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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사람, 살리는 사람

LNCK 2024. 11. 28. 18:5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리더쉽, 목회자

2024-11-14  축복의 사람, 살리는 사람 - YouTube
*위 동영상 5:40초부터 녹취

축복의 사람, 살리는 사람            창47:1~31        

◑1. 야곱 가문이 애굽에 내려가서도, 애굽 문화에 물들지 않은 이유

430년이 지난 후에 한 가족이었던, 칠십 명의 가속이었던 사람들이 
거대한 민족 공동체로 갑자기  등장을 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 마음에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만약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이 가정이 3~4 대 정도 지나면, 70~80 명 정도 거대 가족을 이루게 되겠죠. 

그런데 이 가족이 과연, 한 4백 년 정도 시간 후에  
단일화 된 믿음을 가지고, 단일화 된 공동체를 이루어
이 세상에 섞이지 않고 (야곱의 가족, 이스라엘 민족처럼) 
분명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거대한 단일 민족으로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뭔가 하면 
바로 이 선택 때문이었습니다. (고센 땅에 정착한 것)

아브라함 때부터 이삭 야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과 이삭이 
애굽에 가는 것을 왜 못하게 했겠습니까? 

이유는 뭔가 하면, 거기 가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그들이 버릴 수가 있는 거죠.  

가장 그 당시에 부와 문명이 발전했던 그 이집트 문명 속에서 
그들은 결국 섞여 버릴 가능성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야곱 가족에게, 결국 애굽 행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이냐? 

이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무대를 애굽으로 옮기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죠. 

▲직장 생활 하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은 본문의 이 구절에서 
'협상의 기술'을 또 떠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  *서론으로

사업을 하면, 협상을 많이 해야 되는데 
애굽의 바로 왕과 요셉의 형제들이 지금 협상을 하는 겁니다. 
'앞으로 어디에 야곱 가문이 정착하게 될 건가?' 

요셉이 제일 먼저 형들에게 이야기하라고 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목자들입니다' 
바로와 대화 (협상)할 때, 먼저 이 카드를 내밀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선조 때부터 목자입니다' 
왜 이 부분을 그렇게 강조했을까요?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목축을 아주 가볍게 생각을 하고,  
미천하고 또 부정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강조하게 되면  
애굽 백성들과, 야곱의 가족들은..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목축업을 부정하게 unclean 여겼기 때문이죠.

그러니 애굽 사람들은, 야곱의 가족들을 떼어놓아야 하는 것이죠.

앞서 요셉은 형들과 식사를 같이 안 했습니다.  창43:32
왜냐면 애굽의 문화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애굽 문화는, 목축을 하는 사람들을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목자 라는 것을 밝히는 것을 통해, 바로는
'이들은 우리하고 같이 살 수는 없구나, 그래서 떨어져 살게 해야 되는구나' 
그것은  뭐 이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고, 애굽 백성들을 위한 배려죠. 

그래서 할당 받은 고센 땅은, 애굽의 문화에 동화될 수 있는 위험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좋은 협상이 된 것입니다. 서로에게 윈윈이죠.

또 하나는 무엇이냐, 고센은 그 가운데서는 좋은 땅입니다. 
고센 땅은, 이집트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과는 좀 동떨어져 있지만, 
아주 기름진 좋은 땅이었죠. 나일강 하류 델타 삼각주였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이 제공될 수 있느냐?
그 흉년과 가난의 때에, 앞으로 살아갈 때도 정말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조건을 이 고센 땅이 갖추고 있었습니다.  

바로에게도 '야, 이거는 나한테도 도움이 된다' 왜 도움이 되죠?  
여러분, 목축을 천하게 여기지만 그 사람들이 고기 안 먹습니까? 고기 먹죠. 

그러면 바로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양 떼들, 소 떼들.. 이거 어떻게 관리하겠어요?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가증하게 생각하니까 가축을 돌보려고 하지 않는데, 
그러면 그 고민거리를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나? 
히브리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이 결정은, 한 쪽에만 일방적으로 유익한 결정이 아니라 윈윈 이죠. 
지금 바로 Pharaoh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든 양 떼와 소 떼들을 관리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인력을 확보를 하는 거고,  

야곱 가문에게는, 자기들이 목자 라는 걸 밝히는 걸 통해 
자연스럽게 애굽 사람들과는 일정 거리를 둘 수밖에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고 
그러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 고센에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고센 정착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그들의 종교,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그곳에서 풍족하게 살고,  

또 애굽 사람들한테도 좋은 이미지와 혜택을 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신 겁니다. 윈윈하는 협상의 결과였습니다.

