐 오르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위기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은 무섭고 위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불행은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누구도 불행을 예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위기가 오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위기를 통해서, 더 깊은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축복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남들이 겪지 않는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어려운 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찾아오는 위기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속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고, 수많은 위기를 만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언제나 느끼는 위기가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위기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예레미야의 시대는 그야말로 위기 중의 위기였습니다.
이 위기는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국가적으로 느끼는 위기였습니다.
거짓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위기를 부정했습니다.
백성에게 별문제 없는 것처럼 거짓된 평안을 약속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별문제 없는데 긁어 부스럼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국가적인 재앙을 바라보며
위기의 시대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선지자였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만 위기를 느낍니다.
위기를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곧 사명이 됩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느끼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오늘의 시대를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지구촌 전체가 다양한 문제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책들을 보면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환경의 문제를 보면
인류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것이 와 닿을 정도이고,
급속화되는 빈부의 격차로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곳곳에서 나타나 극단적인 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힐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회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다 깨어져 있어서
폭력적인 것은 물론이고, 음란하고 퇴폐한 문화, 도덕적 불감증으로
사회가 병들어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이단과 사이비가 얼마나 난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영적인 안일주의가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대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런 위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위기의식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그 시대 속에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하게 하셔서
그들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파수꾼으로 세우셔서
모든 사람이 위기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도록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 이 밤에 오신 분들은 그런 사명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한두 사람의 기도가 아니라, 기도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기도 없이 세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탄도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 해도 좋은데 기도만은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본질에 충실해집니다.
우리의 기도를 자세히 보면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많습니다.
핵심을 붙들고 집중력 있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하다가 중언부언하고 옆으로 새고, 마지못해 기도 시간을 때울 때도 있습니다.
기도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동기부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마치 야곱이 얍복나루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치열한 씨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긴장감이 있고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 죽을지도 모르고
내가 쌓아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긴박감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초점을 정확하게 맞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부르짖는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부르짖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기를 만나면 다른 불필요한 문구들이 사라지고, 선명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부르짖는 기도를 하시는 분은
기도제목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목적이 분명합니다.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을 만남으로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부르짖는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본문 렘29:10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70년이 차면
이스라엘 백성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기겠다는 예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가 안타까워하며 부르짖으라고 하는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무감각함을 꾸짖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으로 환상에 갇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곪아 터져 죽기 직전인데
평안을 외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위기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영적으로 깨어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목회는 애통의 목회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목회하는 동안 날마다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나라는 위기에 빠져있는데, 아무리 울어도 함께 울어주지 않아
홀로 시대의 위기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통회하며 목회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짖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 안에 영적인 각성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기의식 앞에 기도로 반응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국교회가 영적인 무감각에서 깨어나
하나님 앞에서 위기감을 가지고 소나무 뿌리를 붙잡고 기도하는 영성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나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실 때
위기감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영이 죽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녀와 이웃, 교회, 한국 땅과 열방을 바라보고 일어나는 위기의식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회복시켜주시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자리가, 산상기도회가 그런 자리가 되기 원합니다.
역대하 7장 14절을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느헤미야는 조국의 성벽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금식하고 슬퍼하며 기도합니다.
느1장을 보면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느헤미야는 자신도 범죄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멀리 1천 Km 이나 떨어져 있는 조국의 성벽이 훼파된 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상태의 모습이 바로 나의 죄악이고
내 아버지의 죄악이라고 하며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각성입니다. 우리는 뉴스나 주위에서 일어난 상황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기 쉬운데
하나님은 그것을 나의 죄악인 것처럼 느끼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부르짖기만 하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9:11절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 문도들은 절박한 기도를 드립니다.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 하나만 붙잡고 좁은 공간 안에서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런 위기 속에서 부르짖은 기도가 신약교회를 낳았습니다.
위기 상황이 그런 기도를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통해 영성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의 시를 보면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시편 51편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라고 되어있습니다. 절박한 순간이었습니다.
시편 56편을 보면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시편 57편 「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63편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다윗이 기도한 것은 모두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위기는 축복입니다. 우리를 기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프지만 우리에게 위기를 허락하십니다.
위기를 통해 우리의 기도가 강해진다면, 우리는 강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위기와 시련도 이길 수 있는 강성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배운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분쇄할 수 있는 능력이 기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통해 배운 기도는 다릅니다.
위기를 통해 만들어진 단단한 근육질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신자는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위기를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은, 오직 기도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위기를 맞고 계신 분이 있다면, 두려워 떨지 말고 무릎 꿇으시기 바랍니다.
각종 지식과 교리로만 믿었던 것들, 편안한 삶만을 축복으로 여겼던 생각을 내려놓고
선명하고 확실한 기도로 승부수를 띄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나아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기도의 강력함을 맛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느끼게 하시는 위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 위기의식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는 은혜의 손길입니다.
그리고 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은 기도의 부르심입니다.
그냥 기도하지 말고 부르짖는 기도를 하십시오.
부르짖는 기도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는 기도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내가 더욱 강한 신자로 세워질 뿐만 아니라
그 땅에 묶여있는 것들을 푸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부르짖음은 영적으로 깨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기도의 형식은 있으나 기도의 능력을 잃어버린 기도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위기의식을
정확하게 보여주시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개인과 가정, 교회와 국가, 민족 모든 사회 영역을 바라보며 애통한 마음이 있다면
기도의 부르심임을 깨닫고 부르짖으면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회복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위기는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축복입니다.
위기를 통해 기도를 배우고 강한 신자가 될 수 있다면
어떤 삶의 위기 앞에서도 넉넉히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안타까운 우리 주변과 민족을 바라보며 부르짖는 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