창47: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
고센 땅 속의 한 지역이 라암셋입니다.
경상북도(고센)에 대구시(라암셋)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래서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서 소유로 삼게 합니다.

◑2. 야곱 가문에 속한 가속들은, 기근의 때에도 구원받았다

47: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극심한 기근 중에도 야곱의 가족들은  *지금 여전히 7년 흉년 중
고센 이라는 좋은 땅에서 부족함이 없이 생육하고 번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만한 특별 대우를 누릴 만한 이유는 무엇이냐? 
바로 요셉의 가족 이었기 때문에, 야곱의 가족 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런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야곱의 가족에게 속했기 때문에 
요셉을 통해, 또 바로를 통해 이런 풍성한 은혜가 주어졌다면,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될 때,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또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는 은혜와 호의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내가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 특별히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나와 내 후손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들을 
한 번 더 마음에 깊이 새기시면 좋겠어요.  

◑3. 후손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선택해야!    *하이라이트

특별히 고센 땅을 선택하게 된 것에 대해서  
요셉과  또 형들의 이 선택은 
그 후손들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 부모들의 선택 하나 하나가 어떻게 되느냐? 
나와  후손들의 삶에, 그들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거룩하면서도 이 땅 가운데 풍성하게 살고, 
그리고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정말 이 세상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고민이죠. 

바로 그 고민이, 요셉이 그 형들을 향해, 
그리고 야곱의 가족들을 향해 가졌던 고민이죠. 
'어떻게 하면 이들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이 흉년의 때를 넘어서 앞으로도 정말 풍성하게 살고, 
그러면서도 그들의 삶이 애굽 백성들에게 고통이 되지 않고 유익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을 도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서 결국 '고센 땅의 선택'이 이루어지게 된 거죠. 
저는 그런 뜻에서 우리 그리스도 인들의 삶과 선택이라는 게...  

저는 참 아쉬웠던 게 뭔가 하면
항상 뭔가 하나님으로부터 자꾸 직접 계시를 받으려고 하는... 

뭔가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그냥 직접 계시를 받으려고 하는 이거는, 
제가 생각을 할 때 물론 그런 게 필요한 때도 있겠죠. 한 번씩은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들어요. 
'야, 네가 지금 이런 선택을 하게 되면, 후손들이 정말 풍성함을 누릴 수 있겠냐?  
또 그 후손들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잘 유지할 수 있겠냐?  
이 선택이 세상 사람들한테도 유익을 될 수 있겠느냐? 잘 한 번 생각해 봐라!'

(*직접 계시가 아주 가끔 찾아오는 것이라면,  *꿈, 환상, 예언 등
반대로 내 신앙의 성숙이 바탕이 되어서, 
내가 기도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내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셨고, 지정의를 가진 우리는 지각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율권을 주셨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노트에다가 쭉 적어볼 필요 있습니다.
'내가 이 결정을 했을 때,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잘 지킬 수 있는 건가? 
그러면서도 풍족을 누릴 수 있는가?  
이 풍족함이 이 세상 사람들한테 유익이 될 수 있는가?' 

그런 점들을 우리가 씨름하면서, 판단을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믿음이 없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다 점검을 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렸죠. 뭐 좀 과할 수도 있지만 
내 속에 한 민족이 포함이 돼 있습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자녀들 세대, 그 다음 세대, 그 다음에 이르러 계속 내려가면 민족이 되죠.

지금 나의 선택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 후손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거죠. 세대와 세대를 내려가면서요!

그러니까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뿐만 아니라, 
나의 뒤를 보고 있는, 또 나를 이어서 올 
다음 세대와 후손들 앞에서 
지금 현재 나의 이 선택이, 
정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고, 풍성하고, 
이 시대에 유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결정들을 내가 해야 된다는 것이죠.

◑4. 야곱과 바로의 만남

그래서 바로의 만남을 통해 고센땅 정착이 결정됩니다. 
그 중간에 47:7~10절까지  바로 앞에 야곱이 서게 됩니다.  

바로가 질문을 하죠.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야곱이 대답을 하죠. 이 짧은 한 구절 속에, 
정말 야곱의 인생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 년입니다.'    *147세 소천

그런데 야곱의 이런 표현은, 
오늘날 우리 나라 노인들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우리 나라의 연로한 노인들은 '제가 몇 해를 살았습니다' 하고 말하기 보다는,
'내가 살 날이 한 5년 남았습니다. 10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라고들 합니다.

요지는, 모든 인생의 비극, 왜곡은 어디서 일어나나?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삶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가 종착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적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삶은 다 뒤틀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인생은, 야곱의 표현대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그네 길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히브리서 표현대로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는 소위 나그네 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만 기억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훨씬 가벼워 질 수 있습니다. 

(*야곱은 영생을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몇 살 더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표현을 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그저 '내가 130년 살았습니다' 라고 말했던 거죠.
앞으로 영원히 살 것을 생각하고 있으니, 
세상에서 몇 살 더 살 지에 대해서 별로 큰 관심이나 애착이 없었던 거죠)

야곱처럼 그렇게 살면, 훨씬 즐길 수 있고, 훨씬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지금 야곱은 이야기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이 130 년입니다.' 

그런데 그 나그네 길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은, 
그게 한 마디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47:9
영어성경들은 '험악한'을 'unpleasant, difficult, evil'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유쾌하지 못한, 어려운   

(*그런데 '험악한'은 '악한 evil' 이란 뜻으로 번역할 경우,
같은 단어가 쓰여진 다른 구절들의 용례를 보면,   *라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 생각이 ... 항상 악할 evil 뿐임을 보시고'  
창8:21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 evil 이라'     

이렇게 '악함 evil'로 번역할 경우,
'내 나그네 길 139년을 악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자기 회개의 고백도 됩니다.
주님을 진정 만난 사람들의 겸손한 자기 표현이죠. '나는 평생 죄인으로 살았습니다' 하는...)

'험악한 세월'
이 말 속에, 야곱의 변화되기 이전 모든 삶이 다 들어 있습니다.
형 에서와 갈등이 생기게 되고, 그것 때문에 20년 외국에 가서 고생 했고,
그곳에서 좀 안정이 될 즈음에, 또 돌아가야 될 때가 됐어요. 

또 얍복강에서 형 에서를 대면하기 위해, 치열한 영적인 고민과 
천사와 씨름하는 체험을 했고  
나중에는 또 딸이 성폭행을 당해서 엉망이 되는 일들이 일어나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요셉을 잃게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내 인생은 험악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험악한 (또는 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라고 고백하지만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인도해서 바로 앞에 섰을 때,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합니다.   47:7
야곱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영성에서 나오는 영적 권위 때문이었죠. 

또 대화가 끝난 다음에도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합니다.  47:10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고, 지금 연세도 많지만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히 애굽의 바로를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에 제가 같은 본문으로
'험악한 인생 가운데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던 적이 있습니다. 

야곱의 삶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것은 무엇이냐? 
'험악한 생활, 험악한 인생
그렇지만 그 가운데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그래서 그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나?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그 바로 에게 축복을 해주는 거죠.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의 삶에, 야곱의 배후에는 누가 계시느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는 자기가 가진 영적 권위로,
바로를 축복해 줄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 권세의 정점을 찍은 바로이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도 역시 비참한 죄인이요, 불쌍한 인생 길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야곱의 눈에는, 바로의 비천함과 불쌍함이 보인 것이지요.

야곱이 이렇게 고생한 거는, 팔자가 사나워서 그런 게 아닙니다. 
자신의 한계, 세상의 악함, 
나도 부족하지만, 세상은 참 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험악한 세월을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더 크고 위대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모든 상처를, 하나님은 영광의 별로 바꾸실 수가 있습니다. 
Scar를 하나님은 Star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되고,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주님의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믿고,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바로 그 분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5. 요셉 총리의 현명한 통치

 

47:13~26절까지는 이집트 백성들에게 초점이 옮겨 집니다.  
애굽의 백성들이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흉년이 들었을 때, 곡식을 사서 먹도록 창고를 열었는데,  
백성들의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아직도 흉년은 계속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백성들이 총리에게 하소연을 할 때,
요셉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축들과 곡식을 바꿀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넘겼죠. 
이제 가축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의 백성들이 총리를 찾아와서
'우리가 갖고 있는 땅과 이 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종이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식의 '노예경제'가 성행했죠.

그래서 자기들이 바로에게 종이 될 테니, 식량을 달라고 했습니다. :18~22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곡식을 주고 사 가지고, 
바로에게 바치게 됩니다.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위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1) 요셉이 백성들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주시켰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2) 요즘 최근 해석은, '요셉이 애굽의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사는 모든 백성들을 
애굽 왕의 종이 되게 했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NIV 등 

2)가 문맥상으로는 맞는 것 같아요. 
지금 애굽의 땅은 국가 소유가 되었고, 백성들은 바로의 종이 되게 됩니다. 

근데 이 중에 예외가 있었는데, 제사장들의 토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죠. :22

요셉이 백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3

지금 요셉이 뭘 제안하느냐?  
'파종할 씨를 줄 테니까 너희들의 노동력으로 다 뿌려라'
그들이 종이 되었으니까, 먹을 거는 주인(바로)에게 제공 받는 거죠.

24절이 중요합니다.
'추수의 1/5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4/5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이렇게 요셉이 말했을 때, 애굽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5
 
그러면서 애굽에 토지법이 새로 생깁니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26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우리가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당시 고대 사회에서, 소작료는 기본적으로 50%를 냈습니다.

    땅 주인이 50%, 소작농이 50%,
    이게 가장 일반적인 분배였고  
    조금 더 험한 시대를 살면, 70%까지 소작료를 지불했습니다. 

    20%를 내라는 이 결정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의로운, 
    땅을 가진 사람과 일한 사람들이 소위 태평 성대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가장 의로운 세율이었다는 겁니다.

    무려 80%를 일한 사람(소작농)들이 가지게 되는 겁니다. 
    20%만 국가 소유가 되는 거죠.  *지금 세율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 시대에 장사하시는 분들은, 소위 중간 유통상의 횡포가 정말 심하잖아요. 
요셉의 이 개혁 과정을 통해 누가 다 사라져 버렸나? 
중간 착취 고리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정말 인상적인 것은 뭔가요? 
요즘도 우리가 얼마 전에 코로나를 거칠 때 
'도대체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되느냐? 
현금을 지원해야 되느냐, 뭘 해야 되느냐?' 
지금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방법론에 대해서 사람들이 갑론을박 하고 있는데,
국가가 그들을 도와주려고 해도, 그 방법이 쉽지 않다는 거죠.

지금 요셉의 행동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죠? 
그 창고에 수많은 곡식이 있지만, 사람들한테 그냥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경제력)을 다해가지고 그 곡식을 사도록 만듭니다. 

그것마저도 없을 때는, 의로운 토지법을 세워가지고 
일반 백성들이 수많은 중간 그룹들에게 약탈 당하지 않고, 
바로 국가 소유가 된 땅에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 
80%가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정말 이런 (좋은) 토지법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느냐? 요셉의 이름이 기억되는 동안에는    
애굽의 백성들이 요셉과 그의 가족들을 고마워할 수 밖에 없는... 

결국 이 선택은 무엇이 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한 민족 공동체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이 요셉의 지도력은, 그들의 삶의 울타리가 되어 준 거죠. 

그래서 요셉을 기억하는 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애굽 백성들은 이스라엘에 호의적이었죠. 

나중에 애굽의 왕조가 바뀌게 되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까지
요셉과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됩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 주어졌죠. 
정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죠. 
땅과, 모든 사람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요셉은 그것으로 백성을 살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제가 요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이런 류의 책을 제가 보고 있는데 
그 핵심은 무엇이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어떤 이익을 위하여
모든 백성들을 조종해서, 자기가 모든 돈과 권력을 가지도록 만들면 
그 사회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백성들도 비참해지고 결국 지도자들도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번영하고, 앞서 가는 국가의 특징은 무엇이냐?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섬기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다 썼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그 얻는 혜택과 번영을
남들과 함께 가지는 데 더 많은 초점을 맞추고 도모했을 때,  

그래서 수고한 사람들이 정말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소위 누구 아들이고, 누구 라인이라고 해서 그냥 쉽게 얻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그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거죠. 
그런 세상은, 나라는, 계속해서 발전해 간다는 거죠. 

그렇지만 소위 특권 그룹이 배타적으로 자신들만 권력과 혜택을 갖는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으면... 다 죽게 되는 겁니다. 저개발 국가들이 대개 그렇죠.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는 그것을 백성을 살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름이 기억되는 동안에는 (*약 50~100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좋은 대접을 받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죠.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 역시,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으로 어디에 사용해야 되겠습니까? 
이웃을 살리는데, 이웃을 돕고 섬기는 데 사용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과 교회가 높임 받는데, 우리가 일조해야 된다는 겁니다...